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anced Player of the Tutorial Tower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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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고인물을 대하는 법(2)
한순간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니 계약서를 바라보고 있던 김현우는 앨리스를 보며 말했다.
“여기 써져 있는 거, 80억 맞아요?
어느새 묘하게 불량한 어투에서 미묘하게 공손하게 바뀐 김현우의 말투에 앨리스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앨리스의 물음에 말없이 입을 벌리고 있던 김현우는 멍하니 계약서를 읽어 나갔고, 이내 그가 계약서를 다 읽자 앨리스는 말했다.
“그게 아레스 길드가 처음에 당신을 영입하기 위해 제시한 계약금이에요.”
“아레스 길드가?”
“만약 계약서에 쓰여 있는 2년의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서 당신이 원한다면 아레스 길드에서는 처음 제시한 계약금의 2배를 지불하고 당신과 재계약을 할 의사도 있다고 하더군요.”
“2배……? 그럼…… 160억?”
“네.”
“허,”
그 말을 듣고 김현우가 헛웃음을 지었고, 앨리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이외에도 미궁 내에서 얻은 마정석과, 던전에서 얻은 전리품의 권리도 일정 부분은 길드에 내줘야겠지만, 비율은 김현우 헌터가 더 높을 겁니다.”
이어지는 앨리스의 말에 말없이 앨리스와 계약서를 몇 번이고 바라본 김현우는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우리나라 화폐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까?”
“네?”
“아니, 그…… 있잖아요? 짐바브웨 달러처럼, 혹시 제가 없는 12년 사이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김현우가 의심 어린 눈빛으로 앨리스를 바라보자 그녀는 말했다.
“한국의 화폐 단위는 그대로예요. 물론 김현우 헌터야 탑에서 12년 동안 갇혀 있었으니 좀 괴리를 느낄 수도 있겠네요.”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갈색 머리를 넘기며 뭔가 고민을 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탑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 살고 계셨죠?”
“천호동이요. 강동구 천호동쪽.”
“잠시만요.”
김현우의 말에 앨리스는 뭔가를 검색해 보는 것 같더니 말했다.
“2006년 강동구 천호동 빌라가 3억인데 지금은…… 13억이네요??”
“…….”
앨리스가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김현우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자 앨리스는 흠흠 하고 괜히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김현우 헌터,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지난 12년 동안 한국은 땅값이 좀 많이 올라서… 다들 이 정도는 올랐습니다.”
“……정말이요?”
“네, 그럼요.”
마치 영업사원처럼 일말의 거짓말도 묻어 있을 것 같지 않은 투명한 웃음에, 김현우는 시선을 누그러뜨리려다 이내 응? 하는 느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헌터 협회 정보부장이라고 했던데 왜 길드 계약서를……?”
“제가 그쪽에 좀 연이 있어서…… 그쪽의 스카우터가 꼭 좀 전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분명 협회 합숙소의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직접 헌터에게 계약서를 넘기는 건 위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앨리스의 말에 김현우는 순간 그런 생각을 했으나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들고 있던 계약서를 내려두었다.
그리고 김현우는 앨리스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저는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는데?”
“네?”
“길드에 가입할 생각 없다고요.”
앨리스가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묻자 돌아온 대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으로 그를 보다 실풋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 심하시네요.”
“아닌데요.”
“네?”
“농담 아니라고요.”
무척이나 여유롭고 담담하게 말하는 김현우의 태도.
순간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앨리스는 표정이 굳었으나, 이내 억지로 어색한 웃음을 만들며 물었다.
“길드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고요?”
“네.”
“저기, 김현우 헌터가 아레스 길드가 내건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뇨, 굳이 설명 안 해주셔도 돼요. 조금 전에 계약서 읽어보고 대충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으니까.”
“그럼 도대체 왜…….?”
앨리스의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투에 김현우는 슬쩍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굉장히 건방진 자세에 앨리스의 눈이 슬쩍 꿈틀했지만, 그는 느긋하게 말했다.
“원래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잖아요?”
“…….”
“그런데 이 정도의 계약금을 주는 거라면 저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죠.”
세상은 기브앤테이크.
주어진 무엇인가에 대가가 없는 것은 없다.
김현우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80억을 받고 아레스 길드에 들어가 당장 돈이 많이 생긴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저는 좀 편하게 살고 싶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느긋하게.”
그의 자신감 넘치는 백수 선언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김현우를 바라본 앨리스는 물었다.
“그렇다면 헌터 활동을 하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아뇨, 그건 아닌데. 제가 여기서 들어보니까 또 혼자 활동하는 헌터들도 있다 하더라고요.”
용병.
그들은 길드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혼자 미궁을 도는 헌터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용병에 대해서 좀 일찍 알았다면 튜토리얼 존 나가지 말고 잠이나 더 잤을 텐데.’
하필이면 튜토리얼 존이 끝나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기에 김현우는 괜히 시간을 손해 본 기분을 느꼈었다.
김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의 말을 파악한 앨리스는 반박했다.
“미궁을 탐험하는 용병을 말하는 거라면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길드를 거쳐 이미 어느 정도 성장을 한 헌터라고 말해드리고 싶군요.”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과연 길드를 거치지 않고 제대로 성장도 하지 않은 당신이 그 용병들처럼 혼자 미궁을 탐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앨리스의 말에 김현우는 빙글거리는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될 것 같은데요?”
“네?”
“말 꼭 두 번 하게 하시네, 될 것 같다니까요?”
“…오만하군요.”
“글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 사람, 진심인가?’
한동안 그의 진의를 파악하려던 앨리스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곤 휴게실의 입구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뭐, 그래도 우선 부탁받은 거니까 혹여나 생각이 바뀌시면 제가 드린 명함으로 전화를 주세요.”
“네. 뭐…….”
흥미 없다는 듯 대답하는 김현우.
‘아마 지금 당장 헌터 업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서 저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한번 두고 보도록 하죠.’
앨리스는 그가 자신감이 넘치는 이유를 ‘정보 부족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 치부하곤 조소를 지으며 휴게실을 빠져나갔고.
김현우는 앨리스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아까 계약서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길드 목록을 바라봤다.
‘한번 봐 볼까.’
딱히 길드 가입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심했기에 길드목록이 적혀 있는 서류를 들어 올렸고.
곧, 길드목록을 쭉 읽어 나가기 시작한 김현우는-
“어?”
그곳에서 무척이나 그립고 익숙한 이름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길드 길드장 김시현? 그 아래는 고구려 길드 길드장인 한석원…… 그리고 그 아래는…….”
화랑 길드 길드장 이서연.
“혹시?”
김현우는 문득 12년 전, 자신이 처음 튜토리얼 탑에 들어왔을 때, 100층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100층까지 올라오며 그때 당시에는 이길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발록을 죽이고 남았던 4명의 동료.
그중에서도 가장 친하게 지냈던 3명의 이름이, 길드 목록에 차례대로 쓰여 있었다.
***
5일 뒤, 헌터 협회 측면에 있는 헌터 합숙소 앞.
“이번에는 좀 빨리 왔네? 옛날에 맨날 형 붙잡고 찡찡거리던 걸 생각해 보면 보고 싶은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온 건가?”
서울 길드장, 김시현의 놀림 어린 물음에 이서연은 가늘게 뜬 눈으로 한석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빨리 오지 않았어? 평소에는 맨날 지각하잖아? 한국 연합 길드 모임 때도 지각, 방송 출현에도 지각, 튜토리얼 존에서도 지각-”
“조용히 좀 해 이 쿨병환자야!”
이서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빽 소리치자 한석원은 그 둘을 보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그만하고, 그보다 김시현, 너는 기분이 어때?”
한석원이 묻자 김시현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앞을 바라봤고.
“뭐, 별생각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포커페이스를 지키려고 했으나-
“그래? 예전에 탑 8층에서 오크한테 머리통 깨지고 오빠한테 달라붙어서 며칠 동안 질질 짰…….”
“마ㅣ너이ㅏ너!!! 뭔 개소리야!”
“왜? 내가 없는 말 했어?”
이서연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야기에 그는 얼굴을 붉히며 이서연을 째려보았다.
한석원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다들 안 그런 척을 해도 은근히 들떴군.’
평소에는 둘이 있더라도 이렇게 티격태격하지 않는데, 오늘은 유독 긴장이 되는지 둘은 서로의 흑역사를 꺼내며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긴, 12년 전 우리를 이끌던 녀석은 그 녀석이었으니.’
한석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12년 전, 자신이 튜토리얼 탑을 오르던 때를 가볍게 회상했고-곧, 합숙소의 문이 열림과 함께 그가 빠져나왔다.
***
목동에 있는 한 고급 일식 레스토랑의 단독 룸.
언뜻 보기에도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는 그곳에서, 김현우는 무엇인가 낯설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본 뒤, 이내 앞에 앉아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차례대로 석원이 형이랑 서연이, 그리고 시현이라 이거지?”
김현우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묻자 한석원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래 맞다. 몇 번이나 물어볼 생각이냐?”
한석원의 말에 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보호 기간이 끝난 7일째. 김현우는 그제야 합숙소의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합숙소에서 요청한대로 12년 전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김현우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세 명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아니, 진짜 나랑 같이 탑을 오르던 그때랑은 좀 달라졌으니까 그렇지.”
‘그냥 달라진 것도 아니고…….’
김현우는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며 앞에 앉아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12년 전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였던 한석원은 어느새 얼굴이 주름진 아저씨로 변해 있었다.
그 외에도 내 뒤에서 항상 찡얼거리던 자존감 제로였던 고등학생 김시현은 꽤 멀쩡하게 생긴 미남이 되었고.
나이가 어려서 정신적으로 여려 많이 챙겨줬던 중학생 이서연은 아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김현우는 멍하니 그들의 모습을 둘러보다가 룸 안에 음식이 나올 때쯤 돼서야 입을 열었다.
“너 진짜 김시현 맞지? 50층 보스 상대하기 전까지는 항상 내 뒤에 붙어서 찡ㅉ…….”
“ㅁ니어ㅤㅣㅂㅈㄱ배ㅑ겨!!! 아니 뭐 그런 걸 기억하고 있어요!?”
김시현이 포커페이스를 깨뜨리고 당황한 듯 말을 얼버무리는 것을 보며 김현우는 피식 웃은 뒤 이번에는 이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14층에서 벤시보고 오ㅈ…….”
“거기까지, 그 이상 말하면 오빠라고 해도 가만 안 둘 거예요?”
이서연이 웃음을 지으면서도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자 김현우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이서연 성격 드러운 거 보면 진짜구나.”
“뭐욧?!”
이서연의 눈가에 힘을 준 체 김현우를 바라봤으나,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이 즐거운 듯 키득거리며 말했다.
“진짜 너희들 엄청 많이 달라졌다.”
“저희는 오히려 오빠가 아무런 변화도 없으니까 위화감이 느껴지네요.”
이서연의 말에 김현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탑에 있는 12년 동안은 나이를 먹지 않았으니까.”
그의 말에 이서연과 김시현, 그리고 한석원은 마주 앉아 있는 김현우를 보며 똑같이 생각했다.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튜토리얼 탑에서 봤던 그 모습에서, 그는 마치 시간이 멈춰 있었던 것처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외모, 그 이외에도 지금 당장 보이는 자신감 넘치는 말투나 자연스레 장난을 거는 친근감 있는 모습까지.
그것은 전부 앞에 있는 이가 틀림없는 김현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현우는-
“와 씨……! 이거 존나 맛있다!”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초밥을 간장에 찍어 먹으며 12년 만에 먹는 초밥에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감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