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294)
〈 294화 〉 철의 요정 토벌전 (4)
* * *
이끌림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8살 때, 노아 바르탕은 여동생 타린 바르탕의 손을 잡은 채 검의 무덤을 발견했다.
수일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평야였다. 노아와 타린은 그 섬뜩한 변화를 단숨에 눈치챘다.
누군가 무슨 목적으로 검을 꽂아 넣었다고 보기엔 검의 수가 기이할 정도로 많았고.
검의 생김새도 평범한 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빠, 돌아가자. 무서워….”
“돌아갈 거면 먼저 가.”
“왜 여길 지나가려는데? 안 무서워?”
“무서워. 근데 왠지, 모르겠어. 저기로 가야만 할 것 같아…. 어?”
검의 무덤 중심에 이르자, 두 어린아이는 바닥에 놓인 두개골을 발견했다.
“히익! 오, 오빠…!”
어린 소녀 타린은 노아의 팔을 꼭 껴안고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노아의 시선이 앞으로 움직였고, 두개골로 이루어진 언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자기 몸집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칙칙한 잿빛 대검이 꽂혀 있었다.
[이리 오세요.]그때, 노아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문득 그가 느끼던 이끌림이 더욱 강렬해졌다.
“타린, 잠깐만.”
타린은 연신 노아의 옷깃을 꾹 잡고 돌아가자며 울먹였으나, 그는 타린을 놔두고 대검을 향해 나아갔다.
노아는 두개골의 언덕을 밟고 올라가 자그마한 손으로 대검 자루를 꽉 쥐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대검에서 철의 마력이 피어올랐다.
“허억!”
철의 마력은 노아의 몸을 구석구석 꿰뚫더니 주륵주륵 주입되기 시작했다.
노아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아, 아악!!”
“오빠! 꺄악!”
마력의 파동이 퍼져나가 타린의 접근을 차단했다. 마치 방해하지 말라는 듯.
멀어져 가는 의식. 노아의 눈엔 자기 또래로 보이는 한 명의 어린아이가 보였다.
얼굴에 그늘이 져 있어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그 아이의 몸체가 철로 이루어져 있다는 건 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이름은 라크닐.]철의 아이가 자신을 소개했다.
[잘 왔어요. 널 기다리고 있었거든요.]“아아아악!!”
철의 요정 라크닐은 순수한 미소만 머금은 채 노아의 비명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 강제로 라크닐의 권속이 되어 철의 마력을 체화하기까지, 노아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도망쳐, 타…린…!”
그 와중에도 노아는 동생 타린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스윽!!
과거의 기억을 유영하며 생생한 고통을 느끼던 때였다.
마치 기억을 가르듯, 빙설룡-힐드가 휘두른 서리낫이 철의 기사를 베어내는 소리가 노아의 귀청을 울렸다.
피부에 맞닿는 냉기.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바닥을 짚은 채 숨을 헐떡이던 노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신…, 빙제…?”
눈앞에 보이는 건 청은발의 남학생.
자기 또래임에도 한 원소의 왕이라 불리는 어마어마한 강자.
메르헨 아카데미의 아이작이었다.
* * *
“일어나. 아직 움직일 수 있잖아.”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노아 속에서 꿈틀대는 철의 마력이 점진적으로 줄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라크닐의 영역. 철의 마력이 흡수되어 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라크닐이 자길 노리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환각에 빠진 채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직 마력은 남아도는 상태니까, 괜찮겠지.’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와는 달리 여기서 노아는 일말의 마력도 쓰지 않았다.
아직 움직일 여력은 충분할 것이었다.
“하아….”
노아는 비치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힐드, 다른 학생들 부탁할게.”
[알았다.]휘익!
힐드는 눈 깜짝할 새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흘리고 있던 냉기만이 잔상처럼 잔류했다.
‘생각보다 빠르네.’
뿔이 멀쩡한 반인반룡 상태일 땐 신체 능력도 뛰어난 모양이었다.
“방금 그분은…?”
“내 아군이야. 몰라도 돼.”
“아….”
“따라와.”
“아, 예…!”
내가 달리기 시작하자 노아는 나를 뒤따랐다.
노아의 심리를 읽었다. 아까 내가 라크닐한테 공격을 퍼부었을 때를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저기, 빙제님…! 그보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아무리 당신이라도 위에 있는 녀석은 쓰러뜨리기가….”
“내가 이겨.”
나는 노아에게 단언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못 이기면 다 끝장이다. 이제까지처럼 나는 당연히 이길 것이다.
노아의 눈이 조금 더 크게 뜨였다.
“아벨!”
“드디어 만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안을 업고 움직이던 아벨과 합류했다.
[천리안]으로 이미 어디로 향하는지 파악하고 있었으니. 무리는 없었다.아벨은 나를 보자마자 안도했다.
“아이작 선배님, 그나저나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철의 요정이 우릴 상대로 게임을 벌이고 있어. 아마 밖의 상태는 말도 안 되게 엉망일 거다.”
“요, 요정…?”
라크닐의 마력은 바깥 일대를 점령해가고 있을 것이다. 흡사 녹은 철로 이루어진 바다가 넘실거리고, 검의 비가 쏟아지고 있겠지.
황명 아래 고위 마법사들이 힘을 합치며 대항하고 있겠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터.
철의 성역에 접근하는 것조차 막힌 상황일 테니, 올드렉의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며 철의 성역을 어찌할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었다.
라크닐은 이 성역의 마지막 층에서, 철의 바다에 지속해서 힘을 펌핑질할 수 있는 철의 심장을 만들고 있다. 이곳을 자기가 점령할 영토의 심장부로 삼을 계획이니까.
즉, 철의 바다가 퍼져나가 드넓은 영토를 새로이 구축할 때까지 우릴 상대로 유흥을 즐기는 게 라크닐의 목적.
또한 이 게임에서 살아남은 자가 철의 마력의 적합자면 자기 권속으로 만들 테고, 그게 아니라면 자기 부하로 삼을 터.
‘세상을 적으로 돌리다니.’
생각할 수록 오만하고 멍청한 놈이었다.
“이안은 어때?”
“아직 기절해 있어요!”
“잠깐 눕혀봐.”
“옙!”
아벨이 이안을 바닥에 눕히자, 나는 이안에게 다가가 녀석의 뺨을 선풍기 돌아가듯 수차례 후려쳤다.
짝! 짝! 짝!
“이안,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아, 아이작 선배님! 그러다 사람 죽어요!”
아벨의 다급한 외침은 무시했다. 어차피 이 녀석은 튼튼하니까.
이내, 이안의 눈이 꿈틀거렸다.
“…음?”
“깼냐?”
다행히 얼마 안 가 이안은 뺨이 퉁퉁 부은 채로 의식을 되찾았다.
“이안 선배님, 깨어나셨군요!”
“아이작? 아벨…? 아까 함정이었나? 갑자기 뒤통수에 충격 받은 뒤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아이고, 그 함정이 세긴 셌죠….”
“여긴 어디야?”
나는 이안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가면서 설명할게.”
“뭔가 사고가 터진 거지? 위에서 무서운 마력이 느껴지는데….”
“그놈 조지러 갈 거야. 네가 필요해.”
“아…, 뭔지 알겠어. 그거네, 그거. 우리가 아카데미에서 자주 겪었던 일.”
이안은 미소 짓고 자기 주먹을 내보였다.
“나한테 맡겨라, 아이작! 방학 동안 나도 꽤 강해졌으니까!”
“기절이나 하지 마라.”
기절을 많이 하긴 했어도, 따지고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활약해온 주인공 이안이다.
이 녀석은 이런 비상사태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이성을 굴릴 줄 알았고, 정의감도 넘쳐났다.
창명검도 갖고 있으니, 이제 내가 상정했던 무력(武力)의 역치를 충족한 믿음직한 녀석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었다.
쿠구구구궁!!
“우왓! 뭐, 뭡니까?!”
돌연 귀를 찌르는 굉음과 함께 성역이 강하게 흔들렸다.
정상에 또 다른 강력한 마력이 내려앉은 건 그때였다.
“도로시, 카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별빛 마력과 식물 마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도로시와 카야가 철의 성역에 쳐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그녀들은 요정의 권속으로서 요정의 힘을 다룰 수 있다. 그 힘으로 외벽을 뚫고 라크닐을 막으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심장이 완성되는 걸 막으러 온 건가….’
[천리안]으로 꼭대기 층을 살피려 했지만, 라크닐이 전개해둔 결계에 가로막혔다.도로시와 카야만으로 라크닐은 못 이긴다. 어서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합류해야만 했다.
“이안, 노아. 너흰 나 따라와.”
“저도, 말입니까?”
노아는 놀란 눈치였다.
“너도 위의 놈한테 볼일 있을 거 아니야?”
“…맞습니다.”
“그럼 따라와. 너도 필요하니까.”
노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는 고요히 복수심을 불태웠다.
동생 타린 바르탕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어서 빨리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열망도 지니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뭐, 그런 감정적인 이유는 관심 없었다. 어차피 노아는 나와 함께 라크닐한테 가야 했다.
라크닐을 토벌한 뒤, 그 요정이 남긴 부산물을 흡수해 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이 녀석의 전력도 도움이 될 테고.
‘철왕 노아….’
미래의 이놈 별명이다.
노아에게 빚을 져두는 느낌으로 간다면, 악신 토벌전 때 이 녀석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작 선배님, 전…!”
“넌 이거 우리 아카데미 거점에 전해줘.”
나는 바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아벨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열쇠의 단서 위치. 간단히 약도로 그려놨어.”
“예에?! 아이작 선배님, 열쇠 위치 전부 파악하고 계셨던 겁니까…?”
아카데미 대항전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천리안]으로 아카데미 대항전의 무대를 전부 훑고 나서 열쇠 힌트로 추정되는 특이한 것들을 발견하고 기록해 놨을 뿐이었다.“하긴, 아이작 선배님이시니까요….”
“이 성역엔 라크닐이 한 말대로의 맹약이 맺어져 있어. 가운데에 있는 금고만 열면 진짜로 그때부터 적들이 너흴 노리지 않을 거야. 그때까지 앨리스랑 내 사역마가 지켜줄 테니까, 아카데미 애들이랑 협력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열쇠를 전부 찾아내고 금고를 열어.”
맹약은 그럴 듯한 거짓말이었다.
어차피 라크닐은 자기가 한 말을 지킨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얘기해봤자 얘네들 입장에선 찝찝하겠지.
그리고 앨리스와 힐드는 학생들의 안전이 확보된 후 내게 합류해야만 했다.
특히 힐드가 필요했다. 녀석은 나와 힘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니까.
즉, 고유 특성 [밤의 칼날]의 힘을 녀석에게 전해주는 것도 가능하단 얘기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아벨은 깍듯이 경례하더니 재빨리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사학부 1학년 B 클래스 1등답게 달리기 속도가 무척 빨랐다.
“이안.”
“어.”
“지금부터 정상까지 속전속결로 올라간다.”
“바라던 바야.”
이안이 오른팔을 옆으로 뻗었다.
샤라락, 하고 새하얀, 얼핏 무지개 빛깔도 내비치는 경건한 오오라가 그의 오른손에 뭉치더니 성스러운 검의 형태로 변모했다.
‘저게 실제… 창명검.’
신성력을 머금은 이안의 종결 무기, 창명검.
실제로 보니 왠지 모를 뭉클함이 몰려왔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수도 없이 플레이해온 내게, 이 녀석이 얼마나 정이 많이 가는 주인공인지 새삼 실감이 난다.
“그건…?”
노아의 나지막한 물음. 그는 이안이 쥔 검이 범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물끄러미 그것을 쳐다보았다.
감동의 시간은 잠시뿐이었다.
나는 암철검을 꺼내 양손으로 거머쥔 뒤, 얼음과 바위 마력을 불어넣었고.
이안은 창명검에 더욱 찬란한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저 새끼도 문제인데.’
아까부터 날 몰래 미행하던 여학생이 있었다.
기척을 숨기고 미행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내게 [천리안]만 없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었다.
슬쩍 눈을 돌렸다. 어둠에 숨어 있다 해도, 벽 너머로 튀어나온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상태창이 작동했다.
[메텔 발렌시아]Lv :185
종족 : 천족
속성 : 빛
위험도 : 최상
심리 : [ 철의 요정 라크닐과 당신이 싸울 기회를 틈타 당신을 암살하려 합니다. ]
벨라트릭스 아카데미의 교복 차림이지만, 저만한 레벨의 강자를 내가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난 오늘 그녀를 처음 보았다.
즉, 뷔엘의 부하.
인간으로 위장한 천족.
‘기회를 봐서 뒤통수를 친다…?’
한쪽 눈살이 찌푸려지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넌 내가 이용해야겠다.
“가자.”
“응.”
이제부터 전력질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