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530)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530화(530/60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530화
144장 모이라이(5)
프론디어는 주변이 완전히 지워진 것을 확인하고 거인을 보았다.
쓰러진 거인은 무기에 꿰뚫린 자리에 구멍이 남아 있었다. 피가 흐르고 있진 않았으나 충분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빼빼 말라 피골이 상접하고 핏기가 거의 없다. 이것이 영혼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프론디어도 죽었으리라 판정했을 것이다.
‘영혼의 모습은 아마 자기 의지가 작용되었겠지. 오랜 시간 동안 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날에 찔려 고통 받고 있었으니,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해.’
만약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지금까지의 그 오랜 시간 동안을 고통 받고 있었다면, 이 거인이 부활할 가능성은 절망적이다. 거인이라 해도 본디 인간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프론디어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남아 있다.
바로 얼마 전 프론디어가 판테모니엄에서 나갔을 때, 분명한 위화감이 있었다.
‘나는 판테모니엄 안에서 10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나가니 1시간이 지나 있었어.’
셀레나가 직접 알려준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가 아니더라도 프론디어가 돌아왔을 때의 상황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프론디어는 그들이 예상한 시간보다 한참 뒤늦게 도착했다.
판테모니엄 안에서는 시간을 잴 수 없다. 그러니 프론디어가 생각한 ‘10분’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직감에 지나지 않는다. 오차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1시간이나 지난 걸 10분 지난 걸로 착각하진 않을 터.
‘만약 이곳과 바깥이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면.’
그리고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면, 거인이 이곳에 있는 시간이 세월 그 자체만큼 길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충분히 긴 시간이겠지만, 프론디어는 거인이 버텨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도 완벽한 표현은 아니다.
‘여기는 영혼의 세계야. 오직 두 영혼만이 존재하는 세계.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기보다, 시간의 인식이 다른 걸지도 몰라.’
이건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으나.
시간이 흐름이 다른 게 아니라, 그저 영혼이 인식하는 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영혼은 시간이 흐르는 속도에 보다 둔감하고, 그렇기에 자신이 느끼는 시간 감각보다 실제의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간다.
여기엔 시간을 증명해 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즉 시간의 흐름을 착각하고 있다.
이 추론에 증거는 없으나, 이쪽과 저쪽의 시간 속도가 다르다는 개념보다는 훨씬 그럴듯하다.
“그러니 아직 포기는 이르지, 거인.”
프론디어는 거인을 똑바로 눕혔다. 자세히 봐도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굉장히 큰 장신에, 머리색은 검붉었다.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강렬하나, 너무 마른 탓에 지금은 그 큰 키도 길게 뻗은 갈대처럼 볼품없었다. 제 건강을 되찾으면 달라지겠지만.
“그럼, 어떻게 깨울까.”
프론디어는 남자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몸에는 여전히 칼날에 찔린 상처가 있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다. 사실 이건 안심할 게 아니라 끔찍한 일인데, 아마 처음엔 피가 흘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판테모니엄이 영혼의 싸움이라곤 하지만 고통은 실제다. 이 거인이 인간인 이상 상처를 입었을 땐 피를 흘렸을 것이다. 그것이 실제 피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지금 피가 흐르지 않는 이유는, 이미 흘릴만큼 충분히 흘렸고, 이 거인이 더이상 인식하지 않기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래서야 눈앞에다가 뭔 짓을 해봤자 안 일어날 거 같은데.’
아테나처럼 잠깐 머물렀을 때야 빛의 세기로 깨우는 게 가능한 것이지, 이 긴 시간 동안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영혼을 깨우기는 어렵다.
‘영혼……. 영혼이라.’
프론디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영혼에 관해선 웬만한 인간들보다도 프론디어가 더 잘 인지하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헬하임의 마나부터가 영혼을 처치하고 얻은 힘이다.
그리고 최근 프론디어는 자신의 에클렉시스가 남들보다 강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아니, 강하다기보다는 천적 관계가 되어 있달까.
그는 현실에서 그의 힘에 당한 이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 그게 프론디어가 노린 바가 아님에도, 프론디어는 힘조절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상대가 죽고 마는 힘을 손에 넣었다.
‘……이번에 가장 중요한 건, 조준이네.’
프론디어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이 자체에 특별한 의미는 없고, 그의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비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이 기도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라.
“악의는 없어. 정말이야.”
거인의 영혼이 이곳에 있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소멸한 것이 아니다. 잠시 잠들었을 뿐이다.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혼절인지, 혼수상태인지.
뭐 어떤 단어를 썼든 간에 중요한 건,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거다.
이 영혼을 깨우기 위해 프론디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뿐.
공포를 새기는 것.
‘잘못하면 정말로 죽어. 위험한 방식이야.’
프론디어는 자신의 에클렉시스를 끌어올려, 천천히 거인을 향했다. 최대한 억제하려는 그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프론디어의 눈동자, 입가, 볼의 긴장이 완전히 사라지고, 얼굴 잃은 사람처럼 프론디어는 거인을 직시한다.
그의 에클렉시스는 한없이 얇고 부드러워져, 비유하자면 커튼과 같았다. 너무나도 가볍고 얇아 물결치는 커튼. 프론디어는 그 커튼을 위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거인에게 가까이 가져간다.
그리고 커튼의 끝자락이 거인의 허벅지를 스쳤을 때.
“──로허억!”
거인은 마침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란스레 몸을 일으켰다.
“흡, 쿨럭! 쿨럭!”
그리곤 요란한 기침을 토했다.
“콜록, 흡, 쿨럭, 쿨럭, 큭, 콜록!”
그리고 참 오래도 했다.
프론디어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거인은 당연히 옆에 있는 프론디어를 인식하고,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
“미, 미안, 하네! 콜록! 내가 먼저, 인사를! 콜록! 해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시죠.”
“왜, 이렇게, 기침이……!”
“그야 뭐, 호흡을 안 한 지 오래되셨잖아요.”
물론 프론디어라고 기침을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기침을 하는 꼴이 이해가 되기는 했다.
오히려 기침만 하고 있는 게 다행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 기침이 조금 잦아드는 듯하자, 프론디어가 물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십니까?”
“아픈 데?”
“몸이라든가.”
프론디어는 거기까지 말한 뒤에야, 괜히 말했다는 걸 알았다.
“몸……? 앗! 크아악!”
자기 몸에 구멍이 뚫린 걸 본 뒤에야 비명을 지르는 거인.
영혼이란 건 참 귀찮네. 프론디어는 생각했다.
“진정해요. 여긴 판테모니엄입니다. 수복할 줄 아시잖아요.”
“판테모니엄? 그, 그렇군……!”
남자는 차츰 상황을 이해하는 듯했다. 인상을 찡그린 채 눈을 감고 있으니, 점점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나랑은 수복하는 방법이 다르네. 프론디어는 느긋하게 생각했다.
“후우…… 미안하네. 인사가 늦었군. 나는 시구르드라 하네.”
“……시구르드라고요?”
“날 아는가?”
프론디어는 생각도 못 한 이름이 나와서 입을 벌렸다.
그의 아버지, 앙페르가 가진 검 ‘그람’. 그 검의 본 주인이 시구르드다. 그야말로 북유럽 신화의 손꼽히는 대영웅.
‘시구르드조차 판테모니엄에서는 신을 당해낼 수 없었나?’
프론디어로서는 시구르드를 만났다는 사실보다, 이 영웅이 졌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하긴 라그나로크가 실패했다는 건 인간 측이 졌다는 말이고, 그러니 그가 아는 모든 영웅들이 패배한 셈이다. 하지만 판테모니엄에서 패배한 것은 조금 다른 의미이고, 실제로 패배한 것을 눈앞에서 보니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자네는 누구지? 어떻게 이곳에 있는가?”
시구르드가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저는 프론디어 드 로아흐라 합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어요.”
“……나를 만나기 위해? 판테모니엄에는 어떻게 들어왔고?”
“음. 그냥 제 능력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 말에 이번엔 시구르드가 입을 벌렸다.
“판테모니엄에 들어오는 게 능력이라고? 그런 능력은 들어본 적도 없네. 그런 자가 있었다면 우리의 전쟁은 보다 손쉽게 승리했을 텐데!”
시구르드는 믿을 수 없다는 의심과 동시에 안타까움이 흘렀다.
“……제 에클렉시스는 오직 이것에 특출되어 있습니다. 판테모니엄에 들어서는 것에 말이죠.”
물론 실제로 그런 건 아니나, 시구르드를 납득시키기 위해 프론디어는 작은 거짓말을 했다.
다른 능력 하나도 없이 오직 판테모니엄을 들어가기 위한 힘. 이렇게 말해놓으면 원리나 논리는 둘째치고 어딘가 공평해 보이니까. 균형이 언뜻 맞아 보이면 메커니즘은 모르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오직 그것만을 위한 힘……. 과연 그렇군…….”
시구르도 또한 그 ‘공평함’에 납득되었다.
“그렇다면 먼저 감사를 전하지. 자네 덕에 고통 속에서 깨어날 수 있었어.”
시구르드는 진중한 눈빛으로 고개까지 숙이고 말했다.
그리고는 곧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동자가 옆을 향했다.
“……그런데 방금 나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기운을 느끼고 일어난 것 같았는데? 이대로 있으면 죽겠다 싶어서 일어났는데.”
“설마요. 기분 탓이겠죠.”
“자네는 날 어떻게 깨웠나?”
“가볍게 건드리니까 일어나시던데요.”
가볍게 건드렸다.
손은 아니었지만.
“판테모니엄은 계속 고통을 주니까, 악몽이라도 꾸셨나 봅니다.”
“으음, 그런 건가.”
시구르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납득은 안 되는 듯했다.
이러다가 그 공포의 정체를 맞출지도 모르니, 프론디어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저는 정보를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정보라. 나에게 물을 것이 있는가?”
“네, 우선은,”
“잠시만. 그렇다면 내가 먼저 물을 것이 있네. 괜찮은가?”
“……아무쪼록.”
프론디어의 말에 시구르드는 프론디어를 잠시 보았다. 특히 그의 복장을 살폈다. 프론디어의 복장은 분명 시구르드와는 다르다.
디자인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그걸 확인하고 시구르드는 물었다.
“내가 여기서 패배한 뒤로,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그렇군.”
시구르드는 그것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각오한 듯했다.
그리고 다음, 시루드르는 떨리는 눈동자로 물었다.
“그러면 라그나로크는, 어떻게 되었나?”
“…….”
“우리가 승리했는가? 자네는 인간이지? 그렇다면 우리가 승리했다는 거겠지? 그렇지?”
프론디어는 잠시 멎었다.
시구르드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했으나,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차라리 명확한 쪽이 좋다.
프론디어는 깊이 고개를 저었다.
“라그나로크가 인간과 신의 전쟁을 말하는 거라면, 실패했습니다.”
“……실패했다고?”
“예. 많은 신들이 이 땅에서 물러났지만, 그럼에도 남아 있는 신들이 있고, 물러난 신들도 여전히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말에 시구르드는 표정이 굳었다. 그 얼굴은 좀 전까지 죽어 있던 때와 흡사했다.
허나 곧 고개를 털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렇군. 하긴 그렇게 될 게 자명했지. 허튼 기대를 했어.”
“패배를 각오했었습니까?”
“바라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랬지.”
시구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림포스라는 세계가 참전할 줄은 몰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