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77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 순수한 기쁨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모두 몸서리를 치게 할 만큼 잔혹한 기쁨.
‘···오?’
피곤으로 인해 뻑뻑해진 눈을 끔뻑이던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이대로 오케이 해도 되겠는데?
‘사극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톤이나 말투에서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유일은 사극 특유의 장단음 역시 유연하게 처리했다.
···제법이네.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일을 바라보았다.
주연을 맡은 세 배우 중 인지도나 경력 면에서 그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 리딩만 두고 보았을 때, 그가 연기력 측면에서 비교당할 일은 없을 듯했다.
기자는 한유일의 열연을 이렇게 평했다.
‘···회사에서 레슨을 빡세게 받았나보군.’
그 이후로도 기자는 한유일에게 집중했다.
굳이 그래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절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주변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리딩이 끝날 무렵엔, 어느새 그는 첫 방영 날짜를 캘린더에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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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와 달’ 무더위마저 날리는 화기애애한 리딩현장
– ‘해와 달’ 대본리딩 현장 공개
– ‘해와 달’ 강혜성-한유일 팽팽한 연기 대결
┗ 오
┗ 생각보다 얼굴합 더 좋은데?
┗ 이렇게 보니까 한유일 되게 서늘한 얼굴이네.. 유권이랑 잘 어울리는 듯
┗ 설렌다】
“유일아···. 괜찮냐.”
기사를 보던 유일은 민우진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무더위가 시작될 즈음에 시작된 촬영.
두꺼운 한복을 겹쳐 입은 배우들은 모두 휴대용 무선 선풍기와 얼음팩을 쥐고 있었다.
“보는 내가 더 덥다, 아주.”
“괜찮아요.”
더위쯤은 참을 만했다. 오히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장을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이 안쓰러웠다.
물론 제작진의 생각은 달랐다.
“촬영까지 아직 시간 남았으니까, 밴에서 쉬고 계세요.”
유일은 배우의 컨디션을 걱정하는 연출팀에 의해 등 떠밀리듯 밴으로 향했다.
그때,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우님! 유일 배우님!”
유일은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치는 손길에 뒤를 돌아보았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신우 님?”
에서 주연과 단역으로 만났던 윤신우였다. 촬영이 끝난 이후, 핸드폰 번호에 이어 샤스타까지 서로 맞팔을 한 상태였다. 이후로도 종종 연락을 하긴 했으나, 이렇게 대면하게 된 것은 촬영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렇게 만나서 너무··· 좋네요.”
윤신우는 살짝 말을 흐렸다. 유일은 몰랐으나, 그는 진심으로 감동받은 상태였다. 대본 리딩 때는 경황이 없어 아는 척도 못했는데,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다행이었다.
수많은 학생영화를 찍으며 상업에서 종종 단역이라도 얻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었으나, 그럼에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었다.
그런 기회가, 이렇게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비록 대사는 몇 줄 없었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에서 인물소개에 두 문장 이상 올라간 역을 맡은 게 처음이었다.
그는 촬영이 끝난 이후에도 촬영장을 갈 때마다 종종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그가 함께 촬영해야 했던 배우가 한유일이 아니라 다른 배우였다면, 그날의 기억이 다른 방향으로 남았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한동안 상업 촬영장에 발을 붙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신우 배우님은 워낙 연기를 잘하시잖아요. 잘 되실 줄 알았어요.”
유일의 말에 윤신우는 민망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번에 그가 에서 맡은 역은 넷째 왕자의 호위무사였다.
넷째 왕자는 본래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였으나, 주인공 이빈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뜻밖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둘이 친해요?”
유일과 신우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시선의 끝에는 강혜성이 있었다. 윤신우는 놀란 눈으로 강혜성의 탄탄한 몸과 진한 이목구비를 바라보았다.
강혜성은 처음엔 외모로 주목을 받았으나, 점차 연기력으로 주연 자리를 꿰찬 배우였다. 20대 남자 배우들 중 흔치 않은 군필자라, 젊은 남자배우들의 공백을 채우며 갈수록 주가가 고공 행진 중인 인물이기도 했다.
워낙 건강하고 번듯한 이미지이기도 하고, 같이 일한 사람들과의 평가도 좋은 편이라 대중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그렇긴 한데···’
윤신우는 함께 촬영을 하며 친해진 배우에게 슬쩍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 혜성 선배는··· 멀리서 보면 좋아요. 멀리서 보면.
주변을 살피며 속삭인 그는 ‘절대 자신이 이런 말 했다는 건 말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그 덕에 윤신우는 살짝 긴장을 한 상태였다.
강혜성은 윤신우는 보이지도 않는 듯 행동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유일에게만 향해 있었다.
“유일 씨··· 맞죠?”
강혜성은 살짝 턱을 들고선 웃어 보였다.
“하하, 내가 이름에 약해요. 미안해요~”
챙겨주는 듯하지만 묘하게 거만한 말투.
윤신우는 표정을 굳혔으나, 한유일은 여전히 변함 없는 미소를 지은 채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극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사람들 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드라마 잘 되면 그런 소리 쏙 들어가니까.”
강혜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작품 도준환 감독님만 아니었어도 안 했을 거예요. 원작 팬분들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차라리 안 어울린다고 했으면 부담이라도 덜할 텐데 워낙 기대를 해주시니까~”
가상캐스팅 1순위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고?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던 윤신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은근히 유일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글쎄요. 저는 오히려 기대 해주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요?”
혜성은 피식 웃고는 흘리듯 말했다.
“열정 넘치시네. 좋네요~”
그리고 강혜성은 몇 마디를 중얼거리더니 자신의 밴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유일이 건네 준 얼음팩을 만지작 거리던 윤신우는 강혜성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 견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한유일은 모르는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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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도준환 감독이 크게 외쳤다.
“자, 슛 들어갑니다~ 오늘 스케줄 빡빡하니까 열심히 해봅시다!”
그리고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 장소들이 워낙 전국에 펼쳐져 있는 터라, 의 첫 촬영은 2부 부터 시작되었다.
유도화와 이빈이 만나는 1부를 지나, 2부는 잠행을 나간 세자가 역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형님의 병환이 깊어지셨다고?”
세자의 병환에 대해 몰래 듣게 된 이빈은 심란한 마음으로 궁을 걷는다. 그때 넷째 왕자인 임연대군이 등장한다.
“날이 좋습니다, 형님.”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느냐.”
“중천에 머물던 해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하늘이 청명하니, 어찌 아니 좋을 수 있겠습니까.”
현재 세자의 병이 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임연대군을 바라보던 이빈의 미간이 좁혀졌다.
장남인 세자와 오래 전 죽은 둘째 왕자를 제외하고는, 임연대군과 이빈은 가장 가까운 형제였다.
어릴 때는 함께 뛰어다니며 놀던 아우였건만. 이빈은 안타까움이 담긴 눈으로 임연대군을 바라보았다.
“···최근에 사귄 벗이 하나 있습니다. 곧 형님께도 소개시켜 드리지요.”
‘벗이라고?’
빈은 자신의 아우를 믿지 않았다. 임연대군은 열댓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철저한 계산을 통해 사람들을 곁에 두기 시작했다. 이빈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 ‘벗’이란 자는 네가 대군임을 알고 있느냐.”
“아닙니다. 그저 하릴 없이 떠도는 한량으로 알고 있지요.”
‘역시.’
사극을 해본 티가 나는 발성이다. 도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를 외쳤다.
다음 씬은 가까운 세트장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이빈이 임연대군의 ‘벗’과 만나는 씬. 바로 이빈과 유권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장면이었다.
여느 때처럼 허수하비를 향해 목검을 휘두르는 유권이 보인다. 정확한 동작으로 허수아비의 목을 벤 유권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자세를 바꾼다.
아무도 알지 못 했지만, 그는 이 순간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권.”
임연대군은 흐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든다. 때마침 유권이 고개를 돌린다.
그의 눈빛을 마주한 이빈은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
살벌했던 눈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어느새 유권은 어떤 감정도 드러나있지 않은, 텅 빈 눈으로 이빈을 바라본다.
임연대군이 입을 연다.
“전에 말했던 내 형님이네.”
빤히 이빈을 바라보던 유권은 말을 더하는 대신 바닥에 떨어진 목검 하나를 가리킨다.
“괜찮으시다면, 한번 잡아보시지요.”
“···뭐라?”
이빈이 당황한 낯으로 아우를 바라보자, 그의 아우는 즐거운 듯 빙글거린다.
“벗이 되기 위해선 꼭 검으로 합을 나누어야 한다는 유별난 고집이 있는 자입니다. 퍽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우의 말을 듣고 다시 평온한 유권의 얼굴을 본 이빈은 깨닫는다.
저자는 자신이 대군임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빈은 천천히 목검을 들어올린다.
그는 다른 왕자들 중에서도 무를 오랫동안 갈고 닦은 편에 속했다.
저 오만 무례한 태도를 바로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이빈의 몸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