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35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그냥 선배님 연기에 맞춰가다보니··· 그렇게 되었거든요.”
“···뭐라고요?”
손지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유일을 살폈으나, 한유일의 얼굴에서 어떤 악의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저 맑은 눈동자만이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사실 혼자서 연습을 할 땐 그렇게까지 감정을 끌어올리진 못했습니다. 수일이라는 인물과 결이 잘 안 맞는다고도 생각했고요. 선배님이 먼저 방향을 제시해주셔서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한유일은 진심이었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
할 말을 잃은 채 유일을 바라보던 손지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알았고···요. 남은 촬영 잘하시고.”
어차피 조연인 그는 이 영화에서 남은 씬도 많지 않았다. 오늘 이후에는 한동안 이 세트장에 올 일도 없었다.
“이제 볼 일도 거의 없을 텐데.”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 중 손지수 배우가 17년 전 찍었던 이창우 감독의 가 있으며, ‘이창우 특별전’에 상영될 예정입니다.】
브윈의 말을 들은 유일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도 이번에 영화제 가시나요?”
“아. 부국제?”
기억을 더듬던 손지수는 최근 스치듯 본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한유일이 참여했던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는 기사.
손지수는 씁쓸함을 숨기며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차에 올라 탄 그는 또 다시 커피를 내미는 매니저에게 고개를 저었다.
“됐어, 오늘은.”
매니저는 그런 손지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으나, 손지수는 눈을 감고 등을 기댈 뿐이었다.
‘짜증나네.’
···애초에 연기를 위해서 한 애드리브도 아니었는데.
다정한 상대에게서 이토록 끝없는 탈력감과 패배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그였다.
*
의 2회차 촬영 이틀 뒤.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이 있는 날이었다.
【유일 님, 곧 내려야 합니다.】
영화제는 생각보다 더 정신이 없었다.
유일은 오전부터 장재이 실장이 직접 골라준 의상을 입고서 소속사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대기 장소에서 최종적으로 수정 메이크업을 받은 뒤 영화제 후원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배우님 내리시겠습니다.”
진행요원의 말과 함께 차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가 얼굴을 강타했다. 한유일은 눈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레드카펫 주변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든 채 서 있었다. 유일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유일 씨~ 여기 봐주세요!”
“여기도요~”
기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유일은 목소리의 방향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시 다른 쪽을 바라본 뒤 하나, 둘 셋.
“마지막이요~!”
유일은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갈라진 목소리로 외치던 기자의 얼굴이 보였다.
한유일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자 0.5초간 입을 벌리고 있던 기자가 거세게 외쳤다.
“하트으으으으! 하트해주세요오오오옥!”
‘하트···?’
유일은 천천히 두 손을 올렸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겠지.
엄청난 속도의 셔터음이 빗소리처럼 들렸다.
유일은 멀리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모두 인사를 건네며 레드카펫을 건넜다.
.
.
.
– [포토] ‘비타민 보이’ 한유일, 상큼한 손인사
– [포토] 한유일 ‘하트는 처음이라···’
– [사진으로 보는 부국제] 한유일 ‘레드카펫에 나타난 어색한 하트’
“···.”
빠르게 기사를 모니터링해보던 장재이 실장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들어지다 만 애매한 하트가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긴 했다.
‘그래도 얼굴은 잘 나왔네.’
첫 레드카펫에 이 정도면 양호하다.
유일의 사진을 몇 장 더 살펴보던 장재이 실장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영입해 온 신인배우는 모든 면에서 기대를 뛰어넘고 있었다.
한편 같은 시간.
유일은 여전히 정신없이 영화제를 즐기고 있었다.
“유일 씨!”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유일이?”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목소리에 유일의 얼굴이 절로 부드러워졌다.
유재호 감독과 에 참여했던 배우들을 만난 유일은 진심을 담아 반갑게 인사했다. 민소희와 이종순, 박준기 모두 밝은 얼굴이었다.
“감독님 덕에 이렇게 영화제도 와보고··· 역시 오래 살고 봐야 한다니까요.”
“자꾸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 할 거냐? 잉?”
그들은 지금 의 첫 상영관에 있었다.
유일은 푹신한 객석에 등을 기대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슬쩍 옆을 보니, 유재호 감독 뿐 아니라 이종순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 역시 긴장한 눈치였다.
가편집본에 맞춰 후시 녹음을 하긴 했지만, 후반작업까지 끝난 영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 영화제는 의 초반 평가와 상영관 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심호흡을 한 뒤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십시오, 유일 님.】
‘···더 떨리는데.’
한유일은 침을 삼켰다.
곧 영화관이 어둠에 잠겼다.
.
.
.
차가운 바람이 부는 새벽.
텅빈 도로를 달리는 차가 보인다. 차 안에 타고 있는 이는 유일이었다. 홀로 차를 타고 가는 그는 쓸쓸하고도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초중반부가 함께 들려왔다.
그렇게 오프닝 시퀀스가 지나가고, 타이틀이 떠오른다.
종순과 준기, 소희와 유일.
자살 커뮤니티에서 만난 네 명의 인물들은 죽기 전에 맛집을 찾아다니기로 한다.
네 명은 계속해서 싸우고, 서로를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한다.
소희가 휴게소에서 독을 먹은 이후, 인물들의 감정은 점점 최고조로 치닫는다.
– 너 돈 필요하다고 했잖아. 애초에 여기까지 온 것도, 죽으려고 한 것도 다 그것 때문이잖아.
– ···아저씨가 한 짓이죠, 그거?
병원에서 치료를 끝낸 소희는 큰 문제 없이 금방 퇴원하게 된다. 그들은 다시 차를 타고 마지막 맛집을 향해 떠나지만···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그들을 태우고 달리던 차의 바퀴가 터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인적 드문 국도.
차에서 빠져나온 네 명은 멀찍이 선 채 서로를 노려본다.
그때, 영화 내내 무표정하던 종순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 제발, 죽기 전이라도 좀··· 사람답게 살면 안 되나···?
인물들은 그제야 막힌 곳이 터지듯,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준기는 30년 전 작은 회사에 취직한 이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15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회사는 어느새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옥으로 쓰는 기업이 되었다. 준기는 뿌듯했다. 더는 회사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진.
– 어느 날부턴가 일이 없어졌어. ···그 다음 날부터는 책상이 사무실 밖에 있더라고.
그렇게 권고사직을 당했다. 순식간에 인생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그가 도박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엄청난 빚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간호사 출신이었던 종순은 20여년 전 의료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 청소부터 음식점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하나 뿐인 아들은 그런 종순을 나몰라라 했다.
– 그렇게 얼굴 한번 비치지 않던 놈이 불쑥 찾아와 한다는 말이 뭔 줄 아나?
‘자신이 암에 걸렸으며, 곧 죽는다’는 말이었다. 종순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언제나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놈이었으니. 그러나 반 년 뒤, 거짓말처럼 아들이 죽었다.
어느날, 홀로 밥을 먹던 종순은 문득 하루하루가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희는 자신이 꽤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소희는 꿈이 컸다. 그녀는 사업에도 소질이 있는 편이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직원들을 고용했다.
사업이 안정되었을 때 다정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남자는 소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했다. 그는 소희처럼 사업을 하고 싶어했다. 많은 돈과 인맥이 필요하다고 했다.
– 그래서 원하는 걸 다 들어줬어.
남자에게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너무 늦은 뒤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보험금 수령자를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사촌으로 바꾸는 것 뿐이었다.
유일은 고등학생일 때부터 집을 나와 살았다. 공부보다 생존이 우선인 삶이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경력으로 쳐주는 곳은 많지 않았고, 대학을 가지 않은 20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 역시 많지 않았다.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던 친구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대로 돈 벌어서 언제 집 사고 차 사냐?’ 친구는 그에게 코인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 재미있던데요. 숫자는 내가 어떤 놈인지 신경 안 쓰잖아요.
그는 한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코인을 시작한 지 일주일만에 벌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는 하루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코인을 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평소대로 사고 팔았으나, 자꾸만 그의 계좌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제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몇 년간 모았던 돈이 한 달만에 눈 녹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인물들은, 예정대로 마지막 맛집에 가기로 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 독을 넣은 인물이 다름 아닌 소희의 사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주희영이 맡은 역할이 바로 소희의 사촌동생이었다.
희영은 소희에게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의 독을 먹인 뒤 그녀를 일행들에게서 떼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병원까지 따라간 탓에 그녀의 계획은 실패한다.
그들을 쫓아온 희영은 소희를 데려가려 한다.
– 언니, 어차피 언니한테 남아있는 사람 나밖에 없잖아. 하루종일 우울해하고 곧 죽을 것처럼 지내던 사람 살게 만든 게 누군데? 언니가 이딴 밑바닥 인생들이랑 같이 죽게 놔둘 것 같아?!
– ···왜 못 놔두는데?
– 무슨 그런 질문을 해, 언니! 그건···
– 설마 보험금 때문에 그러는 거니?
소희의 말에 희영은 입을 다문다.
– ···하하.
소희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때, 누군가 소희의 앞을 막아선다.
종순이었다.
– 네 년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 ···뭐야, 할머니는 빠져요.
– 내 몸이 문드러지는 한이 있어도 소희, 끝까지 데리고 갈 테니까 썩 꺼져!
그리고 준기까지 합세하여 그들의 대화를 모두 녹음했다는 협박으로 희영을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들이 차에 타자마자, 유일이 빠르게 엑셀을 밟는다.
말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소희가 별안간 웃기 시작한다.
이상한 웃음은 점차 전염된다. 종순과 준기가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유일마저 웃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상한 네 명의 사람들이 탄 차는 한참을 웃음소리와 함께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들은 준기가 말한 마지막 맛집, 남해의 한 횟집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소희는 중간에 쓰러지고 만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여행을 중단한다.
그리고 영화는 두 달 뒤로 넘어간다.
오프닝 시퀀스와 이어지는 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과 함께 새벽 도로를 달리는 유일의 모습이 보인다.
유일이 도착한 곳은 소희의 납골당이었다.
그곳에서 유일은 준기와 종순을 만난다.
– 그래서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건데?
– 안 알려줄건데요.
그들은 다시 여행을 떠난다.
– 나 입맛 까다롭다. 알지?
마지막 맛집이 아닌, 새로운 맛집을 찾기 위해.
.
.
.
유일은 빠르게 뺨을 쓸었다. 영화를 보던 중 흘린 눈물이 살짝 말라붙어 있었다.
곁에 앉아있던 박준기와 진소희, 이종순 모두 눈가가 붉었다.
‘후시 때보다 더 좋았어.’
연기도 연기였지만, 편집과 음악도 큰 역할을 했다. 적절한 사운드가 신파적일 수밖에 없는 장면들도 담백하게 느껴지게 했다.
영화관에서 나온 뒤에도 유일은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때, 브윈이 말을 걸었다.
【 영화제 상영 후기를 보시겠습니까?】
*
– 부국제 후기
[이번 영화제도 알차게 즐기고 왔다. 좋은 작품들 많았음.이창우 특별전에서 손지수도 봄!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기억에 남았던 작품 있음
‘마지막 맛집을 위해’
> 이거 보면서 ㄹㅇ 펑펑 울었다.. 곧 개봉한다는데 또 보러갈 거임]
┗ 마지막 맛집 감독 누구임?
┗┗ 유재호
┗ 너무 잔잔하지 않아? 갠적으로 잔잔하기만 한 영화는 불호라
┗┗ 나 글쓴인데 전혀 안 지루했어
┗ 아 저거 한유일 나오는 거 아냐?
┗┗ ㅇㅇ
┗ 본 사람들은 다 평 진짜 좋네··· 기대된다
영화제가 끝난 이후, 텔레비전이나 오튜브에 자주 등장하는 김도윤 평론가가 남긴 의 한줄평이 커뮤니티 등지에 공유되었다.
– ★★★★★★★★★☆ 9.0
인생이라는, 구질구질하고도 아름다운 여행길에 대한 묵직한 단상.
악평을 남기기로 유명한 평론가, 이병수가 남긴 한줄평도 함께 소소한 인기를 얻었다.
– ★★★★★★★★☆☆ 8.0
식구(食口)가 별거인가.
┗ 뭐냐 나 이병수가 이런 평점 준 거 너무 오랜만에 봄
┗ 이분 8점 준 거 5년 만임 ㄷㄷ
┗ 헐ㅋㅋ 영화 기대된다 진짜
*
그렇게 가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을 때, 유일은 장재현 대표의 제안으로 새로운 시나리오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전에 들었을 때 글 읽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아서.”
국문학과인 유일이 시나리오 검토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이며, 장 대표는 유일을 미팅룸에 밀어넣었다.
유일은 테이블 가득 쌓인 시나리오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JJ엔터는 드라마 제작사, TN ENM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모든 시나리오들은 TN 측에서 보내 준 것들이었다.
【···분석 완료 되었습니다. 19편의 시나리오 중 최근 1년간 집필 완료된 시나리오는 2편, 최근 3년간 집필 완료된 시나리오는 4편, 집필된 지 5년이 지난 시나리오는 총 13편입니다.】
‘그래.’
대부분은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제작사와 계약되어 4부까지 집필했으나 편성 받지 못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편성 받지 못했다고 해서 완성도나 재미가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애초에 재미가 없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와 함께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던 기획팀 팀장이 가볍게 말했다.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괜찮아 보이는 시나리오 있으면 말해주세요. 어차피 당장 제작 들어갈 것도 아니니까.”
유일은 시나리오의 기획안부터 훑어보기 시작했다.
스릴러, 로맨스, 판타지, SF···
생각보다도 더 다양한 장르에 감탄하며 기획안을 훑어보던 그때였다.
‘···어?’
기획안 하나를 손에 쥔 유일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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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의 진주 (2)
팀장 옆에 앉아 시나리오를 검토하던 기획팀 직원은 앞에 앉은 유일을 흘끔 바라보았다.
‘···엄청 열심이시네.’
같은 JJ엔터테인먼트이긴 했으나, 기획팀은 매니지먼트 사업부만큼 소속 배우들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다. 한유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역시 한정적이었다.
‘가장 최근 JJ에 들어온 신인 배우이자 요즘 뜨는 배우.’
그게 다였다.
‘애초에 배우분들이랑 같이 시나리오 검토를 해본 적도 없는데.’
솔직히, 처음 한유일이 기획안 검토에 참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의아하기만 했다.
– 배우님이 직접 오신다고요?
‘…굳이?’
그러나 유일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예의바른 인사와 함께 사무실에 들어온 그는 인사를 한 뒤부터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시나리오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그냥 읽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도 더 꼼꼼했다.
“어떤 것 같으세요, 배우님?”
유일이 가장 처음 읽은 시나리오 기획안은 액션 스릴러 형사물.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는 범죄 수사극이었다.
“좋은데요? 두 형사의 캐릭터도 확실하고, 클라이막스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의심하는 부분도 좋고요. 너무 클리셰적인 느낌이 있긴 하지만, 영상화 했을 때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다만···”
유일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말을 이었다.
“빌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너무 힘없이 퇴장하는 게 아쉽네요. 전체적인 플롯이 단조로운 점도요.”
한유일의 피드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근에 뉴블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와 흡사한 느낌이 들어서 지금 시작하기엔 조금 리스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직원은 조금 놀랐다.
‘꽤··· 분석을 하잖아?’
무엇보다 다 공감이 가는 지점들이다.
직원은 팀장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배우님, 혹시 기획팀에 취직 안 하실래요?”
팀장은 진심이 담긴 얼굴로 물었으나, 유일은 특유의 예의바른 미소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