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53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536화(536/60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536화
145장 창천(5)
“앗지에의 피가 아니라고?”
“그저 가능성일 뿐이에요. 하지만,”
디에르는 다시 한번 피에 손을 가져갔으나, 역시 닿지 못한다.
“이걸 굳이 만지지 못하게 하는 이유, 저에게는 그것 말곤 떠오르지 않아요.”
“이 피가 범인의 피라고?”
프론디어는 되물으면서 스스로 생각했다.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앗지에랑 가장 많이 겨뤄본 프론디어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로서는 피를 흘리는 앗지에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 자리 말고 주변 어디에도 핏자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욱 그 의심을 키웠다.
“무언가 알아냈는가?”
그때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오스프리트가 다가왔다.
“예, 사실은─”
디에르가 자신의 추리를 간략히 전했다.
그때 즈음에는 이미 주변 사람들이 전부 디에르의 이야기를 듣고자 모였다.
“……이 피가 정말로 범인의 피라면, 오히려 모순이 하나 늘어나는군요.”
필리가 말했고, 아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왜 앗지에 씨가 쓰러졌는가, 하는 거죠.”
앗지에의 몸 아래 가득한 피. 결코 평범한 양이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기에 아주 충분하고, 상당한 회복력을 가진 전사들도 멀쩡하진 못할 터.
이만한 상처를 입혀놓고, 앗지에는 왜 패배했는가.
“……피…….”
그때 중얼거린 것은 필리의 둘째 딸, 살레였다.
“지금 제국의 기술력으로, 피로 개인을 특정하려면 수 밀리의 피가 필요해. 그것도 깨끗한 피를 감안하는 거니까, 땅에 흘렀거나 시간이 지나 오염된 피는 훨씬 많은 양이 필요하겠지.”
그에 필리가 물었다.
“지금 이 정도의 양이라면 충분하지 않겠니?”
“응, 맞아.”
거기서 살레는 고개를 들었다.
“비로 씻겨 내려가지 않았으니까.”
“……!”
그에 눈을 크게 뜬 필리. 프론디어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디에르가 상황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프론디어는 디에르를 만나기 전에 이미 필리에게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다. 필리의 예지에 대해서도 들었다.
필리가 예지를 보았으면서도 앗지에의 죽음을 막지 못한 이유.
그녀의 예지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까.
“비……?”
그 설명을 들은 뒤 이해가 가지 않은 디에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비라니. 앗지에가 발견된 당시 하늘은 아주 맑았다. 그날뿐만 아니라 이 며칠간 제국은 계속 아주 맑은 하늘이었다. 원래 비가 그렇게 자주 내리지 않는다.
필리의 첫째 딸, 엘리시아가 말했다.
“비가 내리지 않아서 방심하고 있었어. 앗지에가 위험에 닥칠 때는 틀림없이 비가 내릴 때라고.”
그에 답한 건 살레였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피는 씻기지 않았고, 여기까지의 추리를 할 수 있었던 거야.”
아텐이 프론디어를 보았다.
“프론디어 씨, 저희는 예지를 보고서도 바꾸지 못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예지는 이미 바뀌었는지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앗지에 본인의 손으로.
“…….”
프론디어는 손으로 입가를 감쌌다.
이 순간, 프론디어의 두뇌는 더없이 빠르게 회전했다. 눈빛에 다른 색이 머물렀다. 그걸 본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프론디어를 기다렸다.
‘범인은 앗지에에게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어. 아마 그때 이미 범인의 계획이 꼬였을 거야. 어디까지나 전투로 앗지에를 죽이려 했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범인은 다른 수단으로 앗지에를 쓰러트렸어.’
그 다른 수단이 무엇인가.
그것을 묻기 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범인은 왜, 앗지에를 죽이는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도 전투를 택했을까?”
그저 싸움에 미친 게 아니고서야, 상대를 죽이는 더 간편한 방법이 있다면 처음부터 그것을 사용했으면 그만이다.
상황을 보건대 앗지에는 적의 수단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쓰러졌다. 범인도 알고 있었을 터.
허나 범인은 그 간편한 방법을 쓰지 않고, 결과 앗지에에게 상처를 입어 피까지 흘렸다.
“……이렇게 말하는 게 내 어리광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프론디어는 고개를 들어 모두를 보았다.
“지금 앗지에의 죽음은, ‘불완전’한 것인 게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디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는 건 그 가정뿐이니까요.”
범인은 앗지에를 죽이고자 했다.
그래서 다른 수단을 버리고 굳이 전투를 택했다.
전투가 아닌 그의 수단은 불완전하기에. 앞뒤는 맞는다.
‘그렇다면 그 수단이 뭘까.’
그 앗지에가 대응도 못 하고 쓰러졌다.
쓰러진 앗지에는 그 누구도 만질 수 없게 되었다. 앗지에 주변에 흥건한 피도 마찬가지.
제국의 유능한 마법사들이 모였음에도 해제할 수가 없는 마법.
프론디어의 지식 안에서는 단 하나만이 가능하다.
‘……에클렉시스.’
범인은 에클렉시스를 사용했다. 에클렉시스를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다.
앗지에와 정면 대결이 가능하고, 본인의 승리를 짐작했다는 시점에서 이미 인간일 확률이 한없이 낮다.
신이나 악마, 둘 중 하나. 사탄을 비롯한 칠죄종이 지금 제우스의 눈치를 보느라 바쁜 이 시점. 보다 확률이 높은 것은 신이다.
‘하지만 악마들의 말에 따르면, 에클렉시스를 쏘았다고 해서 죽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어.’
프론디어만이 그 예외다.
하지만 프론디어도 상대를 죽이는 건 어디까지나 결과이지, 프론디어의 에클렉시스 자체가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와는 반대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님에도 죽을 위험이 있는 내 힘과 달리, 이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죽음이 아니야.’
허나 효과를 보면 한없이 죽음에 가까운 힘인 것은 확실하다. 이 힘은 상대를 지배하거나 복종하게 만들 수가 없다. 이 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적인 것 같으니.
신들 중에 이에 가까운 에클렉시스를 사용하는 신이다.
허나 이것만으론 알 수 없다.
범인을 더욱 좁히려면,
“범인은 왜 앗지에를 노렸을까요. 이 범행이 그의 목적이었을까요?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노리는 걸까요.”
제인이 물었다.
그녀는 옛 학생을 떠올리는 슬픈 얼굴이었다.
“……그렇군요.”
프론디어가 고개를 들었다.
“놈이 노리는 건 저였어요.”
“네?”
“계속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는데, 이걸로 명확해졌어요.”
만약 범인이 신들 중 누군가라면, 앗지에를 노릴 이유를 당최 알 수 없다.
앗지에는 신력이 없으나 신을 거부한 적이 없고, 그들에게 미움 살 짓을 하지도 않는다.
허나 앗지에가 최종 목적이 아니라면, 모든 것은 선명해진다.
프론디어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앗지에의 죽음으로서, 프론디어를 유도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영토로.
인간의 세상에서 신들은 제 힘을 못 쓰고, 인간은 신을 죽일 수 없다.
‘과연.’
참으로 단순한 이야기.
프론디어가 신들에게 반격을 생각하는 만큼, 신들도 프론디어가 아주 눈엣가시다.
지금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범인이 누군지 알았어.’
에클렉시스를 사용하며, 그것이 죽음과 관련이 깊고, 프론디어 본인에게 목적이 있는 신.
‘타나토스.’
금색의 눈동자와 검은 날개, 소년의 모습을 한 그리스 신화에서 명백한 죽음의 신이다.
직조의 발동에 트리거를 걸어놓고, 프론디어를 죽이려고 했던 타나토스. 그 첫 만남부터 프론디어와는 결코 나란히 걸을 수 없는 적이었다.
“그렇구나.”
범인을 알고서, 그 목적을 알고서.
프론디어는 말했다.
“마음이 맞네.”
그건 후련한 얼굴이었으며,
“…….”
그의 아군들조차 침묵을 지키고 공포를 삼킬 섬찟한 눈빛이었다.
부웅─
그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프론디어의 폰이 울렸다.
프론디어가 화면을 확인하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레베트 드 리샤에’.
엘로디의 오빠인 레베트. 그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프론디어가 전화를 받자, 저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프론디어, 바로 여기로 와라!]인사도 안부도 없이 다짜고짜 레베트는 말했다.
“어디로 말입니까?”
[테이번으로 와라! 빨리! 너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그에 프론디어는 눈가를 찡그렸다.
“……제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시나요? 전 지금 바쁩니다.”
[그래, 알고 있다!]알고 있다고?
그에 프론디어가 고개를 기울였을 때, 레베트는 말했다.
[앗지에를 구하고 싶은 거잖아!]“……!”
[나는 며칠 전 헥토르의 요청을 받고 테이번으로 왔다. 아무리 추운 이곳이라도 소식은 날아오는 법이지!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다. 앗지에가 웬 길 한복판에서 뒈졌다며!]레베트의 입에서 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에 프론디어가 무어라 말하려 할 때,
[개소리지!]프론디어의 전부를 멎게 하는 한 마디.
[앗지에가 그렇게 뒤질 놈이냐! 프론디어!]“……그럴 리 없죠.”
[뭐가 어떤 상황이든 넌 앗지에를 구하려 하겠지. 남의 걱정 같은 건 전부 개무시하고 말이다! 넌 그런 놈이잖나!]레베트는 다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그 말 그대로라 할 말이 없어진 프론디어.
그는 곧 하, 라고 뱉으며.
헛웃음에 가깝긴 해도, 여기 온 뒤 처음으로 작은 미소가 피었다.
“예, 전 그런 놈입니다.”
[그럼 재깍 여기로 날아와라! 한시가 급하다!]그러고 보니 레베트의 목소리는 아까부터 계속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딜 향해 달려가는 건지, 무언가에 쫓기는 건지.
“무슨 일이십니까?”
[오면 알아!]맞는 말이다.
프론디어는 알겠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앗지에의 건으로 레베트가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앗지에를 구할 수 있다면 모든 정보를 얻어야 할 상황이다.
“조심하세요, 프론디어.”
“물론이죠.”
그렇게 프론디어가 다시 날아가려 할 때.
그의 손을 누군가 잡았다.
아텐이었다.
“……아텐?”
프론디어가 물었으나 아텐은 말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프론디어의 손을 꼭 붙든 채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왜 그래?”
“모르겠어요. 단지, 그냥…….”
아텐은 입술을 꾹 깨물고 프론디어를 보았다.
말하진 않았어도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가선 안 된다고.
허나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다.
“……괜찮아.”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듯 프론디어는 말했다.
“다녀올게.”
* * *
프론디어의 비행 속도는 제국의 인간 중에서 가장 빠르다. 그가 가진 흑천이 날개가 됨과 동시에 전체가 오러를 방출해 추진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만큼 오러의 소모가 남들보다 빠르다. 헬하임의 마나를 가졌기에 평소엔 그 소모가 걱정될 것은 없었으나, 이번엔 다르다.
대륙을 한 번 건넜고, 저택과 앗지에의 사건 현장을 반복해서 왔다 갔다 했으며, 이번엔 다시 테이번까지 날았다.
“……헉, 헉. 후우.”
프론디어가 테이번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오러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지정한 장소는 여기였는데.”
레베트는 그에게 어느 한 장소를 폰을 통해 알려주었다. 위치는 테이번의 방벽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반인에겐 바깥의 마물이 쳐들어오는 무척 위험한 장소이지만, 지금의 프론디어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곳이다.
“……저 동굴인가.”
프론디어는 주위를 둘러보다 곧 어느 동굴을 발견했다. 그의 육감도 저 안에 무언가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프론디어는 동굴을 향해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런데 가까워질수록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먼저 느껴지는 건 어딘가 익숙한 마나의 냄새. 처음엔 레베트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허나 점점 이게 보통 익숙한 마나가 아님을 알았다.
프론디어가 동굴 입구에 발을 들였을 때, 그 마나의 정체를 바로 알았다.
“……너, 왜……?”
동굴의 안에는 한 여성이 서 있다.
노을빛의 머리카락, 호수를 담은 눈동자.
그녀의 옆에는 레베트와 헥토르가 쓰러져 있다. 느긋하게 어깨가 움직이는 걸 보니 기절한 모양이다.
“안녕, 프론.”
그리고 서 있는 여성은 프론디어에게 인사한다.
“엘로디.”
프론디어는 엘로디를 보며 긴장감을 높였다.
눈앞에 있는 건 틀림없는 엘로디다. 눈의 착각도, 어떤 환상도 아니다.
아고리스에서 대륙을 넘어, 이곳까지 날아온 엘로디가 그의 눈앞에 있다.
이때 프론디어는 어떤 예감이 들었다.
그가 지금껏 해온 모든 것 중.
가장 힘든 싸움을 하게 될 거라고.
“프론, 미안해.”
엘로디는 작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난 널 보낼 수 없어.”
“엘로디.”
“세상 모두가 너를 보내주더라도, 네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신력 개방
루드라, 아그니, 인드라, 찬드라
사신 동시 전개
명명,
이니에스.
엘로디에게 터져 나올 듯 거칠어지는 신력의 폭풍.
형형 색깔의 빛 안에서, 엘로디는 프론디어를 본다.
작은 미소를 짓고 있다.
─프론디어를 지켜달라. 그것 하나를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의 희생이 가능해? 그건 네 목숨보다 중요한 일인가? 네 운명을 전부 뒤틀어도 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인가? 혹은, 세계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려도 우선되어야 할 사항인가?
“미안해.”
말하며, 미소 지으며,
엘로디는 울었다.
“널 지켜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