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76)
〈 276화 〉 견학 (2)
* * *
악신 네피드는 3학년 2학기 학기말 평가가 있을 시기에 부활한다.
3학년 1학기로 예정되었어야 할 메피스토의 군대와 무저갱을 이미 잡았으니, 이 여정도 슬슬 후반부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으그그그극….”
2학년 2학기 때 신경 써야 할 이벤트는 견학 프로그램이랑 아카데미 대항전 정도다. 견학 프로그램으로 중요한 인물이 오고, 아카데미 대항전이 열리는 시기엔 「요정 대전」이 터지니까.
“으그극, 으끼약….”
두 번째 8성급 사역마 계약진을 얻으면 암갑귀-고르모스와도 계약해야 한다.
초반에 계획을 정리했을 땐 갈 길이 막막해 보였는데,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흐아아….”
스르르. 나와 손을 맞대고 마력을 뒤섞고 있던 화이트의 마력이 확 사그라졌다. 힘이 빠진 화이트는 송장처럼 쓰러지려 했다.
나는 재빨리 마력을 거둔 뒤 화이트의 등을 부축했다.
“괜찮아?”
“주, 죽을 것 같아요오….”
화이트는 너무 힘든지 쉰 소리로 울먹이기까지 했다.
응급 처치를 위해서 품 안에서 달콤한 간식, 푸딩 바를 꺼내 이빨로 포장지를 뜯었다. 우선 탱글거리는 푸딩 바를 옆으로 뻗었다.
슈웅!
엄청난 속도로 메를린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휘몰아쳤다. 순식간에 푸딩 바는 3분의 1이 사라졌다.
“아, 해.”
“아….”
화이트가 입을 벌리자 그 안에 푸딩 바를 집어넣었다. 그녀는 우물우물 푸딩을 음미하더니 표정이 녹아내렸다.
매일 멘토링 마지막 단계에선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마력기로 마력을 순환시켜 마력 운용력을 단련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다만, 내 마력이 유동적으로 루트를 시시각각 재정립하므로 화이트는 마력을 한 바퀴 순환시킬 때마다 새로운 순환 루트를 맞이해야만 했다.
예상대로 화이트는 매번 힘들어하며 우는 소리를 반복했다. 하지만 멘토링이 끝날 때면 실력 향상이 체감된다며 뿌듯한 기색을 보였다.
화이트가 푸딩 바를 전부 먹어 치운 후, 우리는 생활동으로 향했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가로등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화이트 황녀님. 원하시면 부축해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메를린…. 이런 일로 도움을 구할 순 없으니까요…!”
화이트는 지팡이를 땅을 짚고 걸으며 힘없이 고로롱거렸다.
아직 17살밖에 안 된 애가 삐걱거리는 모습은 작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울먹이면서도 뭐든 혼자 해내려 하니,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젠 줄여나가야 할 때였다.
“화이트.”
“네에….”
“내일부터 교육 시간, 거의 없다시피 할 거야.”
“네?”
“도와주는 건 아까처럼 마력 순환만.”
화이트는 멈춰 서자 나와 메를린도 따라서 멈춰 섰다.
“가, 갑자기요…?”
화이트는 독립할 때가 됐다.
나는 화이트가 잘 단련하고 있는지만 체크하고, 그녀의 마력을 쐬면 될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는지 감 잡았잖아? 계속 해왔던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주기만 하는 건 너한테 독이야.”
멘토링 할당량은 이미 채우고도 남았고, 화이트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긴 한데요오…. 갑자기 아이작 선배랑 보는 시간이 크게 줄면, 제가 잘하는지 불안할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고….”
처음으로 홀로 날아야 하는 아기 새가 어미 새를 떠나보내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 같았다.
나는 화이트 앞에 섰다.
“나 없으면 못할 것 같아?”
“그건 아니에요…! 그냥 조금, 싫…. 아니, 고집 부려서 죄송해요….”
화이트는 고개를 숙이더니 지팡이로 턱턱 땅을 짚으며 나를 제치고 지나갔다. 순간 아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메를린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아이작 공, 이해해주시길. 화이트 황녀님께선 아이작 공과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십니다. 저렇게 보여도 아카데미에서 아이작 공 말고는 속을 터놓고 지내는 사람이 없어서요.”
인간 불신.
루체가 느끼는 인간 혐오나, 도로시가 은근슬쩍 경계심을 품고 타인과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친모가 배후에서 자신을 암살하려 해 왔다. 두려움, 배신감, 혐오감 따위가 화이트의 심지에 깊숙이 뿌리 내렸을 터.
그 와중에 나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플레이했던 기억을 되살려 화이트와 평범하게 친해졌다.
화이트에게 있어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각별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었다.
“제가 잘 설득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 부탁드릴게요.”
“그럼.”
메를린은 화이트의 대꾸를 빠르게 해명한 뒤, 화이트를 뒤따랐다.
나는 화이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조용히 그녀를 뒤따랐다.
……
견학 프로그램으로 소집된 인원은 총 다섯. 그중 주요 인물은 단연 찐 무녀다.
소집 명단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선 화봉국의 호위병이나 견학생들을 못 볼 수가 없었으니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진짜 무녀 왔다는데?”
“나도 들었어. 근데 가짜는 어떻게 됐대?”
“아무도 모를걸.”
“사형 당해도 아무 말 못할 대사건이었잖아? 아무리 못해도 무진장 끔찍한 꼴 됐겠지.”
복도를 지나던 중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입담에 주로 오르내리는 화제는 견학생 무녀였다.
견학생들은 몇 주간 빡빡한 일정을 치른 뒤, 이번 2학기 동안 아카데미에 머무른다.
무녀 미야는 악신 토벌대의 전력으로 생각해 둔 인물이다. 조만간 그녀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었다.
……
A 클래스 강의실. 오늘 두 번째 오전 수업을 담당하게 된 필립 멜트런 교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공지했다.
“한 달 뒤, 아카데미 대항전이 열린다는 소식은 다들 알고 있을걸세.”
>메르헨의 마법 기사> 「11막, 아카데미 대항전」.
여러 아카데미에서 참가자들을 모아 벌이는 결투의 장이다. 참가자가 아니더라도 아카데미의 인솔 하에 관중으로 참가할 수 있다.
‘11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식 시나리오였다. 그 시기에 「요정 대전」이 터진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황국의 대규모 행사 중 하나지. 차차 지원자를 받을걸세. 서로 경쟁시켜 참가자를 뽑을 계획이니 대항전을 생각한다면 염두에 두게.”
“크으, 드디어…!”
맨 뒷자리에서 리제타의 나지막한 환호성이 들렸다. 싸움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대항전 소식을 몹시 기다려왔을 것이었다.
메르헨 아카데미가 황국 최고의 아카데미로 손꼽히긴 하나, 그렇다고 강자들이 이 아카데미에만 몰렸다는 건 아니다. 다른 아카데미에도 말도 안 되는 강자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다.
내 전생의 나라로 비유하자면, 천재들이 한국 최고의 대학교에만 재학하고 있진 않듯이. 그 아래 단계의 대학교들에도 천재들이 고루 퍼져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고 다들 견학 프로그램에 대해선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이번 수업은 견학생 두 사람이 함께 들을걸세.”
“견학생?”
또다시 반응한 사람은 맨 뒷자리의 리제타였다. 쟤 혼자만 몰랐나 보다.
오늘 메르헨 아카데미엔 모인 견학생 5명 중 2명은 마법학부 희망자였다. 그들은 교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번 시간에만 2학년 A 클래스 강의를 체험한다.
아침 첫 수업 때는 1학년 A 클래스 수업을 체험했으니, 이젠 이곳 차례인 것이었다.
“들여보내게.”
강의실 문밖에서 2명의 여자애가 들어왔다.
나름대로 꾸민 잿빛 머리칼의 소녀, 타린 바르탕.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곤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이틀 전 일 때문인가.’
사춘기가 한창인 소녀 다웠다.
그 옆에, 곱상한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순한 인상의 여자애가 나란히 섰다. 오묘한 신비감이 물씬 풍겼다.
[ 미야 ]Lv : 167
종족 : 인간
속성 : 불
위험도 : X
진정한 신녀. 마법의 재능은 탁월한 걸 넘어 압도적이다.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흑진주빛 머리칼이 찰랑이며 금빛 귀걸이를 내보였다. 용모, 동작. 모든 부분에서 이지적인 인상이 강렬한 소녀였다.
미야는 힐끔 나를 보며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산뜻한 꽃 바람이 그녀 주위로 흐르는 것 같았다.
A 클래스 학생들은 두 견학생 중 미야를 보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이쪽은 타린 바르탕. 다른 쪽은 미야라고 하네. 다들 저번 학기에 벌어졌던 공신제 사건의 전말을 기억하겠지. 이 아이는 그 사건과는 무관하네. 외모가 똑 닮은 건, 쌍둥이 자매라서 그렇네.”
“완전 똑같이 생겼네….”
웬일로 시엘이 잠을 안 자고 독백했다.
‘재활은 다 안 끝났나.’
미야가 강의실에 들어올 때, 그 다소곳한 발걸음에 감춰진 부자연스러움을 눈치챘다. 아직 원활히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재활 치료가 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두 사람은 편한 자리에 가서 앉게.”
고작 5명밖에 없는 강의실엔 빈자리가 차고 넘쳤다.
미야와 타린은 필립 교수에게 상체를 숙여 인사한 후, 계단을 올라 빈자리를 찾아갔다.
타린은 나를 곁눈질하더니 나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차마 내 옆자리에 오기엔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야는 달랐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응?”
“앉아도 되죠?”
미야는 망설임 없이 내게 다가와 단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 상관없어.”
“후후.”
그러더니 기품 넘치는 동작으로 내 옆자리에 앉았다.
A 클래스 강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카야는 놀란 눈을 치켜뜨고, 시엘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리제타는 눈살을 찌푸리고, 타린은 당황하며 미야를 쳐다보았다.
그 많고 많은 빈자리 중, 굳이 내 옆자리에 앉았으니.
사실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내 옆자리는 마치 암묵적인 룰처럼 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수석 루체와 차석 카야의 눈에 안 보이는 기 싸움 때문이었다. 그곳을 미야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들어온 것이었다.
루체의 시선이 삐걱대며 돌아갔다. 생기를 잃은 푸른 눈동자가 음습하게 미야를 향했다.
살벌한 기운이 강의실을 메워갔다. 나조차도 긴장감이 들 만큼. 당장 다른 자리로 가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나 미야는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광채가 루체의 기운을 몰아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광채의 정체는 순수함. 상식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한때 신임하던 언니 메이에게 배신 당했으나, 몇 년간 꿈속을 헤매며 세상 경험을 온전히 하지 못한 미야다. 아직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채 떠나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의 무녀는 루체의 살기가 먹히지 않는, 눈치 제로의 완벽한 면역체였다.
“그…, 수업을 시작하겠네.”
갑자기 강의실 분위기가 돌변하자 필립 교수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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