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397
397화. 이렇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4)
“뭐, 사실 대단한 방식이라고 할 건 없어. 그냥 순서를 바꾸는 것뿐이니까.”
“……순서?”
“그래, 순서. 지금 네가 폭식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아무튼 지금 네 몸 안에는 27000명의 업이 들어 있어.”
결론만 보면-
“너는 거의 대부분의 업을 성공적으로 흡수했다는 거야.”
“그래서?”
“그러니까, 조금은 넘겨도 될 것 같아.”
“……넘겨도 될 것 같다니?”
김현우의 되물음에 눈동자는 곧바로 이야기했다.
“이제 네가 얻어야 할 업은 약 100개정도. 네가 지금까지 얻었던 27000개의 업에 비하면 세발의 피 정도지. 물론 이 업들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애초에-
“내가 저번에 말했듯 나는 업을 순차적으로 배치했으니까, 얻기 쉬운 업은 전부 앞으로 두고 얻기 어려운 업은 모두 뒤로 배치해 놓았거든.”
“……그렇다면 오히려 더더욱 남아 있는 업들을 넘기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김현우의 물음에 그녀는 곧바로 답했다.
“네 몸이 원래라면 당연히 이 업들을 넘기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야. 다만 네 몸 상태를 생각해서 남은 100개의 업을 넘기겠다는 거지.”
“……그것들을 모두 넘겨도 노네임을 이길 수 있어?”
“확신은 못 하지.”
“뭐?”
“애초에 ‘노네임을 이길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으로 나한테 나올 대답은 이것 하나밖에 없어. 네가 모든 업을 전부 얻고 노네임에게 도전해도 질 수 있지.”
“…….”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잖아? 나는 그저 네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끌어올려주고 있는 것뿐이야. 한 마디로 ‘절대적’이 아니라는 소리야.”
“그럼, 내가 100개의 업을 수련하지 않고 노네임과 붙었을 때의 승률은?”
“그것도 좀 애매한데…… 굳이 말하면 2할 정도?”
“……그렇게 짜다고?”
“물론 100개의 업을 전부 수련하면 3할 정도까지는 오를 거라고 봐. 그리고 그 미친놈을 상대로 3할 정도의 승률이면 꽤 대단한 거 아니야?”
“그럼 결국 100개의 업을 전부 얻어야 어떻게든 비빌 언덕을 만들 수 있다 이 말 아니야?”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김현우.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뭐, 사실 그게 맞는 말이긴 해.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만약 원하지 않더라도 나는 뒤에 남은 100개의 업을 네게 주입해 줄 생각이거든.”
눈동자의 말에 순간 요상한 표정을 지은 김현우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말장난하지 말고 그냥 어떻게 할 건지 결론부터 말해 봐.”
“……처음부터 말장난을 할 생각은 없었어. 그냥 어떻게 설명을 해주다 보니 말장난처럼 되어 버렸을 뿐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침묵했다.
그 뒤 다시 열린 입술.
“지금 네 상황은 아까 설명했듯 더 이상 수련을 지속할 수 있는 몸이 아니야, 아마 지금처럼 업을 수급하면 몸이 터져 버리겠지.”
그 상황에서-
“지금 네게 남은 방법은 대충 시간을 들여서 업을 전부 소화하는 방법이 제일 좋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옳지. 어찌됐든 내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안전하게’가는 방법이니까.”
그와 함께, 어두운 공간 안에서 줄곧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눈동자가 김현우의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건 네가 싫다고 했으니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야.”
“그게 뭔데?”
김현우의 물음에 눈동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쿠우우웅-!
“컥!?”
김현우는 그 다음 순간, 눈동자의 주먹이 자신의 명치에 꽂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순식간.
그가 제대로 인지하기 전에 김현우의 앞에 도달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그 반동으로 김현우는 어둠 속에서 순식간에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해서 김현우가 신나게 땅을 구른 뒤 보인 곳.
“……여기는 또 뭐야.”
그곳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는 어느 초원이었다.
앞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푸른 초원만이 끝없이 이어져 있을 것 같은.
무엇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초원.
“어때, 괜찮지?”
김현우는 주변을 바라보던 도중 들리는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눈동자를 바라봤다.
“……싸움을 걸려면 우선 말부터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미안, 그래도 네가 얄미워서 무조건 한번은 때려주고 싶었거든.”
슬쩍 혀를 베어 물며 가벼운 장난이었다는 것을 어필하듯 고개를 한번 으쓱인 눈동자.
김현우는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이번에 해야 할 건 뭔데?”
“간단해, 나를 이기는 거야.”
“뭐?”
“아, 너무 걱정하지 마. 이곳은 네가 알고 있던 허수 공간과 비슷한 세계니까 네가 아무리 소멸한다고 해도 10초 안으로 되살아나거든.”
거기에-
“멍한 것도 없어지지 않았어?”
“……어? 그러네?”
김현우는 자신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현우는 조금 전에도 눈동자와 이야기하면서 계속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허나 지금은 그런 현상이 전혀 없었다.
무력감도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정신이 말짱했다.
그렇기에 김현우는 한동안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다 이야기했다.
“이건 또 어떻게 한 거야?”
“뭐, 별거 아니야. 그냥 ‘일시적’으로 막은 거지.”
“……일시적으로?”
“그래, 아마 대충 시간상으로 봤을 때 5시간 정도만 지나도 아까 전처럼 다시 정신이 오락가락 할걸?”
“……그럼 다섯 시간 동안만 수련을 하는 거야?”
“그럴 리가? 그 정도만 할 거라면 너를 여기로 끌고 오지도 않았겠지.”
눈동자는 그렇게 하며 자신의 몸을 전부 풀고는 이야기했다.
“너는 지금부터 나랑 싸워서 네가 목구멍이 막히도록 밀어 넣은 업들을 소화하면 돼.”
“……소화하라고?”
“그래, 결국 네 존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건 소화가 안 된 업들 때문이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업을 강제로 소화하면 우선 급한 불은 끄는 거지.”
“아니 잠깐, 소화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건데?”
“나는 모르지? 결국 업을 소화하는 건 네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아니 이런 씹.”
김현우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팍 찌푸리자 눈동자는 피식 웃다가 이내 기억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말이야.”
“……그리고?”
“만약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도 네가 업을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아마 그대로 소멸할 수도 있으니까 우선 이 악물고 어떻게든 해 봐.”
“야, 잠깐, 뭐라고? 그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김현우의 경악성 어린 소리.
그러나 이미 그녀는-
“안 봐준다?”
김현우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xxxx
끝없이 내리치는 폭포가 배경으로 있는 초원.
그 초원에 자라 있는 단 한 그루의 나무에서,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던 남자는 불현듯 시선을 돌려 입을 열었다.
“요즘에는 방구석폐인들이 자주 밖으로 나오는 시기인가 보네.”
“…….”
밀레시안의 말에 말없이 나무 뒤에서 모습을 나타낸 노인.
서고장은 양 팔을 베게 삼아 누워 있는 밀레시안의 모습을 보고는 이야기했다.
“자네는 아직도 그러고 있는 겐가?”
서고장의 물음.
그에 밀레시안은 귀찮다는 표정을 없애고는, 이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내가 이 상태에서 뭘 더 할 수 있는데?”
“…….”
“괜히, 저번처럼 성질 긁으려고 온 거면 그냥 가는 게 좋을걸, 내가 요즘에는 기분이 좀 안 좋아서 말이야.”
밀레시안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 눈을 감았으나.
“헤르메스가 죽었네.”
“…….”
곧 서고장의 말에 의해 밀레시안은 감았던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잠시 무슨 감정이 담겨 있는지 모를 표정으로 서고장을 바라본 밀레시안은 이내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야? 근데 이걸 어째, 이미 나도 다 들었거든.”
“……그런가?”
“아니, 애초에 듣지 않아도 대충 알 수 있는 내용이잖아? 그 새끼가 정말 순수하게 그 자식 밑에서 일이나 도왔을 것 같아?”
피식-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밀레시안이 그렇게 말하며 비틀린 웃음을 짓자 한동안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서고장은 이내 이야기했다.
“그가 세계를 재창조하려고 하더군.”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엿이라도 먹였네. 살아 있으면 축하한다고 해주고 싶은데?”
“그리고 아마, 그는 자네를 죽이러 올 걸세.”
서고장의 말에 밀레시안은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고장.
그가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밀레시안은 지금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니까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리고 아예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뭐 이거야?”
“…….”
서고장은 말없이 긍정했고. 그로 인해 침묵이 이어졌으나 밀레시안은 곧 자조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한테 온 이유는 뭐야? 어차피 그 녀석이 그렇게 결정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확실히 밀레시안의 말대로 그가 자신들을 필요 없다고 판단해 처리하려고 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의 힘은 그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그런데 왜?”
밀레시안의 말에 서고장은 담담히 말했다.
“여기에 온건 내 의지가 아니라 헤르메스의 의지일세. 나는 그저 심부름을 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할 뿐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밀레시안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그것은 구슬이었다.
무지개색 빛으로 빛나는 구슬.
밀레시안이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자 서고장은 이내 몸을 돌리며 이야기했다.
“내가 예상하기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탑주들을 처리하러 이곳에 올 걸세.”
“우리 말고 어쭙잖은 파벌이나 만든 탑주들을 먼저 처리할 것 같은데?”
밀레시안의 말에 서고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네. 그는 파벌에 속해 있는 탑주들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니 혹시 쓸데가 있을지 몰라 살려둘 걸세. 지금 당장만 해도 그는 파벌을 이룬 탑주들을 멸망시키고 있지 않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우리는 다르네. 그는 관리기관에 속해 있는 탑주들의 능력은 전부 알고 있지. 그리고 우리의 능력이 지금 당장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고 말일세.”
서고장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자신의 손을 들어 가볍게 수인을 맺었고
우웅-!
서고장은 곧 자신의 발아래 생겨난 마법진을 바라보곤-
“아무튼, 내가 해줄 말은 이게 끝일세.”
-그대로 마법진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바닥에 있던 마법진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서고장.
밀레시안은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서고장을 말없이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려 그가 주고 간 무지갯빛 구슬을 바라보았다.
“…….”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
‘도대체 왜 나한테 이걸……?’
밀레시안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 구슬을 바라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
밀레시안은 그 어느 순간, 자신이 거대한 서고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당신이 헤르메스가 말한 밀레시안인가요?”
곧 밀레시안은, 그 안에서 한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