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198
198
198. 시체 팔이 잡으러 간다 (8)푸른 불꽃.
그 세계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절대 일반적인 불로는 보이지 않는 푸른 불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위에 가만히 타오르고 있었고.
그 불길은 이 잿빛의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잿빛의 세계.
제대로 된 건축물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전부 타다 남은 나무들뿐.
남아 있는 문명 또한 없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전부 타버려 문양을 알 수 없게 된 휘장뿐.
그 무엇도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할 수 없는 잿빛의 세계 속에서, 진달래가 수놓아진 검은색 지파오를 입고 있던 그녀-
“…….”
미령은 눈을 떴다.
“이번으로 정확히 일천 번이 넘었구나.”
“…….”
들리는 목소리에 미령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괴력난신이 있었다.
검은색 재로 뒤덮인 나무조각 위에 걸터 앉아 미령을 바라보고 있는 괴력난신의 모습.
미령은 주변을 돌아보고 왠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또 실패인가.”
미령의 조용한 중얼거림.
“그래, 또 실패구나.”
괴력난신은 그녀의 중얼거림에 답하며 다 타버린 잿빛의 나무를 만졌고, 미령은 그런 괴력난신을 보며 물었다.
“나는…… 어디까지 버텼지?”
“혈귀(血鬼)를 죽일 때까지는 버티더구나. 허나 그 녀석을 먹어치운 뒤부터 폭주하기 시작했지.”
“…….”
괴력난신의 말에 미령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듯 고개를 숙였고, 괴력난신은 그런 그녀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고작 일천 번을 반복했을 뿐인데 벌써 혈귀를 담을 그릇이 되다니.’
현재 미령과 괴력난신이 있는 곳은 바로, ‘괴력난신(怪力亂神)’이 거주하는 허수공간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올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괴력난신은 악천의 원천을 이용해 미령을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미령은 이곳에서 진짜 수련을 시작했다.
내면세계에서처럼 몰려드는 백귀야행을 처리하는 것이 아닌, 백귀야행에 속해 있는 요괴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힘을 자신의 그릇에 담은 수련을.
물론 자신의 내면세계 안에서 괴력난신이 풀어놓은 백귀야행을 붙잡는 것으로도 미령은 증명을 끝냈다.
백귀야행(百鬼夜行)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강하다는 증명을.
하지만 그 증명만으로 미령은 백귀야행을 완벽하게 다룰 수 없었다.
왜냐?
그것은 말 그대로 ‘증명’일 뿐이니까.
미령은 백귀야행을 찍어 누름으로써 그들의 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을 뿐이지, 아직 스스로가 완전하게 백귀야행을 다룰 수는 없었다.
자신을 증명하는 것과 백귀야행(百鬼夜行)이라는 거대한 집합을 이끄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수련하고 있었다.
자신이 백귀야행에 속해 있는 모든 요괴를 자기 뜻대로 부리고 다룰 수 있도록.
“…….”
그런 상황에서 괴력난신은 가만히 미령을 바라보았다.
생각을 끝냈는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미령은 어느새 자세를 잡고 있었고, 곧 그녀가 마력을 일으키자 그의 머리 위로 붉은색의 뿔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바뀌기 시작한 미령의 몸.
머리카락은 마치 나무에 앉아 있는 괴력난신처럼 백발로 변하기 시작했고, 안 그래도 붉은빛이던 홍안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런 미령의 변한 모습과 함께, 이 세계를 밝히고 있던 푸른 불빛의 아주 조그마한 불씨에서 요괴들이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괴력난신의 내면세계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순수한 영체의 상태로 미령의 앞에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요괴들.
마치 괴력난신의 뒤에 모여 있던 그 옛날처럼 모이기 시작한 요괴들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꽝!
지반을 박차며 미령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작된 전투.
거대한 지네가 땅으로 파고 들어가 미령의 발밑을 노리고, 천수관음이 자신의 손을 이용해 미령의 시야를 막는다.
그와 동시에 천수관음의 뒤에서부터 미령의 양옆으로 달려드는 요괴들까지.
그런 상황에서도 미령은 굳은 표정으로 달려드는 요괴들을 바라봤고, 이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직!
맨 첫 상대는 바로 앞에서 달려오고 있던 아귀.
미령은 아귀를 한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터트렸다.
몸체가 터짐과 동시에 육체를 잃고 미령의 몸 안으로 흡수되는 아귀.
그녀는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요괴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거대한 지네의 움직임을 파악해 그저 진각을 밟은 것만으로 지네의 머리통을 깨버리고, 천수관음의 뒤에 있는 ‘축귀’의 움직임을 예측해 그를 제일 먼저 처치한다.
마치 이 장면을 몇백 번이고 재생한 것처럼, 그녀는 망설임 없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그러나-
“끗……!”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가지런하게 정돈된 미령의 움직임에 변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깔끔한 일직선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미령의 주먹은 어느새 깔끔하기보다는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움직임 한 번에 주변의 지반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명백해 보이는 변질.
날카롭던 마력은 거칠게 변하고, 무술을 사용하던 그녀는 무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미령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
분명 흰자위였던 눈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날카롭던 송곳니가 입 밖으로까지 튀어나와 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마에 난 뿔은 더더욱 자라나 거대해지고, 다물고 있던 입은 히죽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누가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미령의 모습.
허나 눈에 띄게 바뀐 미령의 모습에도 괴력난신은 그녀를 제지하지 않은 채 그저 지켜보았다.
‘어차피 저것도 과정 중 하나니까.’
백귀야행(百鬼夜行)을 수하에 둔다는 것.
그것은 백귀야행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요괴의 마력과 이지를 감당해야 한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미령이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요괴의 이지를 버티지 못해 그녀의 정신이 요괴들에게 물들고 있다는 방증 중 하나였다.
그러나 괴력난신은 그 모습을 보고 있음에도 딱히 미령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허수공간이었고, 무엇보다-
‘아주 미약하기는 하나 정신을 유지하고는 있구나.’
정신을 완전히 잡아 먹혀 버린다면 수련을 하는 의미가 없기에 곧바로 괴력난신이 나섰겠으나 그녀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요괴들과 싸움을 이어나가는 미령을 보며 괴력난신은 또 한번 감탄을 했다.
‘역시 대단한 아이로구나.’
보통 평범한 인간은 요괴들의 이지를 감당할 수 없다.
인간의 이지와 요괴들의 이지는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 베이스가 다르니까.
만약 미령이 다루는 것이 평범한 인간의 것이라면 그녀는 지금보다도 간단하게 그들을 다룰 수 있겠지만, 지금 그녀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요괴들의 영혼이었다.
그녀와는 다른 가치관과 다른 이지를 가지고 있는 요괴들의 영혼.
그것도 단 한 마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수백은 되는 요괴들의 이지를 단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몸 안에 담고, 또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백귀야행(百鬼夜行)’을 다루기 위한 제일 기본적인 덕목이니까.
허나 그렇다면 어째서 괴력난신이 정신의 끝자락을 겨우 붙잡고 있는 미령을 보고 놀라는가?
그것은 바로 그녀가 겪은 숫자 때문이었다.
‘천 번.’
1000.
누군가에게는 많을 수도 있는 숫자였으나, 그것은 괴력난신에게 있어서는 하잘 것 없는 숫자와 다름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일천이라는 숫자는 일수로 따지던 그 무엇으로 따지던 그리 큰 숫자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놀랐다.
‘고작 천 번에…… 백귀야행의 7할을 담을 수 있게 되다니.’
백귀야행(百鬼夜行).
그것은 그가 이 탑에 들어오기도 전에 거의 몇백 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그녀만의 군대이고, 또 그녀의 동료이기도 했다.
헌데 지금 미령은?
고작 1000번의 반복.
그 반복 속에서 미령은 괴력난신이 몇백 년을 거쳐 이뤄온 백귀야행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런 미령의 모습을 보며, 괴력난신은 생각했다.
‘원래부터 가능성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생각하고 있던 아주 자그마한 가능성.
그것 때문에 괴력난신은 이 허수 공간으로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미령과 계약했다.
자신이 그 찰나에 보았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이 정도라면, 진짜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괴력난신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눈에 확신을 가졌다.
그녀가 ‘그것’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크르르륵-!”
그렇게 괴력난신이 자신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미령은 슬슬 옅어지기 시작하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으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미 미령이 보는 세상은 붉게 물들었다.
귀가에는 둔탁한 전투의 소음 대신 요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머릿속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수련해온 무공의 초식이 아닌, 저열한 파괴 충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미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놔버리고 싶다.’
이 파괴충동에 몸을 맡기고 싶다. 라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으니까.
이 파괴충동에 몸을 맡기면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요괴의 목소리는 사라질 것이고, 심장이 터질 듯 답답한 마음은 해방감을 넘어 극상의 쾌감을 느낄 거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놓고 싶다──────끊임없이 그녀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
그리고-
‘솔직히 이 정도면 잘 버텼다.’
‘혈귀를 잡았으니 이번에는 쉬고 다음에 또 나아가면 되잖아?’
‘그래, 이 정도면 이전번보다는 진보했다. 이제 놔버리자.’
그와 함께 시작되는 자기합리화.
자기합리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미령의 눈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괴력난신은 미령을 죽이기 위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미령이 정신을 놓으려 하는 그 순간-
‘자신의 뜻을 꺾고 인형처럼 살아가려 하느냐.-‘
그녀는 목소리를 들었다.
아주 옛날, 들었던 목소리.
그것은 바로 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약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였다.
‘-제자야?’
그와 함께, 미령의 세계가 정지했다.
미령의 눈에 비추던 붉은 세계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그녀의 귓가로 끊임없이 들려오던 요괴들의 비명은 그녀의 파괴 충동과 함께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대신에 들린 것은 바로 예전에 들었던 스승의 목소리였다.
또렷해진 동공의 위로 언젠가 그녀가 탑에서 보았던 김현우의 모습이 비친다.
낡아빠진 복장에 자신의 등에 새긴 문신과 똑같은 가면을 그대로 쓰고 있는 김현우의 모습.
“스승……님?”
분명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의 잔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령은 그를 불렀고.
생각 속의 김현우는 그런 그녀의 말에 대답하듯 입을 열었다.
‘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지? 어째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 너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부모 때문에? 아니면 네가 살아온 삶은 애초부터 그랬으니까?’
미령의 눈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하고-
‘만약 그렇다면 잊어라.’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는 왜인지 더- ‘모든 걸 잊어라. 네 출생 출신부터 시작해서 이름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라. 네가 바깥세계에서 재벌이었든 거지새끼였든 간에 ‘밖’에 있었던 일은 모조리 지워라.’
-선명해졌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부모와 돈의 꼭두각시 노릇이 아닌, 오롯이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을.’
그 말과 함께 미령의 시야에 요괴들이 비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자신의 몸을 찢어발기기 위해 손을 내미는 요괴들.
그 와중에도 김현우의 말은 미령의 귓가에 재생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짱ㄲ- 가 아니라, 이름이 없으면 부르면 힘들 테니 이 스승이 네게 이름을 붙여주도록 하마.’
그리고-
‘그래, 네 이름은-‘
그녀는 귓가에 들리는 김현우의 말을 새기며-
‘-미령, 미령으로 하는 게 좋겠다.’
콰지지직!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절대로 뜻을 꺾지 마라. 미령아.’
-자신만의 백귀야행(百鬼夜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