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355)
355
제355화
오랜만의 통신에 잠시 정지한 수집상은,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협회장님께서 개별 행동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이래서야 영원의 상징 전부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황이네요.”
지오는 사제의 얼굴을 한 채로 무표정하게 제 턱을 쓸었다. 감정을 확인하기 어려운 반응에 그 곁에 있던 유성운이 슬그머니 물었다.
“기분이 안 좋은가?”
“딱히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최소한 웃는 얼굴은 아니잖아, 지금.”
“저라고 늘 웃지는 않아요. 음, 아뇨, 사실….”
“사실?”
“못마땅한 것 같습니다.”
“어이쿠.”
유성운의 엄살에 지오가 다시 사제의 미소를 지었다.
“하하, 심각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사심이니까요.”
“일단 영원의 상징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심각하지 않다고 보긴 어렵지….”
“단지 걱정이 될 뿐입니다.”
“그래도 이름값에 걸맞은 경험들이 있으시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거랑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만.”
지금까지 정리한 통신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일단 정해운은 실종 혹은 배신을 한 상태였다. 유스티티아의 길드장은 던전 바깥에 있고, 단해라는 개별적으로 돌아다니니 그녀가 먼저 연락해 오지 않는 한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어디 보자….”
그렇게 말한 지오가 잠시 눈을 굴려 위를 쳐다보았다. 사실 본다기보다는 무언가를 계산하는 시늉에 가깝다고 유성운은 생각했다. 저 입에서 무슨 예언이 나올지 불길해졌다.
이내 지오가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나온 건 질문이었다.
“저희가 공략을 시작한 지 꽤 되었지요?”
“어, 글쎄. 시간이 워낙 왜곡되어 있는 상태라 명확하게 대답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이었겠지?”
“공략을 준비하던 지구에서의 시간까지 합친다면요?”
“아, 그러면 그건 정말로 적지 않은 시간일 거야. 물론 시간의 많고 적음은 사람마다 느끼는 편차가 크긴 할 텐데, 그걸 감안해도? 아마?”
“제 생각에 협회장님께서 그동안 ‘약속’을 자제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려나?”
유성운이 제 목을 쓸었다.
“그렇겠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초상화의 말이 맞았다.
이런 중요한 공략에 직접 참가한다는 의사를 진작에 밝혔던 협회장이다. 그녀의 능력은 기억 혹은 감정을 연료로 써야 하니, 심각한 사태에 쓰기 위해 가능한 비축해 뒀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력이나 체력 따위와 다르게 그런 연료는 쉽게 회복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왜?”
“저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나요?”
“그게…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하겠다.”
“그렇죠?”
이 던전이 서브 던전을 만들어내는 기준은 아직 잘 모른다. 누군가의 것은 주관적인 기억에 의거해 만들어졌고, 누군가의 것은 실제 객관적인 과거를 토대로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집단이 크면 클수록 던전 대상자로 당첨될 확률은 낮아진다. 지금까지 서브 던전은 한 팀 앞에 하나씩만 나타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개별 행동을 하게 되면 거의 필연적으로 본인 컨셉의 서브 던전을 마주치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단해라는 현재 드물게도 기억과 감정이 풍부한 상태일 터였다.
“지오 너는 협회장님이 감정에 휘둘릴까 봐 걱정하는 거야?”
“아무래도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면역이 낮지 않겠습니까?”
“협회장님이 이런 식으로 기억과 감정을 비축한 사례는 이전에도 몇 번이나 있었어. 그동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한 적이 없었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놓고 싶습니다만, 이 던전은 개인의 취약한 부분을 찌르고 있지 않습니까. 협회장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악신과도 여러 번 상대해 보셨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 악신도 인간의 취약한 점을 찌르는 것으로는 만만치 않아. 그런데도 지금까지는 큰 문제 없이 모든 고난과 과제를 공략해 오셨어. 걱정을 조금 덜어도 되지 않으려나?”
“글쎄요.”
조금 더 고민하는 시늉을 하던 초상화가 이내 말을 덧붙였다.
“이전보다 훨씬 더 취약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이전보다 훨씬 취약한 상태라?”
“예를 들어 거대한 ‘약속’ 하나가 깨진다든가.”
“어우.”
“그러지 않아도 이미 그 기미는 보이고 있었죠.”
“시스템의 종료를 말하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헌터들의 모든 시스템이 종료된 건 아니잖아. 아마 던전 바깥의 지구는 여전히 ‘약속’이 작동 중일 텐데?”
“그냥 걱정을 해보는 겁니다.”
사실 지오도 잘은 모른다. 그가 알기는 뭘 알겠는가,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 이 세상에 말이다. 하지만 ‘서지오’와 얽힌 네 제자들의 과거사가 결코 평범하지는 않으리라 확신했다.
‘모르긴 몰라도 사고 하나 거하게 쳤을 것 같던데.’
상황 돌아가는 스케일을 보아하니 감이 영 좋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 은혜가 그렇게까지 지레 겁을 먹어버렸던 걸 떠올려 보면 그때 정말 심상치 않은 사고를 친 걸 테고. 내 성격 알면서도 혼나고 버려질까 그렇게 걱정했으니….’
지오라고 그 언젠가의 기억이 있는 건 아니었다. 떠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알아도 좋고 잊은 채로 지내도 상관없겠지만 중요한 건 그의 제자들이었다.
‘최소한 제정신 박혀 있으면 본인이 잘못한 줄은 알고 벌벌 떨게 될 정도의 기억이라는 거잖아. 은혜 성격 자체가 말랑한 편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게 해라라고 크게 다를까?’
글쎄, 아닐 것 같았다.
“…느낌이 안 좋네요.”
“좋아, 예언으로 쳐도 될까?”
“저는 예언을 할 줄 모릅니다, 유성운 씨. 유언비어를 남발하지 말아 주세요.”
“일단 그런 걸로 알아둘게.”
“과연 알아둔 걸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너스레를 떠는 유성운의 모습에 지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떻게든 되겠죠.”
“최근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무서웠어, 지오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입니다.”
“혹시 우리한테 정떨어졌니?”
“그건 또 무슨 모함이죠? 저는 억울합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다행인 일이지만, 손을 놓아버린 것 같아서.”
“다 큰 어른이 되었으면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하는 겁니다.”
“아니 뭐, 맞기는 한데. 혹시 그 ‘다 큰 어른’이 협회장님인가?”
“이것저것 포함해 아마도요.”
대통령이 되어버린 옛 제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부터 지오는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 반응이면 정말 어지간히 잘못한 게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이 전부였다.
지오는 상상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 상상력으로 최악의 최악까지 떠올려 보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화가 나진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말해 정말 아무 상관도 없다는 뜻이다.
‘못난 과거에 괴로워하는 건 내 몫이 아니지.’
우리 똑똑한 해라가 알아서 잘할 거라고 선생님은 믿어.
* * *
“…….”
“해라야.”
“…아.”
잠시 멍을 때렸나.
“…이게 무슨 감정이더라?”
“선생님에게 묻는 거니?”
“글쎄요, 아마도… 그렇지 않나 싶네요.”
“무서워하고 있구나.”
“그렇군요, 이게 공포였어.”
손을 들어 제 이마를 가볍게 쓸었다. 단해라는 그 작은 행동에서 제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호흡과 행동을 평소처럼 제어해 보려고 했지만 영 쉽지가 않았다.
미약한 현기증이 이는 것 같기도 했고, 귀와 뇌를 관통하는 희미한 이명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공포, 공포라. 단해라는 반사적으로 이 감정의 가치를 계산했다.
‘약속에 있어 꽤 괜찮은 대가가 되겠는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니….’
그렇듯 자연스럽게 계산하다가도 생각이 턱 막혔다. 계속해서 비슷한 생각만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이게 아마 공포의 무게일 것이라, 그걸 체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이 궁금하니?”
“왜 당신을 먹으라고 했지?”
“너희가 그렇게 했잖아.”
“…….”
단해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평소의 ‘협회장님’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더없이 나약하고 불안정한 웃음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지할 새도 없이 말이 튀어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랍네.”
신을 먹는다.
“자주 있는 방식이기는 해, 아주 고전적이고.”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어.”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효과는 확실했겠죠. 어느 신비의 역사에서든 섭취 행위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또 커다란 영향을 주기 마련인지라.”
“늘 여기에 있을 거야.”
“최소한 선생님의 살점을 뜯어먹는 것처럼 고상하지 못한 방식은 아니었길 바라요. 그래, 하지만 여태껏… 그런 방법을 생각하지는 못했었어. 왜일까?”
나름 뻔하다면 뻔한 정답이었다. 정해운에게 이미 한 차례 ‘서지오 선생님’을 취해 S급의 능력을 얻게 된 것이라 언질 받은 바가 있지 않던가.
‘그런데도 그 고전적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니.’
무의식적인 선택이었을까? 내가 이미 버렸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존엄성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왜인지 본능적으로 ‘그 행위’에 대해서는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고?”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
“하긴 그것도 그래.”
거짓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단해라는 손을 들어 볏짚 인형의 얼굴을 쓸었다. 그건 이전과 달리 거부감이라도 느끼는 듯 옅게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뭘….”
무어라 질문하려던 단해라의 입이 이내 닫혔다.
“…….”
“해라야.”
“정신이 없네.”
감정, 감정, 감정.
아, 이 번거로운 것. 단해라는 감정에 휘둘리는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던 제 몸에 기생충이 기어들어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그 기생충이 내장을 휘젓다 못해 뇌로 기어들어 온다. 그래서 이렇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벌레를 꺼내 죽여버리고 싶었다.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쓸모가 있는 대가잖아.’
내 소중한 연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는 괴물의 능력. 누군가는 이 능력을 보며 신의 힘에 달했다고 이야기했다. 신이라는 그 단어에 단해라는 문득 언젠가 본 낯을 떠올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창백한 남자의….
“…….”
그는 한때 인간들의 신이었을까?
‘별로 재밌는 일은 아니었을 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지워버렸다.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그동안 미리미리 비워두지 않고 쌓인 감정의 여파가 이토록 컸다. 그 짧은 순간 사이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상태로 변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저의 작동을 무디게 만드는 것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곱씹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까지 말 몇 마디에 휘둘리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못마땅했다. 그래서 아예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빨리 여기를 나가야겠네.”
인간들에게 시스템은 좋은 교보재가 되어줄 것이다. 단해라는 제 욕심을 위해, 협회장으로서의 업무를 위해 시스템을 얻을 것이다.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 이 이상 ‘과거’를 알아선 안 됐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볼품없는 모습이 된 것은 설마 이렇게까지 면역이 없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니었어.”
“떠날 거니?”
“그래야겠네요, 선생님.”
영원의 상징에게 ‘선생님’은 불필요한 존재다.
그러니 이대로 모른 척 벗어나면, 그러면….
* * *
“서서희 새끼도 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해운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광대들을 보았다. 생명이라곤 한 톨도 없는 인형처럼 쌓인 모습들에 미안한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저 시선을 돌렸다.
당장 정해운에게 중요한 건 인간으로서의 도리나 양심 따위가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 같은 놈들이 누군가를 이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
의식적으로 말을 뱉으면서도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명백하진 않았다. 제 정신 나간 친구들을 향한 것일 수도 있었고, 미련하게 그들을 믿는 국민들을 향한 것일 수도, 아니면 저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안 되는 것들이었잖아.”
문득 샘물에 비친 제 얼굴이 보였다.
“…….”
20대에서 30대 정도. 어느 순간 노화가 멈춰버린, 그야말로 전성기의 모습. 정해운은 이보다 그들이 조금 더 어렸던 시기를 떠올렸다. 잘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떠오르긴 했다.
학생이었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 정해운이 턱을 괴었다.
‘…과거를 돌이킬 방법은 없겠지.’
사실 정해운 자신도 지금 그가 정확히 무얼 위해 이러고 있는지 몰랐다. 그냥 그대로 영원의 상징이라 불리며 칭송받으면, 아주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래서 이러고 있었다.
어쩌면 제오르제와 같은 목적일 수도 있었다. 최대한 내 본성대로 쓰레기처럼 굴고, 그렇게 인류의 배신자로서 이곳에 남아 죽어버리는 거지. 비리 많고 말도 많던 최초의 정원사로서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결말이었다.
“그래. 그래요, 그렇다 치고….”
조용히 샘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던 정해운이 이내 걸어 어느 광대 앞에 섰다.
“어디 봅시다.”
“…….”
“그래요, 예쁘네. 아주 잘 어울려.”
“…….”
“내가 사람 새끼가 아니긴 한가 봅니다.”
정해운이 빙글 웃었다.
“우리가 구면은 아니죠, 차 헌터님?”
그녀가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