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90
– 진희··· 씨?
그런 진희를 본 주변인들은 놀란다.
– 오늘따라 달라보이네.
그런 주변인들에게, 진희는 그저 웃어보인다. 환하고 순수한 미소였으나,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 진희··· 어디··· 가···.
그러던 어느 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남편은 금방이라도 끊길 것 같은 목소리로 진희를 힘겹게 부른다.
말없이 집을 나서려던 진희는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이내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남편에게 다가간다.
잠시 남편을 내려다보던 진희는 그의 몸에 연결된 모든 호스를 제거한다.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진희를 올려다보는 남편. 그러나 진희는 헐떡이는 남편을 무감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진희는 집에 불을 지른다.
그녀는 기원이 준 하얀 손수건을 꼭 껴안은 채, 침대 위에 눕는다. 불이 점점 번져오기 시작한다.
그때, 내내 등장하지 않았던 기원이 다시 등장한다.
멀리서 불타는 저택을 본 기원이 창백한 얼굴로 뛰어온다. 불타는 저택을 향해 뛰어오는 기원의 모습이 버즈 아이뷰(Bird’s eye view) 앵글로 보인다.
‘···!’
관객석 여기저기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기원이 진희의 환상 속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과거로 향한다.
그가 ‘기원’이 아니었던 때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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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님이랑 사장님은 병원 가셨어. 집에 있는 물건들은 다 비싼 것들 뿐이니까 하나라도 깨뜨리지 않게 조심하고.
휴가를 낸 입주 가정부의 부탁으로 저택에 들어온 한 소년. 낡은 옷을 입은 채 집안을 열심히 청소하던 소년은 침대 아래 숨겨진 작은 공책을 발견한다.
처음부터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치우려고 공책을 든 순간, 첫 페이지가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무사히 태어난 줄도 모르고 밤새 울음을 터뜨리던 한 아이가 있었다.]그건 소설이었다.
소년은 홀린 듯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단숨에 챕터 하나를 읽어나갔지만, 청소 시간이 촉박한 탓에 다시 공책을 침대 밑에 둘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그 이후로도 종종 청소를 위해 그 저택으로 향했다.
그가 청소를 하러 올 때마다 집주인들은 병원에 있었고, 그덕에 소년은 몰래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한 챕터 씩, 아껴가면서 소설을 읽던 사이 소년은 청년이 되었고, 그의 자세와 목소리 역시 이전과 달라졌다.
그렇게 몇 달에 한번씩 청소를 오며 소설을 읽던 청년은 마지막 장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나 정작 소설엔 결말이 없었다.
– ···말도 안 돼.
처음엔 허탈해하던 청년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미 소설 속 기원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 낸 그였다. 이전 자신의 모습은 이제 떠올릴 수도 없었다.
– 앞으로는 여기까지 안 와도 돼. 사모님이 이제 가정부는 안 쓰시겠다네··· 자네도 새 일자리 구했댔지?
충격받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기원의 얼굴이 점차 현재의 기원으로 겹쳐진다.
– 진희 씨! 진희 씨!
기원은 눈물이 얼룩진 채 진희를 품에 안는다.
그러나 진희의 숨은 이미 끊어진 뒤였다.
까맣게 타버린 저택. 진희가 손에 쥔 타다 남은 하얀 손수건이 천천히 클로즈업된다.
초반부에 나왔던 기묘하고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영화가 끝났다.
‘···.’
이병수는 그대로 자리에 앉은 채 가만히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숏과 숏. 편집의 리듬과 음향. 대사의 흐름과 강약조절.
수십 년의 평론가 생활을 하며 영화를 완전히 ‘감상’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꼼꼼히 살피며 보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해진 탓이었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분석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좋은 영화는 그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니까.
‘내가 틀렸군.’
이 영화는, 실망할 기대를 했던 그에게 선사한 강력한 한 방이었다.
*
그날 저녁.
의 비평가 리뷰란에 새로운 리뷰가 올라왔다.
– ★★★★★★★★★☆ 9.0
기어코 찾아내고 말았다. 나를 무너뜨릴 기원을.
┗ 헐 9점 ㄷㄷ;;
┗ ㅁㅊ
┗ 이 형 점수 왜이렇게 후해졌음
┗┗ 형 아니고 할아버지임..
┗ 아니 이 분 지금까지 9점인 영화가 있긴 했나
┗┗ 일단 한국영화 중에선 없었음
┗ 이 평 보고 당장 예매했습니다.
이병수가 남긴 한줄 평은 커뮤니티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다.
10점을 준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이병수에게, 9점은 사실상 최고 점수였기 때문이었다.
– 원희수 감독 별로 좋아하는 편 아닌데
[진희 평 좋은 거 보니까 궁금하네]┗ 22
┗ 서현주랑 한유일 생각도 못했는데 예고편 보니까 재밌어 보이더라..
┗ 원희수 인생작될듯
– 진희 원작 본 사람 있음?
[ㅈㄱㄴ]┗ 나
┗┗ 어떰?
┗┗ 명작이지
┗┗ 괜히 김수봉이 지금까지 레전드로 불리는 게 아님
┗ 오튜브에 전체 영상 있으니까 봐
┗┗ 헐 ㄱㅅㄱㅅ 보러가야겠다
┗┗ 근데 이거 다 보고 가도 재밌을까?
┗┗ 전체적인 내용은 같은데 시대적 설정이나 디테일들이 바뀜
┗┗ 나는 일단 보고 가려고!
– 나 요즘 영화 권태기였는데
[진희 예고편 보고 정신 맑아짐.. 조조로 달려야지]┗ 진짜 기대됨
┗ 프리미어 시사회 평 보니까 연출이랑 배우들 연기 칭찬 많더라
그렇게 영화광들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에 휩싸일 때, 한유일의 팬카페 유일무이는 몇 시간 전 공개된 화보로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해당 화보는 유명 패션 매거진 Piff(피프) 10월 호에서 공개한 한유일과 서현주의 화보였다.
‘···대박.’
이혜진은 멍한 눈으로 화보를 들여다보았다.
숲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이를 배경으로 한유일과 서현주는 서로의 등을 기댄 채 앉아있기도 했고, 속내를 감춘 얼굴로 서로를 빤히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커플 화보와 함께 배우들의 개인 컷들도 함께 공개되었다. 유일의 개인 컷은 모두 세 장이었는데, 특히 유일이 카메라에 정면으로 선 채 꽃을 들고 나른한 얼굴로 웃고 있는 사진은 보면 볼수록 심장이 떨렸다.
‘···이런 걸 내가 봐도 되는 걸까?’
화보를 보다 잠이 달아나버린 그날 새벽, 이혜진은 블루챗에 폭풍 업로드를 하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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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nnny (사진) (사진) (사진) 여기가 극락이다]
┗ [@fdsbv_hrve 아니 두번째 사진 ㅁㅊ]
┗ [@yuulll_33 한유일은 사실 요정이었던 게 아닐까?]】
브윈이 띄워준 블루챗 게시글들을 읽던 유일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됐다.’
순식간에 반투명한 창이 사라졌다.
유일은 화보 촬영 과정을 떠올렸다.
서현주와 함께 찍는 화보까지는 무난했다.
문제는 개인컷이었다.
– 그래,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요··· ‘나는 숲에서 잠시 쉬는 연기의 요정이다!’ 그런 느낌으로! 뭔지 알겠죠?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유일은 최대한 나른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고, 사진작가는 들뜬 목소리로 연달아 외쳤다.
– 맞아요!
– 아, 지금 너무 좋아요!
– 어어 그거!!
···어찌되었든 결과물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었다.
한참 화보 촬영을 떠올리던 유일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유일은 스태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공식적인 의 개봉일이자, 무대 인사가 있는 날이었다.
*
‘···분명 예전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유일은 낯선 기분으로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끄아악!”
“언니!”
“한유일 잘생겼다~!”
들뜬 분위기와 상기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간중간 꽃다발과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한유일과 서현주가 입을 열 때마다 반짝이는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엄청난 호응이 뒤따랐다.
유일은 유재호 감독과 함께 몇 번 무대인사를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과는 다른, 정적인 분위기였다는 것만 확실히 기억났다.
정신 없이 소감을 말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다 보니, 어느새 무대인사에 배정된 시간이 끝나갔다.
“자, 배우분들께서 직접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선물’이란, 배우들과 감독의 친필 사인이 담긴 포스터와 특별 엽서였다.
추첨으로 뽑힌 관객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오는 길, 간절한 눈빛이 유일을 붙잡았다.
“이, 이거··· 이거요.”
복도에 앉아있던 짧은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조심스레 유일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한유일 사랑해’가 적힌 플랜카드와 접힌 귀가 달린 분홍색 머리띠였다.
“악! 배우님, 이것도요!”
“여기요!”
어느새 선물을 한가득 든 채 무대로 복귀한 유일은 얼떨떨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꽃다발과 특이하게 생긴 머리띠가 대부분이었다.
‘···쓰라고 주신 거겠지?’
【그렇습니다. 해당 머리띠는 EBC 어린이 방송, ‘댕댕콩’의 캐릭터 중 하나로 보이며···】
유일이 분홍색 머리띠를 쓰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게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일을 본 원희수 감독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는 아예 그걸 쓰고 태어난 것 같은데?”
그러자 관객석에서도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끝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기 직전에는 서현주와 원희수도 앞자리에 앉은 팬들에게서 받은 왕관 머리띠와 귀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배우님들,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주시겠어요?”
사회자의 질문에 유일은 자리에 앉아있는 관객들과 느리게 눈을 맞췄다.
이 자리에서 그와 눈을 맞춘 이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극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가 나온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눌 것이다.
“‘진희’는 제가 예전부터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였는데요. 그런 작품에서 기원이라는 역으로 참여하게 되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영화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간결하게 마지막 인사를 마무리한 유일은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본 뒤 걸음을 옮겼다.
‘···다들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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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는 개봉 첫날 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로 올라섰다.
바야흐로, ‘진희 신드롬’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