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49)
〈 249화 〉 힐드 (3)
* * *
빙설룡-힐드에게 미리 챙겨 온 옷을 건네주었다.
가게 주인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도로시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듯했다.
빙설룡은 탈의실에 들어갔다.
[갈아입고 나오겠다.]아주 잠깐 탈의실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이윽고, 내 옷을 입은 은발의 여성이 탈의실에서 나오자 가게 주인은 경악했다.
“어? 뭐야? 힐드…? 힐드야?”
도로시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아름답지 아니한가?]힐드는 우아하게 몸을 돌리며 자기 모습을 뽐냈다.
체격보다 큰 옷을 입은 탓에 육감적인 몸매가 펑퍼짐해 보였지만, 아름다운 아가씨 형상임은 분명했다.
뿔과 꼬리를 감추니 감쪽같이 인간처럼 보였다.
도로시의 떨리는 눈이 내 쪽으로 돌아갔다.
“힐드 얘, 사람 될 수 있었어…? 그 꼬마 용 모습으로 드레스 맞추는 거 아니었어?”
“네, 뭐.”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처음엔 나도 그런 줄 알았어.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건 저도 어제 처음 알았어요.”
“신기하다!”
도로시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곧장 힐드에게 다가가 녀석을 가까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도로시. 힐드가 도로시보다 키가 조금 더 컸다.
[왜 그러느냐, 도로시?]“진짜 사람 됐네. 되게 수준 높은 변신 마법을 쓰는구나?”
[이 몸에게 이 정도 마법은 식은 스튜 먹기다. 후후, 설마 요즘 것들은 이런 변신 마법도 구사할 줄 모르는 건가?]“요즘엔 그냥 위장용 마도구나 위장 마법 쓰면 되는데? 굳이 진짜 몸을 바꿀 필요 없잖아.”
[……!]건방 떨던 힐드는 도로시의 대답을 듣고 흠칫했다.
“뭐, 몸이 약하면 보호 마법을 강화하면 될 일이고.”
힐드는 무어라 반박하려 했지만, 연이어 들어온 도로시의 첨언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힐드의 수준 높은 변신 마법은 평범한 인간 수명을 갖고 죽기 전까지 익힐 수 있을지부터 문제이고, 굳이 공들여 어렵게 익힐 필요도 없었다.
그런 걸 익힐 바엔 원소 마법 하나라도 더 익히거나 숙달하는 편이 이득이니까.
[내 쪽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거였나….]힐드는 회의감을 느꼈다.
“그 일단, 치수부터 잴게요.”
가게 주인은 힐드에게 다가가 능숙하게 신체 치수를 재고 사이즈를 알려주었다. 내 사역마라 받아들여서 그런지 인간이 되는 기행을 보여줘도 금세 납득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힐드는 백룡. 본래의 모습부터 범상치 않은 마수니까.
“옷은 파란색 계열 어때? 그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파란색이라. 왕의 색인가…! 마음에 든다!]도로시의 물음을 들은 힐드는 내 머리카락을 쳐다보았다. 내 머리칼이 푸르스름해서 왕의 색이라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드레스를 맞춤 제작할 필요는 없었다. 도로시와 엘라는 드레스를 고른 뒤, 탈의실에 들어가 힐드에게 드레스를 입혀주었다.
그럴 때마다 힐드는 나와 괴묘-체셔에게 드레스 입은 모습을 한껏 뽐냈다.
한 손에 마력기를 쥐고 마력 순환을 단련하며, 진지하게 힐드의 용모를 살폈다. 파티용 드레스부터 일상용 드레스까지, 힐드는 죄다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래서 뭐든 괜찮아 보였으나, 도로시와 엘라는 자꾸만 뭔가 아쉽다며 힐드의 옷을 쉼 없이 갈아입혔다.
슬슬 지쳐간다….
“다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니옹…. 아이작, 나 좀 따분해졌어.]나는 가게 주인이 갖다준 의자에 앉아 있었고, 괴묘-체셔를 다리 위에 앉힌 채였다. 괴묘는 어느새 지루해진 듯했다.
“역시 이게 제일 나은 것 같네!”
도로시는 힐드에게 처음 입혔던 파란색 드레스를 다시 가지고 왔다. 파티용이라기보단 일상용에 가까운 옷이었다.
끝내 힐드는 그 파란색 드레스로 다시 갈아입었다. 나와 괴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럼 지금까지 한 건 도대체…?
[어떠냐, 주인?]“제일 잘 어울려.”
[대답에 영혼이 없군….]진짜로 예쁘긴 했다. 하지만 힐드의 인간형이 예쁘든 말든 이제 패션쇼는 그만해주길 바랐다. 이제 지쳤어.
[됐다. 이걸로 하지. 나도 이게 가장 마음에 든다!]“그치? 아, 머리도 간단히 꾸미자!”
도로시는 힐드의 양옆 머리카락을 일부 땋아 뒤로 묶었다. 자기 작품이 만족스러운지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힐드는 거울을 보고 흡족해 했다.
드디어 끝났네.
[도로시, 어쩌겠느냐? 도와준 보답으로 나도 옷을 골라주겠다!]“내 옷? 흐음…. 아이작, 괜찮겠어?”
……!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그러나 최대한 태평한 척하며 대답했다.
“네, 골라보세요.”
“니히히, 좋아!”
힐드는 도로시와 함께 옷을 고르러 갔고, 도로시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내게 제 모습을 선보였다.
“이건 어때?”
“음, 이것도 한번 입어봐요.”
“이건?”
“음, 다음은 저것도.”
“어때? 누나 잘 어울려?”
“으음….”
와, 시발….
‘이게 도로시다.’
입꼬리가 승천할 것 같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가.
몸이 떨린다. 굉장히 짜릿한 전류가 전신에 흐르며 감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죄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 있지?
무슨 옷을 입든 잘 어울려서 전부 포기하기 어려웠다.
[주인, 왜 도로시한텐 반응이 다른 것이냐?]힐드가 항의했다.
무슨 소리냐.
“뭐가? 똑같은데?”
[완전 다르다! 나는 대충대충 봐줬으면서 도로시한텐 눈을 반짝이고 있지 않았느냐?!]힐드는 지면을 콱콱 밟으며 씩씩댔다.
티가 났나 보다. 미안하다. 불가항력이었다.
도로시는 입을 가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느흐흐. 회장, 누나가 예뻐서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무슨 소립니까…. 그런 거 아니고요. 다음은 이거 한번 입어보는 게 어때요? 아, 저것도….”
아, 이 기분. 오랜만이다.
이게 바로 덕질의 행복이지.
……
힐드와 함께 옷을 구입한 도로시는 힐드의 얼굴을 예쁘게 화장해준 뒤, 엘라와 함께 볼일이 있다며 떠나갔다.
「앨리스 토벌전」 이후, 도로시는 더는 별빛 마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단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하거나 별빛 마력을 강하게 순환하는 식으로.
요정이 내려주는 힘은 다른 마법들과는 달리 복잡한 연산이 필요하지 않다. 마력에 얼마나 적응했느냐, 얼마나 강한 마력을 지녔느냐가 힘의 척도. 단련법도 일반적인 원소 마법의 그것과는 차이가 컸다.
한편, 힐드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게 즐거운지 몰래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우리는 암갑귀-고르모스를 찾아갔고, 괴묘-체셔와 암갑귀에겐 서로를 소개시켰다.
[봐라, 고르모스. 아름답지 않느냐? 지나가는 인간마다 내 미모를 격찬했다!] [흠…, 그 정도인가?]바위 산 등껍질을 가진 거북이 마수, 암갑귀-고르모스는 힐드의 모습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힐드의 미모를 격찬까지 한 사람은 옷 가게 주인뿐이었다. 지나가는 인간마다 그러하지 않았다.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서 과장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드레스 차림의 힐드와 함께 돌아다니고, 단련도 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괴묘-체셔는 앨리스에게 돌아갔고, 나는 힐드를 데리고 기숙사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힐드는 근처에 있는 첨탑의 꼭대기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오늘은 되도록 힐드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드레스를 맞춘 기념적인 날이기도 하니까. 힐드도 드레스를 입은 채로 좀 더 바깥을 돌아다니고 싶은 듯했고.
우리는 높은 첨탑에 올라가 아카데미의 정경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면 아주 멀리 쭉 뻗은 적막한 밤하늘이 보였다.
힐드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사역마라 녀석의 심정이 잘 느껴졌기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없이 한 손으로 마력기를 쥐고 단련하며 가만히 있으니 힐드가 내게 말을 걸었다.
[주인, 진지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느냐?]“괜찮아. 뭔데?”
[내 전 주인에 관한 이야기다.]태초의 빙제 얘기인가.
‘네 전생에 관해 얘기해도 되겠느냐’ 따위로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쓸데없이 지적할 이유가 없으니까.
설정집에서 본 단편적인 정보 말고는 태초의 빙제에 관한 건 알지 못했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먼 옛날 사람이지만.
[그녀는, 인간 중에선 음침한 편이었다. 말라 비틀어진 몸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아 꼭 혼자만의 정신세계에 빠져 있는 것만 같았지.]힐드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배반자, 약탈자, 마족, 흉포한 마수 따위가 그녀의 적이었고, 그 손에 피를 묻힐 수록 말수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이런, 너무 안 좋은 얘기만 했구나.]힐드는 뜸을 들였다.
[생물이 다가오기만 해도 냉기에 목숨을 잃고 마는 얼음 계곡이 있었다. 그곳에 혼자 살아가던 내게 찾아와, 함께 세상을 누벼 보자며 손을 뻗었던 인간이 바로 내 전 주인이다.]“추억이겠네.”
[그렇다.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후후. 그땐 외로웠는지 그녀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평생 잊지 못할 날이었지.]“…….”
[그녀는,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았다. 나는 일방적으로 전 주인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목소리를, 그녀와 함께 했던 전투를, 그녀의 손길을 그리워했다. 그러다 보니 천 년이 흘렀고, 널 만난게지.]힐드는 내 눈을 그윽이 응시했다.
“…오늘은 내가 그 여자의 환생이라고 안 하네?”
[그렇다고 내 생각이 바뀐 건 아니다, 주인. 난 여전히 네가 전 주인의 환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네가 정말로 전 주인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면.]불쾌한 걸 떠올린 사람처럼, 힐드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간 말하길 망설였던 걸 말하려는 눈치였다.
“전언?”
전언이 있었어?
[내 전 주인을 포함한 태초의 원왕들은 이런 예언을 했지. ‘미래에 파멸의 악신이 부활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려 하나, 용맹한 영웅이 나타나 악신을 막아서리니’. 그 예언에 관한 전언이다.]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이 절로 좁혀졌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 나왔던 예언이었다.
그래서 간과했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힐드가 그 예언을 입에 담으니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솟구쳤다.
왜냐하면, 의문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태초의 원왕들이 남긴 예언은 단편적인 미래를 보고 남긴 건데.’
그런데 이 세계는.
‘여긴 내가 있는 세계잖아….’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선 플레이어가 이안이었고, 이안이 악신을 막았기에 당연히 예언 속 ‘용맹한 영웅’이 이안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악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가 이안 페어리테일이었고, ‘빛의 아이’라고 불린 것도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거면 왜 ‘빛의 아이’가 아니라 ‘용맹한 영웅’이라고 표현했지?
또한 내가 뒤지지 않는 이상, 앞서서 악신을 막아낼 사람은 명백히 나였다.
시스템의 힘을 갖지 못한 데다 실력도 부족한 이안이 어떻게 악신을 막아서겠는가.
내가 주도해서 악신을 제압하고, 이안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것 말곤 악신을 쓰러뜨릴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예언 속 ‘용맹한 영웅’이 정말로 이안이었는지 의문이 생기고 만다.
“…계속 말해봐.”
[주인. 네가 내 전 주인의 환생이 아니라면, 넌 태초의 원왕들이 예언했던 ‘용맹한 영웅’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원왕들은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다는 것일까?
…일단 아무것도 확신하지 말자. 아직 뭐든 논리적 비약에 불과하니까.
다만, 끓어오르는 의구심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그 용맹한 영웅이 나타난다면, 내 전 주인은 이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귀를 세웠다.
태초의 빙제가 남긴 메시지.
마침내 힐드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천 년 전 태초의 빙제가 내뱉었던, 천 년간 힐드만이 간직해왔던 단 한 마디였다.
[‘부디 마음 편히, 날 없애거라’.]순간, 불길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우수수 흘러내렸다.
“뭐…?”
무슨 뜻일까.
힐드 자신도 어째서 태초의 빙제가 그런 소릴 한 것인지 설명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로선 그 전언의 속 뜻을 알 길이 없었다.
한동안 우리는 서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서늘한 밤바람만 맞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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