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140)
제140화
인지도가 높은 헌터는 대부분 매니저를 두고 있었다.
유성운이 말했다.
“뭐, 일종의 비서라고 봐도 되지.”
“바깥으로 잘 나가지도 않는 저에게 그런 비서가 필요할까요?”
“물론 비서라는 존재들은 바쁜 일정을 정리해 주기도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임무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특정한 사람의 안과 바깥을 관리해 주는 거잖아.”
특히 연예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한국의 헌터들은 곧잘 매니저를 고용했다.
“한국은 워낙 헌터에 대한 선망이 강하고, 그 영향으로 헌터들에 대한 이미지 소비가 원활하게 되어 있어. 그 헌터가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서.”
“헌터는 단순히 괴물이나 범죄자를 잡는 직업이 아니었습니까?”
“군인과 연예인의 사이라고 보면 될 것 같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의 헌터는 정부 소속이 아니지만, 두 직종의 특징만 따진다면 어느 정도는 비슷하겠지.”
주차장으로 이동한 유성운이 지오에게 탑승을 권유했다.
“편한 자리에 타, 운전은 내가 할 거야.”
“그럼 옆 좌석에 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대화 나누기에 편하겠네.”
차에 탄 유성운이 다시 주제를 이어갔다.
“그러니까 내가 매니저를 두면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이유는….”
드륵.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
“너는 지금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잖아.”
“맞는 말씀입니다.”
“‘서지오 헌터’의 신분을 애용할 거라면 옆에 도우미를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도우미라.”
“헌터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안내인 같은 거지.”
실제로 그런 맥락에서 매니저를 고용하는 헌터도 많았다.
“자신의 전공이 무엇인지에 따라 헌터의 업무는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의해야 할 부분은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갈 거냐는 점이야.”
“유성운 씨의 상황을 예시로 듣고 싶습니다.”
“나는 애초에 이미지 소비를 안 하겠다고 결정한 쪽이지. 헌터보다는 정원사로서의 자각이 더 강하고, 무엇보다 협회의 연구 팀장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공인으로 나서기가 애매해.”
“중요한 정보가 새어 나갈 위험이 있기 때문일까요?”
“그런 것도 있고, 이미지 관리에 쓸 여력이 없기도 하고. 대중 앞에 나서서 희망과 웃음을 줄 시간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잘 시간을 확보하는 쪽이 합리적이잖아….”
유성운은 유능한 헌터에, 베테랑 정원사이며, 한때 협회의 연구 팀장이었고, 지금은 비사벌의 수집품이자 수집상의 큐레이터이기까지 했다. 여기에 이미지까지 챙기려면 몸이 다섯 개여도 부족했다.
부드럽게 차를 모든 유성운의 눈가는 멀쩡했지만 왜인지 퀭해 보였다.
“나도 휴식이라는 게 필요하거든.”
“저런, 달콤한 간식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간식보다는… 다음에 한 번만 더 초대해 줘.”
“저의 친구인 유성운 씨는 얼마든지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고마워, 거기선 정말 잠이 잘 올 것 같아.”
인종 개변의 위협을 조금 당한다는 사소한 단점이 있지만, 차아라와 주현의 예시만 보아도 딱 느껴지지 않는가. 지오의 오두막은 인간이 휴식하고 회복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것도 지오의 마음에 드는 인간에 한해서겠지만.’
유성운이 곧 무던하게 웃어넘겼다.
“아무튼 나는 워낙 바빠서 이미지를 챙기기 싫은 쪽.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대중 앞에 나서기 싫은 언더그라운드 계열 비공식 헌터들은 충분히 많아. 비즈니스 회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수집상에 특히 더 많고.”
“저도 그런 비공식 헌터로 남으면 안 되는 걸까요?”
“나도 너와 같은 A급 헌터에 이런저런 활동 이력이 있기는 하지만, 난 초반부터 비밀 유지 조항을 걸고 일을 했거든. 하지만 너는 이미 인지도가 있는 편이라 힘들걸. 왜인지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잘 유지할 자신이 없습니다. 인성 논란으로 나락을 갈 거예요.”
“그… 무슨 심정인지는 나도 이해해. 너무 부담스럽다면 가능한 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쪽으로 해도 좋아. 사람들은 신비주의 전략인가 하는 눈치지만 이대로 숨어 지내면 언젠가 잊히긴 하겠지.”
각성자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그중 헌터가 되는 사람은 더더욱 많다. 대중의 인지도를 원하는 헌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조용히만 있으면 언젠가 잊히긴 할 것이었다.
“하지만 서지오 헌터로서 계속 활동할 거라면, 사람들의 눈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거야.”
“공식적으로 나서지만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아닙니까?”
“사람들은 호기심이 자극될수록 파헤치려 드는 나쁜 본능이 있어서 말이지.”
“제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인가요?”
“스타성은 충분히 있어 보이는데 언론에는 나오지도 않고, 매체엔 등장도 안 하잖아.”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숨은그림찾기? 그런 느낌이 되는 거지.”
지오가 초상화인 탓에 ‘숨은그림찾기’로 비유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세간에 알려진 ‘검은망토’의 특성과 비슷하기도 해.”
“저와 검은망토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릴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씀이군요.”
“그러니 굳이 신상을 조사할 사람이 생기기 전에 네가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를 내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끝까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성 짙은 A급의 잘생긴 헌터.
아직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 소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은 지금까지도 ‘서지오 헌터’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나게 되면 꽤 곤란할걸. 파파라치도 붙을 거고.”
“공식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데도 그럴까요?”
“지난번 ‘심해의 신전’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계속 숨어 있기만 할 거야?”
“음, 조용히 뒤에서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굴면 사람들이 계속 기억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
대중 앞에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선행과 자비를 베푸는 헌터는 특히나 인기가 높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지오 헌터’는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가 너무 많아.”
쉽게 잊히긴 어려웠다.
“그러니까 괜한 진실을 알아내려는 멍청이들이 나오기 전에 선빵을 쳐도 좋겠다는 거야. 네가 먼저 ‘서지오 헌터’의 신상 정보와 이미지를 밝혀주면, 호기심이 해소된 사람들은 굳이 너의 신상을 조사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서지오 헌터’와 ‘검은망토’의 이미지를 완전히 분리하면 가장 좋고.”
“의문이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조사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런 놈들은 어디에나 있지, 심지어 나도 있는걸. 나 같은 경우에는 협회 소속이었던 전적이 있는 탓에 정보 통제가 아주 잘 되는 편인데도 그래. 그러니 정부와 협회에서 관리해 주지 않는 너는 더더욱 파헤칠 여지가 많아 보일 거다.”
유성운이 무던하게 웃었다.
“뭐, 어디까지나 네가 ‘서지오 헌터’라는 신분을 계속 활용하고 싶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직 제 역할에 대해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신분에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이미지 관리를 좀 해주는 편이 좋겠지. 산에 사는 몬스터들도 먹을 게 없으면 민가로 내려온단 말이야.”
“몬스터입니까?”
“그래, 배가 고픈데 채워줄 게 없으면 애꿎은 사람 들쑤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떡밥을 던져 주라는 말이었어.”
“그렇다면 최소한의 이미지 관리에는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금발의 지오가 은은한 미소를 띤 채로 물었다.
“저도 매니저를 고용하게 되는 걸까요?”
“그 부분은 우리가 열심히… 고민을 해볼게.”
유성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네가 먼저 마음에 드는 인간을 추천해도 좋고.”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오의 초상화’가 불쾌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성운은 가급적이면 이 신사적인 근원이 만에 하나라도 인간을 미워하지 않아 주기를 바랐다.
“급한 일은 아니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돼.”
“그렇군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설명하자면….”
“경청하고 있습니다.”
“매니저가 해주는 건 이미지 관리뿐만이 아니야.”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안내인 역할을 해준다고요.”
“그래, 안내인. 그리고 도우미.”
유성운이 끄덕였다.
“헌터인 부모님을 보고 배운 게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헌터들도 처음에는 우왕좌왕해. 유명해지고 싶고, 대중 매체에 등장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지.”
“이해가 됩니다.”
“헌터로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해야 인지도가 높아지는지. 헌터들끼리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 등등… 헌터의 사회생활을 돕기도 해줘.”
“그건 확실히 저에게 필요해 보입니다.”
지오는 크게 감명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어냈다.
“헌터는커녕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도 걱정이라서요.”
“하긴 내가 계속 옆에서 알려주는 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유서운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쁜 사람이라 미안해.”
“아니요, 오히려 존경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 고마운 말이네.”
부담스러운 말이기도 했다.
‘말이 존경이지 기대에 가깝겠지만 그것조차도 부담스러워.’
유성운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종종 현대 문물을 활용할 때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잖아.”
“유성운 씨의 말이 맞습니다.”
“그런 방면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매니저를 찾으면 좋을 것 같네.”
지오는 대뜸 대금을 보석과 같은 현물로 치르려 하거나, 맨발로 공공장소에 나타나기도 하고, 인간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여러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없지만 너도 이것저것 배워서 나쁠 것 없지 않을까?”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학교에 입학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학교? 음, 그렇구나. 하지만 아무래도 네 나이에 학교를 입학하는 건 눈에 띄지….”
아마 지오는 ‘학교란 인간들이 일상과 사회생활에 관련된 지혜를 배우는 장소’라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오를 학교에 입학시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그럼 네 매니저가 될 사람으로는 꽤 다재다능한 인재가 좋겠는데.”
“제가 검은망토라는 것을 알고서도 저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면 더 좋겠습니다.”
“…너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래, 내가 열심히 찾아볼게.”
아, 유성운이 탄성을 뱉고는 물었다.
“평소에 다른 신과 접촉해 본 적은 있어?”
“아버지와 자주 교류합니다.”
“그… 전대 신 말고, 아예 별개의 신과 말이야.”
“그런 적은 없습니다.”
지오는 마치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것처럼 웃었다.
“저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신과 자주 교류할 수 있었겠어요.”
“…….”
유성운은 입술에 힘을 준 채로 웃었다.
“그렇구나.”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주세요.”
“우리 지오 많이 평범하지.”
근원이 해달라는데 못 해줄 것도 없었다.
“지난번 태양교에서 공정의 불빛과 시선을 교환한 적이 있지 않던가?”
“공정의 불빛이라면 태양교의 여신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때 이후로 다시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 대 신으로서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건데.”
“유성운 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으음….”
작은 신음을 흘린 유성운이 물었다.
“혹시 사고가 날 것 같아?”
“장난꾸러기일 나이는 지난 것 같습니다.”
“아르지오로서는?”
“완전히 동화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안전합니다.”
“주도권이 그 쪽에게 있지 않으니까?”
“그 모습 역시 저이니 주도권이라고 하기는 애매하겠지만요.”
“그래? 어쨌든 싸울 의도가 없다면 됐어.”
유성운도 ‘지오의 초상화’가 어떤 식으로 근원의 눈이 되어주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았다. 자신을 악신이라 소개한 아르지오는 단지 ‘지오’일 뿐 ‘지오의 초상화’이지는 않았다.
‘지오가 사고 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 말이 맞겠지.’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유성운이 입을 열었다.
“네가 만나게 될 죽음의 신은 전통적인 악신이야.”
“전통적인 악신?”
“섭리 속에서 태어났음에도 인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신이지.”
그는 지구의 토착 신이었다.
“탄생의 신과 쌍둥이 신이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해서 그런지 대단히 점잖고 말수도 적어. 인간들에게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신도 아니야.”
“제가 방문한다고 해서 반응해 주지 않으실지도 모르겠군요.”
“그럴 수도 있고, 지난번의 태양의 여신처럼 눈길을 줄 수도 있어. 하지만 죽음의 신은 지구에 현신체가 있는 몇 안 되는 신이라 소통이 될 가능성이 커.”
“현신체가 무엇입니까?”
“무형의 존재에 가까운 신성들이 인간들의 세상에 방문하기 위해 만든 인형 같은 거지. 조금 다른 경우겠지만, 네 아버지가 들어간 곰인형… 과도 비슷할 거야.”
“아하.”
지오가 웃으며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곰인형과 현신체를 비교할 수 있다니 유성운으로서도 참 놀라운 일이었다.
“톨게이트 지나고 얼마 안 가면 죽음의 신전이 있어.”
“기대가 됩니다.”
“악신의 신전이라 인기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때 즈음.
죽음이 눈을 떴다.
* * *
“…….”
죽음이 제 딸을 보았다.
“내… 딸아….”
“죽음이시여, 어인 일로 눈을 뜨셨습니까.”
“…잔혹한… 신성이….”
“잔혹한 신성이라면 악신을 말씀하심인지요.”
“초대를… 원하… 는… 구나….”
“방문 허락 요청이 한 건 있었습니다.”
여인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안내… 하… 렴….”
베일 속 죽음이 속삭였다.
“내가 보겠다.”
그것은 죄인일까, 섭리일까, 영웅일까.
그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