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잘 받아가마 (4)
“……그 말인즉슨, 우선 51번 탑의 잔재는 아예 박살 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이곳에 와있겠어?”
루시퍼의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가브리엘은 그런 표정은 전혀 짓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 잔재 쪽에 병력을 보내기만 하면 51번 탑은 완전히 끝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아니.”
“……?”
“아직 괴물들이 몇 명 남아 있거든.”
루시퍼의 말에 가브리엘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말했다.
“김현우의 측근들 말입니까?”
“그래, 그렇게 박살 난 세계에서도 몇 명은 멀쩡하더라고.”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치 질린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곧바로 화제를 돌려 이야기했다.
“그보다, 그게 진짜야?”
“그것이라면, 그분의 모체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가 아까 전에 말해줬잖아?”
루시퍼의 말에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정말입니다. 관리기관의 그 남자는 저희에게 51번 탑의 잔재를 처리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분이 깃들 수 있는 육신을 선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브리엘의 말에 루시퍼는 허탈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든 강신만 시키려고 했던 아버지의 육체를 한 번에 만들어냈다…… 라.”
“저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만, 그 모체는 확인 결과 진짜로 그분의 힘을 그대로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체는 어디에 있는데?”
“제 신전 지하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모체에 그분을 강신-.”
“아니,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아니시라면?”
가브리엘의 물음에 루시퍼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이야기했다.
“지금 내 몸 상태가 정상으로 보여?”
“……뭐, 우선 성별이 바뀌신 걸 제외하고는…….”
가브리엘은 그렇게 말하려다 순간 말을 멈추고는 이야기했다.
“마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으셨군요.”
“그래. 그러니까 지금 당장 모체에 그분을 강신시키는 건 무리야. 아무리 적어도 10시간 정도는 필요해.”
루시퍼의 말에 가브리엘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10시간 뒤 곧바로 준비를……?”
“그렇게 해. 그때면 내 마력도 전부 회복되어 있을 테니까.”
루시퍼의 말에 가브리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몸을 돌려 밖으로 이동했다.
“…….”
가브리엘이 가자마자 순식간에 조용해진 신전 내부.
그에 루시퍼는 곧바로 히스테릭한 표정을 지우고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괜히 한다고 했나.’
제일 먼저 밀려드는 후회에 루시퍼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진 않고 생각을 이어나갔다.
‘우선 내 생각대로라 괜찮기는 한데.’
루시퍼가 아무런 문제 없이 천계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야차와 다른 이들이 루시퍼를 그냥 보내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시퍼가 아무런 피해 없이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녀가 야차에게 했던 제안 때문이었다.
‘모체를 가지고 올 테니 나를 천계로 보내 달라는 제안.’
야차는 그것을 수락했고, 루시퍼를 천계로 보내주었다.
그 대신.
“…….”
자신이 걸고 있는 이 봉인주에 엄청난 숫자의 제약을 걸고.
‘이제 15시간 남았나?’
야차의 말대로라면 15시간 뒤에 야차가 따로 조작을 하지 않는다면 이 봉인주는 그대로 루시퍼의 목에서 터져 그녀는 그대로 소멸하고 만다.
그것뿐인가?
야차는 혹여나 그녀가 다른 마음을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게 여러 가지 행동에 관한 제약을 걸어두었다.
애초에 그런 제약을 걸지 않더라도 루시퍼는 야차를 배신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루시퍼는 야차에게 신임을 얻고 싶어 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루시퍼는 비빌 언덕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사실 정말 원래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탈출을 해서 어떻게든 천사들과 머리를 맞대 봉인주를 파괴했겠지만, 이미 그들에게 자신을 대용할 ‘모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마 가브리엘은 내가 야훼를 강신시키면 나를 죽이려 들 거다.’
애초에 루시퍼가 한번 ‘타천’했음에도 불구하고 천계에서 다시 최고의 권력을 쥘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강하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무엇보다 ‘야훼’를 강신시킬 수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모체만 없었다면 루시퍼는 야훼를 자신에게 강신시키는 것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허나 모체가 있는 이상 이미 그건 불가능하고, 오히려 모체에 야훼를 강신시키는 순간 자신을 죽일 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은 확실하다.
‘만약 죽지 않더라도…….’
신전 지하에 처박혀서 빛조차도 없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뭐, 지금 당장 거기서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하에 처박혀도 얼마 있지 않아 전부 죽임 당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지금 루시퍼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몸을 비빌 곳이 오히려 김현우한테 끌려갔던 51번 탑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참으로 기묘한 상황.
허나 루시퍼는 낙담하지 않았다.
뭐, 애초에 낙담하지 않았기에 야차에게 점수를 따러 손수 자신의 머리채를 잡았던 김현우를 살리기 위해 모체를 가지러 오지 않았나?
루시퍼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으나 이내 곧 그런 기분을 없애고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글퍼지는 것은 모체를 빼돌리고 나서 해도 상관없을 테니까.
그렇게 루시퍼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그녀가 있던 신전을 빠져나온 가브리엘은 자신의 신전을 향해 움직이며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탈출, 탈출이라.’
가브리엘은 돌아온 루시퍼를 떠올렸다.
아무리 봐도 옛날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누가 봐도 이질적인 루시퍼의 모습.
물론 그 안에 느껴지고 있는 마력은 그녀가 틀림없이 루시퍼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기에 우선 의심을 거두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녀는 뭔가 좀 이상했다.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지.’
가브리엘은 딱히 루시퍼가 어떻든 어떻게 변했든, 그리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그가 루시퍼에게 얻어내야 할 것은 그분의 강신뿐이니까.
만약 루시퍼가 모체에 안정적으로 그분을 안착시켜 주기만 한다면, 이제 더 이상 천계에서 루시퍼는 필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천사였으나 한번 타천한 존재.
가브리엘을 포함한 다른 대천사들이 그를 받들어 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그분을 강신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분의 강신이 제대로 되기만 하면 된다. 강신만 제대로 되면……’
그렇기에 가브리엘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잡생각을 지워 버리고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것의 시작은 그분이 강림할 때니까.
‘정령들이 습격을 받아서 어떻게 해야 했는데, 이것 참 상황이 잘 됐군.’
가브리엘은 미소를 지었다.
xxxx
서울 길드의 최상층.
“……하.”
한참이나 집무실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읽고 있던 김시현은 보기만 해도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보고서를 책상에 툭 내려놓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점점 감당이 안 되는데?”
“그러게요.”
김시현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냐.
분명 가디언 길드의 길드장은 김현우였으나 이제 김현우보다는 아냐가 가디언 길드의 길드장 이라는 이미지가 박힐 정도로 그녀는 가디언 길드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정말로 큰일인데. 이 정도는 감당이 안 돼.”
“이쪽도 마찬가지다. 감당이 불가능 한 수준이더군.”
아냐의 뒤를 이어서 김시현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서연과 한석원.
패도 길드와 암중비약 길드를 제외한, 한국 헌터계를 거의 꽉 붙잡고 있는 네 길드의 길드장은 집무실에 모여서 하나같이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석원이 형, 부산 쪽에 지원 가능해요?”
“아니, 불가능 해. 당장 광주 쪽 막는 것도 인력이 총동원 중이다.”
“……패도 길드랑 암중비약 길드를 쓰는 건.”
“그쪽 인력은 이미 예전부터 텅텅 비었어.”
“미치겠네…….”
“이쪽도 고민이에요. 이제는 헌터들의 로테이션이 너무 쉴 새 없이 돌아가서 다들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라…….”
각각의 사정을 털어놓는 길드장들.
그 모습을 보며 김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이러다 멸망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김시현의 말 한 마디에 무거워지는 분위기.
그제야 그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괜스레 흠흠거리며 분위기를 전환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나저나 오공이랑 청룡은 다시 복귀했어?”
“네. 그 덕분에 우선 구멍이 난 부분은 전부 막았어요.”
“확실히 손오공의 분신술은……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지.”
한석원은 손오공이 한 순간 수백 수천 명으로 불려져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서연은 어두운 표정으로 계속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
이서연의 말에 다시금 이어지는 침묵.
그러나 이서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처음 일어날 때부터 점점 늘어나던 몬스터 웨이브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말로 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듯 끝없이 늘어났고, 지금 당장 헌터들이 허덕이는 상황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지금 당장 세계멸망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몬스터는 거의 전 세계를 뒤엎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다고 했지?”
한석원의 물음에 아냐가 대답했다.
“우선 대부분의 국가들은 어떻게든 몬스터를 막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이미 몇몇 약소국들은 없어져 버렸죠.”
“…….”
“게다가 그게 더 문제에요. 약소국들이 전복되서 없어지면 그 몬스터들은 자연스레 이웃국가로 향하게 되니까 더더욱 큰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덕분에 흔들리지 않던 나라도 위태위태 한다고 하더라고요.”
연쇄작용.
그 말에 김시현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주변을 돌아보고는 이야기했다.
“뭐, 다들 너무 그렇게 기죽지 말자, 사태가 심각해져도 이제 믿을 것 하나는 생겼잖아?”
김시현의 말,
“……오빠가 부활할 수도 있다는 소리 말하는 거지?”
“그래, 우선 형만 부활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시현의 근거 없는 믿음과도 같은 말.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서연을 포함한 다른 이들은 그런 김시현의 말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믿기지 않지만 그 말을 믿고 싶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까?
그래, 물론 그것도 있을 것이었다.
허나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바로-
‘왠지, 진짜로 오빠가 온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줄 것 같은데…….’
-바로 김현우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였다.
분명 김현우는 여기에 있는 그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은 어떻게든 해결해 버렸던 전적이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우선 어떻게든 버텨보자.”
“맞아요. 길드장님이 오신다면 분명 어떻게든 해주실 테니까…… 저희는 그때까지만 버텨 봐요.”
‘하긴, 오빠가 적어도 어떻게 해줄 만큼까지는 지켜봐야지.“
그렇기에, 그들은 아직 이곳에 없는 김현우를 원동력 삼아,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