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39)
〈 239화 〉 사령왕 토벌전 (3)
* * *
“망할 기사 놈들, 한밤중에 사람을 들여보내…?”
로펜하임 남작가 저택 대문엔 기사 둘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시종은 시도 때도 없이 성적 농담이나 주고받을 줄만 아는 기사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적어도 임무라도 잘 수행하면 모를까, 어떻게 이런 소년이 저택을 통과하도록 놔두었단 말인가.
곧이어 연금발의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아이작 옆에 서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저건 또 뭘까. 시종은 잠깐 골머리가 아파 왔지만, 이내 의구심을 느꼈다.
이런 두 젊은이를 그냥 들여보냈다고? 아무리 임무 태만이어도 그게 말이 되는가?
‘아니면….’
이 두 사람,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온 게 아닐까?
…아니지, 이렇게 젊은 애들이 어떻게? 시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종의 생각은 사실이었다. 아이작은 보초를 선 기사들을 단번에 쓰러뜨리고, 앨리스와 함께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에 이른 것이었다.
“이봐요. 이 시간에 가주님을 뵙겠다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요? 이러시면 가주님도 곱게 안 넘어가실 거예요.”
그때, 시종 뒤로 키가 큰 한 남자가 나타났다.
흐음, 하는 숨소리가 들리자 시종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곧장 옆으로 빠져 남자에게 상체를 깍듯이 숙였다.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달빛을 내리쬐었다.
꼿꼿이 편 허리. 기품 있는 자태. 앞머리를 모두 넘긴 중년 남성, 아드리안 로펜하임 남작이었다.
“소란을 피워 죄, 죄송합니다…! 저들이 밤중에 가주님을 뵙고 싶다고 하여 어서 내쫓으려 하였는데…!”
“괜찮다.”
아드리안은 아이작과 눈을 마주쳤다.
“아이작이라 하였느냐?”
아드리안은 아이작과 시종의 대화를 처음부터 엿듣고 있었다.
보초를 선 기사들이 보고할 틈 없이 아이작에게 당해 기절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했기에 마중 나온 것이었다.
아이작은 선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예. 반갑습니다, 로펜하임 남작님.”
“옆에 있는 처자는?”
“이 사람은 제….”
“아내랍니다.”
앨리스 캐럴이 자상한 미소를 머금은 채 슬그머니 아이작 팔을 가슴으로 껴안으며 선수쳤다.
“…….”
고작 이런 일로 시끄럽게 할 생각은 없었기에, 아이작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기만 했다.
앨리스가 여기서 무슨 역할을 맡든 상관없었으니.
아드리안은 두 사람의 관계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들어오게.”
아드리안은 선뜻 아이작과 앨리스를 저택 안으로 들였다.
지금 아드리안에게 필요한 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제물이었다.
마침 가족을 모두 잃은 데다 이브의 동생이기까지 한 아이작이 찾아왔다.
한때 제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놈이었거늘. 운이 좋았다. 이제 아이작을 제물로 삼으면 좋을 것이었다.
앨리스가 변수였으나, 사령왕으로부터 힘을 받은 아드리안에게 그녀는 그저 보기 좋은 제물에 불과했다.
“…….”
아이작은 아드리안의 생각을 예상했고, 실제로도 맞았지만, 사실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출입을 제한하면 강행 돌파할 셈이었으니.
한편, 시종은 로펜하임 남작이 왜 아이작과 앨리스를 저택 안으로 들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만행을 저지른 이 젊은 애들을 붙잡아서 감옥에 가뒀을 것이었다.
그런 시종의 의문 어린 표정을 알아챈 아드리안이 간단히 설명했다.
“이브의 동생이네.”
“아.”
시종은 곧바로 사정을 이해했다.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은 이브의 가정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대 손님인가. 그렇다면 보초 기사들이 안으로 들여보낸 이유, 아드리안 로펜하임 남작이 마중 나온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밤중에 맞이해야 할 초대 손님이라면 한낱 시종 말단인 자신이 모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들은 시종이 들고 있는 휴대용 램프의 작은 불빛에 의지하며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그 와중, 앨리스는 아이작의 손을 깍지 끼고 잡았다.
“어두우니까 조심하렴, 여보.”
뭐라 따질 수 없는 아이작은 그저 고맙다고 답했다.
그들은 접견실에 들어섰다.
“차를 내오게.”
“금방 내오겠습니다.”
시종은 차를 타러 갔고, 아드리안은 소파에 앉았다. 아이작과 앨리스는 그의 맞은편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테이블에 놓인 램프가 불빛을 퍼뜨려 방안을 스멀스멀 비추었다. 덕분에 아드리안은 아이작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역시 닮았군….”
이브와 아이작은 각자 아버지가 다른 데도 닮은 구석이 있었다. 친모의 영향이 컸다. 아드리안은 새삼 그 사실이 실감 났다.
얼마 안 가 시종이 차를 내 왔다.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아이작과 앨리스는 예의를 차려 인사했다.
시종은 찻잔을 놓은 뒤 뒷걸음으로 접견실을 나섰다.
아이작은 찻잔을 조심스레 흔들다가 말문을 열었다.
“늦은 밤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자네가 내 기사들을 기절시키는 건 이미 지켜봤으니. 날 적으로 생각한다면 사과할 입장은 아니지 않나?”
이미 아이작이 기사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지켜봤음에도, 아드리안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정이 짐작 갔기 때문이었다.
아드리안은 이브의 모친을 버렸고, 아이작으로부터 이브를 빼앗았다. 아이작이 언제든지 칼을 갈고 복수하러 찾아와도 이상할 게 없다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아이작은 웃는 얼굴로 아드리안을 노려보았다.
“…제 누나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사전에 아이작은 [천리안]으로 저택을 훑고 이브 로펜하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어디 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아드리안을 떠볼 요량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군.”
아드리안은 피식 웃으며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난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하네. 특히 이런 변두리 시골 땅일수록 더더욱.”
아드리안은 차를 한 입 홀짝였다.
“자네가 특히 그러했지. 마법 실력도 변변찮았고, 태생도 안 좋았고, 찢어지게 가난하기까지 했어.”
“기억해주고 계셨네요.”
“그럴 수밖에. 한때, 이브를 뒷조사하고 자네의 존재를 알 수밖에 없었네.”
아드리안이 거침없이 쏟아낸 말은 전부 아이작을 무시하고 내뱉은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넌 특히 내가 정의 내린 쓰레기라는 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존재다’, ‘어쩔 수 없이 네 이름을 알게 돼 버렸다’ 따위의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제법 싸움 실력을 길러서 돌아온 모양이다만, 그 천한 태생이 어디 가겠는가? 고작 몇 년 사이에 강해져 봤자 우리 가문의 기사 몇 명 쓰러뜨리는 게 최선일 테지. 노력은 가상해. 섭한 소리만 했지만, 그래도 자네에겐 감사하고 있네. 때마침 제 발로 찾아와 준 것도, 그리고… 자네들 모두 순결한 몸이란 것도.”
아이작과 앨리스는 눈을 옆으로 굴렸다.
접견실에 어둠 마력이 은은하게 일렁이는 결계가 전개되고 있었다.
“어린 부부란 작자들이 아직도 몸을 안 섞어서 쓰겠나? 내게 고마운 짓만 해주었군.”
“…….”
“기분이네. 보답으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지.”
아드리안은 웃는 얼굴로, 일상적인 수다를 나누듯 몹시 태연하게 말했다.
“자네 아버지를 죽인 건 나네.”
차를 한 모금 홀짝이고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아드리안.
순간 앨리스는 한쪽 눈살을 흠칫 찌푸렸다.
“이유는 두 가지였네. 이브를 심리적으로 몰아넣고 싶었지. 결국, 이브는 내 지시대로 자네에게 모진 말을 하고 떠나게 됐네. 그리고 내가 버린 여자를 그가 탐하는 게 영 기분이 좋지 않더군. 그래서 죽였네.”
아이작의 아버지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한 하층민이었고, 아내를 더없이 사랑했던 남편이었다.
아드리안 로펜하임 남작에게 버림 받고 상처 입은, 아이작 어머니의 구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친아들 아이작이 어릴 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아이작 가정의 세상이 한번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리라.
만약 아이작의 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어머니는 과로와 병세 악화로 단명하지 않았을 것이고.
만약 아드리안의 냉혹한 지시가 없었다면 아이작은 누나에게 버림받는 처참한 기분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은 혼자 남았고, 의지할 곳 하나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고, 끝내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아이작이 겪어온 모든 불행의 원인이 눈앞의 귀족에게 있었다.
이 남자는 권위에 심취해, 하층민이었던 진짜 아이작의 인생을, 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망치고 짓밟고 깨부숴 버린 것이었다.
그랬구나, 하고 아이작은 나지막이 독백했다.
그제야 아이작은 자기 몸의 원래 주인이 어떠한 가정사를 겪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네는 안심해도 좋네. 자네의 목숨은 아버지와는 달리 쓸모 있게 다뤄질 테니. 쓰레기로 태어나 날 위한 밑거름이 되어 준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씨익 웃는 아드리안. 그의 오른쪽 눈에서 어둠 마력이 피어올랐다.
본래 그 눈은 옛적에 깊은 화상을 입었던 탓에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멀쩡했다.
사령의 칼가르트는 썩은 부위에 힘을 내려줄 수 있다. 그가 아드리안의 오른쪽 눈에 어둠 마력을 심어준 것이었다.
아드리안은 운이 좋게도 능력 좋은 성직자에게 치유 받았다고 저택에 설명했고, 진위를 알고 벌벌 떠는 자는 극소수였다.
쿠우우, 거리며 아드리안 뒤편에서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스산한 가시 기둥 수 개가 솟아났다.
아드리안의 어둠 마력이 공기를 잠식해 갔다.
“……?”
그러나… 여전히 아이작은 여유로웠다.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
아드리안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작이 절망하다가 공포에 빠져드는 모습을 기대하고 진실을 내뱉었건만. 맥 빠지는 반응이었다.
충격을 받아서 현실감이 안 느껴지는 걸까.
아드리안이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 아이작은 안경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로펜하임 남작.”
적어도 악신을 잡을 때까지 복잡한 가정사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아이작은 정말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런 놈이, 이 여정에 끼어들어줬으니까.
“결계는 튼튼합니까?”
“뭐?”
아이작의 신체에서 온화한 연푸른빛 냉기가 흘러나왔다.
주위를 쩌적, 얼리기 시작한 그 냉기를 목격한 순간, 아드리안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얼음 속성 마법사가 내뿜는 냉기가 아니다. 저 고밀도의 냉기는 아드리안이 이제껏 보아온 적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빙제]의 기운. 아이작은 아드리안을 압박하고자 위세를 드러내기로 했다. 얼핏 느껴지는 분노도 한몫 거두었다.막대한 마력이 강한 압력처럼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느껴버린 쪽은 아드리안이었다.
위웅, 하고 순식간에 아이작 뒤로 연푸른빛 마법진이 전개되었고, 그 앞에 얼음 마력이 응축되었다.
아드리안은 다급히 어둠 마력으로 이루어진 송곳을 대량으로 뻗어냈으나.
콰아아아아!!!
청광이 번뜩이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5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결 폭발]. 아이작이 마력을 응축하고 폭발시키는 과정은 처음 수 초에서 이제는 눈 깜짝일 새로 바뀌어 있었다.
삽시간에 들이닥친 냉기 폭발이 어둠 송곳을 몰아내고 건물 외벽을 무너뜨리며, 드센 기세로 뾰족한 빙괴를 뻗어냈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뻗어나가던 거대한 빙괴는 아드리안의 몸을 꿰뚫은 채 무너진 외벽 너머로 자리 잡았다.
“꺼헉…!”
아드리안은 입에서 피를 폭포처럼 쏟아 냈다.
흐려진 판단력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데 수 초가 소요됐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뾰족한 빙괴 끝에 찔려 상체에 큰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극저온의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이 몰아쳤다.
냉기 폭발에 당한 아드리안의 신체는 격한 동렬로 만신창이었다. 극한의 추위가 그의 몸을 지배했다.
아드리안은 숨을 끅끅대었다.
어둠 마력이 아드리안의 생명 활동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그 탓에 그는 죽지 못하고 끔찍한 고통을 쉴 새 없이 느껴야만 했다.
“이게 어떻게 된…?”
무엇이든 넘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전능감마저 느끼게 했던 어둠의 힘이 이토록 허무하게 잡아먹혔다.
아이작과 아드리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득한 실력차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아드리안은 믿을 수 없었다.
턱.
아이작은 뾰족하게 뻗친 빙괴 위로 올라가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처연하게 빛나는 초승달 아래. 빙괴에 대롱대롱 걸린 아드리안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는 아이작.
밤바람이 아이작의 청은발과 피부를 쓰다듬었다. 아드리안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하나 묻자.”
아이작은 냉담하게 물었다.
“칼가르트, 어디 있어?”
아드리안의 두 눈이 떨렸다.
아이작이 퍼뜨리는 이질적인 연푸른빛 기운. 막대한 마력. 믿을 수 없는 강인함.
그리고… 칼가르트의 행방까지 묻는 걸 보고도 아이작의 정체를 못 알아볼 순 없었다.
“설마…, 네놈이…?”
‘빙제’라는 호칭이 아드리안의 머릿속을 메워갔다.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눈앞에 놓인 광경이 너무도 명확해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드리안의 기억 속, 아이작은 재능 없고 쓸모없는 무가치한 존재였다.
그래서 눈앞의 광경이 몹시 믿기지 않았으나, 이성적으로 사고하니 점점 납득이 갔다.
여태 힘을 숨겨 온 대마법사라도 되지 않는 이상, 고작 수 년만에 이만한 경지에 오를 리 없을 테니까.
아드리안은 판단했다. 빙제는 절대로 못 이긴다. 그는 걸어 다니는 재앙, 그 자체이므로. 이길 수 없는 걸 넘어 이 땅이 멸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원왕의 소중한 사람들을… 자신은 짓밟고 말았다. 원왕이 원망을 품어야 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 사실이 아드리안의 이성을 쥐새끼처럼 갉아먹어 갔다.
접견실 문을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어둠 결계에 가로막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이작은 쪼그려 앉고서 아드리안의 왼팔 앞에 자기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오른손 앞으로 얼음 마력이 응축되고 연푸른빛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아드리안은 겁에 질려 “자, 잠깐만 기다려주게…!”하고 급박하게 소리쳤으나.
콰아아아!!
“끄아아아악!!!”
미약한 [빙결 폭발]이 자비 없이 아드리안의 왼팔을 덮쳤다.
아드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내질렀다. 곧 다시 숨을 꺽꺽, 댔다.
왼팔이 기형적으로 뒤틀렸으나 피는 흐르지 않았다. 살이 터지고 찢어진 부위가 빙결되어 강제로 지혈된 까닭이었다.
아드리안의 몸을 재생시키려는 어둠 마력은 아이작의 굳건한 얼음 앞에선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흉악하게 일그러진 아드리안의 얼굴에선 더 이상 귀족으로서의 기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물을게.”
아이작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칼가르트, 어디 있어?”
아이작에겐 짊어진 것이 있었다. 악신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이 항상 그를 짓눌러왔다.
그러니 악신을 쓰러뜨리기 위한 이 여정에서 마주해야 할 상대가 마음마저 악의에 발을 들였다는 게 명백하다면.
이미 거센 압박감을 견뎌온 아이작으로선 아무것도 망설일 것이 없었다.
이곳에 상주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정원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빙괴에 꽂힌 아드리안을 쳐다보며 경악했다.
“그, 그건…!”
아드리안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칼가르트의 위치를 알려주는 행위 또한 이 땅을 파국으로 치닫게 할 테니까.
콰아아아!!
“아아아악!!!”
[빙결 폭발]이 아드리안의 오른팔도 덮쳤다.“대답은?”
“제발, 그만…, 이제 제발 그만해주게…!”
콰아아아!!
“끄으아아악!!”
아이작은 다시 [빙결 폭발]을 사용해 아드리안의 오른쪽 다리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정원에서 기사들은 아이작을 향해 무기를 날렸다. 마법사는 원소 마법으로 요격했다. 그러나 앨리스가 염동력을 사용해 그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아이작의 시선은 여전히 아드리안에게 고정된 채였다.
“말해.”
아이작은 아드리안을 가까이서 노려보았다. 단호하고도 냉소적인 목소리였다.
아드리안이 고통에 잡아먹혀 대답조차 못 하자, 그의 남은 다리에까지 [빙결 폭발]이 시전되었다.
콰아아아!!
비명을 내지르는 아드리안의 머리를, 아이작은 덥석 잡아챘다.
앞으로 사지는 멀쩡하게 기능하지 못할 터. 아드리안은 무너져 버렸다.
끝내 아드리안은 격한 통증을 이 악물고 참아내며, 눈물을 쏟아내며.
“미안하네, 얘기해줄 테니…, 이제 멈춰주게. 제발….”
모든 걸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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