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11)
〈 311화 〉 명계로 (1)
* * *
방과후, 저녁 시간.
교정 옆 조세나 숲을 가로질러 아지트에 도착했다.
“도로시 선배.”
“왔구나, 회장.”
마침 지붕 위에 앉아 있던 도로시가 나를 맞이했다. 마녀 모자는 옆에 내려둔 채였기에, 노을에 비친 연보랏빛 머리칼이 돋보였다.
가볍게 뛰어올라 옆에 있는 나무를 박차고 지붕에 착지했다. 그 후, 도로시 옆에 앉고 함께 하늘을 쳐다보았다.
“밥 먹었어?”
“네. 선배는요?”
“대충 통닭 두 마리 먹었어.”
“그게 대충…입니까?”
별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고, 잠시간 침묵이 흐른 후.
도로시는 입술을 뗐다.
“회장.”
“네.”
“우리 요정이랑 싸웠을 때 있잖아. 그때 요정이 했던 말….”
“잊어도 돼요.”
도로시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자신이 살아 있으면 초월자가 될 것이며, 그때 인류에게 대재앙이 들이닥친다니.
아무리 봐도 좋은 생각이 들 법한 명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도로시에게 내 대답을 고집해야만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제가 막을 겁니다. 도로시 선배는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한 척했다. 도로시를 안심시키고 싶었으니까.
대재앙이든 뭐든 내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 도로시는 뭐가 어찌 됐든 살길 바랐다.
“…그 말하려고 했는데.”
…뭐?
“예?”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방긋 웃고 있었다.
“있잖아, 회장. 누난 뭐시냐, 그, 평생…, 너랑 같이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
도로시는 저도 부끄러운지 두 뺨에 홍조를 띄웠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녀는 더 활짝 웃으려는 듯했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었어. 염치없긴 한데…. 만약 누나 때문에 사람들한테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네가 막아주라. 누나는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거든.”
깨닫는다.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구나.
도로시의 웃는 얼굴을 보니 내 고민이 체증 가라앉듯 시원하게 사그라졌다.
내 의사는 더욱 확고해졌다.
“무슨 염치 타령입니까. 당연한 거죠.”
나는 실실 웃었다.
“까짓 거 해보죠.”
난 이미 이 세상을 살아버렸고, 이 애를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지킬 것이었다.
“니히히, 믿음직스럽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시시덕거리다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동안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도로시는 다시 모자를 썼고, 슬며시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모자 챙에 가려져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회장.”
“네.”
“미안해.”
도로시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렸다.
“힘들게 해서 미안해….”
“별로 상관없어요. 제 옆에만 있어 주세요.”
도로시는 사람 감정을 읽을 줄 안다.
표정 감추는 건 잘하는 나라고 해도, 속에 있는 감정까지 숨기긴 어렵다.
뭐, 괜찮았다. 다 잘 될 테니까.
나는 끄떡없었다.
……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낙엽이 밟혔다.
옆을 돌아보니 아카데미 청소부가 가벼운 바람 마법과 빗자루 여러 개로 바닥을 쓸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완연한 가을이 지나가고, 슬금슬금 겨울이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딱히 별일은 없었네.’
간혹 이브 누나가 날 스토킹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론 강사는 나와 싸운 적이 없었다는 듯 A 클래스 강의실에서 평범하게 좋은 강의를 보여주고 있고, 괴묘-체셔의 감시를 받는 동안 이상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간혹 내게 체스하자고 제안할 뿐. 물론 매번 거절했다.
뒤펜도르프의 독방에 가둬진 암살 실패자, 메텔 발렌시아 또한 여전히 꿈속에 갇혀 있었다.
일부러 그녀를 인질로 잡고 있음에도, 론 강사는 메텔을 찾을 기색을 안 보였다. 그저 평범한 아카데미 생활을 보내고 있을 뿐.
‘루체도 얌전해.’
헤겔 마탑주, 아리아가 말하길.
이후로 루체가 연구실에 침입했던 흔적은 못 보았다고 했다.
그저 루체는 평범하게 나와 함께 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조만간 대련 평가가 있을 예정이네.”
오르핀관, 2학년 A 클래스 강의실.
필립 멜트런 교수가 공지사항을 전했다.
“전투 신청권을 2장씩 배부하지. 뭘 해야 할지는 모두 알 거라 믿고 설명은 생략하겠네.”
‘잊고 있었다….’
대련 평가가 있었지. 요새 신경을 못 썼네.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이번 2학년 2학기엔 루체와 대련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실력을 측정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니까.
이제 고유 특성 [대마법사의 경지]를 얻은 덕분에 대강 루체와 전투력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됐으니.
‘빙제가 아닌 아이작으로서 널 상대할게’라고 헛소리 지껄이면서 신념 있는 척하고, 일부러 [대 인간 전투력]의 효과를 낮춘 뒤 맞붙으면 꽤 좋은 전투 경험이 될 것이었다.
‘패배하면 내가 그만큼 전투 감각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되고, 승리하면 전투 감각도 나름 잘 챙겼다는 얘기가 될 테니까.’
좋은 판단 기준이 되겠지.
“그럼 일주일간 대련 상대가 정해지면 보고하도록.”
……
“루체.”
“……?”
오전 수업이 끝난 때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루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강의실 출입문을 가리키고 발걸음을 옮기자 루체는 군말 없이 나를 뒤따랐다.
우리는 건물 뒤편, 그늘 진 곳에서 서로 마주 섰다.
교정을 나다니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곳은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구석이니 괜찮았다.
“아이작, 변태.”
“갑자기?”
이 맥락 없는 매도는 뭐냐…?
“이런 으슥한 곳에서 나랑 뭐 하려고?”
루체는 귀족 아가씨처럼 온화하게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추궁했다.
[심리 간파]를 쓰면 온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다는 심리만 쉴 새 없이 읽혔다.“이상한 생각 한 적 없으니까 걱정 마라.”
“괜찮아. 딱히 뭘 하자고 하든 거부할 생각 없으니까.”
“그거 꽤 위험한 발언이다…?”
루체는 배시시 웃었다.
남들에겐 항상 차가운 녀석이 내게 만큼은 항상 따뜻하게 웃어준다.
그 미소는 저돌적인 언행에 비해 몹시 단아하고 곱상했다.
“일단 이거. 사람들 있는 데서 주면 시끄러워질까 봐.”
“응?”
품 안에서 대련 신청권 2장을 꺼내 루체에게 건넸다.
루체는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 신청권 2장을 바라보았다.
“루체, 대련 신청할게.”
대련 신청권을 건넴으로써 상대에게 대련 신청을 할 수 있다.
상대는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대련 신청권 2장을 받았을 경우 강제로 대련해야만 한다.
루체는 대련 신청권 2장을 받았다.
“…복수야? 여태 힘 숨기느라 나한테 한 번도 못 이겼잖아.”
복수라. 그런 마음도 있긴 하다.
259전 0승 259패. 내가 루체 상대로 거둔 전적이다.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이 대련한 상대를 꼽으라면 무조건 얘였다.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원래 너랑 겨뤄볼 생각이었어. 그리고 루체.”
“응.”
‘왜 몰래 선생님 연구실에 찾아갔었어?’라고.
루체의 푸른 눈동자에 대고 대놓고 물어보기 어려웠다.
“…밥 먹으러 가자.”
루체는 싱긋 웃었다.
“좋아.”
……
“루체 엘타니아와 대련할 생각이라?”
“네. 아직도 걜 이겨본 적이 없어서요.”
깊은 밤. 헤겔 마탑, 아리아의 연구실.
우리는 비밀 통로로 들어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진짜 힘을 내면 루체 엘타니아라고 해도 승부가 안 될 텐데…. 기만자.”
“그렇긴 해도 어느 정도 눈높이를 맞추면….”
“그럼 그 애가 좋아하지 않을 것.”
…그것도 그렇네.
내가 루체 상대로 적당히 눈높이 맞추고 열심히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면 기만자 느낌이잖아.
날 상대하는 루체는 기분이 매우 불쾌해지겠지.
‘너무 나만 생각했나….’
미리 좋게 좋게 ‘내 전투 감각을 평가하기 위해서야’라고 근거를 대고 설득할 필요가 있으리라.
“그러네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쓸데없는 얘기는 넘어가고. 문제가 생긴 것.”
“예?”
비밀 연구실엔 내부를 떠도는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전개된 결계가 있었다. 저번 마나 누출 사고를 겪은 뒤로 더욱 탄탄하게 보강되었다.
효과는 결계 밖에서 마력을 감지하는 걸 막는 것.
강한 마력의 방출까지 막긴 어렵지만, 결계를 구축한 이가 아리아이므로 웬만한 마력 누출은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그 결계를 지나 비밀 연구실에 들어서서 이질적인 균열 앞에 멈춰섰다. 여느 때처럼 단단한 결계가 균열을 둘러싸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어째선지 저번에 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느껴지지 않는지? 희미한 마력이.”
“이게 뭡니까?”
아리아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자연 마나를 휩쓸어 버리는 그 강력한 명계 폭풍조차 균열을 넘어서서 여기까지 마력이 닿지는 못하는 것. 그러나 관측 결과, 이 마력은 자연 마나가 아닌 것으로 확인.”
자연 마나가 아니라는 것은, 누군가의 체내 마력이라는 뜻.
“즉…,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의 마력인 것.”
아리아는 섬뜩한 결론을 내뱉었다.
“명계에서 누군가가 이 균열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 명왕일 가능성은?”
“없어요. 명왕은 자기 마력이 명계 밖으로 넘어가는 걸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까.”
의문의 강자가, 이 균열을 통해 명계로 넘어올 자를 노리고 있다.
이 균열 너머까지 체내 마력을 흘릴 수 있는 놈이라면, 대체 얼마나 강하단 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혹시….’
결계 쪽으로 다가가 그 앞에 손을 뻗었다.
이만한 강자라면 필시 마력 감지력도 괴물 수준이겠지.
뻗은 손으로 얼음 마력을 흘렸다. 그러자 돌연 희미하게 흐르던 마력의 밀도가 짙어졌다.
“이건…?”
아리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항상 무감정하던 그녀가 그토록 놀란 반응을 보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확실하네….’
균열 너머의 존재는 내 마력을 느끼고 격렬히 반응한 것이다.
놈은, 날 알고 있다.
“흐음.”
아리아는 팔짱을 끼고 벽면에 고개를 기댔다.
“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아무리 너라고 해도 명계에선 무사하기 어려울 것. 혹시나 해서 묻는다만, 정말로 횡단할 수 있겠는지?”
1회차 도로시가 얘기했었지.
내가 얼음 호수까지 이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진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왜 다들 지랄이냐.’
뷔엘, 명왕에 이어 정체 모를 괴물까지. 왜 이리 방해꾼이 많은지….
숨을 길게 내쉬고 감정을 갈무리했다.
문득 고시 생활이 떠올랐다.
고시 생활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지독하리만치 막막하다는 사실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지금은 모두의 목숨이 걸린 데다 성공 가능성이 지나치게 낮다는 문제점이 몹시 크게 대두되고 있었다.
나는 이 무게감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래도….’
1회차 도로시는 날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얼음 호수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도로시 자폭하는 꼴을 볼 생각이 없다는 걸 짐작했을 테니까.
“물론 해야죠.”
저딴 괴물이 몇 마리나 있든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태평하게 아리아를 쳐다보며 선하게 웃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릴게요, 선생님.”
“…….”
아리아는 무덤덤하게 날 바라보며 잔잔히 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