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371)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371화(371/60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371화
108장 심문(4)
“호오.”
필리는 파스칼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필리는 프론디어에게 호의적이다. 파스칼도 당연히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그 눈앞에다 대고 프론디어가 ‘악마’라? 용기가 가상하다.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해왔습니다.”
“조사를 한 기간이 꽤 되었는데,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나요?”
필리가 물었다.
프론디어에 대한 조사, 그에 관한 정보는 모두 필리에게 전달할 것.
필리가 이 명령을 내린 이유는 어디까지나 프론디어가 제국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기 때문이다.
프론디어가 제국의 편인 이상, 필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론디어를 최선을 다해 돕기로 정했다.
즉 파스칼에게 내린 명령은 프론디어에 대한 ‘감시’가 아니다.
때문에 파스칼은 프론디어를 직접 조사하지 않고 자료나 기록을 확인하고 취합하는 데에 주력했다. 프론디어에게 들키지 않은 것이 그 덕분이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프론디어가 악마일 확률은 희박합니다.”
“좀 전과 말이 다르군요.”
“희박하나, 그 위험성을 생각했을 때 그저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파스칼은 애초에 프론디어가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허황된 이야기이며, 증거라고 내놓은 것들은 신빙성조차 없는 뜬구름 같은 얘기들 뿐.
다만 그에 관한 조사를 하면 할수록, 파스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참 기가 막힌 우연인 듯, 그럴듯한 사건들이 모여 있군.’
제국에는 아직 숨어 있는 악마들이 있다.
프론디어의 악마의 힘을 받아 그의 지배 아래 놓여 있고, 동시에 그 덕에 아직 목숨을 부지하는 악마들.
그들은 프론디어의 거짓말을 믿고 있다. 악마의 상식 내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악마의 힘’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프론디어는 말할 것도 없이 악마다. 프론디어가 로아흐 가의 자제인 것이 오히려 거짓된 이야기다.
단지 그런 소리를 함부로 뱉었다간 프론디어에게 죽을 것이 뻔하니까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이 묘한 침묵이, 되려 프론디어가 악마라는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귀족들 사이에서는 프론디어가 악마라는 헛소리를 놀랍게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어. 당연히 모두가 바보같은 소리라며 웃어넘길 일인데.’
파스칼은 제국에 숨은 악마에 대해서는 모른다. 허나 그 침묵은 느끼고 있다.
제국 내에 그 소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침묵. 그들이 노린 바는 아니겠지만 상황을 모르는 귀족들에게 괜한 불안감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거기에 무엇보다,
“저는 이 소문에 어떤 의도를 느낍니다.”
“……바람잡이가 있다?”
“예. 그렇습니다.”
파스칼의 말에 필리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바람잡이.
프론디어가 짐작한 대로다.
필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이 낮아지고, 다시금 왼쪽 눈을 감은 필리.
그녀는 파스칼에게 묻는다.
“의도라 하면?”
“누군가 프론디어에 대한 여론을 안 좋은 쪽으로 몰고 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을 숨기고, 의혹이 남는 이야기들만 꺼내 프론디어를 곤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목적은 뭘까요?”
“지금 제국의 소문을 살피면, 아마 프론디어가 제국의 적이라 인식하게 만들고 싶은 모양입니다.”
여기까지 대화했을 때.
파스칼은 처음으로 위화감을 눈치챈다.
‘……어라?’
파스칼은 지금까지 굉장한 긴장감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파스칼은 필리에게 의심받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파스칼은 혹여 필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괜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말했다.
한데 지금의 대화.
‘만약 정말로 내가 범인이라 생각한다면.’
이런 대화를 왜 할까.
파스칼이 가진 정보 내에서 말을 잘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생각을 돌리는 것도 가능할 터.
게다가 필연적으로 필리 또한 파스칼에게 자기 생각을 뱉어야만 한다. 범인이 누군지를 범인에게 묻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그리고 필리가 감은 왼쪽 눈.
좀 전에도 필리는 저렇게 왼쪽 눈을 감았었다.
그때 필리는 뭐라 했었지?
─저는 모든 것을 의심한답니다.
그 말이 머릿 속에 떠올랐을 때, 필리가 말했다.
“그게 가능하려면 상당한 인원수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군요. 프론디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고.”
이건 프론디어와 얘기하면서 필리가 추측하는 정보.
거기에 파스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는 말했다.
“제 나름의 조사를 통해 본다면, 그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이렇게까지 되진 않을 겁니다.”
직접 조사하지 않는 필리의 눈으로는 지금의 소문에 얼마만큼 ‘작위적’인지는 모른다. 우연과 조작이 어느 정도의 비중인지를 모르니.
하지만 파스칼의 눈에는 보인다.
“호오. 즉, 남들 아는 만큼만 알아선 안된다, 그런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거기서 고개를 갸웃하며, 시험하는 듯한 필리의 한마디.
“즉, 파스칼, 당신 정도의 조사는 해놨어야 이번 일이 가능하겠죠?”
명백히 파스칼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듯한 질문.
그 질문을 듣고,
파스칼은 방금 전의 위화감을 기억하고,
또 한 번 왼쪽 눈을 깜박인 필리를 보며.
“……그렇습니다. 그 정도의 정보는 갖고 있어야 할 겁니다.”
확신을 갖고 답한다.
필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섰다.
“이제 되었어요.”
“전하.”
옆에 자리를 지키던 로버트가 말을 건다.
“파스칼은 황궁에서 모두가 신임하는 기사입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신중한 결정을,”
“결정은 이미 했어요. 이런 촌극은 시간낭비네요.”
단호한 필리의 말.
그녀는 냉정한 눈동자로 파스칼을 내려다본다.
“파스칼.”
“……네. 전하.”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파스칼. 그를 보며 필리는 말했다.
“잘 받아요.”
“……네?”
휘익!
필리는 파스칼의 멍한 되물음을 듣기도 전에,
자기 할 말을 한 직후.
파스칼을 향해 자기 몸을 날렸다.
“……!”
그 순간.
오러의 기술력이 정점에 달한 파스칼의 눈에는 전부 보였다.
필리가 자신의 몸을 날린 자세는 딱 그가 받기 좋게끔 되어 있었고,
그런 필리를 향해, 서슬 퍼런 눈동자로 오른손을 뻗은 로버트의 모습을.
“흡!”
파스칼은 필리를 받아 안으며,
까아앙!
검으로 오러를 쏘아, 돌진하는 로버트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달려요! 빨리!”
“예엡!”
곧장 뒤를 돌아 달리는 파스칼.
맞붙어서 싸우면 애초에 실력이 로버트보다 떨어지는 데다, 필리를 안고 있기에 압도적으로 불리하지만,
단순히 내달리는 거라면 파스칼이 유리하다.
부웅-!
몸 전체에 오러를 가동하며, 동시에 내딛는 발 하나하나에 오러를 담아 박차고 나간다. 실내를 질주하는 속도로 파스칼을 이길 사람은 거의 없다.
“…….”
로버트도 처음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처음 필리를 붙잡는 것을 실패한 이후엔 뒤를 쫓지 않았다.
로버트는 오러를 막으려 꺼내든 검을 다시 집어넣고,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역시 전하이십니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로버트.
“그래도 이번만큼은, 제가 조금 더 빨랐던 것 같군요.”
* * *
“황후를 함부로 안고 뛰다니, 죄를 묻기에 합당하군요.”
“나중에 듣겠습니다!”
파스칼은 필리의 뻔뻔한 농담도 지금은 들을 여유가 없었다.
필리는 체구가 작아 남들에 비해서는 편하게 안을 수 있지만, 문제는 파스칼의 체구도 만만치 않게 작다.
게다가 여긴 황궁 안이고, 조금 있으면 곧 황궁 기사들이 그들을 덮칠 것이다.
여긴 필리가 있으니 당연히 목숨이 노려지진 않겠지만 발이 묶이는 것을 뻔한 일. 그사이 로버트가 따라잡으면 전부 꽝이다.
파스칼은 열심히 뛰면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처음엔 제가 의심받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뛰면서 말하느라 목소리가 조금 거칠다.
“전부 안 것은 아니에요. 전 처음부터 둘 모두를 의심하고 있었답니다. 그중 파스칼을 믿었을 뿐이죠.”
파스칼이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럴 확신을 가질 시간이 부족했다.
다만 한마디.
파스칼의 입에서 ‘바람잡이’의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 결정의 도움을 주었다.
그 화제가 다른 누구도 아닌 파스칼의 입에서 나온 것이 의외였다.
필리가 의심하는 인물 후보였던 파스칼이.
‘……지금 당장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바람잡이의 존재를 자기가 스스로 뱉을 가능성…….’
필리가 한순간 생각했고, 동시에 부정한다.
파스칼은 그저 의심을 받고 있을 뿐, 그런 후보는 여럿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말로 진범이 바람잡이에 대한 얘기를 꺼낼 이유가 없다.
그저 자기 목을 조르는 행위일 뿐. 필리가 아직 그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너무나 바보 같은 행동이다.
그렇기에 파스칼을 믿었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니까.
“뭐, 지금도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걸수도 있죠. 로버트는 나를 지키려 손을 뻗은 거고, 제가 파스칼 씨의 언변에 속아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일지도?”
“어떻게든 믿음을 드리겠습니다!”
“힘내요.”
남의 일이라는 듯 말하는 필리.
파스칼은 그에 또 물었다.
“……저를 의심하지 않는 건 그렇다쳐도, 로버트 경이 적이라고 확신한 이유는 뭡니까?”
“확신하지 않았어요.”
“예?”
“다만 파스칼 정도의 정보를 쥐고 있는 것, 그 중 한 명이 로버트라는 건 이미 파악했었죠. 애초에 파스칼 경이 제게 보내는 정보는 로버트 경을 거치게 되어 있으니까.”
필리는 로버트에게 말했었다.
‘프론디어에 관한 정보는 모두 나에게 직접 보내라’고.
그게 가능하려면 로버트는 당연히 프론디어의 자료를 확인해야만 한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로버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해요.”
“그런데도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뭐 어때요? 로버트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냥 헤프닝인데. 제가 좀 쪽팔리고 말 일이죠.”
아.
거기서 파스칼은 필리가 노리는 바를 깨달았다.
“자료를 조사한 뒤에 깨달았거든요. 범인이 누가 됐든 지금 이 상황, 분명 제가 범인보다 한 발 늦을 것이라고.”
“……하지만 반대로, 범인 쪽은 자신이 ‘얼마나’ 앞서고 있는지는 모른다.”
“예. 로버트는 저를 상당히 과대평가 하거든요.”
필리는 아직 로버트가 범인인지 모른다.
허나 로버트가 정말로 범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는 반드시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
로버트는 필리를 신용하니까.
필리는 그가 범인이라는 걸 ‘확신’하고서 이런 일을 감행했다고 믿을 테니까.
“……역시 황후 전하이십니다.”
파스칼은 속으로 감탄하고서 다시 앞을 보며 달리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도 얼마 가지 않았다.
“……이거.”
파스칼은 도중에 멈춰 섰다.
“저만 이상하게 느끼는 게 아니죠?”
“걱정 말아요. 파스칼의 감각은 멀쩡해요.”
파스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분명 황궁 기사들이 그들의 앞을 막으러 와야 할 텐데.
“이미 로버트가 조치를 취한 것일지도…… 윽.”
그때 낮은 소리를 흘리는 필리.
한쪽 눈가를 찡그린 그녀가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오랜만에 필리의 전신을 훑는 감각.
더럽고, 불쾌하며, 또한 불길한 혀가 등골을 핥는 느낌.
‘예지’가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