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 Who Paints Dungeon RAW novel - Chapter (357)
357
제357화
던전 공략의 키포인트가 그 주인에 의해 숨겨진 것.
“전형적이죠.”
“그렇기는 한데….”
아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유성운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전형적이라 오히려 생각을 못 했습니다.”
이곳은 일반적인 던전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정원이었고, 그 정원을 검은 망토의 힘으로 던전화시켰을 뿐이다. 이런 식의 공략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입 전 회의 때 말이 나온 적은 있었으나 대부분 거기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진입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구조의 던전이 아니다 보니까… 진입한 이후에 느끼기로는 더욱 그랬고요. 그래서 대부분은 애초부터 ‘던전’의 개념으로 생각하길 포기한 것 같았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죠.”
“저희도 흐름에 대해 파악한 다음에야 확신했습니다, 그전까지도 단지 수많은 가정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어요. 특히나 이토록 왜곡이 많은 상황에서라면야 헷갈리는 게 당연해요.”
달님교 최대 사교성을 지닌 아람이 자연스럽게 유성운을 위로했다. 한동안 수집상과 함께 이동할 것을 생각해 가능한 한 말을 붙여보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즈음 지오가 슬그머니 모습을 보였다. 달님교와의 짧은 회의를 마치고 출발한 이후로 줄곧 차은혁과 대화를 나누는 듯싶더니, 이제는 이쪽에 흥미를 가진 모양이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계셨습니까?”
“아, 던전 공략에 대한 이야기.”
“확실히 그런 방식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
유성운은 평소처럼 ‘정말 몰랐던 걸까?’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옆에 있는 달님교의 새로운 주교께서는 ‘서지오 헌터’를 인간 선생님으로 의지하고 있지 않던가.
그가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상당히 장난스럽고 의뭉스러운 존재라는 걸 알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인간 선생님 놀이를 하며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것 같던데… 큐레이터로서 그걸 방해하면 안 되는 일이지.’
거기까지 생각한 유성운이 그저 웃었다.
“다행이지 않아? 덕분에 뭐라도 해볼 수 있게 됐네. 사실 이대로면 일부를 제외한 선발대는 전부 낙오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거든. 솔직히 이 정도 상황이면 전멸도 가능할 것 같아서….”
“설마 전멸까지 갔을까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아람이와 달님교가 정말 큰일을 해주었어요.”
그렇게 말한 지오가 빙긋 눈웃음을 지으며 아람의 품에 안긴 달님을 보았다.
“우리 달님께서도.”
그 순간 달님이 반짝거렸다.
“…….”
“어…? 달님이….”
“흠.”
“제 말에도 이렇게 밝은 반응은 보여준 적이 없으신데,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나중에 달님과 선생님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보아도 괜찮을까요?”
“나중에 보고 대답해도 되겠니?”
“아, 물론입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네요. 이런 반응은 워낙 드물어서….”
“하하.”
나름 능숙하게 웃음으로 흘려 넘기는 지오의 모습을 유성운이 묘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달님교의 새 주교님께서 절대 멍청한 사람이 아닐 텐데 이걸 이렇게 그냥 넘어간다고.’
아람의 굳건한 편견 덕분에 슬며시 넘어가기는 했다만, 이 녀석은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정말 숨길 생각은 있는지 알 수 없는 모습들을 한 번씩 보여주고는 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
주제를 돌리려는 것인지 지오가 아람에게 질문했다.
“편지의 정확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까요, 주교님?”
“선생님께 주교님이라고 불리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네요….”
“능숙해 보이던데 엄살은.”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소연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돌아가서 하고, 음, 아무튼.”
처음부터 어른으로 의지하던 지오와의 대화라서 그런 것일까. 이전보다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의 아람이었지만, 그녀는 한결 긴장이 풀어진 아이처럼 지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하기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랑의 편지였습니다.”
“성별에 대해서는?”
“남성이 드레스를 입는 세계가 아니었다면 아마 편지의 주인은 여성일 겁니다. 본인이 입을 드레스에 대한 언급이 한 번 나온 적이 있었거든요.”
“드레스라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값이 제법 나갈 텐데, 귀족이었으려나?”
“아마 그럴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은 그보다 신분이 낮은 듯했어요. 신분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아람이가 그렇게 파악했다면 그게 맞겠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내용에 관해서라면, 글쎄요.”
잠시 고민하던 아람이 이내 말을 이었다.
“편지의 주인은 그것을 받는 상대를 ‘내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에.”
“아니면 ‘내 꽃’이라든가, ‘나의 어린 새’라든가 하는 식이었네요. 그래서 편지를 받는 대상의 연령대가 상당히 불분명합니다.”
“혀가 꽤 달콤한 걸 보니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나이가 좀 있는 편이 아니었을까?”
“최소한 어린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수신인이에요. 편지에서는 그 대상을 아주 어리게도 묘사하고 점잖은 어른으로도 대했으니까요.”
“그거참… 이상한 일이네.”
“개인적으로는 성인이었으면 하고 있습니다. 편지의 주인이 소아 성애자일 거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비위가 상해서.”
편지는 꽤 두툼했다. 만약 짧은 편지였다면 제아무리 달님교라고 해도 내용을 해석하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덕분에 언어도 해석할 수 있었고, 내용도 더 풍성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편지를 받는 사람이 모습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저희는 이 편지를 받았던 사람을 던전 주인, 혹은 그와 관계가 깊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런 존재가 인간 시절부터 다양한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해도 이상할 건 없으니까, 그렇지? 나도 이해가 되네.”
“아니면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정신에 무언가 이상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뭐랄까, 집착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신인에게 다양한 선물을 주며 반응을 살폈던 것 같아요.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며 찬양하기도 했죠.”
편지의 내용이 너무 달콤하고 무거웠던 나머지 징그러움마저 느껴졌다. 그가 사용한 언어는 꽤 고상한 종류일 것이라 판단했지만, 아무리 곱게 포장해도 징글징글한 그 집착을 지울 수는 없었다.
“꼭 홀린 사람 같았습니다만… 이게 누구의 탓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원래부터 편지를 쓴 사람이 그토록 큰 욕심을 보였던 건지, 아니면 수신인 쪽에서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버린 건지.”
어느 쪽이든 가능성이 높아서 문제였다. 세상에는 그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다양한 정신 이상자들이 존재했고, 또 한편으로 이 던전은 무척이나 쉽게 사람을 홀렸다. 어쩌면 둘 모두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희가 찾은 3개의 편지는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여러 미사여구에서 시대상이나 문화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얽힌 이야기의 정확한 흐름을 알아내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역시 다른 단서가 더 필요한 걸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던전 주인이라도 한번 등장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만, 뭐. 일단 저희가 파악한 내용은 여기까지네요.”
“고생이 많았네.”
고맙다는 듯이 웃은 아람이 이내 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달님교의 사제들은 그녀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무언가를 감지, 아니, 계산해 낸 반응들이었다.
“슬슬 ‘정답’으로 추정되는 것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말대로, 주변의 풍경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이곳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아!”
수집상의 누군가가 탄성을 뱉었다.
“보석의 수맥!”
확실히 그곳을 닮아 있었다.
* * *
“보석의 수맥이라면….”
차은혁의 중얼거림에 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은혁 씨가 생각하는 그곳이 맞을 겁니다.”
“보통 정원에 지구의 던전이 등장하기도 합니까?”
“굳이 따지자면 그곳과 동일한 곳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럼 정말로 그저 닮은 수준?”
“이유가 분명 존재하겠지만, 같은 형식의 다른 장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차아라가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차은혁이 묘한 눈으로 지오를 보았다.
“그때 정말 무서우셨다고.”
“그것뿐이었나요?”
“밥이 맛있었다고 했죠.”
“아, 마음이 너무나 좋군요.”
“그러십니까.”
서로 검은 망토의 존재를 안다고 시인한 이후, 차아라와 차은혁은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를 처음 마주쳤던 ‘보석의 수맥’ 역시 그중 하나였다.
“사실 제 눈에는 뭐든 잘 보이지가 않습니다만….”
“그래도 보석들은 확실하게 보이죠?”
“네, 신기하네요. 보석이랑 그 바로 근처까지만 뭐가 보여서요.”
“공중에 빼곡히 자생하는 일종의 몬스터가 있는 탓입니다.”
지오가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다행히 태양의 빛은 어느 정도 통하네요.”
옅게 빛나는 그의 손 주변으로 시야가 훤해졌다.
“달님교의 사제님들께서는 어떠십니까?”
“저희의 힘은 잘 통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달은 태양과 달리 스스로 빛날 수 없었다. 아람이 대표로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보석의 수맥’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거기보다 공기가 조금 더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중에서는 기껏해야 달님께서나 힘을 조금 쓰는 느낌이랄까.”
그 말대로 달님과 그것을 품에 안은 아람, 그 바로 지척까지는 시야가 훤했다. 시야 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달님이 자진해서 빛을 내기 시작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주변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지구와 같은 형식이라도 확실히 그보다 높은 등급의 던전, 혹은 까다로운 정원다운 깐깐함이었다. 쉽게 무언가를 내어주는 법이 없었다.
“…….”
그리고 지오는 말없이 눈을 껌벅였다.
‘…또 나만 보이나?’
몬스터들이 둥둥 떠다니는데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없었다.
‘예전에 다나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네.’
일단 ‘보석의 수맥’은 기본적으로 부정의 기운이 강한 곳이었다. 사실 강한지 잘 모르겠지만 하늘 같은 유성운 씨가 그렇다고 했으니 그런 거겠지. 아무튼 ‘보석의 수맥’에는 유령 형태의 몬스터들이 조금 있는 편이었다.
‘여기도, 조금 비슷한가….’
형태가 뭉그러진 유령들이 일부 보였다.
‘정말로 나만 보는 것 같지만.’
지오는 남들도 보기 전까지 입을 다물지, 아니면 미리 말해줄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곳은 무시무시한 던전 내부. 인명 피해가 나기 전에 고지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보석의 수맥과 동일하게 유령 형태의 몬스터가 관찰됩니다.”
“아, 그렇군요.”
“지구의 던전과 비슷한 건지 이곳의 몬스터도 크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만, 이 또한 어떤 식으로 왜곡될지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비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행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언데드형 몬스터에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는 사제들과 온갖 저주 및 이상 현상에 능숙한 수집상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교적 순조롭게 탐색을 진행했다.
“흠, ‘쾌락의 정원’과 ‘보석의 수맥’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지구에서는 그리 인지도가 높은 던전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뭐어, 속되게 말해서 맛이 없는 던전으로 유명하기는 합니다, 주교님.”
유성운이 특유의 무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공략으로 인정되는 탈출을 하기는 어려운데 특별히 떨어지는 보상은 적죠. 들인 공에 비해 얻는 것이 적으니 대부분의 헌터들이 기피하는 곳입니다. 그래도 불법적으로나마 돈이 되는 게 있다면 안티캣 정도일 것이고요.”
“유성운 큐레이터님은 ‘보석의 수맥’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군요? 혹시 진입해 보신 적이 있는 걸까요? 안티캣 이외에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습니까?”
“아,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제 파트너인 서지오 헌터님께서 관심을 보이시기에 조금 조사를 해 바친 게 전부였던 터라.”
“선생님께서…?”
지오가 웃으며 제 어깨 위의 동글동글한 물새를 매만졌다.
“우리 집 장남이 보석을 워낙 좋아한 덕분이죠.”
“아하, 이해했습니다.”
물새의 습성에 대해 전부 외워둔 아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기로 다나 씨를 ‘보석의 수맥’에서….”
“맞습니다. 데려와서 키우고 보니 쑥쑥 성장하는 것이 참 기특했죠, 애교도 많고요.”
“안티캣이 애교가 많다는 말은 정말 처음 들어보네요.”
그즈음이었다.
“아, 저쪽에서 입자의 이상이….”
“…….”
“…누가 있군요.”
얼굴을 굳힌 아람의 말에 유일하게 시야가 확보된 지오가 입을 열었다.
“광대입니다.”
조금 익숙한 모습의, 광대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