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이렇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1)
맹인(盲人)이란, 말 그대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보이는 것은 그저 끝없는 어둠.
그렇기에-
“아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뭐가?”
-김현우는 귓가에 병사들의 고성과 함께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만을 듣다가 첫 번째를 그대로 끝내버렸다.
“아니, 어떻게 맹인을 따라해?”
“따라하면 되잖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김현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나오는 말.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뭐라고?”
“나라고 방법이 있겠어? 그냥 나는 네가 그놈을 이길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특별한 위업들을 엄선해 네 입에 밀어 넣고 있을 뿐이라고.”
그런데-
“거기에서 씹는 법까지 알려달라고 하면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줘야 해?”
한 마디로 업을 받아먹는 것은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김현우는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엄연히 말하면 눈동자의 말은 틀린 게 없으니까.
“……쩝.”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맛을 다신 김현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으나 역시 불만이라는 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난이도가 너무 팍 올랐는데…….”
“걱정하지 마, 지금 이 업을 터득하지 못하면 다른 위업들도 터득하기는 힘들 테니까.”
“……뭐?”
“설마 내가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너한테 잡히는 업을 하나씩 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던 김현우는 은근슬쩍 고개를 저었으나 그녀는 이미 무엇인가를 눈치챈 듯 뚱한 표정으로 김현우를 바라보더니 이야기했다.
“너는 지금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는 거야. 물론 내가 지금 네게 경험시켜 주고 있는 업들은 하나같이 위업이라고 불리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 업에도 분명히 위아래는 있어.”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제일 아래에 있는 업부터 서서히 얻으며 올라가고 있다…… 뭐 이런 말이지?”
“맞아. 애초에 그렇게 올라가지 않고 그냥 내가 툭툭 던져주기만 하면 업을 얻는 속도도 속도지만 네가 힘들 테니까. 내가 몸소 이렇게 해주고 있는 거라고.”
그녀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왠지 낯부끄러웠는지 괜스레 큼큼거리면서 목소리를 정리하더니 이야기했다.
“아, 아무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업을 클리어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는 소리야.”
눈동자의 말에 김현우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알았어. 다시 부탁해.”
김현우의 말과 함께 다시 어둠으로 물드는 김현우의 시야.
그와 함께 김현우의 주변에는 날카로운 병장기 소리가 들려왔다.
“…….”
아마 이전에 기본적인 동화는 성공한 터라 3인칭으로 보는 것 없이 곧바로 1인칭으로 넘어 온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은근히 들리는 병장기 소리.
병사들의 고함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지금은 김현우가 아직 그 남자를 3인칭으로 보고 있을 때의 초반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툭-툭- 차그륵-
사방에서 들리는 병장기 소리가 동화된 귓가를 민감하게 건드린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던 병장기들의 소리가 바뀌기 시작하고.
-츠즈즉.
김현우는 곧 땅을 부드럽게 긁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가 움직이는 소리.
김현우는 단번에 그것을 눈치채고 난 뒤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움직였었지?’
김현우는 분명 맨 처음, 남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봤었다.
물론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으나 중요한 것은 그 남자의 움직임이 아직 김현우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
츠즈즈즛-!
김현우가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하자 3인칭으로 볼 때는 전혀 들리지 않았던 남자의 움직이는 소리가 병장기 소리를 뚫고 들리기 시작했다.
왼쪽의 발이 길게 미끄러지는 듯한 소리.
그 다음으로는 남자의 팔이 움직이는 소리가, 김현우의 귓가에 들려온다.
그리고-
퓻-!
남자의 손이 일순 가볍게 움직이는 소리와 동시에, 김현우는 남자가 병사의 머리를 꿰뚫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죽여 버리겠다!”
그와 함께 들려오는 병사들의 목소리.
허나 김현우는 자신의 귓가로 들려오는 소음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남자가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분명 무척이나 조용했으나, 그 소리는 잘 들렸다.
남자의 발이 땅을 긁고,
또 어떨 때는 다른 병사들의 몸을 발판 삼아 지나가며.
또 어쩔 때는 병사들의 몸을 후려친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남자의 소리.
그 어느 순간, 김현우는 자신의 몸에 촉각이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와 함께 넓어지는 기감.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김현우는 어째서 눈동자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느껴진다.’
김현우는 남자의 촉각에 동화되자마자 주변에 있는 병사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것은 순전히 소리뿐만이 아닌-
‘저번에 동화했었던 개미 인간의 업인가…….’
-바로 개미인간과 동화하면서 얻었던 감각 때문이었다.
분명 두 눈은 아직도 어둠에 물들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현우는 주변이 보였다.
창을 찔러넣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고.
바로 앞에서 간발의 차로 검을 휘두른 병사의 모습이 보였고.
심지어 저 멀리서 활을 쏘려고 준비하는 병사의 시선 또한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느낀 순간부터-
“…….”
김현우는, 더 이상의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이, 곧바로 후각과 미각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저번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의 움직임이 소리와 감각을 통해 전해지고, 남자가 하려는 움직임이 무척이나 손쉽게 예측되고 재현된다.
마치 자신과 하나가 된 것 같은 일체감.
그 끝에서-
“봐. 할 수 있지?”
“……그러게.”
김현우는 순식간에 맹인의 업을 받아올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너무 안심하지 마,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진짜라고?”
“그래, 지금까지는 그냥 가벼운 운동 느낌이라 이 말이지.”
“……진심?”
“진심 설마 그런 평범한 위업들로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게 비교적 평범한 업이었냐고 되묻고 싶었던 김현우였으나, 그는 고개를 슬쩍 젓는 것으로 그 의문을 자신의 마음속으로 집어넣었다.
어차피 그 질문을 던져봤자 변하는 건 없다.
그렇기에-
“곧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자.”
“잘 생각했어.”
김현우는 설명을 듣기보단 그 시간에 조금 더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xxxx
거대한 숲 한가운데.
“……정말로, 세계수가 살아날 줄이야.”
나이아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서 자생하고 있는 나무, 세계수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지금 당장 그녀의 앞에 있는 세계수는 자그마한 나무일 뿐이었으나 그 나무에서 뿜어지고 있는 마력은 분명 세계수의 그것이었다.
게다가 그 남자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전부 다 자라기까지 수백에서 수천 년이 걸리는 세계수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마치 하루를 100년처럼 뛰어넘는 세계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프리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옆에 있던 에리얼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네…….”
그렇게 지금 당장도 눈에 보일 정도의 성장을 이루고 있는 세계수를 멍하니 바라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래서, 정말 천사들과 손을 잡을 생각인가?”
들려오는 이프리트의 말에 나이아드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프리트?”
“말 그대로의 이야기다, 나이아드. 정말로 천사들과 손을 잡을 생각이냐는 말이다.”
“……그럼 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나요?”
나이아드의 물음에 슬쩍 인상을 쓰며 인상을 찌푸리는 이프리트.
“방법이 있는 건 아닌데…….”
“제대로 된 방법도 없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세요. 게다가- 저희들은 그곳에 있는 이들을 처리할 힘도 없지 않나요?”
나이아드의 말에 이프리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이 맞았으니까.
허나 이프리트는 다시 고개를 들곤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번에 그 개자식은 소멸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녀석만 없다면 우리끼리도 어떻게든…….”
“그게 정말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요, 이프리트?”
“…….”
나이아드의 말에 입을 다무는 그.
“확실히 이프리트, 당신이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도 대충은 알고 있어요. 저희가 51번 탑에 남아 있는 잔재를 세계수의 마력으로 찾아 천사를 보내고 난 뒤를 걱정하는 거겠죠?”
“그래.”
“확실히, 저도 그건 걱정이 되는 부분이기는 하네요.”
이프리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얼.
허나 나이아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둘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했다.
“마찬가지로 저도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있긴 해요. 가브리엘 그자는 마치 진실인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결국 그 부분들은 전부 자기 좋을 대로 남자의 말을 해석한 것뿐이니까요.”
“……깨닫고 있었다고?”
“당연하죠. 설마 제가 당신보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나요?”
은근히 상처가 될 만한 말을 하는 나이아드.
그러나 이프리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이아드는 이내 자신과 함께 서 있는 세 명의 정령왕들을 바라보곤 이야기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대비는 모두 하고 있으니까요.”
“……대비를 하고 있다고?”
“네. 이프리트가 걱정하는 건 천사들이 잔재를 모두 없애 버리고 돌아왔을 때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렇다면 해결은 간단해요. 애초에 천사들이 돌아올 일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죠.”
“……돌아올 일을 만들지 않는다고?”
이프리트의 되물음에 나이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 이미 천사 쪽도 김현우에게 당했던 것 같더군요. 게다가 저희만큼은 아니지만 천사 쪽에서도 김현우를 제외한 강자가 51번 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게 동맹을 제안할 때 했던 말이 자신들의 전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야훼라고 했나?”
“네 맞아요. 실제로 그 야훼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천사들은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아무튼-
“천사들은 그 야훼와 함께 51번 탑의 잔재를 지우러 갈 거예요. 이미 자신들이 당한 전적이 있으니 그 야훼라는 것 혼자 보내지는 않겠죠. 뭐, 마찬가지로 저희도 몇 명의 탑주들을 같이 보내야겠지만요.”
“의심을 피하는 건가?”
“맞아요.”
고개를 끄덕인 나이아드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천사들이 모두 51번 탑의 잔재에 들어가 그 잔재를 정리하는 것을 본 순간 저는 문을 닫을 겁니다.”
“……천사들을 그곳에 고립시키겠다는 건가?”
“맞아요.”
“빠져나올 확률도 있지 않나?”
“당연히 빠져나올 확률도 있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어차피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
“어차피 저희가 먼저 남자에게 보고를 하면, 그것으로 이미 천사들이 돌아가야 할 천계는 그 남자에 의해 멸망할 거예요.”
안 그런가요?
나이아드의 되물음에 이프리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