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88
구할 수만 있다면 영상본이라도 찾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직장인의 덕질이 잠시 중단되었다.
직장인을 방해한 것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어, 대리님! 원래 ‘우주열차’ 안 보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냥··· 볼 거 없어서요.”
직장인은 표정을 숨기기 위해 애썼다. 직장인이 팀원들에게 ‘ 도시락을 싸왔으니 오늘 점심은 라운지에서 혼자 먹겠다’고 말한 것은, 당연하게도 편하게 덕질을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대리님, 혹시··· 한유일 좋아하세요?”
“···.”
직장인은 덕질이란 것은 모를 것 같은 맑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직장동료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네. 뭐, 요즘 나오는 배우들 중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제 동생도 저 배우 진짜 좋아하는데. 팬클럽도 가입했어요! 이름이 그···”
“유일무이요?”
아차.
직장인은 이미 자신이 일반인 코스프레를 반쯤 포기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눈치 없는 동료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네! 거기도 가입하고, 무슨 시사회도 갈거라 그러던데···”
그는 월명대에 다니는 동생이 얼마나 한유일을 쫓아다녔는지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제가 너무 방해했네요. 죄송해요, 대리님. 편하게 보세요!”
‘···’
직장인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덕질하던 현장을 들킨 것보다도 다른 곳에 신경이 팔려 있었다. 문득 처음 극장에서 한유일을 보았을 때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는 아는 사람 찾는 게 더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직장인은 스크린 너머 속 누군가를 이토록 공백 없이 좋아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 와, 유일 씨~ 진짜 소처럼 일하셨네요!
– 아닙니다. 아직 부족하죠.
– 아우 뭐야~ 욕심쟁이잖아!
2년의 시간.
그동안 한유일은 꽤 많은 작품에 참여했고, 하나 같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말··· 열심히 살았네. 내 배우.’
직장인은 불쑥 솟구치는 한유일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 이젠 ‘진희’에 대해 이야기해 볼 차례인데요! 삶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던 여자, 진희가 신비로운 청년인 기원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멜로죠. 한국 영화의 전설이라 불리는 김수봉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고요.
– 맞습니다.
– 그러면, 유일 씨부터 기원이 보는 진희에 대해 말해주세요!
···그리고 직장인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심장을 부여잡게 되었다.
– ‘진희’는, 기원의 ‘숨’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말을 멈춘 유일은 살짝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진희’가 없었다면··· 기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말의 내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평소와 다른 눈빛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직장인은 한유일이 낯설게 느껴졌다.
‘!!!’
···물론 좋은 쪽으로.
덕분에 직장인은 카페인 없이도 각성상태를 유지하며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
.
.
한유일과 서현주가 출연한 는 사흘 만에 10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최근 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은 한유일. 그리고 대표적인 신비주의 배우로 불렸던 서현주가 출연한 영상이라는 점도 가파른 조회수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서현주는 최근까지도 작품 이외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그녀가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긴 했다.
┗ 30분 순삭.. (추천 : 1.3k)
┗ 우주 텐션에 기빨리지 않고 받아주는 배우들 처음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천 : 1.1k)
┗ 서현주 예능 나온 거 처음 아닌가??? 자주 나왔으면.. (추천 : 341)
┗ 둘 얼굴합 무슨일 (추천 : 236)
당연하지만, 한유일에 대한 언급 역시 많았다.
┗ 유일 씨 진짜 소네··· (추천 : 1.4k)
┗ 한유일은 어떻게 목소리도 좋냐 (추천 : 425)
┗ 근데 유일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필모 무슨 일이야 (추천 : 286)
┗┗ 심지어 군필..
┗┗ 마음이 안정된다
┗┗ ㄹㅇㅠㅠ 공백기 없이 볼 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함..
결과적으로 에 출연하기로 한 한유일의 선택은 옳았다.
발랄하고도 쾌활한 우주가 이끄는 프로그램에서 호감인 두 배우의 편안하고도 재미있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호기심을 끌어모은 것이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영화 에 대한 기대감으로 확장되었다.
┗ 그래서, 영화 개봉일이 언제라고요? (추천 : 572)
프리미어 시사회
– 장재현 대표님 : 반응이 좋네요.
– 장재현 대표님 : 고생하셨습니다, 유일 씨.
유일은 장 대표에게서 온 문자에 답장을 하며 차에 올라탔다.
– 감사합니다.
– 그런데 대표님. 실장님께 들어온 시나리오들이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시나리오 검토 좀 해볼 수 있을까요?
장재현 대표는 메시지를 확인했음에도 한참이나 묵묵부답이었다.
‘···차기작 하고 싶은데.’
유일은 최대한 빨리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 적어도 2년 동안은, 개미처럼 일해야 했다.
눈앞에 떠 있는 달성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연기를 쉬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이··· 더 잘하고 싶다.’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유일 님.】
‘···.’
유일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민우진의 말에 차에서 내렸다.
그는 NBS 지하 1층의 촬영장으로 내려갔다. 스태프는 유일을 초록색 문에 종이가 붙어있는 대기실로 안내했다.
[ 출연진 대기실]‘···신기하네.’
‘오식탁’ 세트장은 아담한 음식점 같았다. ㄷ자 형태로 배치된 조리대와 뒤에 놓인 커다란 진열대엔 수많은 재료들이 가득했다.
슛이 들어가자, MC들과 패널들은 발랄한 오프닝 인사를 시작했다.
“여러분의 식탁!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오늘의 식탁을 책임집니다!”
메인 MC 중 하나이자 멘토인 박희진, 그리고 오랫동안 예능계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이강훈과 구해영이 박희진의 양 옆에 앉아있었다.
패널 중에선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싱인하’ 홍보 당시 에서 만났던 정주하였다. 그녀는 유일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오늘의 일일 셰프를 소개합니다!”
그 소개와 함께 한유일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나갔다.
“반갑습니다. 한유일입니다.”
환대를 받으며 비어있던 자리에 앉은 유일은 대본에 나와있는 대로 패널들과 가벼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렇게 가벼운 오프닝이 지나가고, 오늘의 사연의 주인공인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했다.
‘오식탁’에서 모든 일반인 출연자들은 입만 뚫린 거대하고 귀여운 디자인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마스크는 ‘오식탁’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오늘의 사연자는 너구리 얼굴이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걸어나왔다.
“자, 오늘 저희에게 주문하실 요리가 무엇일까요?”
이강훈의 질문에 사연자는 쭈뼛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 제가 대학교에서 새내기였을 때··· 좋아하던 선배가 있었거든요.”
“어머···!”
정주하가 기다렸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나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
“벌써부터 달달하다, 달달해~”
모두 흐뭇한 얼굴로 한 마디씩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때 선배가 되게 특이한 크림 파스타를 해줬어요.”
이야기를 듣던 박희진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떤 식으로 특이했지요?”
“그때 제 기억 상으로는··· 된장이 들어갔어요.”
그 말을 들은 박희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된장 크림 파스타는 그리 어려운 메뉴는 아닐텐데요?”
“저도 그래서 집에서 몇 번이고 해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집에서 해먹어도 그 맛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고소하면서도 좀··· 더 부드러운 느낌이었는데.”
“레시피에 대해선 전혀 못 물어보셨어요?”
“네.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었어서···”
패널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친다.
된장, 크림, 그리고 파스타. 그 세 가지 말고는 알 수 있는 사실이 없었다.
사실 파스타는 라면 다음으로 쉽다고 할 정도로 가벼운 요리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 유일 조차 부담 없이 할 수 있을만한.
···물론 넣는 재료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사연자와 패널들의 말을 경청하던 유일은 박희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식탁’의 오프닝이 끝나려는 타이밍이였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그 외침과 함께, 세트장 뒤에 있는 커다란 LED 스크린에 30분 타이머가 떠올랐다.
이강훈은 유일과 정주하를 빠르게 조리대로 끌고 갔다.
그렇다.
‘오식탁’은 타임어택 요리 예능이었다.
“스톡! 치킨스톡!”
“올리브유 좀 더 뿌려야 할 것 같은데?”
“양파 좀 더 썰어!”
양 팀의 조리대에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긴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어라··· 양송이 썰어둔 것들 다 어디로 갔나?!”
“여기 있습니다.”
“아이, 고맙습니다. 유일 씨.”
삐비빅-
8분 타이머가 울리자 양파를 볶고 있던 정주하가 외쳤다.
“파스타! 파스타 좀···”
한유일은 말이 끝나기 전에 자연스럽게 면을 건져내고 올리브유를 골고루 뿌렸다.
그 뒤로도 유일은 앞치마를 맨 채 분주히 뛰어다니며 주방 보조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꽤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었다.
‘···오.’
그 모습을, ‘오식탁’의 피디는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한유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잘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