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구미호는 죽고 싶지 않다 (3)푸른 초원.
“……신기한 곳이군. 분명 허수 공간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전혀 다르다니.”
조금 전 들어선 천마는 신기한 듯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고, 그런 그의 뒤에 서 있던 김현우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수련할 때는 자주 써먹어.”
김현우의 말에 천마는 슥 시선을 돌리고는 이내 새삼스러운 것을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네 녀석은 허수 공간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군.”
“허수 공간을 그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김현우의 물음에 천마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의 이야기다. 애초에 ‘등반자’들은 허수 공간을 수련 공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으니까.”
“응……?”
천마의 말에 김현우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시선을 보내자 천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부수적인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한동안 부수적인 설명을 이어나간 끝에 김현우는 천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천마의 말인 즉, 이 탑을 오르다 죽어도 정신체를 남길 정도로 강한 등반자들만이 허수 공간에 자리를 잡게 된다.
허나 그들의 업은 이미 대부분이 완성되어 있거나 완성되어 있어도 업을 빼앗긴 자들이 대부분이기에 허수 공간을 수련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각자 개인마다 처한 형태가 달라 그중에는 수련을 할 수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례는 나와 비슷하거나 내가 말한 사례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그건 또 처음 알았네.”
그런 천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김현우는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천마를 바라봤고. 그는 그런 김현우의 눈빛을 느끼곤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딴 표정을 짓는 거지?”
왠지 새삼스러우면서도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현우를 보며 천마가 입을 열자 김현우는 슥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야.”
네가 생각보다 똑똑해 보인다. 같은 말을 한 순간 천마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챈 김현우는 이내 슬쩍 대답을 회피했고.
“…….”
천마는 그런 김현우를 미심쩍은 표정으로 보았으나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짤막한 침묵.
김현우는 그 침묵이 지속되기 전에 곧바로 자신의 몸을 풀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들어왔으니까 곧바로 시작하자.”
김현우가 이야기를 꺼내자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허리에 있던 검이 아닌, 자신의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언월도를 꺼냈다.
마치 도신 자체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언월도.
그리고 그렇게 천마가 쥐고 있던 언월도를 보고 있던 김현우는 언월도에서 느낀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그러지?”
“그 언월도, 왠지 크기가 좀 줄지 않았나?”
김현우는 위화감의 정체를 말한 뒤 곧 천마가 쥐고 있던 팔열성군의 언월도가 자신이 예전에 봤던 때보다 작아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김현우가 처음 천마에게 그것을 넘겨주었을 때, 팔열성군의 언월도는 천마의 키를 가볍게 넘을 정도로 거대했다.
헌데 지금 그가 쥐고 있는 언월도는?
“언젠가부터 내 손에 맞게 변하더군.”
“……변했다고?”
팔열성군의 언월도는 변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크기가 일반적인 무기에 비해서 거대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가 쥐고 있는 언월도는 똑바로 세워도 그의 머리를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이외에도 저번에는 언월도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제는 그저 상당히 큰 양손검 같은 느낌으로 변한, 이제는 언월도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검을 보며 김현우는 물었다.
“원래 무기라는게 사용자 맞춰서 자동 변환도 되고 그런 건가?”
“나도 모른다.”
김현우는 혹시 하는 생각에 그가 예전에 보았던 언월도의 로그를 생각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내용은 읽어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결국 천마의 언월도에서 신경을 끄기로 한 김현우는 곧 천마와 조금 떨어진 맞은편으로 이동해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현우가 가벼운 느낌으로 자세를 잡고, 천마도 마찬가지로 그런 김현우를 보며 쥐고 있던 언월도를 비스듬하게 쥔다.
“그래서, 언제까지 싸울 거지?”
그리고, 김현우가 튀어 나가기 위해 준비할 무렵 들려오는 천마의 물음에 그는 대답했다.
“응?”
“네 녀석이 다른 이들과도 싸울 거라고 하지 않았나?”
“뭐, 그랬지?”
확실히 김현우는 천마와 함께 이곳에 들어오기 전 다른 이들과 일정을 따로 잡지 않고 천마만을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그럼 대충 정해야 하지 않겠나? 너랑 싸울 순서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돌려면 말이다.”
천마의 말에 김현우는 일순 이해를 하지 못하다 이내 천마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천마답다면 천마다운 오만한 발언.
허나 김현우에게 있어서 그런 오만한 발언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금방 끝날 테니까.”
이번에는 김현우의 발언.
그에 천마는 피식 웃으며 언월도를 들어올렸다.
“네가 예전에 나와 동수를 이룰 때까지 걸린 시간을 기억하고 있기는 하나?”
“그건 옛날이야기고, 지금은 다르지?”
“그때와 지금이 다른 건 너만이 아니지.”
천마는 그런 김현우의 말에 대답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기수식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건 지금부터 확인하면 될 문제고, 싸울 상대를 바꾸는 건-”
-이내 김현우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내가 너를 한번 쓰러트릴 때로 하면 되겠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그들은 서로에게 뛰어들었다.
xxxx
흑백이 조화롭게 이뤄져 있는 공동 안.
꾸륵- 꾸륵-
그 공동 안에 있는, 적어도 수십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탁상의 의자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각 의자에 놓여 있는 것은 그 어떤 빛도 침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검은색의 무엇인가였다.
수시로 외부의 형태가 변하며 이리저리 튀는 검은색의 무언가.
허나 그것들은 분명 무엇인가로 변하고 있었다.
의자 위에 놓여 있는 그 어떤 검은 무언가는 이미 두 개의 발로 보이는 무엇인가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고.
또 다른 의자에 놓여 있는 검은 무언가는 분명 어떤 것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검은 무언가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그 식탁의 상석에 앉아 있던 ‘형체 없는 자’는 자신을 감싼 검은 안개에 미소를 만들어낸 채로 그것들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끝없이 꾸물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공동 안.
그곳에서-
“오랜만이군요.”
형체 없는 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분명 아무도 없던 빈 식탁 위에 나타난 한 남자.
하얀색의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는 그는 형체 없는 자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형체 없는 자는 그를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단답형의 대답.
그리고 그와 함께 공동은 침묵으로 물들었으나, 남자는 그런 침묵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며 말을 이어나갔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무슨 생각이냐니? 그게 무슨 소리지?”
심드렁한 느낌으로, 허나 여유로운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한 채 말을 내뱉는 형체 없는 자.
그 모습을 바라본 남자는 슬쩍 말을 끊었으나 이내 계속해서 말했다.
“어째서 위쪽에 주시기로 한 위업(偉業)을 제때 상납하지 않았던 겁니까?”
“위업? 위업이라…… 뭐,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군.”
형체 없는 자의 능청스러운 대처에 남자는 순간 표정을 굳혔으나, 이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라니, 분명 이건 저희와 그쪽이 사전에 미리 약속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약속을 저버리시겠다는 겁니까?”
남자의 말에 형체 없는 자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약속이라…… 약속, 그래 약속 좋지. 자네들이 멋대로 해놓고 대가를 요구하는 그게 약속이라면 말이야.”
형체 없는 자의 말에 남자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것은 엄연한 약속이죠. 당신도 그 덕분에 편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형체 없는 자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그래, 편하기는 했지.”
“그렇다면 대가를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은 줄 수 있는 위업이 없군. 보다시피 전부 나눠준 상태라-”
형체 없는 자가 괜스레 자신의 양손을 슥 들면서 말하자 남자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위업은 아니어도, 그걸 대체할 것들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무엇인가로 변형되고 있는 검은 무언가를 바라보았고, 형체 없는 자는 그런 그의 눈빛을 보고는 이야기했다.
“유감스럽네만 그건 불가능할 것 같군.”
“어째서죠?”
“맞이해야 할 녀석들이 있거든.”
“……맞이해야 할 녀석들?”
“그래, 지금 이곳에 있는 건 그 녀석들을 위해 내가 준비한 것들이네.”
“그 녀석들을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이라니…….”
남자는 형체 없는 자의 말을 되물었으나 그는 그 이상은 이야기 해줄 생각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고, 이내 남자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 형체 없는 자를 바라봤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했다.
“……그 말은 당장 위쪽에 업을 상납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말했지 않나? 당장 내 줄 수 있는 업이 없어서 그런 거지.”
그의 말에 남자는 한 번 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입을 우물거렸으나, 이내 그는 곧 이 대화가 별 의미 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될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두 달입니다. 두 달 뒤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부디 저희들과의 약속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형체 없는 자는 어두운 안개로 웃는 얼굴을 만들며 대답했다.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할 생각인가?”
형체 없는 자의 물음.
남자는 그 물음이 진심이 아닌, 그저 의미 없는 간보기에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대답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때 알게 되실 겁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고, 이내 식탁 위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모습.
허나 다음 순간, 남자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남자의 모습에 형체 없는 자는 피식하는 웃음을 짓고는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 남자가 사라졌어도 의자에 놓여 있는 검은 무엇인가는 계속해서 형태를 바꾸며 각각의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있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형체 없는 자는 분명히 예정되어 있을 만찬을 떠올리고는 상상만으로도 좋다는 듯 그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