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370)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370화(370/60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70화
108장 심문(3)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등을 돌렸다.
사실 원래 하글리에게는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거래할 만한 정보도 있고.
하지만 저렇게 멍청한 판단을 하는 놈인 줄 알았다면 애초에 관심에 두지도 않았다.
‘뭐 됐어. 정보를 얻어낼 수단은 많으니. 지금도 필리와 엘리시아가 움직이고 있고.’
내가 걸어가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털썩, 하며 옷 안에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살려줘.”
돌아보니 하글리가 의자에서 내려와 주저앉아 있었다.
아니, 나에게 무릎을 꿇은 모양새가 되었다.
하글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추한 모양새였으나, 역시 나에겐 아직 감흥이 없다.
“……딱히 죽일 생각은 없는데.”
“그 연구는 내 전부야. 내 인생 전체를 바쳤다.”
“참 하잘 것 없는 인생이구나. 내가 일 년 정도 걸려서 이해한 것에 평생을 바쳤나.”
물론 내가 공부한 건 아니었지만.
프론디어의 일기와 하글리가 프론디어에게 접근한 앞뒤 맥락을 짚었을 때, 프론디어가 고대어를 익힌 건 아마 그 정도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래.”
내 말을 듣고 하글리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그만한 재능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리고, 어깨는 분함과 슬픔으로 떨린다.
고대어를 해석하는 것은 재능이다. 프론디어의 기억을 알고 있는 나는 그것을 여실히 깨닫는다.
언어라는 게 본래 그렇지만, 어떤 이론이나 공식으로 대입하기엔 무리가 많다. 특히 고대어처럼 난해한 언어가 되면 더욱이.
지금 남아 있는 고대어들은 마나가 소실되어 본래의 의미를 절반 이상 날려 먹은 것들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선 계산능력이나 지능이 아니라 직감이 필요하다.
프론디어에게는 그 직감이 있었다. 게다가 그 직감으로 한두 번 때려 맞힌 게 아니라, 처음의 언어를 이해하는 토대 전체를 직감으로 해결했으니, 프론디어의 재능은 확실히 ‘두 번째’가 나오기 어려운 압도적인 것이었을 테지.
“프론디어, 그 언어를 쉽게 터득해 버린 네게는 모를 테지만, 고대어는 아무나의 입에 오르내려도 될 언어가 아니다. 부탁한다. 고대어의 해석본을 일반인에게 발표해선 안 돼. 내가 더이상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되어도 좋다. 허나 그 가치만은 남겨주어라.”
“…….”
나는 하글리를 보았다.
솔직히 내가 지금 뭘 어떻게 하든 하글리가 알 도리는 없다. 그는 이제 나를 막을 수 없는 입장이니까.
하지만 연구를 할 수 없게 되어도 연구 소재의 가치는 지키고 싶다라. 그 하글리가 나에게 무릎까지 꿇으면서.
자존심을 전부 버릴 정도의 열망은 남아 있었는가.
“하글리. 잘 들어라.”
나는 말했다.
“나는 동정으로 움직이지 않아. 네놈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싶다면 그만한 뭔가를 내놓아야 할 거다.”
“……거래란 말이냐.”
“그렇지.”
“하지만 나는 제공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 나는 미소 지었다.
역시 아직도, 하글리는 나를 만만하게 본다.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부탁했으니 마지막 한 번만 더 인내하마.”
“무슨 소리냐?”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질문으로 바꿔주지.”
나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는 것 같은 하글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네가 하려는 계획, 혼자서는 불가능할 텐데?”
“……!”
“앗지에가 네 말을 듣고 네 능력의 쓰임새를 증명한다 해도, 네가 이 교도소를 빠져나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누군가의 어필이 필요하지. 즉 바깥의 누군가가 너에 대한 필요성을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한데, 네놈은 이 교도소 안에서 자기 능력을 증명하려 했지. 바깥의 상황을 전혀 모를 텐데.”
“……!”
“이 심문실이나 혹은 면회, 아니면 너를 조사하기 위한 명목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너와 접촉할 수 없어. 그러니 너는 그렇게 찾아온 이들 중 누군가에게 이 작전의 내용을 들은 거다. 즉 공범이란 말이지.”
게다가 하글리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다.
바로 나다.
굳이 내가 지금 여기 와서 설치지 않았더라도, 차후 하글리가 교도소에서 석방된다는 소식이 내 귀에 들린다면, 당장에 나는 사건 경위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설사 석방되었다는 사실을 숨긴다 해도 지금 만곶에 고대어가 발견된 이상 하글리의 위치를 계속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하글리를 구속시킨 공로자 중 한 명이다. 내 목소리를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글리가 빠져나오려면 내 힘이 우선 닿지 않아야 한다.
거기서 나오는, 요즘 제국에 들려오는 나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들.
바람잡이.
“너에게 접촉한 사람이 누구냐.”
하글리에게 접촉한 인물이야말로, 지금 바람잡이의 주인이다.
“…….”
하글리는 입술을 깨물고 눈동자를 헤맸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 것 같다.
다만 내가 그걸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되었다. 굳이 말을 길게 했군.”
“마, 말하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전부.”
“그런 부언을 할 시간에 본론을 꺼내라.”
하글리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을 질끈 감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녀석은 기자라며 자기 소개를 했다. 만곶에 관한 인터뷰를 하겠다며 말이지.”
“기자가 너를 만날 수 있나?”
“당시에는 만곶 내에 고대어가 발견되기 전이었다. 아니, 적어도 제국에 그 소식이 들리기 전이었지. 만난 것도 심문실이 아니라 면회실이었다.”
“물론 그걸 곧이 곧대로 믿진 않았겠지.”
“그래, 걸음걸이나 자세, 행동거지를 보았을 때.”
하글리는 그때를 떠올리듯 눈을 조금 가늘게 했다.
“기사처럼 보였다. 내 눈에는.”
* * *
필리는 프론디어의 부탁에 따라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프론디어의 처우를 필리에게 맡긴다는 약속의 거래이긴 했지만, 이런 식의 거래는 당연히 필리에게 지극히 유리하다.
바람잡이가 있느냐 없느냐는 필리의 손에 달려 있는 문제니까. 프론디어는 그걸 알면서 필리에게 얘기했다. 그녀를 전적으로 믿고서. 이런 건 거래가 아니라 부탁이라고 한다.
“나 의외로 신뢰받는 거에 약한가.”
프론디어가 믿어주고 있으니, 필리도 우선 프론디어를 믿기로 했다. 믿기로 한 이상, 조사는 바람잡이가 있음을 가정하고 시작한다.
하지만 제국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지는 건 아니다. 물론 그런 행동 자체가 가능한 것도 필리뿐이지만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우선은 범위를 좁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제국 전체에 여론을 유도할 정도로 대규모의 인원을 움직일 수 있으며, 프론디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
이렇게 나열해놓으면, 프론디어에게는 미안하지만 먼저 생각나는 건 프론디어의 지인들이다. 대규모의 인원을 기용 가능하다면 고위 가문 쪽일 가능성이 높다.
‘서류만으로 본다면 가장 의심스러운 건 로아흐 가문의 장남인 앗지에. 급성장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프론디어에게 안 좋은 여론을 씌우고 로아흐에서 쫓아낸다. 집안싸움 스토리로 써먹기 참 좋네.’
그러나 각하.
앗지에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아는 이상에는 가장 먼저 사라지는 가능성이다.
필리는 서류를 차례차례 넘기며 인물들을 체크한다. 여기서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먼저 좁혀놓고, 일차적으로 조사를 지시하는 것이다.
물론 앗지에 또한 조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앙페르와 앗지에, 말리아와 같은 가족에서부터 엘로디나 아스터와 같은 유명한 동료들.
다른 사람들이라면 설마 싶은 인물들을 가장 먼저 조사하는 필리. 그런 필리이기에 프론디어는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러던 중, 필리의 눈이 한 장의 종이에 머물렀다.
“……결국 이렇게 되네.”
필리는 사실 이 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의심스러운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다만 그저 심증에 지나지 않았기에, 조사는 그저 기준을 잡아두고 순서대로 했을 뿐.
하지만 역시 그 차례가 오게 되면, 확인하지 않고는 납득할 수 없다.
필리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뒤 뱉었다. 폰을 들어 귀에 가져간다.
“……네.”
누구에게나 존대를 사용하는 필리.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는 상대를 식별할 수 없다.
“파스칼 쉴리츠를 불러와요.”
* * *
황궁의 응접실.
파스칼 쉴리츠는 작은 테이블 탁자 맞은편 소파에 앉아, 어딘가 어색한 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기다렸죠, 파스칼.”
그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필리가 등장했다. 호위기사인 로버트도 함께였다.
“이곳에서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파스칼은 아직 자신이 호출된 이유를 몰라 활짝 웃으며 필리를 맞이했다. 필리 또한 마주 웃으며 파스칼의 맞은편에 앉았다. 로버트가 오른편에서 자리를 지켰다.
“요즘 일은 어때요? 황궁 기사와 콘스텔 교사를 양립하는 게 쉽지는 않죠?”
“전하의 하해와 같은 마음 덕에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필리는 그렇게 말하려는 속을 애써 감추며 찻잔을 들었다.
어디까지나 여유 있는 필리. 그런 그녀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잠시 본 파스칼이 물었다.
“……저어,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그저 오늘은 좀 색다르게 해볼까 해서요.”
“무엇을 말입니까?”
“조사 보고를 직접 듣고 싶거든요.”
그 말에 잠깐 눈을 깜박이는 파스칼.
곧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소리를 내고는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괜찮겠습니까?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괜찮아요. 그런 조치는 이미 해두었으니.”
파스칼의 또 다른 업무, 프론디어에 관한 조사 보고.
이건 원래 지정된 임무는 아니고, 여건상 그가 가장 적절했기에 선택된 임무다.
황궁과 콘스텔 양쪽을 오가는 파스칼만큼 프론디어를 조사하기에 적절한 인물이 없으니.
‘……뭔가 마음에 안 드신 건가?’
파스칼은 내심 긴장했다.
조사 임무를 받긴 했어도, 그 보고를 필리에게 직접 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 먼저, 최근 콘스텔의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파스칼은 우선 보고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전한 것은 프론디어의 여론이 콘스텔에서는 어떤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군요. 콘스텔에서는 의외로 여론이 나쁘지 않다…….”
“예. 아무래도 이전 콘스텔에서는 프론디어에 대해 함부로 생각했던 과거가 있고, 그로 인해 큰 창피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경계심이 발동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콘스텔 내에서 가장 구설수에 많이 오르는 것이 프론디어다.
이번에는 그 횟수가 오히려 프론디어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은, 키안이라는 학생에 관해서 보고드립니다.”
“키안? 헬드레의 손녀딸을 말하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파스칼은 대답하면서도 감탄했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누구인지를 바로 알다니.
그리고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필리의 능력을 보고 든 경외감이 첫 번째, 또 한 가지는 이 말을 직접 필리에게 전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키안과 프론디어가 어떤 관계죠?”
“……키안이 위험한 발언을 했습니다.”
“위험한 발언?”
“프론디어는 황제가 바뀔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고, 계급 사회가 무너질 것이라고 키안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전쟁 이후에 그렇게 될 것이라 여겼으나, 실제로 그리되지 않아 키안은 프론디어에게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
필리가 그 말에 잠깐 눈을 깜박였다.
옆에 있던 로버트가 대신 얼굴이 일그러졌다.
“……프론디어가 쿠테타를 모의하고 있었다고?”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말은 다르게 했을지언정 의중이 그렇지 않나.”
로버트의 기세가 오른다. 그 모습을 필리가 손을 뻗어 제지했다.
“진정해요, 로버트.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으니.”
“전하.”
“오히려 조금 감탄하는 중이거든요.”
필리는 생각했다.
황제가 바뀌고 계급사회가 무너진다.
소름 돋을 정도로 필리가 예측한 미래의 방향과 일치한다.
만약 바르텔로의 쇠약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실제로 바르텔로는 살레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살레라면 거의 모든 욕심이 희미하니, 권력이나 재물의 욕심보다는 계급 사회에 비정상과 불공정만이 눈에 들어올 테지.
‘키안은 평민 집단인 인더스의 일원이었고, 프론디어가 굳이 그런 얘기를 한 걸 보면 키안에게 얻어내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네.’
하지만 필리는 그 이야기가 프론디어 본인이 행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일단 개인이 시도하려고 드는 것은 너무 현실성이 없고, 무엇보다 바르텔로의 회복에 공헌한 것이 프론디어가 아닌가. 필리에게 드래곤 하트를 주고, 전쟁을 막은 장본인이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다.
안 그래도 여론이 혼란스러운 현재의 프론디어. 키안의 이야기가 퍼진다면 최악의 경우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던 모든 이들이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파스칼, 이 얘기를 다른 이들에게 전하진 않았겠죠?”
“물론입니다.”
즉답하는 파스칼. 당연히 그러겠지.
필리가 잠시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파스칼은 쉽게 속이 읽히지 않는 인물 중 하나다.
작은 체구와 동안의 얼굴, 거기다 행동하는 모습까지 조금 아이 같은 면이 있는 파스칼. 혹자는 그를 ‘악동’이라 부른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아이의 충동을 일으키는 듯 보이기에.
다만 필리의 눈으로 그 모습은 다르게 보인다.
기실 그의 모습은 필리와 많이 닮아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은 같은 부류다. 본인의 의중은 표정과 동작으로 은폐하고, 상대에게 안심을 이끌어내며 진심을 파헤치려 하는 타입.
‘파스칼은 호위 기사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지.’
필리는 사실 파스칼이 자신의 호위가 되길 원하는 것이 무슨 동기인지는 모른다.
권력인지 돈인지, 아무튼 호위 기사가 되어 나쁠 것은 없으니. 다만 파스칼의 경우 로버트를 질투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을 뿐.
허나 그 질투가 만약 지금 좋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거라면, 물론 관대함 따윈 없을 것이다.
“파스칼, 최근의 프론디어 주위에 도는 소문은 알고 있죠?”
“예, 물론입니다.”
“소문치고는 꽤 그럴듯하단 말이죠. 실제로 존재하는 근거들을 기반으로 한 것들이 많고요.”
“예. 저 또한 놀랐습니다.”
그에 미소가 짙어지는 필리.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프론디어의 최근 상황 전반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
파스칼은 눈을 깜박였다.
그는 물었다.
“설마 황후 전하.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잘 모르나 보군요, 파스칼.”
필리는 붉은 양쪽 눈 중 왼쪽을 감으며 말한다.
“저는 모든 것을 의심한답니다.”
“……그랬지요.”
파스칼은 그 얼굴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저는 소문을 흘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파스칼은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뜬구름 같은 소문에 진위를 가리는 재주 또한 없습니다.”
“뜬구름이라.”
필리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악마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
“프론디어가 악마이며, 애초에 로아흐 가문 사람이 아니다. 그가 벨페고르를 막아낸 것은─”
필리의 말은 지금 프론디어가 화제인 소문 중 가장 위험한 것.
“─그 스스로가, 제국을 삼키기 위함이다.”
그 말을 입에 담으며, 필리는 파스칼을 본다.
이번에야말로, 그의 호흡, 몸의 떨림, 시선,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는 듯.
그런 필리와 눈을 마주한 채, 파스칼은 지극히 평범한 사이를 두고 답했다.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