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354)
354
제354화
과연 이 정원은 어떤 식으로 개인의 취약한 점을 특정하는가?
‘이런 식이라면 최소한 기억에 의거하지는 않았겠는데.’
단해라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
우거진 나무의 틈으로 보이는 학교.
많이 비틀리고 변형되기는 했으나 이 정원이 그녀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는 명백했다. 이곳은 단해라의 모교였다. 아직 불에 타기 전, 폐교가 아닌 그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대체 기준이 뭐지?’
개별 행동을 하며 지금껏 단해라는 이 정원의 특성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없던 유형의 던전이라 그런지 진행 방식이 상당히 특이했다.
이곳은 던전 내부에 또 다른 던전을 생성하며 참가자들을 괴롭혔다. 그 작은 던전은 누군가의 ‘행복’을 주제로 형성되며 또한 비틀린 방식으로 선보여진다.
‘이것이 이 정원의 가장 일차적인 공격.’
차라리 선발대의 수가 적었다면 공략이 한결 수월했을 법한 특성이었다.
‘그다음은 역시 광대의 등장인가.’
지금까지 발견된 사례는 모두 장신구 형태의 트리거.
이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해당 팀에게는 장신구의 착용 부위에 따른 저주가 발생한다. 그와 동시에 광대들이 스며들어 지구에서와 같이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단순히 행복을 사악한 형태로 이루어줬던 지구에서와 달리 조금 더 직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에 보임에도 그 이질감을 인지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히 곤란한 부분이야….’
발찌라면 걸음을 왜곡하고, 목걸이라면 내뱉는 말을, 귀걸이라면 듣는 소리를 왜곡한다. 거기에 광대들의 수작까지 곁들여지니 어지간히 마음이 단단하지 않고서야 견딜 수 없으리라.
여기까지 보면 이 정원의 공격 방식은 참으로 명확했다.
“…흐음….”
다만 아직도 궁금한 점은, 이 작은 던전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개인’을 설정하느냔 것이다.
‘가장 분란을 일으키기 적합한 사람으로?’
어쩌면 완전히 랜덤일 수도 있었다. 이쪽도 꽤 가능성이 높았다. 그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고, 남들 보여주기 민망한 행복이야 한둘쯤 가지고 있는 세상이지 않던가.
단해라가 기계 같은 미소를 지었다.
“폭로전은 확실히 폭로전이야.”
개별 행동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의 ‘취약한 점’이 폭로되면 함께 행동하는 동료들도 쉽게 망가지고 무너진다. 아직은 그래선 안 됐다.
단해라는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그녀만의 던전을 보았다. 꼭 던전 주인이 된 기분이라 신기했다. 그녀는 최근 얼마간 ‘약속’한 적이 없어 꽤 다양한 감상을 맛볼 수 있었다.
“조금 재밌는걸.”
“오, 그래?”
“최소한 지루한 기분은 아니니까.”
“지루한 게 아니면 재밌는 거다?”
학교 정문 계단에 앉아 정해운이 픽 웃었다.
“그거참 그럴싸하네.”
“오랜만에 보자마자 시비를 걸다니, 너는 심심했나 봐.”
“워낙 심란해서 심심할 틈도 없더라.”
“뭐가 그렇게 심란했을까, 내 친구는?”
“너 언제 인간 만드나 싶어서.”
정해운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구경이나 해볼래?”
“뭘?”
“이 학교 말이야.”
“하긴 이걸 공략하기 전까지 다른 곳을 살펴볼 수는 없으려나.”
“그냥 즐겨, 어차피 여긴 정원이야. 일반적인 던전처럼 깊이 들어간다고 보스가 나오는 식이 아니란 말이지.”
“그다지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네.”
이전에도 정원에 대한 보고는 자주 들었다. 정해운 혼자 도맡아 하는 작업이었으니까. 끝없는 자연에 가까운 이미지였던 것 같은데 아마 이 던전도 그와 같은 모양이었다.
“정원이라는 것을 공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혀.”
“아무래도 정원 그 자체를 때려잡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지.”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자연이라는 것이?”
“나는 자주 그랬어. 그 왜, 최소한 산불이 나면 민둥산이 되기는 하잖아.”
“그래도 나무나 풀은 계속해서 자라는 법이야.”
“아예 밀어버리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짓든가. 바다는 쓰레기장으로 만들 수 있고, 하늘에는 오존층을 세울 수도 있지.”
“그것도 나름 말이 되네.”
단해라가 눈웃음을 그렸다.
“내가 정말로 공략하면 어쩌려고 이런 조언을 다 해줄까?”
결국 이 던전을, 정원을 없애려면 근원 자체에 영향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장신구를 보아하니 그게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도, 대략 감은 오는 것이다.
“제오르제 씨와는 아군이 된 게 아니었어?”
“어… 좀 복잡한 관계라서 말이야.”
“그래서 언젠가는 죽어도 된다?”
“죽긴 누가 죽어?”
“너, 혹은 제오르제 씨가. 어느 쪽이든 영 미련이 없어 보이네.”
“글쎄,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지.”
정해운이 이내 씩 거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제 친구들에게 늘 짓던 미소였다.
“나는 정원이 날뛰는 사이에 내가 원하는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야.”
“…지금 그 얼굴 잘 어울려.”
“이제는 굳이 사람들 사이에 섞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지금 정해운의 얼굴은 20대에서 30대 정도의 얼굴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는 늙지 않았던 시점의 그 얼굴. 단해라는 꽤 오랜만에 보는 그 얼굴이 조금 낯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학교와는 아주 잘 어울렸다.
“그러고 있으니까 꼭 학생 같다, 해운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정해운은 낄낄 웃으며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단해라가 따라 들어갔다. 이 영악한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녀를 만나러 온 건지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
학교 안은 꽤 조용했다.
“…예전에는 좀 더 떠들썩했던 것 같은데.”
“그랬었지.”
“확실히 기억에 따라 구성되는 건 아닌가 봐?”
“그럴 수도 있고.”
정해운은 딱히 안내해 줄 생각은 없는지 그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만 했다. 아마 이곳이 단해라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니 정해운에게도 흥미를 유발하는 장소인 듯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닌 단해라가 물었다.
“뭘 원해?”
“머리 박고 뒤지는 거.”
“흠, 낭만 있네.”
“네가 낭만이 뭔지는 아냐?”
“알 수도 있지.”
“선생님 좋은 사람이었어.”
“나도 알아.”
“모를걸….”
정해운은 어느 교실 앞에서 멈춰 섰다.
“…….”
“미술실이었던가?”
“그랬지.”
“저건 뭘까나.”
햇살이 어렴풋이 들어오는 오후의 어느 날을 흉내 낸 교실 안으로는 따듯한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단해라는 그저 멈춰 서 있는 정해운을 지나쳐 반 안으로 들어갔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멀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그건 볏짚 인형이었다.
“…….”
키가 꽤 크고 체격이 있지만, 얼굴이 그려져 있거나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단지 봉제 인형처럼 허여멀건 가죽 안에 볏짚을 가득 채웠을 뿐인, 아주 엉망인 인형에 불과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단해라가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저주 인형?”
“미쳤냐.”
“대충 누굴 형상화한 건지는 알겠어, 서지오 선생님이겠지?”
“그 잘난 얼굴을 이렇게밖에 못 만든 너도 참 대단하다.”
“기억나지 않는 걸 어떻게 하겠니.”
단해라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천 얼굴을 쓰다듬었다.
“어라.”
인형이 단해라를 바라보았다.
“움직이네?”
“…….”
“말은… 못 하겠지만.”
입이 없지 않던가.
“잘라보면 입으로 쳐주지 않을까?”
“제발 그러지 마라, 진짜.”
“어차피 인형인걸.”
“보는 내 기분이 다 이상해.”
“그냥, 입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져서.”
“그건 좀 놀랍네.”
정해운이 단해라를 보며 물었다.
“꽤 됐어?”
“‘약속’하지 않은 기간을 묻는 거라면, 아마도.”
단해라는 정해운을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인형의 얼굴을 매만졌다. 옷조차 입지 않은 이 엉성한 인형이 뭐라고 손이 갔다. 신기한 것 같기도 하고,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아마도 입이 있을 법한 부근을 매만지며 말했다.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에 인형이 움직였다.
딱히 공격 의사가 없는 듯 보여 단해라가 눈을 깜박였다. 인형은 그녀를 지나쳐 미술실을 걸었다. 그러고는 공용 미술 도구가 모여 있는 곳에서 가위 하나를 꺼냈다.
“…아.”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잘랐다.
“입이 생겼네.”
“해라야.”
“이제는 말도 하고.”
단해라는 저도 모르게 정해운을 돌아보았다. 그는 왜인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었다.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그보다는 끔찍하게 역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득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어 단해라가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야?”
“네가 뭘 하려나 보려고.”
“그럼 뭐가 달라져?”
“잘 모르겠다….”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좀 질리네.”
“이해했어.”
정해운은 잠시 스쳐 가는 구경꾼이었다. 무언가 행동을 할 수도, 그저 보고만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영원의 상징’ 자리로 돌아와 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성격에 순순히 그러진 않겠지.
‘언젠가 정해운도 다시 잡아 와야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그의 약속이 깨졌다고 해도, 괜찮다. 분명 어떻게든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단해라가 시선을 돌렸다. 왜인지 애착이 가는 이 인형에게로 말이다.
그녀는 무식한 방법으로 생긴 인형의 입을 응시하며 말했다.
“뭘 위해 이렇게 했나요, 선생님?”
“네가 나와 대화하기를 원했으니까.”
“학생이 원한다면 뭐든 해주실 건가요?”
“내가 할 수 있고, 해선 안 될 이유가 없다면.”
“헌신적이시군요.”
이런 사람이 왜 그토록 시스템을 없애려 할까.
‘어쩌면 할 수 없고, 해선 안 될 이유가 있다는 걸지도.’
아니면 인간 아닌 무언가로 변질되며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가 적은 건 아니고.’
애초에 인간이 신비가 되는 일 자체가 드물기는 하다만, 그렇게 변질된 경우 사고방식이 바뀌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러니 ‘서지오 선생님’도 그런 것일까? 자기 보전을 위해 이런 헌신적인 사고방식을 버렸나?
단해라는 인형의 입가를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쓸었다.
“…….”
…아니, 글쎄.
‘딱히 그랬을 것 같지는 않아.’
이유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가 없었다.
* * *
열심히 이동하던 중 대뜸 지오가 미간을 좁혔다.
“엇.”
“응? 갑자기 왜 그래.”
“어디선가 올려치기를 당한 느낌이.”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아뇨, 그냥 느낌만 그렇습니다.”
지오가 드물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이 좋고 나쁜 기분은?
* * *
어느 순간 정해운은 사라져 버렸다.
“정원사라는 이름값을 하네.”
과연 정원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던 정원사라는 것일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정해운의 빈자리에 묘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잠시, 단해라가 제 곁의 길쭉한 인형을 보았다.
“선생님은 저와 함께해 주시리라 믿어요.”
“영원할 수는 없을 거다.”
“어쩌면 영원할 수도 있지.”
그녀는 제 뺨을 쓸고서는 말했다.
“…우리가 친하긴 했나 봐요?”
역시 그간 소비하지 않고 비축해 둔 감정 덕분일까. 이 엉성한 인형을 향한 애착이 선명했다.
‘약속으로 기억이 지워진다고 해서 영혼에 새겨진 친애까지 지워지진 않는 법이지.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일 텐데, 이런 것도 꽤 재미있네.’
아마 이것이 ‘서지오 선생님’을 흉내 낸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따지자면 이것은 몬스터에 가까우니 애착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랬다. 마음이 가고 손이 갔다.
단해라는 이 볼품없는 인형의 손목을 그러쥐고 있었다.
“당신이 도망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어.”
“시스템을 말하는 걸까? 비밀이 많으시네요.”
“내가 만든 비밀은 아니었을 거야.”
“그럼 내가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정을 좀 하자면, 단해라는 이 인형이 꽤 탐이 났다. 그런 욕구가 어린아이의 탐욕을 닮았다는 것을 단해라는 인지하지 못했다. 기억과 감정을 버리고 산 세월이 꽤 된 탓이었다.
그녀가 욕심을 부려 한동안 기억과 감정을 비축하지 않았다면 이런 욕망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단해라는 억지를 부리듯이, 그러나 정교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나와 함께 가겠어요?”
이 던전이 무너지면 결국 이 인형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버리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날 먹으면 돼.”
“…….”
그 순간.
“…먹으라고?”
단해라는 아주 낯선 감정을 느꼈다.
“날 먹으면 돼.”
“…무슨….”
“날 먹으면 돼.”
“…….”
“나를.”
하지만 그 감정을 정의하지는 못했다.
이게… 무슨 감정이었지?
“…….”
“먹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