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71
유일은 흥미로운 눈으로 스크린에 떠오른 내용들을 노트에 정리했다.
‘재밌네.’
극작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어도 새로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해봤던 적 있기에, 꼭 들어보고 싶었던 강의였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는 장편 시나리오의 1막 부분까지 쓰는 것을 목표로 해볼 생각입니다.”
학생들이 입을 모아 답하자, 교수는 미소를 지은 채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할 건데···”
그 말에 여기저기서 가방을 챙기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속출하자, 교수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그리고 교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딱 하나만 물어보고 끝내겠습니다. 좋은 시나리오라는 건 뭘까요?”
누군가 손을 들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
“재미라, 그것도 답이네요.”
“구조적으로 탄탄한 시나리오요!”
“그래, 그럴 수도 있죠.”
고개를 끄덕인 교수는 이번엔 유일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한유일 학생이 말해볼까요. 직접 시나리오를 보며 연기하는 입장에서?”
우와아-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유일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적어도 제게 있어서 좋은 시나리오는-”
···그냥 솔직하게 답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유일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읽으면서도 ‘직접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인 것 같습니다.”
“음···”
유일의 답을 들은 교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말이네요. 한 마디로 ‘후킹’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럼 어떤 시나리오가 배우로 하여금 ‘연기하고 싶은’ 시나리오일까요?”
교수는 미소 띈 얼굴로 학생들을 바라보다 말했다.
“거기서부터는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기대감 어린 눈으로 교수를 쳐다보고 있던 학생들은 아쉬운 얼굴로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정말 죄송한데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을 수 있을까요?”
“앗, 저도···”
유일은 짧은 포토 타임을 거친 뒤에야 강의실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강의를 들어서 그런가.’
만족스러운 강의였다.
장편 시나리오의 일부분을 써야 한다는 건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유일은 기대와 걱정을 한번에 느끼며 캠퍼스를 빠져나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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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저녁, 어김없이 학교 커뮤니티에는 한유일을 봤다는 인증글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 ㅁㅊ
[오늘 한유일 봄]┗ 헐 진짜?!!?!?!
┗ 어디냐 당장 위치공유 plz
┗ 아까 일춘관에서 강의 듣던데
┗┗ ㅠㅠ하 나도 같이 강의듣고 싶다..
┗┗ 유일 씨.. 재미로 공대 강의는 안 듣겠지..?
┗┗ 하겠냐
– 한유일 왔다는 거 실화임?
[ㅈㄱㄴ]┗ 하 지금이라도 학교 가면 볼 수 있음?
┗┗ 이미 돌아갔음..
┗┗ ㅠㅠㅠ
┗ (사진)
┗┗ 만나면 사인 받으려 했는데 말도 못 걸었음..
┗┗ 분위기 ㅁㅊ
┗┗ 아니 갈수록 잘생겨지는 것 같음】
‘이제 됐다.’
유일이 민망한 얼굴로 말하자, 반투명한 창은 금세 사라졌다.
유일은 짧은 스트레칭을 한 뒤 거실에 섰다.
【···바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유일은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브윈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53씬의 ‘배경화’를 시작하겠습니다.】
.
.
.
유일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배경화 훈련을 했다. 민우진에게 실신 직전의 상태를 보일 뻔한 위험이 다섯 번 정도 있었으나, 다행히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덕에 의 촬영은 큰 NG 없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의 촬영 마지막 날이 다가온 것이다.
한번만 도와줄 수 있어?
“소품팀 여기 리스트 체크 한번 더 해주세요!”
“세컨드 카메라 배터리 좀 갈아주세요~”
유일은 열기로 가득한 촬영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정말 끝이네.’
원희수 감독과 처음으로 만났던 순간이 엊그제 같았다.
배경화 훈련으로 인해 실제로 연기했던 기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원으로 지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오늘이 유일의 마지막 촬영이긴 했지만, 그게 모든 촬영이 마무리 되는 날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기원’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아직 서현주와 구일환의 촬영분량은 남아있었으나, 촬영장 분위기는 진짜 마지막 촬영이라도 되는 양 뒤숭숭했다.
“어머, 얘네 왜 이래~ 너네 아직 한참 남았어~ 몸에 힘 줘! 응?”
원희수 감독이 제작진을 향해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유일 역시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티를 내진 않았다.
“유일 씨는 마지막까지 잘해보자고~”
원 감독의 말에 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세팅이 모두 끝난 뒤, 원희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액션~!”
.
.
.
진희는 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청년의 얼굴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만다.
진희를 마주한 기원의 얼굴에 점차 파동이 인다.
“···절 기다리셨군요.”
기원의 눈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 차올랐다.
지켜보는 이들조차 숨가쁘게 만들 만큼.
눈동자 깊은 곳에 감춰진 뜨거운 감정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불씨가 타오르는 것처럼, 감정이 흘러나왔다.
초조함을 애써 삼키고 있는 기원의 얼굴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다.
그동안 진희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주가 되어 말 그대로 ‘깨진 거울’처럼 연기하던 기원은, 마지막에 가까워져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대체··· 기원 씨가 저에 대해 뭘 아시는데요?”
진희의 물음에 기원은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꿈꾸는 듯한 얼굴로.
“진희 씨는 기분이 좋을 때 ‘가을 안개’를 흥얼거려요. ···모두가 잠든 틈을 타서 글을 쓰시고요.”
기원은 열띤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진희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나가다 고양이라도 보면 한참 자리를 벗어나질 못하죠.”
기원의 말을 듣던 진희는 점차 시야가 흐려진다.
“당신이···”
진희는 겨우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간다. 진희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으로 기원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은, 표백되는 것만 같아요.”
나왔다.
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카메라 너머로 지켜보던 조연출은, 서현주가 뱉은 대사에 탄식하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연기를 보고 있는데, 타인의 내밀한 일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에는 예의 바른 신인 배우와 우아한 대배우인데, 슛이 들어간 이후에는 80년대에 살고 있는 두 인물을 지켜보는 듯했다.
그때, 기원이 손을 뻗는다.
“나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진희는 그의 하얀 손을 피하지 않는다.
“제발, 울지 마세요.”
기원의 손이 진희의 얼굴을 스치듯 움직인다. 기원의 손끝에 반짝이는 눈물이 묻어난다.
그리고, 둘의 그림자가 하나로 포개졌다.
지켜보던 제작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참았다.
그들의 사랑은 밝고 화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배경에 걸린 꺼질 듯한 전등처럼,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처연했다.
‘아···.’
조연출은 자신도 모르게 코 끝이 찡해지는 듯했다.
이미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안타까움이 솟아났다.
이 둘의 사랑은 처음부터 화사한 꽃길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기원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진희는···’
이 씬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방에서 자신이 쓴 소설을 보게 된다.
‘기원’이 주인공인 소설을.
‘하··· 빨리 촬영 끝내고 가편집본 보고 싶다.’
벌써부터 완성된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설레는 기분이었다.
비록 완성되기 전까지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갈리겠지만···
‘시X. 그게 대수냐.’
어느새 본인이 갈리는 것에 대해선 너그러워지게 된 조연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