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RAW novel - Chapter (81)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81화(81/606)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81화
24장 테이번(3)
“……너 뭐해?”
나는 방 안에서 벌어지는 행태에 결국 묻고 말았다.
셀레나는 날 보며 오히려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되물었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요.”
셀레나는 이미 거의 속옷 차림이었다. 육감적인 몸매가 내 시야에 ‘알맞게’ 드러났다. 당연히 셀레나가 일부러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갈아입을 장소가 여기뿐인걸요.”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듯한 자세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셀레나는 참 뻔뻔했다.
“호오. 갈아입을 만한 장소가 여기뿐이라.”
“네네. 그럼요 그럼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셀레나. 그 입가마저도 유혹하는 듯하다.
콰득-
나는 목걸이 흑련을 부쉈다. 이런 일에 사용하기에 좀 요란스럽긴 해도, 이 기회에 셀레나와의 관계를 정립해두는 게 좋겠지.
직조(織造), 흑천(黑川)
등급 – 신위(神位)
이오케이라
나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너도 만곶의 일원이니, 내가 콘스텔에서 뭘 했는지 소문은 들었겠지?”
“그, 그렇습니다?”
“그럼 ‘폭죽’에 대한 것도 아나?”
“…….”
셀레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긍정의 뜻이었다.
“이 화살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아.”
나는 셀레나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셀레나는 위축된 모습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누가 멋대로 뒷걸음질을 치라 했나. 나를 보필하겠다면서.”
“죄, 죄송합니다.”
나는 셀레나의 지척까지 다가와 화살 끝을 들이밀었다.
“너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만곶에 보고해야 하지. 그것이 어느 때, 어느 주기인지는 몰라도 여기와 만곶을 연결하는 핫라인이 있을 거다.”
콘스텔의 양호실에서 만난 하글리도 그렇고 셀레나도 그렇고, 만곶 녀석들은 예고도 없이 등장한다.
아마 프론디어와 하글리가 처음 만난 날, 하글리가 설정해놓은 ‘텔레포트’의 일종이다.
“그 웃기지도 않는 옷차림도 거기서 입고 온 것일 텐데, 갈아입을 장소가 없다고?”
“아, 아하하. 만곶에 가는 건 앞으로 한참 뒤입니다, 소가주님. 저는 정말로 프론디어 님을 보필할 목적으로,”
“한참 뒤라, 그게 언제지?”
“그, 그게, 보름 뒤입니다.”
나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그런 연기를 하려고 한 것도 있으나, 실제로 불쾌했다.
“내가 말했을 텐데. 이 화살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네?”
“보름 뒤라고 했으니, 어디 시험해 볼까. 네가 오늘부터 15일이 지날 때까지 한순간이라도 내 곁을 벗어나는 순간, 이 화살이 알아서 네 목을 꿰뚫을 것이다. 이에 동의하나?”
내 말에 이해가 늦은 듯 셀레나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그새 새파래졌다. 순식간에 양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았다.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다면 죽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내 말에 셀레나는 그저 온몸을 벌벌 떨 뿐이었다.
─나는 지금 고개를 처박고 있는 셀레나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 나를 유혹하기 위해 상당한 연기를 펼쳤고, 지금도 그 연기의 연장선일 수 있다.
벌벌 떨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로 무서워하는 걸 수도 있고, 내 협박에 치욕스러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기 연기가 통할 거라는 생각에 웃고 있을 수도 있다.
뭐 어느 쪽이 됐든 난 셀레나를 죽일 수 없다. 만곶이 날 필요로 하는 이유는 오직 ‘고대어’ 뿐이니까. 내가 그만한 이용가치가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된다 판단되면 즉시 내 목을 벨 테니.
“앞으로 쓸데없는 짓을 할 거면 만곶에 가서 해라.”
“그, 그 말씀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만곶에서 하라는……?”
“옷을 갈아입는 것만이 아니라, 네가 밥을 처먹든 화장실을 가든, 나를 보필하는 것과 하등 관계가 없는 전부를 거기서 해결해라.”
셀레나는 그 말에 모기만 한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녀로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겠지. 날 유혹하려는 수단 대부분을 못 쓸 테니까.
“얼굴을 보이지 말고 사라져라.”
“……예.”
대답한 셀레나는 머리를 박은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사라지는 형태가 하글리와 비슷했다. 언제 봐도 신기한 전이(轉移)였다.
“휴우, 이제 좀 속 편하게 있을 수 있겠군.”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이다. 본디 이랬어야 정상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셀레나가 들어와서 이 시간이 어지럽혀졌다.
이제 좀 마음 정돈을 할까 하는데,
“가, 갈아입고 왔습니다.”
다시 어지럽혀졌다.
“…….”
셀레나는 잠옷 차림이었다. 물론 이 또한 메이드복과 마찬가지로 그런 티만 얼추 내고 있을 뿐이지 쓸데없이 몸매를 강조하고 있었다. 어디 만화에서나 입힐 것 같이 허리 라인이 움푹 들어갔다.
잠옷의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 잠옷을 입은 셀레나를 보고, 나는 더욱 차가워졌다.
“왜 돌아왔지?”
“예, 예?”
“잠옷을 입고 있다는 건 이제 자려고 드는 게 아닌가?”
“그, 그렇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나를 보필하는 것과 관계가 없는 것은 만곶에서 처리하라고 했을 텐데.”
셀레나는 내 말에 입을 벌렸다.
“그, 그럼 자는 것도 만곶에서……?”
“그럼 네가 자는 것이 나를 지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나?”
“……없습니다.”
“꺼져라.”
셀레나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얇게 당기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사라진 그녀의 마지막 얼굴은, 좀 분한 듯했다.
* * *
만곶은 절벽 안의 동굴이지만, 그 내부는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상가와 주택가가 명확히 나뉘어져 있고, 인간이 사용하는 시설 대부분이 완비되어 있다.
셀레나는 그녀의 집 앞에서,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왜 돌아왔나, 제이?”
하글리가 등 뒤에서 말을 걸었다.
프론디어와 비슷한 질문을 하는 하글리에게, 셀레나는 조금 열이 받았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고? 프론디어에게?”
“예. 자기 호위와 관련 없는 건 전부 여기서 해결하라고.”
“허어, 자는 것까지 말인가?”
그러니까요. 셀레나는 한숨에 먹힌 소리를 읊조렸다. 그 떨림은 반쯤 울먹이고 있었다.
“저, 이렇게까지 개무시를 당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남자를 유혹하는 게 처음이지 않나.”
“그래도!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하글리 님도 저라면 가능할 거라 하셨잖아요!”
“……흠.”
하글리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사태는 하글리도 상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프론디어는 원래 어마어마한 열등감의 소유자다. 하글리가 ‘소가주’라고 불러주기만 해도 벙긋벙긋 입가가 씰룩였으니.
셀레나 같은 미인을 끼고 다니면, 거기다 그 미인이 본인을 유혹한다면 헤벌쭉해서는 단숨에 빠져들 거라 생각했는데.
“저라면 유혹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으니까 할 말은 없지만……. 엄청 무서웠단 말이에요…….”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건지, 셀레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허엉, 하고 진짜로 우는 건지 묘한 소리가 났다.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프론디어가 너에게 혹하지 않을 리 없다. 지금은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야.”
“허세…… 그게 허세라구요…….”
셀레나는 아직도 프론디어의 서늘한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임무 시작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우선은 프론디어를 호위하는 것에 전념해라. 다만 몸짓과 표정에는 각별히 신경 써라. 그에 대해서는 프론디어도 무어라 하지 못할 테니까.”
“……네에.”
실제로 프론디어는 그다지 유혹적인 언행에 대해서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걸 안 셀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지적하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별로 효과가 없었다는 거 아닐까.
“결국엔 넘어올 것이다.”
하글리는 확신에 가득 차서 말했다.
“프론디어를 사랑하는 여자 따위는 없으니까.”
* * *
다음 날, 나는 리드위에 명에 따라 막사로 향했다. 셀레나와 함께.
막사는 기사와 병사들이 층으로 구분되어 있는 듯했다. 병사는 1층, 기사는 2층이었다.
나는 잠시 바라보다가 계단을 올랐다.
“어이, 넌 이쪽이 아냐.”
계단 위에서 누군가 능글거리는 미소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지. 프론디어의 기억으로도, 게임의 지식으로도 아는 얼굴이 아니다.
게다가 기사에 어울리지 않는 거들먹거리는 자세에, 아무런 기감도 느껴지지 않는 낮은 격.
즉, 잡것이다. 나는 무시하고 지나갔다.
“못 들었냐? 넌 1층이라니,”
턱.
지나치려는 내 팔을 놈이 붙잡으려 했으나, 가볍게 쳐냈다.
근데 쳐낸 느낌에 참 매가리 없었다. 뭐지 이 녀석, 기사 아닌가?
“이 미친 새끼가 주제에 여자를 끌고 와서.”
놈은 나한테 손을 쳐내진 것이 무안했는지 셀레나에게 손을 뻗었다.
아, 저런.
셀레나는 손끝을 놈에게 내밀었다. 힉, 하고 남자가 겁먹은 채 굳었다. 셀레나가 내민 손끝, 검지와 중지로 바늘이 잡혀 있었다. 대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상대를 위축하기에는 충분했다.
“저는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으므로, 건드리지 마시길.”
셀레나의 살기 어린 목소리는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남자도 그 목소리에 흠칫하며 물러섰다.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인 듯했다.
셀레나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글쎄, 잘 모르겠다.
끼익-
나는 ‘대기실’이라 적힌 방에 들어갔다.
빈방에 긴 의자가 몇 개 딸려 있을 뿐인, 넓긴 해도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
안에는 열댓 명이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나를 향한 시선들이 서서히 늘어났다.
그중 하나가 날 보더니 멍청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로 여자를 데리고 왔군. 진짜로 미친놈이었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연히 죄다 모르는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장 안쪽의 구석에 로버트가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아는 척하지 말란 거군.
“모린이 마중을 나갔을 텐데, 못 봤나?”
“시비를 거는 녀석은 있었지.”
그럼 그놈이네. 기사의 대꾸에 난 그러려니 했다.
기사들의 갑옷은 양식도 디자인도 제각각이었고, 갑주에 새겨진 문양도 전부 달랐다.
테이번에 차출되는 기사들은 제국 거의 전 지역에서 데려오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다. 기사들은 어디에서든 중요전력이니까.
“어이, 넌 며칠에 걸래?”
한 놈이 나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며칠?”
“어어. 내기 중이거든.”
답하는 녀석이 싱긋 웃었다.
“니가 뒤질 날짜 말이야.”
그 말에 대기실에 폭소가 터졌다. 정말로 웃긴 소리를 들은 것처럼 저들끼리 신이 났다.
웃지 않는 사람은, 좀 전의 로버트를 포함해 네다섯 명 정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러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간, 여기의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에 걸지.”
내 말에 웃음이 멎었다. 뭔 황당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눈빛들이었다.
“과연 미친놈인가? 야, 여기가 어딘 줄 아냐? 테이번이야. 한 달 동안 여기서 아무도 안 죽어? 어디서 정신 나간 소리야.”
“그래? 그럼 묻지. 이 중 나를 제외하면 ‘누가’ 죽을 것 같냐? 죽고 싶어서 환장한 놈 있나?”
기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이들이 이토록 저속한 내기에 시비를 일삼는 건, 다름 아닌 여기가 테이번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장소에선 사람은 적당히 미칠 수밖엔 없는 것이다. 안 그러는 놈들이 대개 먼저 죽는다.
나를 보고 미친놈, 미친놈 노래를 부르는 심리를 대강 알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
오히려 나에겐 이들이 필요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또한,
“내가 테이번에 있는 동안, 여기서 죽는 사람은 없다.”
이들도 내가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