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244)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244화(244/606)
77장 약속(1)
약속.
그 단어를 내뱉을 때만큼은 다른 말들과 긴장감이 달랐다.
그건 아마 엘로디가 스스로 느끼는 말의 무게 때문이겠지.
‘약속이라.’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렸을 적 프론디어와 엘로디의 약속.
“자! 그러니까 걱정 말구 나만 따라와!”
당차게 말하는 엘로디. 그 어린 손을 잡고, 소녀와 소년이 앞뒤로 나란히 걷는다.
나에게는 없는 기억임에도 느껴지는 기시감. 푸른 하늘 위로 끝없는 은하수가 흐르는 엉망진창인 세계에서 있지도 않은 향수를 느낀다.
그와 동시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엘로디를 향한 적의와 혐오.
‘처음 오두막에 왔을 때도 이랬었지.’
오두막에 와서 칼침을 맞고 기절했을 때, 나에겐 프론디어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와 함께 프론디어가 본래 품고 있던 감정도 같이 맛보았다.
지금의 나에게는 프론디어가 가진 과거의 기억이 다소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고대어의 지식이다.
프론디어가 고대어를 공부하던 시절을 엘로디와 완전히 분리해놓을 순 없기에, 나에게는 고대어의 지식과 함께 엘로디의 기억도 조금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억 가운데에 엘로디가 말한 ‘약속’ 같은 건 없다.
프론디어가 고대어를 습득한 것과 다른 시절의 기억이거나, 아니면 프론디어 본인은 완전히 잊어버린 약속이든가.
‘여전히 날 귀찮게 하는구나, 프론디어.’
지금의 내가 엘로디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신뢰를 쌓아왔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적의와 혐오가 불쾌하다. 내 감정이 멋대로 조종당하는 기분이니까.
“자, 도착했어.”
엘로디의 말대로 우리는 어느새 오두막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야말로 ‘어느새’라는 느낌이다. 오두막을 향해 어느 정도 걸었다기보다, 어느 정도 걸었으므로 오두막에 도착해 버렸다. 그런 느낌이다.
“여기는 안전해.”
엘로디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놓았다. 나는 주변을 보았다. 역시 오두막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로아흐의 별장인 이 오두막이 이런 영문도 모를 위치에 있을 리가 없다. 원래 세계의 지리를 생각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겠지.
결국 이 꿈에서 나가는 건 엘로디를 통해야만 하며, 탈출 방법 또한 엘로디가 알고 있겠지.
“엘로디.”
“응?”
나는 엘로디를 불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엘로디는 계속 작아지고 있겠지.
현실은 꿈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는 공상 과학 같은 설정이 있었지만, 여기도 그런지는 모른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엘로디를 정신 차리게 해서 여기를 나가는 게 순서다.
하지만.
“…….”
“뭐야? 불러놓구.”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의 엘로디에게 ‘여기는 꿈이니까 나가자’, 고 말한다는 것에 강렬한 위험성을 느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해서는 안 될 말인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어떻게 그토록 나를 빨리 찾았나 싶어서.”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엘로디에게 하여금 이 꿈의 모순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 엘로디가 나를 아무런 도움도 없이 찾아낸 것.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지면 여기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아하하. 나는 네가 어디 있든 찾을 수 있어.”
“……어떻게?”
“그냥. 반드시 찾을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지만 엘로디는 스스로의 말에 아무런 의구심도 없는 듯 눈빛이 또렷했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엘로디를 깨울 수 없는 것 같다.
“자, 그럼 앉아봐. 프론.”
“앉으라니, 여기?”
“응. 거기 의자에.”
엘로디가 ‘의자’라는 단어를 말하자마자 의자가 생겨났다.
내 눈으로는 지금 막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엘로디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의자가 거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말자. 끝도 없을 것이다.
나는 엘로디가 말한 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뭐하게?”
“헤헤. 프론, 거기서 잘 봐.”
엘로디는 의자에 앉은 나를 보며 거리를 조금 벌렸다. 한 손을 들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아마 영창이겠지. 곧 그 손 위에 불꽃이 태어났다.
지금 엘로디의 모습을 미루어봤을 때 이만한 나이대의 평범한 소녀가 펼친 마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지만, 엘로디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니까.
그 손에 불꽃을 유지하고서, 다른 손을 들어 또 한 번 마법을 영창하고는,
“봐! 프론! 어때? 대단하지!”
그 양손에 각각 불꽃과 얼음을 깃들게 하고서, 신이 난 얼굴로 내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랬었지.’
프론디어의 일기에도 쓰여 있었다. 엘로디는 틈만 나면 프론디어에게 자신의 마법과 신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게 프론디어의 열등감과 질투심을 건드렸다. 아무것도 없는 프론디어에게 엘로디가 보여준 능력들은 프론디어가 받아들이기엔 조롱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후후, 굉장하지? 물론 인드라의 도움을 쬐끔 받았지만, 내가 좀만 더 크면 걔한테 의지하지 않고서도 내 의지대로,”
“굉장해.”
나는 솔직히 말했다.
지금 엘로디가 보여준 기술, 이중 영창. 지금 콘스텔의 2학년들 중에서도 해내는 마법사가 드물 것이다.
그걸 이 나이에 해냈으니 당연히 굉장할 수밖에. 여긴 꿈이지만 아마 과거에도 이랬을 것이다.
“……어?”
그런데 엘로디는 내 대답에 놀라서는 표정이 얼었다.
굉장하지? 라는 질문에 굉장하다, 고 답했는데 그거에 놀라고 있었다.
“……어, 아하하. 응! 에헴, 대단하지.”
그러나 곧 다시 웃는 얼굴이 되어 자랑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봐봐? 이번엔 좀 다른 거야. 내가 폭풍시와 화염시라는 마법을 아빠한테 들었는데─”
엘로디는 그렇게 또 다른 마법에 대하여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암만 봐도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이 꿈에서 엘로디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지금 엘로디가 하는 이야기들이 탈출에 힌트가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다섯 신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도, 내가 말 걸어서 대답해 주는 건 셋뿐이고 남은 둘은…… 앗.”
그렇게 한참 말하던 와중, 돌연 엘로디가 내 눈치를 살핀다.
“아, 이런 거 재미없지? 아하하. 들어봤자 재미없는 얘기였네.”
“아니.”
나는 말했다.
“재미있어.”
엘로디를 나가게 해주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
어릴 적 엘로디가 어릴 적 프론디어에게 말해주는 이야기.
그저 시간 낭비가 될 뿐일지 모르는 엘로디의 말들을.
“그래서 남은 둘은 어떻게 됐어? 좀 더 들려줘.”
나는 듣기로 했다.
엘로디의 반짝이는 눈망울과, 만개하듯 피어나는 미소를 보면서.
어쩌면 저 미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응!”
다시 활짝 피어나는 엘로디의 대답에, 나는 마주 웃었다.
* * *
하늘은 언제나 새파랗고,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알 수 없는 해와 달의 흐름.
이곳은 영원한 낮이다.
엘로디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하고, 아마 정말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지. 그런 세계다.
그리고 나는 엘로디가 열심히 떠드는 동안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밌네.’
솔직히 말해서 지루함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로디는 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이야기꾼이었다. 하도 프론디어에게 말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그 앙증맞은 얼굴이 이렇게 웃다 저렇게 찡그리다, 음색의 높낮이가 탄력 있게 움직이고 작은 손끝과 발끝이 쭈욱 열렸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고, 어린아이의 말재간에 내가 몰입되고 있었다.
“그래서, 멀린은 대마법사가 되었어. 아서왕의 조력자였던 그가 왕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처음으로 신의 조력 없이 순수 인간의 힘만으로 마법을 만들어냈으니깐! 지금 마법사들이 신력 없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의 근원은 멀린인 거야!”
“오오오.”
짝짝짝-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고, 나는 배우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서왕 전설을 완벽하게 멀린의 관점으로 보는 건 꽤 흥미로웠다. 엘로디가 마법사라서 그런 거겠지만.
‘근데 프론디어의 일기처럼 자기 자랑만 가득한 건 아닌데.’
나는 엘로디가 하루 왠종일 마법 자랑을 할 것을 생각했는데, 그런 건 초반에 끝나고 나머지는 그녀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풀어주고 있었다.
프론디어는 엘로디의 이런 이야기들마저 아니꼬웠나.
“에헤헤. 오늘 프론은 이상하네.”
엘로디가 자기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상해?”
“항상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거 같았는데. 듣는 것도 귀찮아 보이고.”
원래 프론디어라면 그랬겠지. 사실 그보다 더한 혐오감을 귀찮음이란 얼굴로 숨기고 있었다. 게으르다는 본인의 천성에 의도적으로 귀찮은 티를 내기까지 했으니, 혐오를 가리는 가면이 쉽게 들키진 않았겠지.
……하지만 엘로디에겐 상처였을 것이다.
“있지, 프론.”
그때 엘로디가 말했다.
“나 대마법사가 될 거야.”
“멀린처럼?”
“응! 그래서, 굉장히 강한 마법사가 되어서, 마물을 걱정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거야.”
참 포부가 크다.
이 어린 소녀가 가진다고 믿기 어려운 거대한 꿈이다.
그런데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지 엘로디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그래서.”
“그래서?”
“그런 세상이 되면, 프론.”
“응?”
“신력이라든가 재능이라든가, 그런 게 상관 없어지는 세상이 되면, 프론도…….”
두근-
엘로디가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뱉은 그때.
엘로디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이해한 그때.
내 몸 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고동이 울렸다.
‘뭐야, 이거.’
이건 나의 고동이 아니다. 설마 엘로디의 말을 듣고 프론디어의 몸이 반응했나? 아니, 그렇다기엔 혐오나 증오 따위의 감정을 나는 느끼고 있지 않았다.
이 몸 안의 고동은 대체 어디서 촉발된,
“아, 아냐! 프론! 잘못 말했어! 그런 뜻이 아닌데!”
그때 엘로디가 서둘러 내게 다가왔다. 내 손을 잡다가,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내 몸을 껴안았다.
“아냐, 그런 게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었어. 미안해. 말이 서툴러서. 잘 전하고 싶었는데. 네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은 게 아닌데.”
나는 엘로디가 그렇게 다급하게 말하는 동안에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잠시 멈춰 있었다.
그러다가 곧 알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고동은, 엘로디의 마음이다.
자신의 말을 듣고 프론디어가 상처를 받았을 거라 생각하는, 그 고동이 나에게 전해진 것이다. 엘로디가 생각하는 프론디어가 지금의 나니까.
‘기분을 나쁘게 한다고?’
방금 그 말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서, 프론디어의 무능이 무능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도록 하겠다는 그 마음이.
그저 프론디어가 신력과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니까. 그것만으로 프론디어는 상처를 입으니까.
‘프론디어가 지금껏 엘로디의 자기 자랑이라고 여겼던 그 말들 전부가, 사실은.’
나는 무어라 말도 못하고 나를 껴안은 엘로디를 보았다.
엘로디의 이 마음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 모르겠다. 지금 이 모습은 프론디어의 열등감 이상으로 병들어 있지 않은가.
……완벽한 캐릭터.
능력과 성격이 너무나도 완전해, 내가 가장 걱정하지 않는 캐릭터.
내가 가장, 관심에 두지 않은 캐릭터.
나는 표정이 굳어, 몸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피어올랐다.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그것이 과거 프론디어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모른 채.
쿠웅!
그때 들려오는, 내 발을 슬쩍 떠오르게 하는 거대한 땅울림. 그에 고개를 들자.
‘……저 괴물은 뭐야.’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물이, 하늘이 우스운 듯이 거대한 체적을 들어 우리 둘을 내려다보았다.
굳이 말하면 그건 거인의 형상이었으나, 온몸이 새까맣고 형태가 완전하지 않은 듯 물결처럼 일그러졌다.
머리 부근에 있는 눈이 두어 번 깜박이다가, 순간,
파드드드득!
전신에 감추어졌던 수백의 눈들이 열려, 그 전체가 우리를 보았다.
그러고는 그 등 뒤에서 날개가 펼쳐지고, 손에 자기 키만 한 창을 들어, 온몸에는 불길이 피어오른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모공이란 모공이 죄다 열렸는지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촉수가 그 몸에서 뻗어나왔다.
……저딴 괴물, 저딴 말도 안 되는 크기, 저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몸의 구조, 자연현상을 죄다 무시한 것 같은 괴물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저런 게 현실에 존재할 리 없다.
핫, 엘로디가 깨달은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존재인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거대한 괴물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두막 안에 들어가 있어. 금방 끝내고 올게.”
“……금방 끝내고 온다고?”
“응. 이따금 찾아오는 놈이야.”
……즉, 이 꿈속에서 엘로디가 스스로 만들어낸 괴물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말도 안 되는 형체로 나타나는 거겠지.
하지만 보통 꿈속에서 나타나는 괴물은 사실 대단치 않다. 겉모습은 흉악할지 몰라도 꿈의 주인에게 진짜로 해를 입히지는 않을 터.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괴물, 엘로디에게 너무나도 거대한 위협으로 느껴진다.
“이긴 적은 없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이긴 적이 없다고?”
“괜찮아. 걱정 말구 안에 들어가.”
엘로디가 나를 쭈욱 밀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 능력도 없으므로, 엘로디의 말대로 도망치는 게 나았다. 꿈의 주인인 엘로디는 몰라도 나는 진짜로 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기지 못하는 괴물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싸우고 상처를 입고 고통을 받는다.
그건 마치.
“엘로디, 잠깐.”
“걱정 마. 프론.”
엘로디는 웃었다.
그녀가 아닌 나에게 고통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너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