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235)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235화(235/606)
74장 악마(8)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그 대신,
이렇게 시작하는 수많은 우화, 전설, 신화들.
그 이면에는 언제나 악마가 도사린다.
“암부가 악마에게 제안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악마 소환에 성공한 것 같네요.”
“악마가 암부에게 어떤 대가를 원했고, 암부는 그 대가를 준 대신 마나 주사에 대한 지식과 힘을 받았다는 건가요?”
“……암부는 그렇게 될 줄 알았겠죠.”
“네?”
암부가 어떤 악마의 서적을 읽고 그런 미친 짓을 행했는지 모르나.
그들은 악마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다.
“악마는 애초에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계약’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사람들을 홀릴 뿐이죠.”
“인간이 악마가 원하는 대가를 주었음에도, 악마는 인간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는 건가요?”
“겉으로 보기엔 주는 것처럼 보이죠. 악마와의 계약은 오로지 악마의 힘으로만 이루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악마를 소환한 의식, 인간의 소원, 계약이라는 형태로 바치게 되는 대가와 조건의 교환. 이러한 힘들이 전부 모여 소원이라는 힘으로 발현합니다.”
그래서 악마는 인간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 자신에게 지식이 없더라도, 능력이 없더라도, 소환한 힘과 인간이 건네는 대가, 계약 성립의 힘이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까.
“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간들은 깨닫습니다.”
악마들은 인간과 계약을 할 때 보통 소원을 빈 자의 영혼 따위를 원한다. 게임 에티우스에서도 많은 서적의 정보들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다.
당연히 암부의 인물은 그것을 각오했겠지.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마나 주사를 완성시켜 인류를 강화시키겠다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대단한 각오를 하였든,
자신의 영혼조차 저울 위에 올려놓은 숭고한 희생을 하였든,
악마에는 그따위 것에 관심이 없다.
“사람들을 악마와의 계약에서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가져가는 것에 두려워하지만,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닙니다. 영혼을 가져가는 주제에, 계약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잔혹함을 두려워해야죠.”
악마는 인간의 심리를 잘 꿰고 있다. 그중 특히 보상 심리에.
자신의 영혼을 팔 정도나 되는 계약이라면 그만큼 정직하고 제대로 된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 믿는 어설픈 마음.
“이번 경우, 암부가 빈 것은 마나 주사를 부작용 없이 만들어낼 지식 따위였을 겁니다.”
“악마가 그 지식을 주지 않았다는 건가요?”
“주었을 겁니다. 계약을 이행하기는 해야 하니까. 다만 이런 식의 계약은 언제나 함정이 있죠.”
“함정이란?”
“지식은 사용해야만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만들어낸 물건은 서로 별개의 것이죠.”
내 말에 필리가 아, 하고 알았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그 지식을 이용해 만든 ‘물건’을 악마가 노렸군요.”
“예. 아마 실험 도중에 가로챘을 겁니다. 지식은 주었고, 계약은 이행되었으니 그 뒤부터는 계약과 무관한 일이죠.”
다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소원에 무관심한 악마가 그 물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은 소원의 빈틈을 노리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소원을 이루어주긴 하나 더욱 불행에 빠뜨리는, 이른바 ‘원숭이손’ 따위의 짓거리를 하는 게 보통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을 갖고 노는 것이다.
그런 악마가 인간이 하는 실험에 관심을 갖고 그걸 가로채다니, 어지간히 흥미가 동한 모양이다.
“그럼 그 실험에서 탄생한 것이…….”
“예. 황제를 노렸던 그 괴물입니다.”
메타모프의 재앙.
그 녀석은 본 사람을 똑같이 흉내내는 능력이 있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그 내부부터 마나의 흐름까지도.
“본래는 마나 주사의 부작용을 없애는 방안이었겠죠. 대상과 완전히 똑같은 마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주입하더라도 부작용이 없을 테니.”
“그때는 지금처럼 자아를 가진 괴물이 아니었겠군요. 그럴 필요도 없었을 테고.”
“예. 그렇게 만든 건 악마일 겁니다.”
본래는 마나 주사가 되었어야 할 메타모프의 재앙.
악마들이 그 능력의 뭘 노리고 인간의 실험을 괴물로 뒤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뭐 지금 내 공방 안에 갇혀 있으니까, 나중에 느긋하게 알아봐야지.
“얘기하는 동안 도착했군요.”
나와 필리는 지하의 계단을 전부 내려왔다.
오랜만에 이곳으로 왔지만, 내가 본 광경은 전혀 달랐다.
일단 드래곤 하트를 보관한 방의 문이 이미 박살 난 뒤고, 이질적인 마나의 잔향이 남아 있다. 아마 악마들의 것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피 냄새가 난다.
“악마는 인간의 실험에 손을 댔죠. 인간이 악마와 계약을 할 때, 서로가 만날 수 있도록 의식에서는 일종의 게이트가 형성되었을 겁니다. 그 매개체로 이용한 것이 ‘드래곤 하트’였을 겁니다. 악마를 소환하기에 아주 적합한 마나 결정체니까요.”
“그래서 이곳에 침입 흔적이 있었군요. 놀랍네요. 드래곤 하트 자체를 마나 주사로 사용하려 한 게 아니라, 그걸로 악마 소환을 할 생각이었다니.”
“그때 이미 악마 소환이 이루어진 뒤였을 수도 있습니다. 드래곤 하트는 매개일 뿐 파괴되진 않을 것이고, 소환한 악마와 계약을 한 뒤 악마는 돌아가고 게이트는 다시 닫혔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남은 건 사소한 침입 흔적뿐이겠죠.”
다만 드래곤 하트가 계속 그 자리에 위치한 동안에는 악마는 다시 게이트를 열고 여기로 올 수 있겠지.
소중하게 보관하기 위해 드래곤 하트를 숨겨 그 위치를 고정시킨 것이 오히려 악마가 다시 여기로 올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안을 확인해 보죠.”
“네.”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드래곤 하트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방팔방에 흩뿌려진 피를 발견했다. 마치 참혹한 대학살이라도 당한 것 같지만, 시체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로지 피만 가득할 뿐.
게다가 ‘육감’이 고하건대, 이 피는 틀림없이,
“한 사람의 피가 아니군요.”
“몇이나 되는 걸까요?”
“상당한 인원입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셀 수는 없지만.”
그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경우에 따라 피는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다. 피를 뽑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예측하건대 이 피는 ‘살해’로 인해 발생한 피가 아니다.
“아무래도 계약이 완료된 모양입니다.”
“……그럼 이 피의 주인이,”
“예. 암부로군요.”
[서브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서브퀘스트 : 솎아내기]•설명 : 마나 주사를 계획한 무리가 암부에 속해 있습니다. 필리의 명에 따라 그들을 처단하십시오.
•목표 : 계획의 주모자 및 협력자들을 제거하기.
•보상 : 퀘스트 성과에 따라 별도 지급. 주모자나 협력자들 중 몇 명을 놓치거나, 암부의 다른 사람을 제거할 경우 보상 하락, 암부의 인물이 아닌 사람을 죽일 경우 실패.
•실패 시 필리의 신뢰를 잃습니다.
[보상 확인]– 계획의 주모자는 악마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 계획의 협력자는 악마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보상이 보류되었습니다. 현재 확인 중에 있습니다.]나는 스마트워치의 알람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퀘스트, 내가 손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해결되었다. 퀘스트가 정해놓지 않은 제3의 결과이기에 혼란이라도 일어났나.
암부 대신 더 귀찮은 것이 등장해 버렸지만.
“드래곤 하트는 그대로 있군요. 마나를 많이 소진한 것 같지만.”
필리가 눈을 가늘게 한 채 드래곤 하트를 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삼각형의 고리는 이제 그 찬란한 빛을 많이 잃고 희미해졌다.
악마 소환과 계약, 그리고 미조나스의 부름에 따라 여기 게이트를 타고 수많은 악마들이 출현했으니 그 광활한 마나도 바닥을 드러낼 만하지.
‘……조금 이상해.’
하지만 나는 그 드래곤 하트의 내부에 다른 기색을 느꼈다.
암부는 이 드래곤하트를 이용해 악마를 불렀고, 계약했다. 아마도 사탄이겠지.
그 사탄의 직속 부하인 미조나스가 현재 앗지에와 싸우고 있다.
앗지에가 실력이 더 우위에 있다고는 하나, 대결이 성립한다는 것 자체가 미조나스의 힘을 짐작할 수 있다.
거기다 이 드래곤 하트로 열린 게이트로 쏟아져 온 수많은 악마들의 무리.
‘……드래곤 하트는 이미 한계를 넘은 게 아닌가?’
나는 드래곤 하트를 직접 삼켜봤고, 그걸 다뤄봤다. 정확하진 않더라고 이것이 가진 힘의 크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나의 직감으로 드래곤 하트는 이미 전부 소모되어 없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드래곤 하트는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죠?”
나는 필리의 물음에 깊은 고민에서 깨어났다.
“조금 아깝지만, 이걸 부수죠.”
“드래곤 하트를요?”
“예. 그러면 여기와 이계와의 연결 통로가 없어지고, 악마들도 더 오지 않을 겁니다.”
이미 등장한 악마들은 조디악들이 잘 처리해 줄 거고, 미조나스도 앗지에한테 맡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 하트를 부수면 그걸로 당장의 사건은 일단락이 될 것이다.
“……좋아요. 어차피 이렇게나 소모되어서는 제 남편에게 쓸 수도 없을 것 같으니.”
필리는 조금 침중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드래곤 하트에 손을 뻗었다.
순간.
[그 전에 잠시.]낯설고, 그만큼이나 칙칙한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지나치게 정중한 목소리. 그 뒤에 드래곤 하트의 위로 서서히 만들어지는 형체.
나와 필리는 고개를 들어 그 형체를 보았다.
창백한 피부의 남자는 외모도 수려했으나 그보다 먼저 활짝 펼쳐지는 날개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바로 알았다.
박쥐의 날개가 아닌, 새의 날개.
마치 천사를 연상케 하면서도, 너무나도 깊고 어두운 검은색.
칠죄의 악마들 중, 검은 새의 날개를 지닌 것은 단 하나.
“……사탄.”
[반갑네. 프론디어.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에게 오해가 많았군.]사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무나도 신사다운 몸짓과 말투가 오히려 나의 경계를 높였다.
“오해라.”
[그렇지. 인간의 왕에게 위해를 가한 것, 내 부하들이 인간을 위협한 것 모두 깊이 사과하지. 본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네.]“그렇다기엔 지금도 미조나스라는 녀석이 설치고 있고, 황궁에서 박쥐 떼들이 날아다니는데?”
[물론이지. 그래서 내가 친히 여기로 온 것이 아니겠나.]그렇게 말하고 사탄은 한 손을 뻗었다.
순간.
쐐애애액-!!
갑자기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소리가 드래곤 하트에서 울려 퍼지더니,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사탄의 앞으로 게이트가 열리며, 온 사방에서 검은 것들이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이곳에의 육체를 완전히 잃고 저쪽 세계로 영혼이 넘어가는 악마 떼였다.
‘게이트를 여는 것 자체는 드래곤 하트를 빌렸다고 하나, 악마들을 억지로 되돌리는 것은 오로지 이자의 힘이군.’
게다가 악마들이 비명을 지르는 꼴을 보아하니 아예 강제로 빨아들이는 듯하다.
그 수많은 악마를 손짓 한 번에 전부 자기 세계로 끌고 가다니.
그리고 모든 악마가 빨려 들어가고 난 뒤의 마지막.
“컥! 커억! 사, 사탄 님……!”
사탄의 오른손에는 미조나스의 목이 쥐여져 있었다.
[자, 모든 악마들을 물러나게 했네. 나의 사과를 받아주겠는가?]사탄은 그렇게 말한 뒤 미조나스마저 게이트 너머로 내던졌다. 애초에 자기 손으로 쥔 것이 나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분노의 악마치고는 꽤 점잖군.”
나는 말했다. 이건 일종의 질문에 가까웠다.
사탄은 내 말에 눈을 잠깐 크게 뜨더니 곧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당연하지 않은가.]“당연하다?”
[분노를 담당하는 자가 분노에 휩싸일 리 없지 않느냐.]그 말.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듯이 내뱉은 그 말에.
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온 의문의 힌트를 얻었다.
‘그래. 당연하지. 분노를 담당하는 자가 분노에 취할 리 없어. 그건 지배하는 게 아니라 지배를 당하는 꼴이잖아.’
죄악을 담당하는 악마들이야말로, 그 죄악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
악마들은 죄악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분노를 좋아할 뿐이야. 분노라는 감정의 나의 영양분인 것이지. 분노한 이를 선호하고, 분노하는 상황을 쫓는다. 그것을 즐기는 것이 죄를 지닌 악마들의 역할이니.”
“……그렇군.”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서.
나태의 악마 ‘벨페고르’ 또한, 나태에 집어삼켜진 악마가 아닐 것이다. 나태를 부여하는 역할일 터.
‘우선 그건 나중에.’
나는 생각을 거두고 사탄에게 물었다.
“그러면 분노의 악마 사탄께서 사과를 하기 위해 친히 이곳까지 나왔나?”
“물론이지. 이번 일은 온전한 내 잘못이고, 그렇기에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장 큰 이유였어.”
……가장 큰 이유라.
“그럼 돌아가주겠나? 지금 이 드래곤 하트를 부숴야 하니 말야. 악마가 보는 앞이라니 워낙 긴장이 돼서.”
나는 웃으며 말했다.
간단히 말해 꺼지라는 얘기였다.
[아아, 그 전에.]사탄이 고개를 저었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어떤가?]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사탄은 말했다.
사과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 본인은 떠들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여기까지 몸소 행차하신 본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제안?”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사탄은 눈을 낮게 내리며 나를 보았다.
[자네가 가둔 괴물.]거의 예상 그대로의 발언이었다.
[그 재앙을 돌려주게나. 자네가 가지고 있을 만한 것이 아니야.]가지고 있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내가 그 녀석과 만나는 걸 참으로 경계했었지.
나는 흐트러짐 없는 미소로 물었다.
“제안이라고 했지. 내가 그 녀석을 돌려준다면, 나도 받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럼 그럼. 물론이지. 내가 그걸 왜 모르겠는가.]사탄은 깊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자네의 목숨이 부지될 거야.]지나치게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뿐만 아니라 제국 시민들 모두, 아니, 인류 전부가 내 손에 죽지 않을 거야. 언제라도 내가 그 심장을 꺼내 밟아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안 하기로 마음먹었으니.]신사적인 몸짓으로 양손을 펼치며 말했다.
[말하자면 내가 인류 전체를 구한 것이지. 인류를 구한 보상으로 그 괴물을 돌려받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분노의 악마는 그렇게.
분노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