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33
“이름 다 빼버릴 거다, 망할 놈들.”
이럴 때면 타과 학생들이 부러웠다.
···이를 테면 국문학과라든가.
‘그 수업에서 내 배우도 처음으로 만나고··· 좋았는데.’
그 생각을 하니 폭발 직전이었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가신 듯했다.
스트레스 해소엔 무엇보다 덕질이 최고였다. 이혜진의 손가락은 이미 자연스럽게 블루챗에 접속하고 있었다.
블루챗 실시간 검색어를 바라보던 이혜진은 눈을 깜박였다.
#비타톡세븐
#비타민광고
#한유일비타
#비타민한유일
‘설마··· 광고 때문에?’
당연하지만 한유일의 덕질을 시작한 이후, 이혜진은 유일이 나오는 모든 영상은 가장 먼저 섭렵해왔다.
이혜진은 이미 십수 번씩 돌려 본 한유일의 광고를 떠올렸다.
‘···생각난 김에 한번 더 볼까.’
이혜진은 오튜브에 올라온 ‘비타 톡 세븐’의 광고를 클릭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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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통, 통.
가장 먼저 하얀 배경을 둔 채 노란색 공을 튀기는 손이 보인다.
그러다 공이 점점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 손의 주인, 한유일의 모습이 드러난다.
– ···어!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유일이 반가운 얼굴로 걸음을 옮긴다.
병아리를 떠올리게 하는 노란색 맨투맨에 하얀색 슬랙스를 입은 그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다가온다.
– 어, 잠시만요, 잠시만요!
동그랗게 눈을 뜨자, 맑은 눈동자가 화면에 가득찬다.
– 혹시··· 비타민 아직도 힘들게 챙겨드세요?
갑작스러운 배경음악이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더니, 카메라가 갑자기 뒤로 빠르게 이동한다. 어느새 카메라는 멀리서 한유일을 잡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돌 안무 영상에나 나올 것 같은 구도로.
‘···나온다!’
이혜진은 자꾸만 올라가는 광대를 주체할 수 없었다.
본 방송을 보지 않은 이들이라도 오튜브와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영상으로 인해 알 수밖에 없는 영상.
[비타 비타 비타 비타 톡 톡 톡!]이번 비타 톡 세븐 광고는 ‘신굴’ 예고편에서 나왔던 바로 그 화제의 자기소개 영상의 변주였다.
광고 속 한유일은 기존 젤리젤리의 에서 약간 변형이 들어간 안무를 열심히 추기 시작했다.
[세븐 세븐 세븐 세븐 톡 톡 톡!]가슴께에 손을 대고 흔드는 대신 손으로 숫자 7을 만든 채 폴짝 뛰어오르는 앙증맞은 안무였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톡톡 튀는 CG와는 달리 한유일의 눈이 조금 텅 비어있긴 했지만··· 그것마저 잘 어울렸다.
– 상큼하다, 쉽다, 맛있다!
– 비타 톡 세븐!
비타 톡 세븐을 원샷한 뒤 파릇한 미소를 지어보인 유일의 얼굴 클로즈업을 끝으로, 광고가 끝이 났다.
영상을 끝까지 본 이혜진은 의아한 얼굴로 댓글창을 바라보았다.
‘근데 이게 웃긴가?’
이혜진은 영상의 반응을 살펴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그냥 귀엽지 않나···?’
이미 콩깍지에서 피스타치오 껍질로 진화된 이혜진이었다.
이혜진의 감상이야 어찌되었든, 비타 톡 세븐의 여파는 굉장했다.
물론 좋은 의미로.
심지어 비타 톡 세븐의 안무 영상은 숏폼 챌린지로 유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춤을 잘추는 이들이든 웃긴 컨텐츠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든,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누가하든, 기존 광고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한유일의 춤은 한유일만의 ‘맛’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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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 톡 광고 있잖아
[처음 봤을 땐 걍 웃겼거든? 근데 지금은 신기함··· 이걸 어케 살리냐?]┗ 진짜 대단한듯
┗ ㄹㅇ
┗ 한유일 미만 잡;;
┗ 열심히 살자··· 비타톡세븐 들고 춤추는 한유일처럼···
– 요즘 내 피로회복제
[(비타 톡 세븐 광고 캡처 사진)]┗ ㄹㅇ 누가 요즘 회복제 사냐 한유일 광고 보면 되는데
┗┗ 가성비 뭐야
┗┗ 광고주 의문의 1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유일은 동기들이 올려 준 커뮤니티 캡처본을 보고 있었다.
“···.”
사실 브윈이 이미 한번씩은 보여준 반응들이었다.
– 국문 김진우 : (광고 캡처 사진)
– 국문 김진우 : 캬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국문 강하나 : 유일아 나도 요즘 힘들 때 네 광고 본다?
– 국문 김진우 : 촬영현장 못 가본 게 한이다 너 진짜 나중에
– 국문 황리우 : ?
– 국문 황리우 : 왜 말을 하다 맒?
– 국문 강하나 : 핸드폰 냈나 봐
– 국문 강하나 : 그런데 유일아 너 이번에 부국제 가? 레드카펫도 밟아?
유일은 짧은 답장을 남겼다.
– 응.
‘ㅁㅊ’과 ‘오’로 가득한 답장이 미톡을 가득 채우고, 유일이 핸드폰을 닫기 직전 톡 하나가 더 왔다.
– 국문 황리우 : 레드카펫 후기 좀
*
영화제 개막식 이틀 전.
동시에 의 두 번째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이르게 도착한 유일은 천천히 세트장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완성된 꽃집 세트장.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꽃집 세트장에는 생화와 조화가 섞여 있었고, 하얀색과 연두색으로 조합된 바닥 타일은 깔끔하고도 예뻤으며, 벽에 걸린 액자들과 틸란드시아 등의 식물들이 전체적인 세트장 분위기를 살렸다.
군데군데 놓인 중대형의 화분들이 작은 식물원 같은 느낌을 만들어냈다.
‘간이 온실 같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읽을 때 상상했던 꽃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유일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세트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브윈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지수 배우가 도착했습니다.】
‘···!’
유일의 다음으로 도착한 이는 의외로 손지수였다.
콜타임보다 이르게 도착한 손지수의 모습에 스태프들도 놀란 눈치였다.
한편,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던 손지수 역시 한유일을 발견했다.
‘저기 있네.’
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촬영 준비 기간 동안 같은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 태어나 지금껏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일찍오셨네요, 선배님.”
“이 정도는 기본이죠.”
유일의 말에 손지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유일은 대답 대신 조용히 웃어보였다.
“이제 이원 선배님만 오시면 되겠네요.”
“···주희영 선배님도요.”
주희영.
에서도 씬스틸러이자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배우였다.
‘이번 영화에선 리딩 때 짧게 만났지.’
손지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주희영과 황이원의 도착까지는 시간이 남은 듯했다.
“유일 씨, 이건 진짜 꿀팁인데.”
목소리를 낮춘 손지수가 작게 말을 걸었다.
“황이원 선배님 앞에선 최대한 조용히 하는게 좋아요.”
“네?”
손지수는 의아한 얼굴로 되묻는 한유일을 답답한 듯 바라보았다.
“아, 아니~ 오해는 말고. 물론 황이원 선배님 좋죠. 나도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님이기도 하고···”
“···?”
“근데 선배님이 신인 배우들을 좀 싫어하시거든요. 솔직히 신인 배우들 중에 좀 막 나가는 애들이 많아서 나도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 분은 더 심해서···.”
【···현재 손지수의 발화를 평가한 결과, 거짓말이 아닐 확률이 78.3%입니다.】
‘생각보다 높네.’
【다시 말하면, 손지수가 해당 발화를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확률입니다.】
“···그러니까, 괜히 말 거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화도 거의 못 해봤거든. 그때 내가···”
유일은 손지수의 말을 흘려 들으며 분주히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세트장 입구에서 들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주희영이었다.
비록 에서는 대화할 틈도 없었지만, 이번 영화는 함께 촬영하는 회차가 많은 만큼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터였다.
“안녕하세요, 주희영 선배님.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밝은 얼굴로 촬영장에 들어선 희영은 자신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아, 유일 씨! 리딩 이후로 처음보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그럼요. 잘 지냈셨어요, 선배님? ”
‘훤칠하네.’
몇 달 전 영화 촬영장에서 봤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 그때도 눈에 띄는 배우라고는 생각했지만···.
주희영은 손지수에게도 가벼운 인사를 건낼 무렵, 전화를 받은 조연출이 외쳤다.
“황이원 배우님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준비 끝나는 대로 테스트 슛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촬영이 시작되었다.
꽃집 사장인 혁진(황이원)이 수일을 알바생으로 쓰기로 한 다음 날 벌어지는 씬이었다.
카메라에 붉은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7에 1에 1~”
“액션!”
한유일과 황이원은 박수일과 김혁진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섰다.
아침부터 청소를 하던 수일은 문득 고개를 들고 혁진을 바라본다.
“근데 저, 뭐라고 부를까요? 사장님? 대표님?”
“편한대로.”
수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님과 대표님을 번갈아가며 되뇌었다.
그가 세 번쯤 번갈아 불러보던 그때였다.
“사장니이이이이임~ 저 왔어요~ 프리지아 메인으로 꽃다발 만들어 주세요~ 오늘은 클래식한 무드로~!”
강렬한 콧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꽃집의 단골이자 사장을 짝사랑하는 ‘화연’ 역을 맡은 주희영이었다.
“어. 누구···?”
“알바생입니다.”
“뭐야, 사장니이임~ 언제 알바를 뽑았어요?”
자연스럽기가 어려운 대사와 과장된 연기. 그러나 주희영이 만들어낸 ‘화연’의 대사는 맛깔나는 동시에 자연스럽다.
오랜 연기 경력과 뛰어난 연기 실력으로 영화계에서 신뢰받는 배우다웠다.
“아가, 몇 살이니?”
화연의 살가운 말을 수일은 완벽히 무시한다.
“아니, 아가! 몇 살이냐니까?”
“···저한테 한 말이에요, 그거?”
“어, 당연하지~”
수일은 화연을 바라본다. 퉁명스러운 시선에 화연이 약간 움찔한다.
싸늘하게 화연을 바라보던 수일이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연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손님 애였던 기억이 없어서 답을 못 했네요.”
명백한 비꼬기였다. 그러나 화연은 주눅들기는 커녕 오히려 쾌활하게 웃기 시작했다.
“와하하하! 어머, 얘 웃기네. 사장니임, 알바 잘 뽑았네. 얼굴 보고 오는 손님들 많겠어.”
화연이 들어오자마자 묵묵히 꽃을 포장하고 있던 혁진은 말없이 완성된 꽃다발을 내밀었다.
근육이 가득한 몸을 덮은 흰 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에 앞치마라는, 언밸런스한 패션.
그러나 혁진이라는 인물이 입었다는 점이 이를 어울리게 만든다.
“호호, 그럼 또 올게요~”
화연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꽃집. 수일은 인상을 쓴 채 혁진을 바라본다.
“저 손님, 사장님 여친이에요?”
“박수일 씨.”
차가운 음성에 순간 얼어붙는 수일.
김혁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수일의 눈을 바라본다.
“하나만 부탁하죠.”
“···뭔데요?”
“선 넘지 맙시다.”
약간 긴장한 채 혁진을 바라보던 수일은 금세 여유로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그러죠, 뭐.”
마지막 대사 뒤에 몇 초가 흐르고.
“컷!”
구찬익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오케이 해두고··· 이 씬에서 아직 다른 컷 남아있지?”
“네, 배우들 클로즈업이랑 풀샷 한 컷 남아있습니다.”
촬영팀이 세팅에 매진할 동안 주어진 쉬는 시간.
유일은 황이원과 함께 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유일 씨.”
“네, 선배님.”
황이원은 유일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마지막 대사. 좀 빠르게 들어온 것 같은데. 너무 급하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
유일은 그의 깊은 눈과 마주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니, 그럴 것 까진 없고.”
【···황이원의 어조 분석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냉담’ 54%, ‘떨떠름’ 16% ‘어색함’ 21% ‘긴장’ 8.1% 기타 0.9%입니다.】
‘그래?’
왜 조용했나 했더니, 분석 중이어서 그랬나 보다.
유일은 손지수의 말을 떠올렸다.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진 알겠네.’
언뜻 들으면 차갑게만 들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유일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사실, 제가 조금 빠르게 답했던 건 수일이라는 캐릭터성 때문이었습니다.”
유일의 말에 황이원은 한쪽 눈썹을 올렸다. 의외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한유일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박수일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 싫어하고, 쉽게 자신을 누그러뜨리는 법을 모르는 인물이니까요. 그래서 위축될만한 상황에서 오히려 조금 당당하고도 빠르게 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일의 말을 들은 황이원은 짧게 고민했다.
사실 그는 약간 놀란 상태였다. 지금껏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다른 배우들에게 지적을 했을 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죄송합니다!’라고 고개를 푹 숙이거나, 혹은 기분 나빠하거나.
이렇게 자신의 분석을 조목조목 말했던 배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신인 중에서는 더더욱.
‘제법인데.’
황이원의 차가운 시선에 흥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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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브와 애드리브
황이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해석이라면. 나쁘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유일과 황이원이 짧은 대화를 마무리 할 때, 타이밍 좋게 카메라 세팅이 끝났다.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황이원과 한유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손지수만이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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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배우님~”
한유일과 황이원의 촬영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이후 저녁 스케줄이 있는 황이원은 이르게 퇴근했다.
이제 손지수가 맡은 ‘최빈’이 꽃집으로 찾아오는 씬을 찍을 차례였다.
오늘의 마지막 씬이기도 했다.
대기하느라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풀던 손지수는, 촬영이 끝나고 홀로 물을 마시며 서 있는 한유일을 보자마자 빠르게 다가갔다.
“아까 보니까 황이원 선배랑 얘기 좀 하는 것 같던데.”
“아, 네. 연기 관련해서 대화를 했습니다.”
한유일의 표정을 살피던 손지수는 순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했던 말 고대로 일러 바친 건 아니겠지, 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