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348)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348화(348/60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48화
102장 반복(2)
거인.
게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프론디어는, ‘거인’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고 있다.
고대의 존재들. ‘티탄’이나 ‘요툰’과 같이 실제 신화에서도 등장했던 이들이다.
‘거인’이라는 말과 달리 그들의 체구는 반드시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대 시대의 존재들에게는 보이는 체적의 크기는 의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거인’이라는 말은 몸의 크기를 뜻하는 게 아니다.
거인이란 모두 신의 자리를 위협했던 이들이다.
신에게도 반란, 쿠테타, 하극상 따위의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먼 옛날 신의 목에 손이 닿았던 존재들, 신의 숙적.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야.’
그러나 지금의 프론디어는, 거인에 대해 단순히 사전적인 지식만 갖고 있는 게 아니다.
프론디어는 멀린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서왕이 멀린에게 건네준, 고대어로 되어 있는 문장.
─신을 무너뜨릴 거인을 위하여.
‘그 단어가, 지금 여기서 또 등장하는가.’
바엘이 방금 말한, 악마는 거인을 죽일 수 없다는 말.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프론디어도 모른다. 어떤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거인이 그만큼 강하다는 말인지.
하지만 프론디어의 직감이 고한다.
바엘이 말하는 ‘거인’과, 프론디어가 알고 있는 ‘거인’, 그리고 아서왕이 고대어로 남긴 ‘거인’.
그 모두는 같은 존재를 가리킬 것이라고.
‘아서왕이 남긴 문장은 마치 그가 거인의 편이라는 듯이 쓰여 있었어.’
거인을 위한다고 표현했고, 신을 무너뜨릴 거라는 예고는 프론디어가 알고 있던 거인의 지식 그대로다.
프론디어는 지금까지 신 때문에 별의 별 고생을 다 했던 인간이다. 영웅이 신이 아니라 거인의 편이었다는 것에 놀랄 것도 없었다. 의외이긴 했지만.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요툰이든 티탄이든 간에, 그들은 너무 고대의 존재들이야. 아서왕이 그들을 만났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시간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 아서왕은 티탄과 같은 거인들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서왕은 무엇을 보았길래 그런 말을 남긴 걸까.
애초에, 멀린조차 읽지 못했던 고대어를, 아서왕은 어떻게 남길 수 있었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프론디어가 바엘에게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사탄이 물러섰다고?”
“그래. 그 둘만 이해하는 뭔가가 있는 듯했지. 다만 문제가 있었어.”
“문제?”
“그때는 이미 상당한 수의 악마들이 제국으로 날아갔다는 거지. 대부분이 사탄의 부하들이었지.”
벨페고르가 사탄을 막긴 했지만, 그는 조금 늦었다.
이미 사탄은 일선에 출격 명령을 내린 상황이었다.
“선두로 나선 악마들은 사탄이 가진 부하들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나고 신임하던 악마들이었지. 하지만 그들만 가지고서는 제국을 무너뜨리는 건 당연히 힘들었어. 그때 ‘조디악’이라 불리게 된 인물들은 이미 개인으로서도 그 악마들과 실력을 나란히 했으니.”
“그럼 사탄은 그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나?”
“아니.”
바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두었다.”
“……그대로?”
“그래. 그리고 마계로 돌아갔지. 본인을 불러낸 남자의 계약을 이행한 뒤에 말이야. 물론 그 계약이 이행되었다고 해서 사탄과 계약한 인간이 좋은 결말을 맺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야 그럴 것이다. 사탄이 그저 순순히 계약에 따를 리가 없었다. 애초에 게이트를 열기 위해 계약을 이용했던 거니까.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럼 앞서 출격한 악마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대로 제국에 들이받아 죽음을 맞이했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지금 너라면 알텐데, 프론디어. 그들은 사탄이 게이트를 타고 마계에 돌아가면서, 마계에 관련된 기억을 전부 잊었다. 자신이 왜 인간 세계에 있는지, 마계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조차 전부 잊었지.”
“……그 기억을 잊은 악마들이 바로.”
“그래. 지금 제국에 숨은 악마들이다.”
마르코가 답하자, 프론디어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의 불길한 추측이 기어코 적중하고 말았다.
프론디어는 머리를 짚었다.
그럼 결국 제국에 숨은 악마와 사탄이 이번에 보낸 악마들이 전부 다, 원래는 사탄의 부하들이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 새끼는 자기가 과거에 부렸던 부하와 지금의 부하를 싸움 붙이는 건가? 제국을 망치고 싶다는 이유로?’
보통 미친 새끼가 아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지? 기억을 잃게 만드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인가?”
그렇게 의심하듯 물은 건 프론디어지만,
“그래. 나도 그 말은 믿을 수 없다.”
거기에 동조한 건 바엘이었다.
“나는 그놈들이 기억을 잃었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놈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처음부터 제국에 숨어들 계획이었던 거다. 우리를 이용했던 거야!”
바엘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그것을 보며 프론디어가 말했다.
“……바엘이나 다른 72악마는 사탄과 함께 마계에서 게이트를 넘은 건가?”
“그래. 벨페고르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일종의 연합이었어. 마계에서 그들은 임시 연합을 맺어 제국을 함께 삼킬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사탄의 계약으로 열린 게이트로 그들이 전부 서쪽 땅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탄 혼자 이들 전부를 내버려 두고 마계로 돌아간 거군. 게이트를 닫은 채.”
그리고 그때 악마는 양분되었다. 이미 제국으로 향한 악마들과, 벨페고르의 제지에 의해 서쪽에 남은 악마들.
서쪽 악마들은 그야말로 사탄에게 배반당한 것이다. 마계로 돌아갈 유일한 통로가 닫혔고, 땅은 인간들의 땅. 그렇다고 인간의 땅을 덮치자니 수가 부족하고, 제국 땅으로 가자니 벨페고르가 그들을 가로막는다.
즉 아고리스에서는 악마들이 ‘만곶’과 비슷한 신세였다.
“……즉 아고리스의 악마들은 지금, 제국에 있는 악마들이 마계로 돌아갈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 거군.”
“그래. 처음부터 벨페고르와 사탄이 손을 잡은 거야! 제국을 안에서부터 잡아먹을 계획이었던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딴 황당한 거짓말을 하겠나! 기억을 잃었다는 건 그저 우리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이야! 실제로 지금 아고리스의 악마들 중에 사탄을 까먹은 놈은 아무도 없다!”
바엘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에 마르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바엘. 제국에 지금 있는 악마들이 기억을 잃은 건, 그들이 사탄의 부하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
“그들은 모두 사탄의 명에 따라 그 계약에 종속되어 있는 악마들이었다. 사탄이 게이트를 건너기 위해 인간과 맺은 바로 그 계약 말이야.”
그러고서 마르코는 프론디어를 보았다.
“프론디어, 이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어느 한 명을 세계의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황당한 사건이.”
“……!”
그에 프론디어가 당연히 떠올리는 것은, 총장 오스프리트의 마법.
세계 밖으로 자신을 떨궈, 모두의 인식에서 벗어났던 오스프리트.
프론디어의 표정을 보고 마르코는 말했다.
“그와 비슷한 일이 악마들에게도 일어난 거다. 뭐, 상황은 반대이지만 말이지.”
그렇다. 오스프리트의 경우 세계 전체가 오스프리트를 없는 것으로 취급했지만, 이번에는 악마들이 마계를 잊었다.
즉 악마들이 세계에서 나간 게 아니라, 세계가 악마들의 인식에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사탄과 계약을 맺은 인간의 소원이란 이런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악마를 모두 없애달라’ 따위의, 어처구니 없는 소원이었지.”
“악마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악마에게 빌었다고?”
그것도 칠죄종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사탄에게?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곱게 죽진 못했을 것이다.
“그 인간은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다. 그러니 악마 하나라도 더 끌고 가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군. 뭐, 그런 소원을 악마에게 빌면 무슨 표정을 할지 궁금했던 것도 있었겠지. 물론 그런 소원을 사탄이 들어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둘어줄 수도 없었고. 악마 전부를 없애는 소원 같은 건 사탄이 그렇게 해주고 싶어도 무리다.”
“그렇겠지.”
“그래서 사탄은 인간과 말을 나눴지. 왜, 봤으면 알겠지만 사탄은 신사적인 척을 굉장히 잘하거든.”
프론디어는 실제로 봤으니 잘 알고 있다.
그 신사적인 시늉 때문에 더 짜증이 났지만.
“사탄은 긴 시간 인간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와의 신뢰를 쌓아갔다. 뭐, 긴 시간이라고 해봤자 인간의 기준이고, 사탄의 입장에선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 보통 악마에게 속는 인간들은 이 차이를 몰라서 속는다.”
“……제법 시간을 쌓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긴 시간이 악마에게는 찰나와 같은 거군.”
“그래, 사탄의 입장에서는 아주 잠깐의 연기였을 뿐이었어. 그 찰나 안에 사탄은 그 인간에게 모든 악마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설득에 성공했다.”
……그건 설득이라기 보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프론디어는 저도 모르게 입을 닫았다.
왠지 괜한 말을 했다간 스스로가 뜨끔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잘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소원을 바꾸었다. ‘사탄, 네가 생각하는 없어져야 할 악마들을 말해다오. 나는 자네를 믿으니, 자네가 말하는 악마들을 없애고 싶네.’ 그렇게 말하자 사탄은 답했지. ‘악마는 모두 마계에 있어. 그들은 어차피 이 세계에 오지 않아도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 그 말을 할 때 사탄은 이미 낚시바늘을 건 거야.”
마르코의 말에 프론디어의 눈이 식었다.
마르코는 말을 계속했고,
“그러자 인간이 말했어.”
──그렇다면 마계에서 그 악마들을 없애줘.
“……하하.”
프론디어는 식은 눈 그대로 웃었다.
웃기진 않았는데, 자연히 웃음이 나왔다. 혐오와 역겨움이 숨으로 뱉어졌다.
“사탄은 인간이 그 말을 하도록 유도했군.”
“그래. 그렇게 마계에서 ‘없어진’ 녀석들이다. 지금 제국에 숨은 악마들은. 아주 간단한 말장난이지.”
그렇게 말하고서 마르코는 바엘을 보았다.
“어때, 바엘? 이 말조차 거짓으로 느껴지나?”
바엘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눈을 깊이 감은 채 툭툭,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뚝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뜨고는 입을 열었다.
“이봐, 마르코.”
“왜?”
“자네는 어떻게 그런 얘기들을 다 알고 있나?”
“……앗.”
“역시 네놈! 사탄에게 붙었구나!”
바엘이 으르렁거리며 마르코에게 다가갔다.
실제로 사탄에게 붙었던 게 맞기 때문에, 마르코는 잠깐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만둬, 바엘. 이제라도 솔직하게 얘기해 주니까 됐잖아.”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악마들이……!”
“너네들이 제국 악마들을 죽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잖아.”
마르코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국에 있는 악마들도 결국 사탄의 피해자다.
사탄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답시고 마계에서 없는 것으로 만들었으니.
“근데 계약이란 건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나? 차라리 죽이는 게 더 간편할 거 같네.”
프론디어가 말하자 마르코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탄을 불러낼 정도의 계약이잖아. 뭔가 엄청난 걸 매개로 삼았겠지. 모르긴 몰라도 드래곤하트에 견줄 것이다. 아니면 드래곤하트 그 자체일지도 모르고.”
“사탄은 어떻게 기억을 잃게 만드는지, 방법을 몰랐을 텐데?”
“방법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런 방법은 ‘계약’이 알아서 해주는 거니까.”
악마와의 계약은 오직 악마만의 힘이 아니다.
악마와 매개, 인간 셋이 만나야만이 성립되는 것이 계약. 그렇기에 계약은 그 셋의 힘이 모두 동원된다.
‘……대마법사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 대마법사가 되지는 않은 오스프리트도 비슷한 걸 성공했으니, 계약의 힘이라면 가능한 건가.’
아무튼 이제 상황은 알았다. 왜 서쪽 악마들이 제국에 숨은 악마들에게 이를 갈고 있는지, 그게 어떤 오해로 비롯되었는지도.
게다가 제국의 악마들은 왜 기억이 없는지도 알게 되었으니, 프론디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은 셈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문제가 한 가지 남는다.
‘……리아 리스는 결국, 사탄의 부하였다는 거군.’
자신이 왜 제국의 땅에 있는지, 리리는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마계를 ‘돌아가야 할 장소’라고 여겼다.
앞뒤를 어떻게 따져봐도, 너무 명확하다.
리리는 과거 사탄의 부하였던 것이다.
제국을 침공하기 위해 선두로 출발했으나, 벨페고르의 제지에 의해 계약을 완료해 버린 사탄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 악마.
“……만약, 사탄이 마음 먹으면, 제국에 숨은 악마들이 다시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나?”
프론디어가 물었다. 최대한 평소와 같은 얼굴을 유지하면서.
마르코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다가 말했다.
“쉽진 않을 것이다. 사탄 본인의 힘만으로 기억을 잃게 만든 게 아냐. 계약의 힘이었다.”
리리나 다른 악마가 기억을 잃은 건 어디까지나 계약의 힘. 사탄 혼자서는 그 기억을 되찾게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는 또 말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곤 할 수 없지.”
“……그런가.”
나지막하게 대답하는 동안.
프론디어의 눈은 차가워지는 걸 넘어, 서서히 온도가 없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