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12
“아저씨가··· 마법사라서?”
“아니.”
뱀파이어가 처음으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의 머리가, 목이, 어깨죽지와 척추가 천천히 바닥에서 떨어진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운 움직임이다.
그가 표정 없는 얼굴로 소년을 응시한다.
“우리 종족은 먹잇감을 잡을 때 꿈을 꾸게 하거든.”
뱀파이어가 웃는다. 전혀 기쁘지 않은 얼굴로.
“먹잇감이 황홀한 상태에 빠져있을 때 잡아먹지. 그래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거든.”
뱀파이어의 건조한 설명이 이어진다. 소년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뱀파이어를 바라본다.
“아저씨가··· 나를 먹어요?”
소년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다시 묻는다.
“내가 맛있어요?”
“그거야 먹어보면 알겠지.”
소년이 애써 떨림을 감추며 묻는다.
“그, 그럼··· 어떻게 나를 잠들게 만든 거예요?”
표정 없는 뱀파이어의 눈썹이 아주 살짝 올라간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없겠지만, 계속해서 그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알 수 있을 변화다.
그는 지금 흥미로워하고 있다.
“내가 잠들게 만든 게 아니야. 네가 잠든 거지.”
그는 매끄럽게 덧붙인다.
“나는 그냥 꿈을 꾸게 만든 것뿐이고.”
“그럼 아저씨는 깨어있는 사람들은 먹지 않아요?”
“그래. 적어도 나는.”
소년은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로 묻는다.
“왜요?”
이제 뱀파이어는 약간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뱀파이어는 방금 전, 소년을 잡아먹겠다고 선전포고했다. 그럼에도 소년은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뱀파이어는 언제나 그가 만든 아름다운 꿈에 빠져 행복해하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간들만을 보아왔다.
그렇기에 소년의 반응은 낯설었고, 조금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소년이 귀찮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뱀파이어는 현실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꿈을 통해 대화하는 게 덜 귀찮았기에, 소년의 궁금증을 친히 해결해주기로 한다.
뱀파이어가 차가운 입을 연다.
“···먹잇감이 깨어있는 건 귀찮지. 움직일 때마다 붙잡아야 하고, 도망가면 뛰어야 하고.”
그리고 그는 모든 감정이 소거된 얼굴로 입을 연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마치 마네킹 같은 얼굴이다.
분명 움직이고 말을 하고 있지만, 만지면 딱딱함이 느껴질 것만 같은 얼굴.
소년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아저씨도 외로웠어요?”
뱀파이어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한다. 그리고 얕은 한숨을 쉰다.
그는, 이제 이 모든 장난을 그만두고 소년을 잡아먹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가 천천히 소년에게 다가가려던 그 순간, 무대는 암전이 된다.
남은 잔해들이 흔들리면서 한번 더 돌무더기들이 둘을 덮친 것이다.
“···!”
신경을 곤두세운 채 무대를 보고 있던 음향팀 스태프가 효과음을 내보낸다. 그리고 산사태를 연상케 하는 소리가 연습실을 울린다.
잠에서 깬 소년이 아까와 같은 자세로, 혹은 더 움츠린 채로 작게 흐느낀다.
“엄마···.”
뱀파이어의 표정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뱀파이어의 얼굴을 보지만, 그 안에서 표정을 찾아낼 수가 없다.
오직 매끈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와아···.’
오랜만에 그들을 본 무대팀 스태프는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었다.
‘진짜 잘하네.’
그는 한유일과 정수호에게서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떡 벌렸다.
정수호의 소년 연기도 훌륭했지만, 한유일의 뱀파이어는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건··· 진짜 난리나겠다.’
그날의 연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무대팀 스태프는 연극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예매 링크와 함께, ‘예매해라’라는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 ?? 뭐임?
– 아 이거 네가 한다는 연극?
– 근데 홍보를 무슨 이딴식으로 하냐 넌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거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연극은, 잘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한유일의 겨울은 어느때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론 아무리 바빠도 고통보다는 즐거움이 컸다. 연습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성장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고, 매일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는 연습실로 향하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에 눈이 오고 있었다.
‘예쁘네.’
천천히 눈송이들이 떨어지는 걸 보니 조금은 여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평생 그렇게 살게 되실 겁니다.】
“네가 왜 아무말 안 하나 했다.”
한유일은 작게 웃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곧 새해였다.
*
피곤한 얼굴의 직장인이 사람들을 헤치며 자리에 앉았다. 연극 스태프로 참여한 친구의 강매에 못 이겨 연극을 보러오게 된 직장인은 약간의 감정을 담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나 이거 때문에 내일 야근 확정이다; 지루하기만 해봐 내가 너 고소함
“소지하신 핸드폰은 꼭 꺼주시거나 비행기모드로 변경해주세요!”
약간의 짜증을 담아 빠르게 문자를 보내던 직장인은 핸드폰을 비행기모드로 바꾼 뒤 주머니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이 올랐다. 직장인은 등을 기댄 채 무대를 바라보았다.
지루하면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두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서늘한 푸른 조명이 길게 비춰진 무대를 바라보니, 심장이 약간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깜박이던 조명이 완전히 꺼진다.
그리고, 온몸을 흔들리게 만들만큼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몇 초 뒤, 다시 무대가 보인다. 이젠 무대에 두 개의 그림자가 보인다.
무대 위에 몸을 움츠린 채 앉아있는 소년과 누워있는 한 남자가 서서히 드러났다.
직장인은 눈을 깜박인 뒤 무대에 집중했다.
“추워···.”
소년은 몸을 덜덜 떤다. 그러다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발견한다. 등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소년은 온몸이 아픈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며 조금씩 남자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대답 없는 그에게 자꾸만 말을 건다.
직장인은 미간을 좁히고 그를 바라보았다.
뱀파이어 역을 맡은 정수호는 이미 유명해서 알고 있었다. 직장인이 놀란 것은 다름 아닌 그 상대역 때문이었다.
‘···!’
다르다.
지금껏 봐온 배우들과는 결이 달랐다.
‘쟤, 뭐야?’
단순히 소년을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는··· 정말 ‘아이’같았다.
어느새 직장인은 살짝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한유일이랬나.’
직장인은 친구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배우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직장인은 만족할 터였다.
직장인이 그런 생각을 하며 무대를 보고 있을 때, 무대 위에 있던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연다.
뱀파이어가 소년에게 진실을 밝혔던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잔해들이 다시 무너진다.
이어서 펼쳐진 광경에 직장인은 눈을 크게 떴다.
“···!”
소년의 손에서 날카로운 돌조각이 빛난다.
그리고 그 돌조각의 날카로운 끝이, 소년의 목을 노린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딱 한 번만 도와줘요.”
소년이 자신의 목에 칼 같은 돌을 겨누며 말한다.
“날 먹고 싶다면요.”
직장인은 멍한 얼굴로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직장인은 앞으로 몇 번이고 이 연극을 보게 될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 Konstantin Stanislavsky, 『An Actor Prep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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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2)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짓지?’
직장인의 입이 힘없이 벌어졌다.
단단히 홀린 기분이었다. 무대 위에 있는 인물들이 가상의 배역을 연기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직장인은 소년이 금방이라도 죽을까봐 무서웠다.
“날··· 먹고 싶다고 했죠.”
소년의 목엔 여전히 날카로운 조각이 있다. 소년은 손을 떨면서도 기어이 말을 이어간다.
“···.”
꿀꺽.
직장인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소년의 행동 하나하나에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소년이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잠든 상태에서 말이에요.”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지?”
뱀파이어가 나른하게 묻는다. 느긋하면서도 날카로운 얼굴이다.
“꿈을 꾸게 해줘요.”
“···뭐?”
뜻밖의 말에 뱀파이어 얼굴에 파동이 인다.
“꿈꾸고 싶어요.”
“꿈이라. 무슨 꿈을 원하지?”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마른 침을 삼킨 소년이 겨우 말을 이어간다.
“그걸 그대로 꿈으로 만들어주세요.”
“무한대로는 못 해.”
뱀파이어는 이를 드러내며 답한다. 기분이 나쁜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어 보이기도 한 얼굴이다.
“몇 번까지 가능해요?”
“···세 번.”
잠시 고민하던 소년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요.”
소년은 손이 하얘지도록 쥐고 있던 날카로운 돌조각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힘없이 웃는다.
“약속한 거예요.”
뱀파이어는 답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으니.
이 모든 건 그의 변덕과 관용이 만든 특이한 상황일 뿐이다.
저 소년은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에겐 손가락만으로도 소년을 가루로 만들 수 있다.
‘···귀찮아.’
그래.
단지 귀찮으므로.
귀찮기에 저 소년의 이상한 요구에 맞춰주는 것뿐이다.
뱀파이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바위에 등을 기댔다.
그때, 소년이 뱀파이어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헨리.”
“…뭐?”
소년이 활짝 웃으며 말한다. 그 미소에 뱀파이어는 미세하게 눈썹을 찡그린다.
“제 이름, 헨리예요.”
*
“수고하셨습니다!”
“유일 씨, 너무 잘했어요.”
“내일도 화이팅이에요!”
한유일은 스태프들과 연출, 그리고 정수호의 인사를 뒤로 한 채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연극을 방금 올렸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통학하는 길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다.
【유일 님.】
‘어?’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 동안 SNS 반응 일부를 보여드릴까요?】
“···.”
잠시 고민하던 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볼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고.’
한유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눈앞에 또 다시 창이 나타났다.
[@syo_love123바닥에서 첫공 후기: 일단 여러분 보세요.. 무조건 보세요!!!! 진짜 미친 줄 알았다 쇼 배역 중 이번이 역대급 배역인듯 연기도 연기인데 말투 캐릭터 서사 다 갓벽]
┗ [@ssssyooo55
와 쇼럽님도 보셨군여]
┗ [@godactsoo
쇼뱀 진짜 짱··· 처음부터 무릎 갈렸음요;; 이번에 헨리 역 맡은 배우도 너무 좋더라구여]
┗ [@syo_love123
헐 마쟈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너무 잘해서 놀랐음요]
┗ [@ssssyooo55
그래서 계정을 팠습니다ㅎ 한유일 배우 많이 사랑해주세요~~~ @yool_actor]
┗ [@syo_love123 엥]
┗ [@godactsoo 뭐야;]
브윈이 띄워준 블루챗 반응들을 보던 유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쇼뱀이 뭐지?’
【쇼는 정수호, 뱀은 뱀파이어를 뜻합니다.】
브윈은 말을 덧붙였다.
【···조사 결과, 유일 님은 현재 커뮤니티 등지에서 ‘율’로 불리고 계십니다.】
‘율?’
【네, 그렇습니다.】
···내 이름을 줄여서 율이라고 부르는 건가.
스치듯 한 생각마저 브윈은 놓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타 커뮤니티도 보시겠습니까?】
한유일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순식간에 다른 창들이 떠올랐다.
【- 바닥에서 첫공 후기】
그가 제목에 시선을 두자, 아래에 게시물 내용이 차례로 떠올랐다.
【[포스터만 보고 잔잔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생각보다 더 재밌었고 첫공인데도 완성도 높은 느낌? 돌아오는 길에 막공 포함해서 다섯 회차 더 잡음.
– 쇼뱀 : 쇼 배우 매번 장난기 많고 능청스러운 역만 맡아서 그런 것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더라; 쇼 진짜 연기 잘함. 데뷔 이래로 이런 역은 처음인 것 같은데 너무 찰떡이라 놀랐다
– 율헨리 : 솔직히 보기 전까지 좀 걱정했음. 완전 신인에 첫작이고 또 하필 쇼랑 붙어서 너무 차이날까봐..ㅋ 솔직히 지금까지 쇼랑 붙었던 신인들 보고 좋았던 적이 없어서 더 그랬음.
와 근데 그렇게 의심했던 나 자신을 크게 치고 싶다; 율헨리 미쳤음.. 페이스도 좋던데 자주 봤음 좋겠더라]】
‘···.’
민망하다.
한유일은 괜히 주변을 살핀 뒤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자꾸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듯했다.
해당 게시물 아래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유일의 시선에 따라 브윈은 댓글들을 천천히 보이게 했다.
【┗ 123 : 그렇게 잘했어? 신인인데 칭찬일색이네
┗┗ 글쓴이 : ㅇㅇ 완전. 들어가기 전까진 좀 아쉬웠는데 나오니까 타배 생각이 안남
┗ 025 : 나도 찍먹해야겠다
┗ 367 : 근데 이거 회차별로 쇼랑 율이랑 배역 바뀌지 않음? 좀 걱정되던데
┗┗ 글쓴이 : 그래서 내일 후기 보고 잡을 거란 사람도 많더라.
┗ 156 : 나도 보고 왔어ㅎ
┗┗ 156 : 극장 나오자마자 열세 개 잡음
┗┗ 367 : 와 이거 20회차짜리 아니냐?
┗┗ 글쓴이 : ㄴㄴ이거 15회차임···
┗┗ 367 : ?
┗┗ 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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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역은 성X, 성X역입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커뮤티니를 보던 유일은 안내방송이 들린 뒤에야 자신이 집과 가까운 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일은 가볍게 발을 내딛으며 전철에서 내렸다.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좋았다. 차가운 바람마저도 상쾌하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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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NVB의 개인 연습실.
김하랑은 어느 중년 남성과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산뜻한 노란색 벽지색과 달리, 분위기는 아주 어두웠다.
“왜 그랬어요··· 네?”
“그러게 진작 내 말을 들었어야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김하랑이 입술을 꾹 물었다. 곧 그의 눈이 서서히 촉촉해졌다.
덤덤한 얼굴로 김하랑의 눈을 바라보던 남자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음, 좋아.”
남자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김하랑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