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84
뜻밖의 단어에 유일의 미간이 좁혀졌다.
【강혜성과 함께 연기한 다수의 남자 배우들이 논란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받아 ‘나락’에 떨어졌다는 의미로, ‘나락맨’이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유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 강혜성이 만든 판이에요.”
이보희의 말에 유일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한유일의 얼굴을 빤히 보던 이보희는 그가 이해를 못하는 듯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남자 배우들 나락 보낸 거, 그거 강혜성이 한 짓이라고요. 지금까지 다 그랬어요. 9년 전에 저랑 같이 드라마 찍었을 때부터.”
“···!”
【의 주연을 맡았던 ‘김도현’은 학교폭력 논란으로 몇 년간 활동을 쉬었습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갈수록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회사에서 이상한 물이 들었나··· 아무튼, 이번에 유일 님 그런 기사 터진 것도 강혜성 짓이에요.”
“···확실합니까?”
“98.9%요. 제가 누구랑 통화하는 걸 엿들었거든요.”
이보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은 것은 아니라며 설명했다.
“뭐랬더라··· ‘괜찮은 아이템을 터트려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아마 기자한테 했던 말이겠죠.”
그녀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그래도 아닐 거라 믿었는데. 이번엔 좀 얌전하게 지낼 줄 알았거든요.”
‘···그렇단 말이지.’
그쪽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장재현 대표가 알면 좋아할 사실이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됐어요. 다 끝나고 나서 뒷북치는 건데···.”
그때, 타이밍 좋게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렸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
한편, 한유일과 이보희가 한참 촬영 중일 때, 강혜성은 뒤늦게 도착해서 분장을 받고 있었다.
내내 똥 씹은 얼굴로 앉아있던 그는 분장팀이 나가자마자 핸드폰을 들었다.
“···아니, 이건 말이 다르잖아요!”
강혜성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전화를 받고 있었다.
“제대로 꼬투리 잡아서 터트려 주신다 했잖아요~ 이게 뭡니까, 네?”
– 저기··· 배우님. 저희 쪽도 지금 장난 아닙니다. JJ 측에서 고소한다고 난리라고요.
“···하, 애초에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장난 친 건 그쪽아니냐고요~”
강혜성은 압박하듯 말을 꺼냈으나, 상대방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 배우님이 커버쳐준다고 하셔서 저도 억지로 터트린 건인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한데요.
‘···하.이렇게 나오시겠다?’
강혜성는 입술을 깨물었다.
– 배우님.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우선 티오 엔터에서 정말 다 막아 줄 수 있는 거 맞습니까?
“아~ 그런 건 걱정 말라니까요. 지금까지 해봐서 알잖아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강혜성은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
“쯧.”
짜증나게 하네.
그는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대기실에서 다리를 꼰 채 아메리카노를 들이키고 있던 그때였다.
“···저, 형.”
“어.”
“실장님 전화인데요···”
“나 지금 바쁜데.”
평소라면 이렇게만 말해도 금방 자리를 떴을 텐데. 웬일인지 그의 매니저는 핸드폰을 든 채 버텼다.
“···근데 실장님이 더 바쁘신 것 같아서요.”
‘뭐야.’
강혜성은 찡그린 채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의 매니저는 핸드폰을 건네자마자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여보세요~?”
강혜성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태도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귀를 때릴만큼 따가운 목소리였다.
– 야! 씨, 강혜성!
실장의 목소리에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실장님~?”
– 그래, 나다 이 새X야.
실장은 숨돌릴 틈도 없이 쏘아대기 시작했다.
– 이번 한유일 그거, 네 짓이냐? 너 아주 막나가는구나? 오냐오냐 해주니까 네가 무슨 왕인 줄 알아?! 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외침에 잠시 당황하던 강혜성은 이내 그린 듯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아니··· 실장님. 이런 문제는 예~전에 다 이야기 끝난 거 아니에요?”
– 하··· 그래. 근데 하필 JJ를 건드리냐고, 이 XXX야!
···JJ?
잠시 이마를 찌푸리며 고민하던 강혜성은 그게 한유일의 회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왜요?”
– 거기 대표 완전 또라이야. 미친 놈이라고!
“그게 무슨···”
– 너 박영현, 걔도 거기서 빼간 거잖아. 그때도 우리 회사를 얼마나 탈탈 털어댔는지 알아?
···무조건 걸리적거리는 싹을 치워버려야 겠다는 생각만 했지, 소속사가 어떤 곳인지는 고려도 하지 못했었던 게 사실이었다.
강혜성은 한참이나 멍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
.
.
대기실에서 나온 뒤에도 강혜성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그는 말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아닌데.’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
보통 그 또래 남자 배우들이라면 하나쯤은 뭐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클럽에 다닌다든지, 중고등학교를 거칠게 다녔다든지, 여자를 좋아한다든지 등등.
‘근데 딸랑 그거 하나 나온다고?’
그것도 되레 한유일에게만 동정표가 쏟아질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소속사는 미친 개처럼 달려들고 있다는 소식을 방금 들은 참이었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
한유일은 평소와 다름 없는 얼굴이었다. 그게 강혜성을 더욱 짜증나게 했다.
‘이게 다 저 자식 때문이다.’
한유일이 유권만 맡지 않았어도, 그 역할이 주연을 밀어낼 만한 역이 아니었어도···
강혜성은 이를 악문 채 입을 열었다.
“···됐고. 몸도 안 좋은데 바로 들어가죠.”
“알겠습니다.”
곧 카메라가 돌아가고, 도준환 감독이 ‘액션’을 외쳤다.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이빈의 대사로 시작되고 끝나는 장면.
액션도, 대사도 물흐르듯 흘러갔다.
“···컷!”
도준환 감독은 진지한 얼굴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일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뭔가 부족한데.’
액션스쿨에서 연습을 하다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결의 아쉬움이었다.
‘완성도가 다르다.’
다른 점은, 그것이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역으로부터 느껴졌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는 것도, 그리고 소위 말하는 ‘나락’으로 보내려 했다는 것도 불쾌했으나.
가장 불쾌한 것은 그가 제대로 연기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감독님.”
“응? 왜, 유일 씨?”
“한번만 다시 가고 싶습니다.”
도준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거 괜찮았는데.’
그러나 새로운 테이크가 시작되자마자, 도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한유일의 연기가 직전보다 더욱 매서워졌던 것이다.
‘오?’
“···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갈 수 있을까요.”
옆에서 강혜성은 한유일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 역시도 ‘혜성 씨도 괜찮지?’ 하고 되묻는 감독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액션!”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테이크가 시작되었다.
‘···뭐야, 아직도 이런 힘이 남아있었어?’
무게가 있는 칼을 쓰는 액션씬 특성상, 힘이 부칠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유권’의 칼은 더욱 날카로웠고, 더 위협적이었다.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것만이 아니었다.
‘완전··· 잡아먹고 있잖아.’
기진맥진한 강혜성을 아예 가지고 노는 듯했다.
도준환은 미간을 좁힌 채 모니터링에 집중했다.
‘생각보다··· 쓸만한데.’
비록 대본과는 약간 달라졌으나, 카메라에 비치는 그림이 꽤 괜찮았다.
이젠 도 감독도 다음 테이크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유일의 무한 테이크는 얼마 안 가 끝나고 말았다.
“···씨, 완전 미친 거 아냐? 사람 죽일 일 있어?!”
참다못한 강혜성이 씩씩대며 자리를 떠나버린 것이다.
“···방금 뭐야?”
“왜, 무슨 일인데?”
강혜성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이며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주변에서 쑥덕이는 소리가 귀에 꽂히듯 들렸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