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23)
〈 223화 〉 앨리스 토벌전 – 막간 (2)
* * *
으리으리한 황실 마차가 메르헨 아카데미 교문을 통과했다.
아카데미 교직원 무리와 파견 온 황실 기사단이 일제히 황실 마차를 맞이했다.
호위병 부대가 마차 주위로 대열을 이루자 고급스러운 의복을 차려 입은 노년의 남성이 마차에서 내렸다. 카를로스 황제였다.
마차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카를로스 황제는 교장 엘레나 우드라인과 황실 기사의 안내에 따라 다용도 건물인 마르지오관으로 향했다.
아카데미에 잔류 중이던 로얄 가드 자큘 칼릭스와 실력 있는 황실 기사 3명, 황실 마차로 동행한 황실 마법사가 호위로 붙었다.
그들은 마르지오관 회의실에 들어섰다. 넓고 호화로우며 깨끗했다. 회의실엔 크고 긴 테이블이 중앙에 자리 잡은 채였다.
출입문에서 가장 먼 자리. 교복 차림의 안경잡이 소년과 그 뒤에 서 있는 얼음 기사가 카를로스 황제를 맞이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제 폐하.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새로운 빙제여.”
무거운 긴장감이 오갔다.
아이작은 메르헨 아카데미 학생이자 제르베르 황국의 국민이었다. 즉, 몸을 낮추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에서 빙제의 신분이었기에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만 가볍게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아이작 뒤를 지키는 얼음 기사는 단 한 명뿐. 백금 갑주를 차려 입었으며 키는 족히 3m가 넘었다.
갑주 틈새로 연푸른빛 냉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뒤펜도르프의 기사단장, ‘모르칸’이었다.
그 얼음 기사가 굉장히 위험한 강자임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앉, 앉으십시오, 황제 폐하…!”
교장 엘레나는 몹시 긴장한 탓에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
카를로스 황제는 아이작의 맞은편에 앉았고, 로얄 가드 자큘은 카를로스 황제를 지키고자 황제의 뒤편에 섰다.
황실 기사들과 황실 마법사, 교장 엘레나는 출입문 근처에서 대기했다.
카를로스 황제와 아이작의 논의로 아카데미의 차후 방침이 결정될 터였다. 그렇기에 교장 엘레나는 사전에 그들과 협의하고 회의실에 남기로 한 것이었다.
“우선 새로운 원왕이 된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2학년생이라고 들었네. 실제 나이가 18살이 맞는가?”
“네.”
아이작은 선한 미소를 지었다.
카를로스 황제는 새삼 이런 소년이 이름 없는 영웅이자 새로운 원왕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린 나이대에 걸맞은 순수한 기운마저 풍기거늘.
이 세계를 주름잡는 강자들이 죄다 괴짜뿐인 걸 감안하면 첫인상이 영 명성과는 맞물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작의 과거사를 조사해본 결과, 특별한 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변방에 있는 로펜하임 남작령 출신의 평민으로, 줄곧 가난한 생활을 영위해 왔다. 혈육으로는, 부모 모두 사망. 한 명 있는 친누나는 어린 시절에 로펜하임 남작가에 입양되었다.
그리고, 저 소년은 마법 실력도 아닌 학업 능력으로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너무도 평범했기에 오히려 미스터리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저 소년이 인류 중 가장 강한 인간이며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
카를로스 황제는 위화감과 동시에 위압감을 느꼈다.
“빙제여. 앞서 황국의 입장을 확고히 밝히겠네. 우리 황국은 자네를 환영하네. 되도록 얼음 왕국, 뒤펜도르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군.”
애초에 카를로스 황제가 먼저 찾아왔다는 것부터 굽히고 들어가겠다는 의미였다.
아이작은 안경을 들치며 사글사글한 미소를 유지했다. 그의 뒤를 지키는 위협적이고도 고고한 얼음 기사와는 대비되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일세.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지.”
카를로스 황제는 진중하게 말을 꺼냈다.
“자네는 이름 없는 영웅이라 불리며,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벌어졌던 온갖 마족 출현 사건들을 해결해 왔지. 자네 같은 사람이 면학 목적으로 아카데미에 다닌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네. 그래서 묻고 싶다만.”
“말씀하세요.”
“이 아카데미에… 무슨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 내통자, 앨리스 캐럴이 사용하려 했던 마법도 정체불명의 마법이었다고 들었네. 그것과 자네의 목적이 연관된 것인지도 묻고 싶군.”
아이작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작년부터 잦은 빈도로 발생한 마족 출현 사건을 번번이 해결해 왔다.
카를로스 황제는 그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다.
“일단, 전 마족이 출현할 시기를 대강 알 수 있었습니다. 설명은 어렵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한 미래는 예지할 수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터무니없는 소리였지만, 카를로스 황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외견은 저래도 무려 역대 최연소 희대의 대마법사이므로. 그의 신비롭고 불가해한 능력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만큼 헛된 논쟁도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메르헨 아카데미에 앞으로 마족이 출현한다는 걸 알아채고 입학했습니다. 그 이유를 파헤치려고요. 내통자가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레 알아챘습니다.”
“그렇군…. 납득했네.”
그 말을 듣고, 카를로스 황제는 아이작이 정체를 숨기고 다닌 데 많은 이유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앨리스 캐럴과 마족의 목적, 아이작이 앨리스를 하수인으로 삼은 이유, 앨리스의 처우 문제 등.
그러나 이보다도 앞서 아이작에게 묻고 싶은 건.
“…자네는 아카데미에 있는 제르베르 황국의 국민들을 지켜왔지. 은혜를 입었네. 그 점엔 감사를 표하지. 그러나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군. 자네는 어째서 마족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아카데미에 찾아온 것인가?”
희생정신이나 정의감 때문일까.
아니면, 빛 속성을 타고난 ‘이안 페어리테일’과 관련된 이유일까.
마족이 잦은 빈도로 출현하기 시작한 시기에 이안 페어리테일이라는 빛 속성을 타고난 이례적인 인물이 나타났다. 이는 우연일까.
카를로스 황제는 그 점을 파악하고 싶었다.
“제가 사는 터전 지키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아이작은 표정 변화 없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회피인가.
카를로스 황제는 아이작을 응시하다가, 이윽고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빙제를 더 떠보는 건 여기서 지양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알겠네. 다음은 앨리스 캐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군. 그녀는 이 아카데미에서 뭘 할 속셈이었나?”
“악신을 부활시키려 했습니다.”
“……?”
수 명이 헛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악신…? 우리가 아는 그 악신을 말하는 건가?”
카를로스 황제는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악신’이란 호칭이 붙는 존재는 단 한 명.
마족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파멸의 악신뿐이었다.
언제인지도 모를 아주 먼 옛날에 봉인되었으며, 누가 어떻게, 어디서 봉인했는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나마 알려진 정보도 고대 기록과 오랜 세월 보존된 마력의 흔적을 통해 극히 부분적으로만 밝혀진 것이었다.
“…….”
아이작은 그들의 반응이 무척 자연스럽다고 여겼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플레이어는 2학년 2학기 파트에 들어서야 악신의 부활 소식과 태초의 원왕 전설을 접하게 되니까.
“앨리스 캐럴은 악신을 조기에 부활시키려 했습니다. 바르토스관 옥상에 악신의 부활 법진을 새겼고, 그 모든 걸 가능케 하는 촉매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기에’라는 말은…?”
“언젠가 악신은 부활합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모르겠지만, 악신이 부활하기 전이라면 제가 알아서 느낄 수 있을 거고. 촉매제는 이미 부숴 놨으니 이제 조기 부활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이 무슨 대역죄란 말인가….”
카를로스 황제는 침음을 흘렸다.
황실 기사단이 증언했던 내용을 떠올린다. 앨리스 캐럴이 시전하려 했던 정체불명의 마법엔 천문학적인 양의 마력이 흘렀다고 했다.
거기다 앨리스와 마족과의 내통 관계, 작년부터 벌어졌던 잦은 마족 출현 사건까지.
그 모든 일련의 흐름이 ‘악신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단숨에 납득할 수 있을 터였다.
자세한 건 조사를 더 진행해 봐야 알겠지만, 아이작의 말이 도저히 거짓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카를로스 황제는 심호흡하고 감정을 진정시켰다.
“이 아카데미에서 악신이 부활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확신은 어렵습니다. 앨리스는 마족의 지시를 따랐던 것에 불과하니까요. 마족 처지에선 단순히 여길 성역으로 삼고 싶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죠.”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군.”
“전 개인적으로 아카데미가 현상 유지되길 바라는 입장이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앨리스가 붙잡히면서 마족의 움직임도 잦아들었습니다. 이제는 작년처럼 아카데미에 마족이 먼저 출현할 조짐은 안 보여요. 아카데미에 뭔가 굉장히 중요한 게 있었다면, 앨리스가 잡혔다고 그렇게까지 상황이 바뀌진 않았겠죠.”
“그 또한 예지 능력으로 알아낸 것인가?”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작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명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이제까지 마족을 처치하고 사람들을 지켜내는 데 고군분투해온 남자. 그의 행보를 돌아보면 못 믿을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런 대역 죄인을 자네는 어째서 하수인으로 삼았는가?”
“앨리스 캐럴은 피해자이기도 하니까요.”
아이작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족에게 협박 받고 강제로 이용 당하고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벌인 테러 행위도, 앨리스 캐럴이 원해서 저지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앨리스 캐럴이 황국에 대규모 피해를 입히려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네. 냉정한 이야기지만, 마족에게 협박 당해 목숨이라도 걸렸다면 자신을 희생하면 된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걸세. 앨리스 캐럴이 아주 많은 황국 국민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네.”
정상참작의 여지만 있을 뿐, 협박 받고 이용 당했다는 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네가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테지. 앨리스 캐럴의 죗값을 어떻게 치르게 할 셈인가?”
“지원 병력으로 쓸 겁니다.”
“지원 병력?”
아이작은 말을 이어갔다.
“말씀드렸다시피 언젠가 악신은 부활할 거고, 그때가 오면 악신 토벌에 목숨을 걸게 할 생각입니다. 그것이 제가 정한, 그들의 속죄 방식입니다.”
“…납득하기 어렵군. 그 정의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만,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악신을 토벌하는 데 앨리스 캐럴을 쓰겠다는 말은… 곧 앨리스 캐럴을 벌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아이작의 눈썹이 한번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악신이 나올 때까지 앨리스 캐럴을 뒤펜도르프에 구금할 생각인가?”
“아카데미에 그대로 다니게 할 거고, 무사히 졸업시킬 겁니다.”
“새로운 빙제여. 이제 이 문제를 논의해야겠군. 앨리스 캐럴의 신변 문제 말일세.”
카를로스 황제는 턱을 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앨리스 캐럴은 우리 영토에서 벌어졌던 많은 마족 출현 사건의 정보를 꿰차고 있는 핵심적인 증인이지. 우리 황국은 그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자네에게 앨리스 캐럴을 곧바로 넘겨주기엔 곤란한 입장일세.”
“…그래서요?”
“황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관해 앨리스 캐럴을 추궁할 필요가 있네. 우리에겐 그녀를 벌할 권리도 있지. 그러니 황국 법도에 맞는 최소한의 형벌을 내리고 정보를 캐낸 후, 차후에 신변을 인계하도록 하겠네. 뒤펜도르프에 손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맹세하지. 설령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메꿔주겠네.”
“앨리스 캐럴은 뒤펜도르프 소속이자 제 하수인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신변은 넘겨드릴 수 없어요. 앨리스 캐럴이 문제 없이 아카데미에 다닐 수 있도록 협조해주셨으면 합니다.”
카를로스 황제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 쳤다. 어이가 없는 까닭이었다.
“흠. 대역죄를 저지른 여자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카데미에 다니게 하겠다라…. 빙제여, 잘못 생각하는 것 같군. 그래선 우리가 곤란….”
아이작은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팔을 휘둘렀다.
콰악!
“……?”
갑작스러운 파열음과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카를로스 황제는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옆에, 단검 하나가 테이블에 깊이 꽂혀 있었다.
아이작이 던진 단검이었다.
로얄 가드 자큘은 검집을 황제 앞으로 내민 채였다. 단검이 황제에게 닿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단검이 황제에게 이르지 않으리란 건 곧바로 눈치챘다. 경고 목적의 투척일까.
카를로스 황제는 놀란 얼굴로, 자큘은 불쾌한 얼굴로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시나 봅니다. 내가 두 번 말하게 하는 거 보면.”
어느새 아이작은 선한 미소를 버리고, 냉담한 얼굴로 안경을 벗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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