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80
한참 짜증을 내던 강혜성은 창문 너머로 시선을 두다가 중얼거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강혜성은 입매를 끌어올린 뒤 밴에서 내렸다. 언뜻 보면 여유로운 듯 보이는 미소였다.
매니저는 불안한 눈빛을 한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유일 씨~”
강혜성의 부름에 한유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유일은 유권의 메인 의상인 흰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늘은 좀 시원하네. 안 그래요~?”
그는 씩 웃으며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 합 좀 맞춰볼까 해서.”
걱정하던 강혜성의 매니저는 메이킹필름 카메라가 계속해서 그를 찍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안도했다.
강혜성이 이미지는 끔찍하게 챙기는 배우인 덕에,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는 매니저가 걱정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럼 지금은 혼자 산다고요? 좋네. 참, 유일 씨 몇 살이라고 했죠?”
대본 연습을 하러 왔다던 강혜성은 대본은 무릎에 둔 채 한유일의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오, 내가 다섯 살이나 많네, 하하~ 말 놓아도 되죠? 기분 나쁘면 말해줘요.”
“네. 상관 없습니다.”
그러자 강혜성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유일아~ 벌써 촬영장에서 만난 것만 해도 벌써 몇 번인데~ 이제야 친해진 것 같고 좋네.”
강혜성은 그 뒤로 한참이나 자랑 섞인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 한유일은 앞에 놓인 초콜릿바를 크게 한 입 베어 먹었다. 제작사에서 준비한 간식 중 하나였는데, 꽤 유명한 제품 같았다.
‘맛있네.’
강혜성과 한유일이 각각 자신의 연설과 초콜릿바에 심취해 있을 동안, 이보희는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오빠는 또 시작이냐.’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바라보던 이보희는 천천히 두 배우를 향해 다가갔다.
“오빠.”
“어어~ 우리 도화 왔어?”
지나치게 다정한 음성에 눈썹을 올린 보희는 이내 자신들을 찍고 있는 메이킹 카메라를 발견했다. 그녀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뭐, 뭘~”
“오빠는 카메라 켜졌을 때만 다정하잖아.”
시니컬하게 답한 보희는 한유일을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이 오빠가 하는 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나중에 다 자기 미담으로 써먹을 테니까.”
이보희의 말에 강혜성은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보희야~”
“오빠 9년 전에 나랑 촬영할 때 나랑 얘기 했던 거 지금까지 써먹고 있잖아. 사골도 그렇게 쓰면 상해.”
데뷔 초에 강혜성과 함께 촬영을 했던 이보희는 당시 데뷔 1년 선배였던 그로부터 귀에 딱지가 않도록 설교를 들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 그녀가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게 된 이후부터, 강혜성은 토크쇼나 인터뷰가 있을 때마다 그때를 끄집어 내며 ‘보희가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해주었다’는 자체 제작 미담을 만들어내곤 했다.
“오해 마세요! 저희 정말 친해서 이러는 겁니다!”
강혜성이 벌떡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직전까지 정색하던 이보희 역시 장난처럼 웃어보였다.
그 덕에 카메라에 비친 배우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보였다.
‘상대역이니까 이번만 봐준다.’
···사랑스러운 웃음 뒤에는 꽤나 냉소적인 속마음이 숨어 있었지만.
잠시 이보희의 눈치를 보던 강혜성은 별안간 핸드폰을 들어올리더니 ‘하나, 둘, 셋!’을 외쳤다.
찰칵.
“아! 오빠! 누가 말도 안 하고 셀카를 갈··· 찍어?”
“에이~ 예쁘게 나왔는데~”
표정을 구긴 채 강혜성의 핸드폰을 들여다본 이보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진 않네.”
“이거 샤스타에 올리려고. 유일이도 괜찮지?”
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사진이 꽤 괜찮게 나왔던 것이다.
이보희는 한 손에는 빈 초콜릿바 봉지와 다른 손에는 대본을 들고 있는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연습하려고요?”
‘굳이 이 사람 옆에서···?’ 라는 문구가 생략된 질문이었다.
“아, 네. 선배님께서 대본 연습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그렇구나.”
여상히 답한 이보희는 비어있던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나도 같이 해요, 그럼.”
이보희가 합류하며, 대본 연습은 비로소 정상 궤도에 올랐다.
.
.
.
“도화야.”
“정말··· 정말 오라버니가 하신 짓입니까.”
“···정녕 나를, 이 오라비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이보희가 침묵하자, 안타까운 음성으로 말하던 한유일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 표정을 본 강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뭐··· 뭐야.’
그는 빠르게 메이킹필름 카메라를 티나지 않게 흘끔 거린 뒤 자세를 바꿨다.
본래는 그냥 시늉만 하려 했는데···
‘제대로 안 하면··· 망한다.’
그 덕에 스태프들은 촬영 만큼이나 열정적인 대본 연습 현장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연습은 슛 이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배우들이 열정적이야, 아주~”
내막을 모르는 도준환 감독만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
[@strong_sung (사진) (사진) 멋진 후배 보희랑 유일이~ 연습하다가 한 컷!^^ ]┗ 무슨 일이죠 사진에서 빛밖에 안 보이는데요
┗ 이보희 미모 무슨 일이냐
┗ 감사합니다 혜성님.. 그마나 유일이 실물 절반은 담는 셀카를 찾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촬영장 분위기 좋은가보다ㅠㅠ
이혜진은 빠르게 샤스타 사진을 캡처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의 방영만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살고 있었다.
‘···내 배우가 이렇게 도포가 잘 어울릴 줄이야!’
물론··· 온라인 팬미팅에서의 즉흥연기만 봐도 사극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팬카페에서도 한유일이 사극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하며 주접을 떠는 글들이 다수 올라온 적 있었고.
그 소망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유권이라니···.’
짤을 만들어낼 때마다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이혜진의 핸드폰에 오튜브 알림이 뜬 것은 그때였다.
– [해달_비하인드] “우리 친해요~” 오해 금지! 상큼미 팡팡 터지는 권X도X빈
이혜진은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 속 한유일은 옆에서 누가 뭐라하든 꾸준히 초코바를 섭취하고 있었다.
– 그럼 같이 해요.
[열정적인 해달즈!]몽글몽글한 자막과 함께 이보희가 대본 연습에 합류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대본 연습이 시작되자, 한유일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 도화야.
– 넌 나를, 이 오라비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헉.’
예고편에 나왔던 대사다!
저 대사만 돌려보며 오늘 방영될 회차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 얼른 보고 싶다.”
그리고 이혜진의 바람대로, 그날 저녁 7화의 막이 올랐다.
*
도화는 자신의 면역을 이용할 방법이 없는지 찾고자 한다. 동시에 감염되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며 다양한 약재들을 이용해 환부를 꼼꼼히 살핀다.
– 어찌 귀한 아씨께서 저희 같은 것들을 살피신단 말입니까···.
– 존비와 귀천을 떠나,우선 사람이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당시 의녀가 천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도화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의도치 않게 자신에게 피가 섞인 가래를 뿜었던 환자가 처참하게 난도질 당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충격받은 채로 손을 떨던 도화는 그 살해 현장에서 익숙한 칼을 보게 된다.
그 것은, 유권이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칼이었다.
–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충격을 받은 도화는 그 길로 유권을 찾아간다.
피묻은 칼을 보이며, 유도화는 눈물을 머금고 묻는다.
물끄러미 칼을 내려다 보던 유권은 천천히 시선을 올린다.
– 도화야.
그는 오로지 유도화에게 집중한 채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부모를 잃은 아이를 바라보는 듯, 안타까운 얼굴로.
– 정말··· 정말 오라버니가 하신 짓입니까.
– 아니다.
– 그렇다면 누가! 누가 이 칼로 끔찍한 짓을 했단 말입니까!
– ···정녕 나를, 이 오라비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도화는 답하지 않는다.
다정한 줄만 알았던 오라버니에 대한 의심은 이미 싹을 틔운 지 오래였다.
이후, 플래시백이 진행된다.
초막을 지키던 유권이 잠시 사라져서 도화가 이빈의 노래를 들으며 잠든 날.
유권은 도화에게 피가래를 뿜었던 환자를 찾아갔다.
– 누··· 누구요···. 여긴··· 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