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396
396화. 이렇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3)
51번 탑의 최상층.
아니, 이제 계층 자체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최상층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그곳에서, 아브와 노아흐는 피곤한 표정으로 소파에 눕듯이 앉아 있었다.
“……진짜 큰일이네요.”
아브의 중얼거림.
노아흐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버티는 것도 힘들 것 같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최상층 곳곳에 펼쳐져 있는 마법진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마법진들은 51번 탑이 갑작스러운 공격에 멸망하고 난 뒤부터 그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들이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이라니.’
노아흐는 인상을 찌푸리며 51번 탑이 멸망했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히 아무런 징조도 없었다.
그저 김현우가 소멸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을 뿐.
한데 갑자기 박살 나버린 것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힘 때문에.
무슨 보안을 해 놓았던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보안이라는 것의 기능은 탑 내부에 있을지 모르는 침입을 지키는 것이지 탑 전체를 날려 버리는 공격에 대해서는 대적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으로 티르가 알려준 방법으로 9계층은 살리긴 했지만…….’
하지만 51번 탑이 멸망을 넘어 그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 뒤에도 9계층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티르가 알려주었던 방법 때문이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자신들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만든 차원 마법.
그 마법을 9계층에 깔아둔 덕분에 그나마 9계층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 살아남을 수만 있었다.
“끙…… 설마 이렇게 문제가 심할 줄이야.”
노아흐는 복잡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당장 티르의 말대로 9계층과 최상층만을 따로 좌표가 찍히지 않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것 까지는 어떻게든 성공적이었으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관리가 전혀 불가능하다니.’
어떻게든 살려놓은 9계층은, 탑에서 계층을 떼어놓은 이후로 관리가 불가능했다.
뭐, 사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당연히 이럴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결국 아무리 김현우가 살던 곳이라고 해도 그곳은 엄연히 탑에 속한 계층 중 하나였고, 다른 계층 간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몰라도 간접적인 상호작용은 항상 있어 왔으니까.
‘……하긴, 이렇게 만들어 놓고 9계층이 온전히 잘 돌아가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노아흐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급하게 9계층을 안정시키기 위해 그려놓은 마법진들이 최상층에는 한가득이었다.
“이제 더 이용할만한 마법진은 없는 겐가?”
노아흐의 중얼거림에 아브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더는 없어요.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에요…….”
“그런가…….”
확실히 지금 9계층만 어떻게든 꺼내놓은 것은 사람으로 치면 모든 것을 내다 버리고 심장만을 가져와 살린 것과 똑같은 것이라 어떻게든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이렇게 놔두기에는…….’
9계층이 당장 오늘내일한다는 것이 문제.
물론 지금 당장은 9계층 내부에서 어떻게든 하는 모양이지만 제한 마법진이 완전히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덕분에 9계층은 몬스터의 증폭이 끝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마력을 아예 없애 버리면 몬스터들도 힘을 잃겠지만.’
문제는 그나마 한 계층으로 줄어들어 예전에 모아놓았던 마력석으로 유지하고 있는 9계층의 마력을 끊어 버리면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9계층도 같이 붕괴할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 덕분에 노아흐와 아브는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혹시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요? 티르님?”
고개를 돌리며 정면에 앉아 있는 티르에게 묻는 아브.
허나 그도 이번에는 드물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유감이네만 나는 이런 데에는 전혀 지식이 없어서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군.”
“그런가요…….”
티르의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브.
노아흐는 그런 아브의 모습을 보고는 이야기했다.
“뭐, 우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취하도록 하세.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 아닌가?”
그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 아브.
그렇게 침묵이 지속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끼이이익-!
침울하게 앉아 있는 아브의 귓가에 들리는 문소리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고.
“……야차 님? 거기에다가 미령 님이랑 하나린 님까지??”
“전해줄 말이 생겼느니라.”
이내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전과 같이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야차는 앉아 있던 아브와 노아흐, 그리고 티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입니까?”
이내 야차의 설명을 듣고 있던 노아흐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xxxx
“그럼 이제 어떻게 해?”
김현우는 눈동자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정신이 살짝이나마 각성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멍했던 정신이 한순간이지만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
“으음…… 글쎄, 솔직히 나도 네가 정신을 잃고 내 통제를 벗어나서 업을 취할 줄은 몰랐어서 마땅히 생각해 놓은 게 없는데…….”
눈동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이야기했다.
“뭐, 그나마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하면 조금 쉬는 거지.”
“……쉰다고?”
“그래, 지금 너는 과식을 넘어서 온몸이 가득 찰 정도로 폭식을 한 상황이야. 그 상태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면서 네가 지금까지 먹어치운 업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리면…….”
“괜찮다 이거야?”
“그래. 만약 네가 온전히 정신을 차리고 네 몸에 있는 업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
“어느 정도나 걸리는데?”
“……으음, 지금 추이로 봐서는 대충 네가 아는 세계의 시간으로는 1년 정도?”
“1년!?”
“그래, 설마 하루 만에 네 몸 안에 있는 업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줄 알았어? 만약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양심이 없는 거야.”
그녀의 말에 김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1년이라는 시간이 옆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그럼 어떻게 해? 방법이 없는데. 게다가 지금 네 상태로 수련이 가능하겠어?”
“……뭐라고?”
“너 지금 계속해서 순간순간 멍 때리는 시간이 있거든.”
“…….”
‘확실히…….’
김현우는 현재 스스로가 잠깐잠깐 정신이 흐릿해진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분명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집중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흐릿해지는 그의 인식.
그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어?”
그다음 순간 자신이 다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김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봐, 생각보다 심하지?”
“……그러네.”
“그러니까 조금 쉬도록 해.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어.”
“정말로?”
“정말로.”
“아니, 근데 그래도 1년이면 이미 탑이 개 박살 나 있을 거 아니야?”
김현우의 말에 그녀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 뒤늦게 이야기했다.
“부정은 하지 않을게. 사실 나는 솔직히 너를 처음 데려왔을 때만 해도 어째서 내가 미리 붙여놓은 감시장치가 터지지 않았나 고민했었거든.”
“……지금 내 앞에서 탑 멸망하라고 고사 지내냐?”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다만 어디까지나 당연한 게 일어나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다는 거지.”
그녀의 말을 끝으로 시작된 침묵.
김현우는 주저앉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금 몇 개월이나 지났어?”
“몇 개월이나 지났냐니?”
“내가 수련하고 나서 얼마나 지났냐고.”
김현우의 물음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제 한 달하고…… 대충 2주에서 3주 정도 지났나? 또 이렇게 말하니까 새삼스레 네가 대단해 보이네? 업에 먹혔다고는 해도 이렇게 단기간에 그 많은 업을 전부 경험할 줄이야.”
그녀가 새삼 대단하다는 말투로 김현우를 칭찬했으나 그는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침묵.
그리고-
“역시 안 되겠어.”
“뭐가?”
“그냥 계속하는 게 낫겠다고.”
“……아니, 지금까지 내 말을 뭘로 들은 거야? 아니, 그냥 처음부터 제대로 듣지도 않은 거야?”
눈동자가 언성을 높였으나 김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다 들었지. 너는 네 목숨이 오락가락 한다는데 제대로 안 듣고 배기겠냐?”
“아, 그럼 그냥 목숨을 허공에다가 던져버리고 싶다는 거야?”
“…….”
김현우가 아무런 말도 없이 컴컴한 하늘을 빤히 바라보자 눈동자는 노골적인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아무리 그렇게 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어. 지금 당장 네 몸도 못 가누면서 뭘 어떻게 하려고 수련을 계속하자는 거야?”
“기합으로 어떻게 되겠지.”
“기합으로 어떻게든 됐다면 그냥 그 미친 새끼도 만나자마자 죽여 버리지 그랬어.”
“…….”
입을 다무는 김현우.
허나 곧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네 말대로 이곳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힘을 얻고 나갔다고 치자.”
“…….”
“뭐, 다 좋다고 쳐. 나는 제대로 힘을 얻었으니 그 새끼랑 싸움을 벌일 거고, 결국에는 이겼다고 치자. 그럼 나한테 남는 건 뭔데?”
“너한테 남는 거……?”
“뭐, 너한테는 거창한 대의가 있다고 치자고, 근데 이미 1년이나 늦게 나가서 탑이- 그러니까 내가 있을 곳이 사라져 버린 나는, 뭐가 남는데?”
그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으나, 김현우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정답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야.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남아. 너는 결국 그놈을 잡고 해피엔딩을 맞이할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한테 그건 패배한 결말이라 이거야. 응?”
그리고 그렇게 내 패배를 기다릴 바에는-
“그냥 지금 당장 뒤지더라도, 나는 발버둥치는 게 맞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해?”
김현우의 말.
그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하게 둘 것 같아?”
“그럼 그냥 이 상태에서 소멸해 버리지 뭐. 내가 정신을 놔 버리기만 하면 내 존재는 소멸한다며?”
“……진심이야?”
“내가 또 나는 못 되는데 남 잘되는 꼴은 못 보거든.”
분명 정신이 순간적으로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씨익 하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김현우.
그 모습을 보며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눈동자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했다.
“……내가 졌어, 네가 소멸해 버리면 이 이상 그 미친놈을 막을 만한 놈도 사라지는 거니까. 이번만큼은 내가 져야겠네.”
그녀의 패배 선언에 씨익 하는 웃음을 짓는 김현우.
그러나 그녀는 곧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냥은 안 돼.”
“……뭐?”
“그렇게 정색하지 마. 너를 막겠다는 소리를 한 게 아니니까. 다만 네가 계속해서 수련을 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김현우.
그에 눈동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방식을 좀 바꿀 필요가 있겠어.”
“……방식을?”
“그래.”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