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70
김선아는 미간을 좁힌 채 유일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유일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방금 답한 것이 좋은 답변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르겠다.’
유일은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숨을 들이켰다.
말을 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김선아의 말에 유일은 입을 다문 채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유일 님.】
‘안다.’
김선아는 여전히 굳은 채로 유일을 보고 있었다.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김선아의 눈빛이 한층 더 이상해졌다.
심호흡을 계속하니 울렁거리던 속이 점차 나아졌다. 겨우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은 유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습하러 오셨어요?”
김선아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녀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게 유일의 눈에 들어왔다.
“···사실은, 유일 씨가 여기서 연습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김선아는 연습실 입구에 테이크아웃 컵과 샌드위치 하나를 놓았다.
유일은 작게 감사인사를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네.’
김선아가 돌아가자마자 유일은 다시 바닥에 누웠다.
다시는 ‘배경화’를 연습실에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
바로 다음 날.
촬영 현장에서 원희수 감독 옆에 앉아있던 조연출은 다방 세트장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를 모두 체크하며 콜타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배우 분들, 스탠바이 해주세요~!”
대기실에 있던 배우들이 자리를 잡자,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오늘 찍을 장면은 다시 다방에서 마주친 두 인물이 복잡한 감정으로 대화를 하는 씬이었다.
“카메라 롤-”
“액션!”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두 배우는 기원과 진희가 되었다.
진희를 빤히 바라보던 기원이 입을 연다.
“진희 씨.”
입술을 깨물던 진희가 느리게 말을 잇는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 질나쁜 놀이가 유행하나 보네요.”
“그게 무슨-”
“유부녀 꼬드기는 일이 퍽 재미있나봐요? 어디, 체질에 맞던가요?”
서현주의 ‘진희’를 지켜보던 조연출은 조용히 침을 삼켰다.
서현주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매 촬영마다 조연출은 새롭게 놀라고 있었다.
‘···대박이다.’
차분함과 불안함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표정과 제스처, 그리고 80년대 서울 특유의 예스러운 말투까지.
그녀는 매 촬영마다 점점 ‘진희’가 되어갔다.
‘왜 처음부터 감독님이 1순위로 생각했는지 알겠어.’
조연출은 조용히 감탄하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가 그리 쉬운 사람 같던가요? 잘못 보셨어요. 저,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에요.”
진희의 말에 유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가라고 하면 가겠습니다.”
‘···!’
차가운 말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나치게 차가워서 데일 것 같은 말이었다.
기원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의 곧은 시선이, 진희에게 향했다.
“전 왜 진희 씨가 하는 말이 다르게 들릴까요.”
지금껏 ‘기원’이 보였던 순종적이고 다정한 눈빛과는 전혀 다른, 도전적인 눈빛이었다.
감독과 함께 모니터를 보고 있던 조연출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마치 자신이 진희가 된 듯, 가슴이 찌릿했다.
‘뭐지?’
조연출은 놀란 얼굴로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물론 며칠 전에도 같은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걸 지켜봤으니 안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다.
‘저 눈빛은, 대본에도 없는데.’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리딩 때도 저런 눈빛을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잘 어울렸다.
‘아씨, 잠이 다 깨네···’
사실 는 잔잔하다 못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장면이 대화로 진행되었으며, 인물들도 다양하지 않았다.
자극적인 볼거리 대신 오로지 연기와 연출로 승부를 보는 영화였다.
조연출은 가 백만을 넘길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거, 될지도 모르겠는데?’
주연 배우들이 이대로만 잘해주면 말이다.
“컷!”
원희수 감독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원 감독은 입꼬리를 높이 올린 채 유일을 바라보았다.
“자기, 무슨 일이야~? 완전 물 만났는데?”
그녀는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서현주 역시 쉬는 시간에 조용히 유일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훨씬 편해보이네요.”
첫 씬부터 결과물이 좋은 덕에 촬영은 평소보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한편, 유일 역시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달라.’
이전까지 촬영장에서 했던 연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배경화’를 통해서 지켜보았던 80년대의 다방. 그리고 그 안에서 진희와 만나 연기를 했던 순간. 그저 짧게 경험해본 게 다였으나,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지나치게 짧았다는 부분이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만약 더 길게 할 수만 있다면, 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시도할 수 있는 훈련은 아닙니다.】
유일의 생각을 읽은 브윈은 경고하듯 말했다.
‘일주일에 세 번은 가능하겠지.’
【···.】
브윈은 그의 말에 답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난 뒤, 인사를 건네는 유일에게 스태프들이 밝게 화답하며 말했다.
“참, 유일 씨! 저 유랑극단 진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맞아. 저 3화도 완전 기대하고 있잖아요!”
연출팀 스태프들의 말에 유일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게 보셔서 다행이네요.”
“배우님도 보신 거죠?”
“에이, 당연히 보셨겠지!”
유일은 애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설마···. 아직도 못 보신 거 아니죠?”
“···하하.”
물론 한유일은 아직도 방영본을 보지 못했다.
다만 진하영과 동기들이 텔레비전 화면과 캡처본, 그리고 방송 이후 만들어진 다양한 짤들을 끊임없이 보내준 덕에 촬영이 어떤 식으로 되었는지는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봐야한다고 외치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서현주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재밌던데요, 유랑극단.”
“···!”
“연기도 좋았어요.”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민망함에 유일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 배우님 부끄러워 하신다!”
“뭐야, 뭐야~”
내일 촬영이 없는 덕에 신난 스태프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덧붙이기 시작했다.
“잘 쉬시고, 다음 촬영 때 뵙겠습니다.”
“네~ 배우님도요!”
“참, 배우님! 배우님은 내일 뭐하세요?”
유일은 여상히 답했다.
“학교 갑니다.”
*
유일은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향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쓴 덕에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몇 분 걸어가니 정문이 보였다.
‘강의실 가는 것도 은근 오랜만이네.’
지금은 모든 강의들의 오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오늘 유일이 들을 강의는 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스무명의 학생들의 시선이 유일에게 꽂혔다.
유일은 학생들에게 묵례를 한 뒤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곧 강의가 시작되었다.
“장편 시나리오는 1막과 2막, 3막으로 나눌 수 있고, 총 8개의 시퀀스로 이뤄져 있어요.”
빔프로젝터가 켜지고, 스크린에 표가 떠올랐다.
“시나리오를, 특히 장편 시나리오를 쓴다는 건 건물을 쌓는 것과 똑같아요. 기둥부터 제대로 쌓아야죠. 그 기둥이 바로 구조입니다.”
교수는 스크린에 떠오른 표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1막에서는 주인공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의 중심 문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인물이 이야기에 휘말릴 만한 계기를 보여주고, 주인공이 곤경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금증을 던져줘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