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48)
아이작과 뇌신조가 카를리관에서 전투를 벌일 때였다.
“검은 괴물인가!”
카를리관으로 향하던 뇌신조 토벌대는 사역마 군세와 뇌신조에게 대적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마족이 출현할 때마다 나타나는 존재. 저런 대규모의 강력한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강자라면 ‘검은 괴물’밖에 없었다.
토벌대 전력에 포함되어 있던 시엘은 눈을 좁혔다. 문득 청은발의 남자가 떠올랐으니.
그는 분명히 보유한 마력량이 적은 편인데도, 시엘 자신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마나 감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나 감지력은 최대 마력량과 비례 관계.
시엘은 그가 약한 주제에 어떻게 그만한 마나 감지력을 지니고 있었는지 의문을 품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 하나가 그 모순을 해결하려 했다.
“설마….”
검은 괴물, 그가 바로 아까 전까지 빌빌 기던 그 청은발의 남자라면?
카를리관에선 무시무시한 격전이 오갔다.
시엘은 자기가 분명히 재능 있고 강한 편이라고 생각해왔으나, 저 안에 끼어 있었다면 하루살이보다 못한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지나가다 짓밟히는 벌레의 최후가 차라리 장렬하리라.
물론… 의혹은 의혹일 뿐이었다. 괜히 애꿎은 사람을 강자로 몰아가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그럼 우습겠네.’
시엘은 달리기 싫은 까닭에 토벌대 후방을 지원하며 언덕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토벌대 몰래 하늘로 보내놨던 자기 사역마가 도로 자신에게로 날아왔다.
번개 속성의 보라색 박쥐 사역마 ‘자뱃’이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녀석은 놀란 얼굴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시, 시엘 님 생각이 맞았어야! 그놈이었어야! 아까 시엘 님이랑 같이 다녔던 그놈!]자뱃은 뇌신조와 아이작이 격돌하기 직전의 상황을 확인하자마자 다급히 내려온 참이었다. 멀리서도 몰아쳐 온 거센 격돌의 폭풍에 휘말리긴 했으나,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시엘은 호들갑을 떠는 자뱃을 바라보다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의혹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메르헨 아카데미에는 매년 규격 외의 강자들이 입학한다고 한다. 이번 1학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루체 엘타니아가 아니었단 사실을, 그 강한 수석조차도 비교가 안 되는 강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시엘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상황이 종료된 후. 구 메르헨 아카데미 상공.
[부우─, 부우─.]풍선처럼 둥그런 생명체가 하늘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부풀어 오른 몸체에 함몰된 채였고, 안면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듯한 기괴한 인상은 누구에게든지 혐오감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마른 논밭처럼 쩍쩍 갈라져 굵직한 튼살로 이루어져 있는 줄무늬. 황토색 피부.
입에선 연신 ‘부우’하는 우둔한 소리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학기말 평가부터 뇌신조 토벌전까지.
그 무력한 풍선 마족은 [천리안]으로 모든 광경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감겨 있던 눈꺼풀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지상을 내려다보기 시작한 싸늘한 핏빛 눈동자.
독식의 하인켈. 지금은 무력하나, 최악의 재앙 중 하나인 그는 [광휘의 나무]를 감상하고 있는 아이작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부우─, 부우─.]이윽고, 독식의 하인켈은 구름 위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학사 측은 이번 마족 출현 및 뇌신조 토벌 건을 수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현장 조사 및 진상 규명, 피해자 현황 조사, 학사 재정 확보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투자자들 설득, 사건이 일어난 원인 분석, 방어 체계 재구축 회의 등등…. 학사 측에선 인력이란 인력은 죄다 갈아 넣고 있었다.
이번 뇌신조 사건은 규모가 커도 너무 컸다. 자칫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을 수도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메르헨 아카데미 소식을 전해 들은 황실 기사단이 찾아올 것이다. 일은 계속 커져 나갈 것이고, 학사 측은 피 토할 만큼 골머리를 썩일 예정이다.
루체는 뇌신조-갈리아의 주인으로서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마족이 루체에게서 뇌신조-갈리아를 강제로 소환시켰다는 사실이 명확한 탓에, 죄 없는 그녀에게 징계를 내릴 명목은 없었다.
하지만 뇌신조-갈리아는 무려 8성급 마수. 어떤 사유로든 그 나라멸망급 마수가 난동을 피웠던 이상 학사 측에선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 사역마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문제는 루체가 현재 마나 고갈 상태가 되어서 사역마 소환은커녕 기초 원소 마법조차도 제대로 사용하기 버거운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마력량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마력이 고갈 상태가 돼 버리면 마력 회복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아니, ‘급격하게’란 표현조차도 무색해질 정도다. 루체의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대략 일주일 정도는 소요되리라.
결국 학사 측은 루체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가 회복될 때까지 격리 조치를 내리기로 결정.
루체에게 감시역을 하나 붙였다.
“여기가 날 고생시킨 철부지 후배 방인가~.”
메르헨 아카데미 최상위권 우등생들을 위한 초호화 기숙사, 샤를관.
편안한 원피스 차림의 루체는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앉아 있었다. 안개처럼 짙은 살기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때는 마녀 모자를 쓴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이 방에 들어온 직후였다.
감시역, 도로시 하트노바. 그녀는 루체의 살기 어린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한 방 안에서 루체가 있는 쪽과 도로시가 있는 쪽 분위기는 공간을 반으로 가른 것처럼 명암이 분명했다.
애초에 자연재해라 불리는 도로시다. 그 어떤 법도, 규칙도 속박할 수 없는 존재이니. 루체의 살기 따윈 도로시에겐 지나가는 개미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도로시는 손차양으로 눈 위를 가리고 마치 새로운 모험지를 탐험하는 듯한 모험가처럼 루체의 방을 이리저리 싸돌아다녔다.
루체는 그 모습이 너무도 짜증 났으나.
마력 고갈 상태라 도로시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기에 가만히 살의만 벼리고 있을 뿐이었다.
“냐하하! 완전 자기 성격대로인 방이구만! 인테리어가 뭐시냐, 귀여운 구석이 없달까!”
“…….”
“그 흔한 곰 인형 하나 없다니! 혹시 가난하니? 내 거 하나 빌려줄까?”
“…….”
“꺄아, 뭐야 이거? 흑마술에 쓰이는 저주 인형이구나! 우리 후배, 취미가 음습하네~. 아, 심심할 때 우리 후배 머리카락 집어넣고 시험해 봐도 될까? 괜찮지?”
“시비 걸러 왔으면 나가.”
참다 못한 루체가 드디어 말을 꺼냈다. 도로시가 온 지 10분 만에 내뱉은 첫 마디였다. 상대가 선배든 아카데미 최강 전력이든 상관없다는 듯이, 바로 말을 놓아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반달눈을 뜨고 음흉하게 웃으면서 루체에게 다가갔다.
도로시는 침대에 걸터앉고는 루체 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체는 일부러 도로시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후배야, 너도 이상 눈치챘지?”
“…….”
“그 전기통닭, 이제 억제 안 해도 되잖아.”
루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도로시와 눈을 마주치는 그녀.
도로시의 눈동자엔 여느 때처럼 별빛으로 수놓인 우주가 빛나고 있었다. 별 모양 동공도 여전했다. 역시나 비현실적인 눈동자였다.
별의 요정 스텔라와 계약을 맺었다고 했었지. 눈동자도 그 영향으로 독특하게 바뀐 거고. 아이작과 있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때 루체는 그런 내용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단지 아이작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 자체가 좋아서 잠자코 듣기만 했었다.
확실히 이 기분 나쁜 선배는 강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루체는 자신이 뇌신조를 억누르기 위해 상시 총 마력의 절반, 번개 마나를 통째로 들이붓고 있었다는 사실을 도로시에게 들켜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루체가 반응했던 부분은, ‘뇌신조를 더 이상 억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뇌신조-갈리아가 온갖 저주의 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를 되찾고 얌전한 사역마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주인인 루체는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제 마력이 다시 돌아오면 어떤 몸 상태가 될지는, 그녀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루체는 이제 자기 본연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안 그래도 마법학부 1학년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루체의 전력이 한층 더 강화되는 것이다.
“…갈리아는 이제 안전해.”
“알아, 전기통닭 착한 애잖아.”
“자꾸 전기통닭 거리지 좀 마. 갈리아가 하찮게 느껴지잖아.”
루체는 여전히 쌀쌀맞은 태도였다.
그래도 루체와 이만큼 말을 나눈 상대는 아이작을 제외하곤 도로시밖에 없을 터다. 애초에 루체는 사람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니.
평소에 얼굴을 자주 봐온 까닭이리라.
“니히히.”
도로시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침대에서 내려가고는 출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감시 끝.”
“벌써…? 학사에선 날 나흘간 감시하라고….”
“귀찮아!”
도로시의 짧고 간결한 대답은 루체를 단숨에 설득시켰다.
“그러니까 철부지야, 여기서 얌전히 있어야 한다?”
도로시는 루체에게 생긋 미소를 건네고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도로시가 사라지자 방안에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다. 극적인 분위기 변화였다.
드디어 거슬리는 게 떠났구나. 루체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뱉었다.
풀썩.
루체는 침대에 드러눕고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혼자가 되니 다시 많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릉. 그가 또 자신을 구하러 와 줬다. 예상대로 그는 마법 위장복으로 자기 정체를 감추고 있던 남자였고, 적들과 싸우면서 옷이 훼손돼 위장이 풀린 듯했다.
당시 시야가 너무도 흐릿했던 나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지만.
자기 몸에 닿고 있던 그릉의 손 크기나 어깨의 윤곽을 보고서 루체는 한 남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이작….”
당장에라도 아이작의 손을 잡아보고 기억 속 그릉의 손이 전해줬던 감촉과 손 크기를 비교해 보고 싶었다.
당연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동일 인물일 수가 없다는 게 자명했다.
그릉처럼 강한 남자가 아이작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아이작의 마력량과 마법 실력, 그가 매일 열심히 훈련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얼음 속성. 손 크기. 어깨 윤곽.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는 루체는 직감을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직감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릉의 정체는 아이작이라고. 내 말을 믿어달라고.
어쩌면 반 배정 평가 때부터 그리 느껴왔는지도 모른다. 계속 무시해왔던 직감이 자꾸만 소리치며, 아이작이 그릉이라고 내내 루체를 설득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작에게 친근감을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
“…….”
그제야 직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루체는, 빠르게 침대에서 내려가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두 번씩이나 구해졌다.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속 박동 소리가 적막을 꿰뚫고 세차게 울려 퍼진다. 아무리 인간관계와 담을 쌓고 지내온 루체라도, 이 처음 겪는 감정의 정체를 눈치 채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슴속이 술렁였다. 미칠 것 같았다. 그릉이 누구인지 알아내야만 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는 속내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빨리, 빨리 아이작이 그릉인지 확인해보자. 이성과 직감의 대립을 해결하고 가슴속 술렁임을 잠재우자.
그렇게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차라라랑─!
“아야!”
손이 따끔거려 얼른 뒤로 물러났다. 문고리엔 아주 잠깐 별 무리가 떠오르다 사그라졌다.
조금 전 충격으로 문고리 밑에 아슬아슬하게 끼어 있던 작은 쪽지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줍자, 짧은 문장과 함께 그려져 있는 마녀 모자를 쓴 캐릭터 얼굴이 시야를 확 치고 들어왔다.
[나가지 말랬지? 푹 쉬어! 밥은 알아서 갖다 줌!]루체의 눈가에 그늘이 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쪽지를 사정없이 구겨 버렸다.
이후, 창문 쪽으로도 탈출을 시도해봤으나 매한가지였다. 루체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 * *
[ 상 태 ]이름 : 아이작
Lv : 60
성별 : 남
학년 : 1
칭호 : 학사 생활에 적응한 1학년
마력량 : 1800 / 1800
– 마력 회복 속도(C)
– 체력(B-)
– 근력(B-)
– 지력(C+)
– 정신력(A-)
잠재력 >>상세>>
[ 전투 능력 ]원소 계열 1 : 얼음
– 원소 화력(B-)
– 원소 효율(B-)
– 원소 시너지(B-)
원소 계열 2 (잠김)
[ 보유 스킬 ]액티브
– (★1) 얼음 생성(B-) / (★5) 흑빙(B-)
– (★2) 얼음 장막(B-)
– (★1) 냉기 발산(B+)
– (★1) 기초 보호 마법(D+)
– (★4) 서리불꽃(C+)
– (★4) 빙벽(C+)
– (★5) 빙결 폭발(C-)
– (★2) 싸락눈(C)
패시브
– (★7) 심리 간파
– (★5) 마족 감지
– (★9) 빙제
스킬 트리 >>상세>>
[ 고유 특성 ]– 멸악자
[ 잠재력 ]보유 스탯 : 0
◆ 성장 속도
– 신체 단련 효율(B+) : 56/100
– 마법 단련 효율(A) : 71/100
– 학습 효율(B+) : 51/100
◆ 원소 저항력
– 불 속성 원소 저항력(D-) : 10/100
– 물 속성 원소 저항력(D+) : 16/100
– 얼음 속성 원소 저항력(C+) : 34/100
– 번개 속성 원소 저항력(B-) : 39/100
– 바위 속성 원소 저항력(D) : 12/100
– 바람 속성 원소 저항력(C-) : 23/100
– 중립 속성 마법 저항력(D+) : 18/100
◆ 대 종족 전투력
– 대 인간 전투력(E) : 4/100
– 대 이 종족 전투력(E) : 1/100
– 대 천족 전투력(E) : 0/100
– 대 마족 전투력(S) : 100/100 [MAX] [ 사역마 ]
이든 (Lv : 50)
등급 : ★3
종족 : 마수
속성 : 바위
친밀도 : 65
융화력 : 20
소환시 소모 마력량 : 40
– 보유 스킬 >>상세>>
뇌신조 토벌전이 끝나고 루체가 격리된 지 4일이 지났다.
그 동안 학사 측은 학생들을 불러 모아 마법학부 1학년 학기말 평가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했고, 재시험 공지를 밝혔다. 다만, 이미 학기말 평가를 통과했거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펠 카드를 보유하고 있던 학생들에겐 가산점을 주는 조건으로.
당연히 학기말 평가 통과자들은 반발했으나, 학생들 목숨이 오갔을 만큼 위험천만한 사건이었다는 대부분 학생들 의견에 묵살 당해 입을 꾹 다물었다. 뭐, 다수결의 위력이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도 재시험이 치러졌었다. 이미 나로선 예상했던 바였다.
어차피 1학기 성적은 여태 봐 왔던 시험과 수행평가 점수를 종합해서 산정된다. 이 구조에 의해, 다시 똑같은 선상에서 시험을 치르는데 가산점을 갖고 들어간다는 건 큰 메리트이기도 했다.
가장 큰 가산점을 받고 들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나였다. 하지만 대련 평가 때 항복해 버린 게 치명타라, 솔직히 1학기 성적은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느꼈지만, 어둠 마나가 깃든 얼음 버프 [흑빙]은 [빙제]와 잘 어우러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특히 7성급 이상 고위 마법을 사용할 땐 얼음 마법에 [흑빙]을 덧입히기 어려웠다. 서로 안 맞물리는 회로를 억지로 맞붙이고 운용해서 비효율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즉, 고위 마법부턴 위력을 끌어올리는 데 가성비가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마력 소모량은 3배 가까이 뛰고 말지. 즉, 짧게 끝낼 전투가 아니라면 [흑빙]은 신중히 사용하는 편이 좋을 터.
새로 얻은 스탯 21은 [신체 단련 효율]에 5, [학습 효율]에 16 투자했다.
원소 저항력은 뇌신조 토벌전 때 업적을 클리어했던 덕분에 각 속성별로 10씩 늘었다. 힐드의 서리낫을 찾으러 가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 조건은 [얼음 속성 원소 저항력] 60 이상. 원소 팔찌까지 쓰면 그 기준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었다.
2학기 때 출현해야 할 허상의 리파가 조기 출현한 영향이 컸다. 웬만하면 1학년이 끝나기 전까지 얻을 생각이었는데, 아예 2학기 시작도 전에 얻으러 갈 조건이 충족되었다.
즉, 이번 방학 동안 나는 얼음 속성 최종 무기인 힐드의 서리낫을 찾으러 갈 계획이다. 그 전설 무기는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음 마법의 위력을 강화시켜 줄 테니.
“루체 엘타니아, 준비는 됐나?”
대낮, 해변가.
메르헨 아카데미의 폐쇄된 관광지라고도 불릴 만큼 해변가의 풍경은 아름답다. 고운 하얀색 모래로 가득한 모래사장은 햇빛을 반사하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광경은 휘황찬란하다.
유일하게 해변가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 여학생. 그녀의 로즈골드색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나풀대고 있었다. 루체 엘타니아였다.
루체는 학사 측 인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페르난도 교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학사 측은 고위 마법사들과, 학사 내에서 가장 강한 전력으로 손꼽히는 도로시 하트노바를 대동한 채였다. 이곳은 8성급 사역마, 뇌신조-갈리아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만일의 전투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 루체는 뇌신조를 소환할 정도까진 마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마력 고갈 상태에서 고작 4일 만에 8성급 사역마를 소환할 수 있게 됐다는 건, 마력 회복 속도가 미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해변가 인근 나무 뒤에 숨은 채 몰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루체는 바다를 향해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
이윽고, 페르난도 교수가 루체에게 뇌신조-갈리아를 소환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루체의 왼쪽 손목에 새겨진 각인이 보랏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르르르──콰과과과광────!!!
삽시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자색 천둥이 우렁차게 포효하며.
허공에 일렁이기 시작한 보랏빛 번개 마나 뭉치에서 검은 뇌조, ‘뇌신조-갈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아아아아아────!!] [ 뇌신조-갈리아 ]
Lv : 175
종족 : 마수
속성 : 번개
위험도 : X
심리 : [ 루체 엘타니아가 멀쩡해 보여 안심하고 있습니다. ]
뇌신조-갈리아는 얕은 수심의 바다 위에 안착한 채로 루체와 눈을 맞췄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루체만은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뇌신조가 큰 부리의 윗부분으로 그녀의 뺨을 살살 건드렸다.
그러자 루체는 뇌신조의 머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왜… 이제야 돌아온 거야…. 왜….”
누구에게나 무뚝뚝하던, 누구에게나 냉담하던 그 루체가.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루체에게는 과자집에서 살았던 추억을 유일하게 공유하는 존재다. 헨젤 오빠도 죽고 과자집 마녀도 죽었는데, 뇌신조는 비록 저주 받았어도 살아남았으니.
그랬기에, 루체의 소원 중 하나는 뇌신조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었고.
그 소원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뇌신조는 눈을 내리깔았다. 수년간 악룡의 저주로 파괴본능에 휩싸여 왔던 탓에, 그동안 신세져 왔던 루체에게는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뿐일 것이다.
학사 측은 루체와 뇌신조의 재회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루체는 한동안 뇌신조를 꼭 끌어안고만 있었다.
언젠간 성위급 마탑주가 되어 황국에 큰 영향력을 갖고 역사를 개찬할 그녀다.
뇌신조를 정상으로 되돌리겠다는 꿈이 이루어진 지금의 순간이, 그 시작점일 터였다.
……
어두운 밤. 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도리스관.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있었다. 하루 단련을 마치고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참이었다.
방에 돌아오니 단련할 동안 떠오르지 않았던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중 가장 비중이 높은 잡념은 단연 카야에 관한 것이었다.
[광휘의 나무]를 써 줬던 일 때문에 빙 둘러서라도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요새 카야는 나를 영 피해 다니는 눈치였다.
뭐,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심리 간파]로 심리를 읽어보면 나를 봐서 기뻐하고 있다고 떴으니까.
심지어 나만 보면 대놓고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내보였다. 아무래도 내게 이성으로서 사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 모양이었다.
‘카야랑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으니까.’
대충 어느 타이밍에 카야의 마음에 치명상을 입혔는지는 짐작이 간다. 개미굴에 갔을 때랑 학기말 평가 때겠지.
은둔의 가르지아를 처치하러 갔던 날 함께 잤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학기말 평가 대격전 도중 카야 뒤에서 아르마나의 완드를 줬던 때. 다급한 마음이어서 그때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에 면역이 없는 애한테 부주의했던 건 사실이다. 반성한다.
물론 카야처럼 예쁜 애가 내 여자친구가 된다면, 마음 같아서는 옷 벗고 그랜절 박은 뒤 360도 헤드스핀을 돈 다음 공중제비 묘기를 선보이고 ‘호우!’하고 소리칠 만큼 기뻐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 편히 연애할 상황이 아니었다. 적어도 악신을 쓰러뜨리기 전까진.
게다가 카야하고는 이런저런 문제의 실타래가 꼬여 있기에 그것부터 풀 필요가 있을 테고.
애초에 카야에게 참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끌리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깊게 고민해봤자 단련에 지장만 생길 터였다. 그러니 카야 문제는 차근차근 생각해봐야겠지.
그리 생각하며 옷을 입는 중이었다.
「물 생성 (물 속성, ★1)」
차아악──!
“……?”
돌연 창문 쪽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닷없이 소나기가 내린 까닭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물을 뿌린 것이다.
나는 창가 쪽으로 걸어가고서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기숙사 바깥. 달밤 아래서 한 로즈골즈색 머리를 가진 여학생과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작은 범고래 마수 하나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설마 루체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여름이지만 아직 밤 날씨는 서늘했다. 나는 얇은 외투를 걸친 후 기숙사를 나섰다.
메르헨 아카데미 생활동 길가. 발광 램프로 만들어진 가로등이 마카담식 거리 위에 서 있는 루체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원피스에 카디건 차림이었다.
루체는 나를 보자마자 벨로를 역소환하고는 다소곳한 자세로 섰다. 평소와 같은 은은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려 있었다.
[ 루체 엘타니아 ]Lv : 150
종족 : 인간
속성 : 물, 번개
위험도 : X
심리 : [ 당신을 봐서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
루체 엘타니아의 레벨은 급격하게 치솟아 있었다. 그녀의 전력이 레벨 150 수준이라고 상태창이 재측정한 것이다.
뇌신조가 정상 상태가 되면서 자기 본연의 번개 마나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된 까닭이리라.
즉, 본래의 레벨로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루체는 원래 조오오올라 강하니까.
참고로 플레이어의 레벨은 오를수록 잠재력 스탯을 주고, 레벨 낮은 적들한테 데미지를 덜 받게 되는 식이지만.
그 외의 캐릭터들 레벨은 단순하게 전투 능력에 맞춰서 책정된다. 책정 기준 자체가 다르다.
“오랜만이다, 루체. 격리 끝났어?”
루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야?”
“아이작이 보고 싶어서.”
순간,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루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은 가끔씩 내 마음에 치명타를 줄 때가 있었다.
연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하는 말은 아닐 터다. 단지 루체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리는 순간 확 열어젖히는 스타일이기에, 나에게 이토록 치근대는 것이다. 단지 그 마음을 슬쩍이라도 열기 위한 진입장벽이 드높을 뿐이지.
하물며 안 좋은 과거 탓에 인간관계에 담을 쌓고 지내온 그녀다.
그래서 친구로서 얼마만큼의 심리적 거리를 둬야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선을 지켜야 하는가. 친구 사이에선 어떤 말을 자제하는 편이 좋은가. 그런 감각이 전혀 잡혀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루체의 무의식적 여우짓은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 있었다.
“몸은 괜찮아? 큰일 겪었다면서. 걱정됐는데 격리 중이라 못 찾아갔었다.”
“……!”
[ 루체 엘타니아 ]심리 : [ 당신이 걱정해줘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
…나도 말을 좀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괘, 괜찮아. 아이작,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항상 식상한 멘트부터 건네오던 루체다. 그런 그녀가 진지하게 부탁하고 싶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는 건, 필시 중요한 부탁일 게 분명했다.
루체는 최근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뇌신조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원치 않았던 피해를 입히고, 뇌신조를 정상으로 되돌리겠다는 염원을 이뤄냈으니. 복잡해진 마음속을 정리하는 중일 터였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그랬으니까.
“무슨 부탁?”
나는 루체가 무슨 말을 꺼내 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네 부탁을 들어주면, 복잡해진 심경을 정리하고 여느 때처럼 식상한 멘트와 별 거 아닌 얘기들을 늘어놓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니 무슨 부탁이든 최선을 다해서 확실하게 들어주리라.
그렇게 나는 루체가 다음으로 꺼낼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손, 잡아도 돼?”
끼룩끼룩─.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내가 말문이 막혀 버려 적막이 이어진 까닭이었다.
루체는 슬쩍 오른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 손을 잡고 싶다는 듯이. 그 낭창낭창하고 호리호리한 손을 눈에 담고서, 나는 더욱 입을 열 수 없었다.
다시 눈길을 돌려 루체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아이작이랑 손, 잡고 싶어.”
여름 밤.
하늘에 새겨진 달빛처럼 은은한 목소리가 공기를 간질였다. 루체의 목소리가 얼마나 고운지 새삼 실감이 났다.
이성이 마비되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한동안 루체가 내밀고 있는 손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로등 아래서.
조용히,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