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356)
356
제356화
각 장신구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었다.
“선생님, 강녕하셨는지요?”
“아람이도 많이 컸구나.”
“모두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그걸 알아낸 건 달님교의 사제들이었다.
일명 ‘정원 공식’을 단순화시키는 것에는 실패했다. 아니, 정확히는 뒤로 미뤄뒀다. 아무리 단순하게 만들어도 헌터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는 의견이 우세했던 탓이다. 사제인 그들이 신성력을 다루는 탓에 공식을 더 쉽게 이해하는 탓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그래서 달님교가 선택한 것은 본격적인 탐색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선생님의 얼굴을 뵙게 되니 정말 반갑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수집상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또 이런 큰일에 끌려오게 되셨다니….”
“나야 이런 기회에 산책이라도 하게 되면 좋지. 그보다 이렇게 우리를 쉽게 찾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덕분인가? 정원 공식이라고 부르는 그거?”
“맞습니다. 사실 선생님이나 수집상 여러분을 찾았다기보다는 던전의 장신구 위치를 쫓아온 거지만요. 태양교가 분열된 이유가 장신구 탓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놀랍네요. 하도 머리채를 잡아 뜯길래 순수한 내부 분열로 해체되었을 줄 알았습니다만.”
“그리고 그 귀걸이가 강서담 사제님의 손에 들어가 우리에게까지 온 것도 놀라운 일이겠고.”
“그렇습니다, 저희처럼 이 정원의 공식을 읽지 않는 이상 다른 참가자를 만나기는 정말 어려울 텐데 말이에요. 자애로우신 태양의 여신께서 강서담 사제님을 돌보고 계신 게 분명합니다.”
신이 내린 운빨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될 만큼, 이 던전에서 아무 조치도 없이 다른 생존자를 만나는 일이 어렵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 던전의 주인에게 배려를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미묘한 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강서담에 이해한다는 듯 아람이 다시 지오를 보았다.
“그럼 마저 설명해도 될까요?”
“오랜만에 보니 여러모로 후진이 없어졌구나.”
“짧게나마 봉문을 했던 동안 뭐라도 성장한 부분이 있다니 참 다행이지요.”
“자신감이 커진 것은 인간에게 있어 무척이나 좋은 성장이지, 아무렴.”
참고로 아람은 수집상 일행과 마주치자마자 ‘귀걸이―!!!!’부터 외쳤다. 처음부터 생존자가 아닌 귀걸이를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만. 여러모로 예전보다 얼굴이 두꺼워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튼 아람은 아예 제대로 시간을 할애할 생각인지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이었다.
“이 던전의, 그러니까 이 정원에서 발견되는 장신구는 특별합니다. 일반적인 던전이었다면 파괴 시 공략이 가능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요.”
“딱히 파괴가 되지는 않는 것 같던데.”
“그야 그것들이 이 정원의 일부인 탓이죠. 정원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 장신구들도 부수어질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덕분에 저희가 이곳까지 찾아올 수 있었던 거고요.”
“다른 장신구는 찾아내기 힘들었던 건가?”
“아뇨, 좀 약은 생각입니다만… 장신구를 발견하면 그와 동시에 광대의 습격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달님교에서는 이미 발견된 장신구부터 찾아가자고 합의를 봤습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귀걸이가 ‘이미 발견된 장신구’라고 판단했던 건… 아무래도 직접 귀걸이를 들고 떠돌던 강 사제님 덕분이려나?”
“정확합니다.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장신구는 현재로서 이 귀걸이뿐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발찌와 목걸이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해당 장신구를 보관하고 있던 팀이 그 장신구를 두고 떠났든가, 아니면 전멸했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그리고 정황상 후자의 확률이 더 높았다.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장신구로 추정되는 물건’이라는 것을 제외한 세부적인 형태는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달님교는 굳이 도박을 하기보다는 명백히 산 사람이 소지하고 있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게 귀걸이의 형태일 줄은 저희도 몰랐지만요.”
“하지만 우리를 처음 봤을 때 분명….”
“예, 귀걸이를 부르짖었죠. 여기서 방금 언급한 ‘이야기’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달님교가 단순히 장신구의 뒤를 쫓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식을 세운 뒤에는 한결 여유도 생겼겠다, 이 복잡한 정원에 신비가 어떻게 흐르는지도 보이겠다, 달님교는 이동 과정에 확인할 수 있는 특이점을 꼼꼼히 짚어가며 움직였다. 진리를 보고자 하는 학자 특유의 지독한 탐구심이 한몫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건 편지인가?”
“아마 사랑의 편지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오의 곁에 가만히 있던 유성운이 슬쩍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 아예 처음 보는 언어인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해석’했다고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군.”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토록 낯선 문자를 쌩으로 해석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뭐라도 자료가 넉넉했으면 또 모르겠다만, 지금 아람이 들고 있는 편지는 고작해야 3개였다.
대충이라도 해석은 했다는 걸 보면 언어에 규칙성은 있는 모양이다만… 유성운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기예였다.
그런 유성운의 모습에 아람이 뿌듯한 얼굴로 뒤의 사제들이 소중히 안고 있는 달님을 가리켰다. 공손하면서도 어딘가 자부심이 넘치는, 팔불출 보호자의 모습이었다.
“저희 달님이 큰 역할을 해주었죠.”
“역시 달님의 위엄이 어디로 가지 않는가 봅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설명으로 돌아오자면.
“이 편지는 각각 연결되는 장신구가 있습니다. 장신구 혹은 그에 준하는 물건의 존재감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데에 반해 편지의 존재감은 고작 3개인 것을 보니, 아마 장신구가 발견되면 그다음에 편지가 나타나는 식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이 중에서 귀걸이와 연결된 편지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지? 구분이 가능하니?”
“네, 물론이에요. 일단 보시다시피….”
지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아람이 편지를 보여주었다.
“둘의 색이 같아요.”
“오.”
“귀걸이도 파란 보석이고 편지도 파란색이죠. 물론 이런 일차원적인 부분만 보고 세트 취급을 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 달님교는 명백히 둘에게서 같은 입자와 색깔의 신비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요.”
“그 정원 공식이라는 거 대단하네, 색도 보고.”
“선생님께서 감탄하실 정도라니 기쁩니다. 아무튼 저희는 편지의 내용도 해석을 마친 상태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장신구가 파란색 귀걸이의 형태이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유성운이 턱을 쓸며 비음을 흘렸다.
“흐음….”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게.”
아람의 질문에 유성운이 조금 멋쩍은 낯으로 말했다.
“정말 여기서 비롯된 모든 것은 신비일 뿐이라는 걸 새삼 깨달아서 말입니다.”
“최소한 저희는 사람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좀 허탈해진 것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동할 때마다 세상의 모습은 변하며 그것을 구성하는 물건과 배경도 달라진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나 호화로운 저택도 그저 신비의 입자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혹은 허상이라 생각하니 좀 우스워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유성운이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런데 진짜 대단하십니다. 정작 정원사인 저도 못 보는 걸 보고 말이죠.”
“사실 본다기보다는 계산에 더 가깝기는 합니다. 허공 위에 떠도는 입자들의 상태를 기억하고 공식에 대입해서 결론을 내리는 거죠.”
“그래서 귀걸이 색깔이 파란색인 것도 알았다는 겁니까? 거의 기적에 가까운 계산법인데.”
“분명 사전에 파란색일 것이라 계산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얼추 짐작은 했을 겁니다. 편지의 색깔이 너무 선명해서 분명 이 색도 힌트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파랑, 초록, 노랑. 유치해 보일 정도로 쨍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확실히 일반적인 편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편지의 색깔에 무언가 의미를 담았음이 훤히 보이는 분명한 색감이었다.
“그래서 편지의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아람이 편지를 곱게 열며 말했다.
“꽝을 고르셨습니다.”
“세상에.”
이 몹쓸 정원이 하다 하다 사행성 행위에 손을 대었단 말인가.
지오는 못된 것만 배우는 제오르제의 학습력을 한탄했다. 하필 지구에서 무언가를 배워도 확률 게임을 배울 줄은 몰랐다. 그의 내면에서 ‘지오반니 씨’가 말없이 욕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꽝이라니? 설마?”
“이거… 정답이 따로 있어요. 아마 그렇게 생각해요.”
아람이 고개를 돌려 강서담을 바라보았다.
“귀걸이는 어디서 발견되었다고 했습니까?”
“…제가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만, 숨겨진 보석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진 작은 보석함이었는데 그 안에 있던 것을 가져왔다고 하더군요.”
“마치 귀한 것을 숨겨둔 것처럼 위장해 두었단 말씀이시군요.”
“지금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전혀 귀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애초에 그런 식으로 숨겨져 있던 것이 인간의 사고를 반영한 함정이었다고요?”
“함정보다는 사기에 가깝겠네요, 귀한 것처럼 보이도록 꾸민 것이니까.”
아람이 고개를 숙여 자신이 들고 있는 파란색 편지지를 폈다. 그녀는 그사이 별다른 이상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하더니, 이내 끄덕이고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이건 던전 주인으로 추정되는 자를 향한 사랑의 편지입니다. 살펴보니 던전 스토리용으로 따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실제 있었던 편지 같더군요. 언어야 그렇다 쳐도 편지 안에 등장하는 여러 관용어와 물건, 건물은 정확히 공통적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서….”
“크흠, 주교님.”
“사설이 길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 편지들의 주인을 스토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은 납치범이나 노예 상인 정도겠네요. 거의 홀린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절대 상대가 달가워할 애정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집착인 듯 보였죠.”
“맞아요, 솔직히 읽으면서 소름 끼쳤어요.”
달님교가 불쾌하다는 듯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람과 끼어든 사제의 말에 동의하는 것이다. 학자이며 사제 이전에 평범한 인간인 만큼 이런 종류의 끈적한 감정에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아마 편지를 받는 대상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나 봅니다. 아니, 사실 이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확실한 건 편지를 쓴 사람의 마음이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는 큰 가치가 없었다는 거예요.”
“가치가 없었다, 라.”
“그건 귀걸이의 관리 상태만 봐도 알 수 있겠죠. 정말 소중한 사람이 준 소중한 선물이었다면, 지금 이곳이 일종의 던전이라고는 해도… 과연 저런 너덜너덜한 상태로 존재했을까요?”
심지어 실제 현실의 물건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신비의 입자로 재현, 혹은 재구성된 물건이다. 사심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현 과정에 의지를 불어넣었을 던전 주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면 반짝반짝하게 관리를 해줄 만큼 큰 애정이 없었다는 방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 역시 함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이 던전, 이 정원의 기본 방향이 ‘폭로전’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마저도 속임수일 확률은 비교적 낮아진다. 특히나 이곳은 검은 망토가 정원을 던전 형식으로 바꾸어 그린 곳이 아니던가. 인간들이 영향을 받는 만큼 던전 주인도 영향을 받고 있다 생각해야 옳았다.
이곳의 참가자들의 ‘행복’을 컨셉으로 서브 던전이 생겨났듯이, 이 공간은 던전 주인의 ‘행복’을 컨셉으로 한 게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 일단 속임수가 아니라고 쳐보자는 거죠. 그럼 확실히 큰 애정이 없는 게 느껴지지 않나요?”
“아하, 그래서 꽝이라고?”
“사실 꽝이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음, 글쎄요. 최소한 이런 종류의 장신구와 편지가 던전 주인의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발견 즉시 광대의 공격이 들어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주인이 약점을 들켜 뭔가를 더 알아내기 전에 막아서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치기에 광대들은 딱히 장신구를 회수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장난을 치듯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저희는 그런 광대의 등장이 일종의 벌칙이 아닐까 추정 중입니다. 꽝이라고 말한 것도 그 탓이었고요. 던전 주인에게 큰 가치는 없지만 발견한 사람에게는 재난을 불러일으키니 꽝이라고 말할 법도 하죠.”
“그렇다면 그 반대인 ‘정답’의 경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가?”
“…….”
눈을 깜박인 아람이 이내 지오의 질문에 대답했다.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신비의 입자 흐름이 이런 장신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더 유순한 곳이 있어요.”
“유순하다는 건…?”
“단순히 재현되었을 뿐인 이런 편지와 같은 정원의 일부가 아닌, 실제 물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이 던전의 주인이 아끼고 아끼는 물건이라는 뜻이겠죠. 다만 그 탓인지 영 위치를 잡기가 힘듭니다.”
“존재감이 흐린가 보네.”
“공백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음, 잡초 같아요.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그 존재감이 확 드러나지는 않죠. 오히려 섞여 있어서 굳이 찾아내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요. 광대들을 실질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 엇비슷한 원리이지 않을까 추측 중입니다.”
“그럼 우선은 그것부터 찾아야겠구나.”
“그래야 정말로 ‘정답’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겠죠.”
말 그대로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난 지금, 드디어 목표가 생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