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65
아이를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
처음으로 등장한 그 매혹적인 목소리를 들은 관객들은 숨을 참았다.
“당신이 그린 게 맞아.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야. 당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도리언 그레이’의 영혼.”
‘초상’이 꿈꾸듯이 말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브루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기도를··· 기도를 해야···”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배질을 보던 ‘초상’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입끝이 말려 올라갔고, 붉은 입술 사이로 이가 드러났다.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그건··· 미소였다.
‘···저게?’
저걸 ‘미소’라고 부를 수 있나?
이토록 소름끼치는 것이 ‘미소’라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브루노는 생리적인 거부감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극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온갖 퇴폐적인 일상을 살며 타락한 도리언은 시골로 향한다.
그는 선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도리언을 보는 ‘초상’이 숨이 넘어가게 웃는다.
“···하!”
그리고 뚝 멈춘 웃음.
‘초상’의 눈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다.
그는 도리언의 모든 행동을 똑같이 따라한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 기괴하게 뒤틀린 자세로.
‘말도 안 돼. 몸을 저렇게 쓴다고?’
그런 자세로 움직이면서도, ‘초상’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순수하고도 사악한 웃음이 얼굴에 떠오른다.
악령이 들린 소년의 얼굴이라면··· 바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자신의 영혼이 회복되었다고 믿는 도리언 그레이는, 천천히 자신의 그림을 향해 다가간다.
그 모습을 보며, 브루노를 포함한 관객들은 두 손을 마주잡았다.
제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그러나 관객들의 염원과 달리, 결국 도리언은 문을 연다. 그리고 자신의 ‘초상’과 마주치고 만다.
‘···아.’
브루노는 눈이 벌게지도록 크게 눈을 뜬 채 입술을 깨물었다.
도리언과 다시 마주한 순간.
‘초상’의 얼굴에 기쁨이 떠오른다.
“···!”
지켜보던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브루노는 두 팔을 꽉 잡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탓이었다.
도리언 그레이는 칼을 들고 자신의 ‘초상’을 찌른다.
그 순간에도 ‘초상’은 웃고 있었다. 그 미소를 마주한 도리언은 몸을 떨다가, 되레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초상’은 생명이 사라지는 도리언의 얼굴을 끝까지 지켜본다. 그의 얼굴에 분노와 희열과 기쁨이 차례로 지나간다.
한겹씩 벗겨지는 양파 껍질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표면이 등장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텅 빈 미소만 남는다.
“···이게 ‘우리’의 영혼이야, 도리언.”
마지막으로 긁듯이 뱉은 대사와 함께, ‘초상’의 눈이 번쩍이다··· 서서히 꺼졌다.
.
.
.
연극이 끝났다.
무대에 누워있던 배우들이 천천히 일어난다.
그제야 관객들은 마법에서 깨어난 듯,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브루노는 벌떡 일어나 열정적으로 손뼉을 쳤다. 커다란 카메라가 멀리서부터 자신을 줌인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걸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딱 하나.
자막과 배우들을 번갈아 보느라 몇 초에 한 번씩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의 연기에서 눈을 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것만 빼고 완벽했어.”
제이는 소리 내어 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브루노의 말에 온몸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무대를 채운 중년의 배우들은, 놀라운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우아하고도 열정적으로 극을 이끌어간 그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라는 말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더욱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제이, 저 배우 대체 누구야?”
커튼콜이 끝나갈 무렵, 브루노는 자신의 친구를 붙잡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손끝은 무대를 향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가운데에 서 있는 하얀 남자에게.
“나도 몰라···.”
“거짓말! 네가 모르는 한국 배우가 있단 말야?”
“브루노, 나는 러브에이의 팬일 뿐이지 한국의 엔터테이너들을 모두 아는 게 아니라고!”
그러나 제이 역시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쉬운 눈치였다.
그날 이후 브루노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이름 모를 동양의 배우가 선사한 미스테리였다.
*
“아오··· 죽겠다.”
방금 무대를 마무리한 세 중년 배우는 헐떡이며 바닥에 앉아있었다. 이마와 목에 땀이 흥건했다.
무대 의상을 갈아입을 힘도 남지 않은 듯,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물 드세요, 선배님.”
“하··· 고마워.”
“···고마워요, 유일 씨.”
그들은 한유일이 건네는 생수병과 초콜릿을 겨우 받았다.
윤슬아는 얇은 가지처럼 힘없이 떨리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곤 피식 웃었다.
초콜릿을 까먹을 힘도 남지 않을 정도로 쏟아부은 무대였다. 그녀는 황금색 포장지로 싸인 초콜릿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 이렇게까지 연기한 거.”
“그치? 나도. 진이 다 빠지네.”
“언니~! 나도야.”
문유화와 엄지영이 맞장구를 쳤다.
젊었을 때 이후로는 연극 무대에 서본 적이 많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연극과 거리를 뒀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온힘을 다해 연기를 해본 기억은··· 까마득했다.
“···처음엔 솔직히 무리수라고 생각했어.”
저마다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앉아있던 배우들은 윤슬아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말도 안 되는 여유라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윤슬아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윤슬아가 한유일의 여유가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본격적인 리허설이 시작된 이후였다.
– 배질과 ‘초상’이 마주 보고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요?
– 아, 그럼 이 부분에서는 제가 선배님을 따라서 가보겠습니다.
짧은 기간에 완성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퀄리티였다.
– 유일 씨, 대체 언제 이걸 다 짰어?
윤슬아의 질문에 유일은 살짝 고민하다 답했다.
– 그냥···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생각했습니다. ···선배님들이랑 같이 무대에 서고 싶어서요.
세 배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돌렸다.
제작진들에게 직접 사온 간식을 나눠주고 있는 유일을 보던 엄지영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왜 인기 많은지 알겠네.”
문유화가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딱 스무살만 어렸어도···”
“언니, 미쳤어? 큰일 날 소리 그만해!”
“지혁 씨, 이건 편집해줘요. 알겠죠?”
문유화는 찡긋하며 손으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그러나 유 피디의 빙글빙글 웃는 낯을 본 순간, 절대로 편집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
‘···와, 진짜 잘잤네.’
안전벨트 착용을 알리는 기내 방송에 눈을 뜬 유일은 어느덧 가까워진 지상을 바라보다 눈을 비볐다.
【심박수 정상. 체온 정상. 산소포화도 정상. 매우 안정적인 상태입니다.】
전날 세 선배 배우들이 ‘무조건 잘 먹여야 한다’면서 커다란 그릇에 비빔밥을 해준 덕에 유일은 아직도 배가 불렀다.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이던 유일의 손에 폴라로이드 사진이 닿았다. 필립 시아마와 에이미 바움벡, 그리고 데이비드와 자신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게 아마··· 애프터 파티에서 찍은 사진이었지.’
짧은 기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알찼던 기간이었다.
레드카펫 위를 걸을 때 터졌던 플래시 보다, 가볍게 찍은 촬영과 탁 트인 연극무대 위에 섰던 순간들이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브윈은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재밌을 줄은 몰랐지.’
솔직히 말하자면, 베트남 포상휴가를 다녀온 것 보다 즐거웠다.
연기를 하는 순간 만큼은 그 어떤 걱정도 그를 괴롭히지 않았으니까.
“실장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유일은 공항까지 마중 나온 장재이 실장과 마주쳤다. 장 실장은 반갑게 인사하는 유일의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갈 데가 있어요, 유일 씨!”
그리고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유일을 끌고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고독한 한유일
장재이 실장이 유일을 데려온 곳은 다름 아닌 오피스텔이었다.
20여평의 깔끔한 신축 오피스텔. 커다란 창문 너머로는 한강이 보였다.
“유일 씨 집이에요.”
“···네?”
영문을 모른 채 집을 둘러보던 유일은 장재이의 말에 당황했다.
장재현 대표가 직접 지낼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말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집은 대표님이 직접 골랐어요. 아무래도 인테리어는 유일 씨가 직접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기본적인 것들만 준비했고요.”
유일은 널찍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벽 가운데 걸려 있는 60인치 텔레비전과 방 안에 배치되어있는 깔끔한 흰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장재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혼자 살기에 딱 좋을 거예요.”
“저 혼자 살기엔··· 좀 과한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