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0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00화(100/250)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엄마의 모습을 본 뒤, 마음속에선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든 신경이 엄마를 향해 곤두서있었다.
온몸에 힘을 뺀 채 터덜터덜 콘서트홀에 들어갔다.
인터뷰가 끝난 이무지치 챔버 단원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주원 군, 귀신이라도 본 건가? 아니면 공연 앞두고 떨리기라도 하는 건가?”
“정말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아요.”
나는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중얼중얼거렸다.
카를로 로벨리는 그런 나의 상태를 걱정했다.
“얼굴이 창백한데 왜 그러나? 무대 공포증이라도 있는 건가? 평소 모습 보면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카를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카를로, 공연 전에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요.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짐짓 심각한 분위기를 느낀 카를로가 나를 의자에 앉게 했다.
“여기 앉아보게. 내가 옛날 얘기하나 해주지. 상황은 달라도 도움이 될걸세.”
나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털썩.
그리고는 카를로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내가 40살일 때의 일이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공연을 앞둔 상태였지. 리허설이 끝났을 때 말이야. 집에서 급한 연락이 왔네.”
“어떤 급한 연락이었죠?”
“바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어.”
“아…….”
“급하게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지. 당장 가겠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음악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라고 하셨다네. 그걸 아버지께서도 더 바랄 거라고. 나는 눈물을 감추고 그날 공연을 완벽히 끝냈어.”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고도 무대에 올라 청중의 기쁨이 돼야 했던 카를로 로밸리.
마음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쁨의 순간을 음악으로 표현해야 했던 카를로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내가 머릿속에서 복잡한 상상을 펼치던 중.
카를로가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가장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을까? 우리는 그런 순간에도 청중과 약속한 무대에 올라야 해. 그게 프로 연주자라네.”
카를로의 조언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랐을 뿐.
‘엄마를 마주친 게 연주를 망칠 핑계가 될 순 없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너무 복잡하다.
완벽히 연습하고 마스터한 곡일지라도 그날의 기분, 컨디션, 마음가짐에 따라 연주의 질이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
언제나 라이브로 상황에 임해야 하는 연주자에게 평정심은 너무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릴 때 엄마가 처음 가르쳐준 바이올린.
조그만 바이올린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서 음정을 연습했던 기억.
벽에다 악기를 고정하고 처음 엄마가 방법을 알려주었던 비브라토.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엄마와의 행복했던 몇 안 되는 기억이 사정없이 끄집어내졌다.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카를로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카를로, 오늘 연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를로의 아픈 기억을 나눠줘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래,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오늘 함께 잘 연주해 보자고.”
딱 한 번 나의 연주를 듣고 그 어떤 대가나 이익을 따져보지도 않고 공연을 제안해 준 카를로 로벨리.
그의 올곧은 성품과 확신에 내가 제대로 보답할 차례였다.
“걱정 마세요.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하게 연주해낼 테니까요.”
곧이어 공연 전 마지막 리허설을 알리는 스태프의 외침이 들렸다.
프로그램의 순서대로 한 번의 리허설을 마쳤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공연 시간이 다가왔고 객석에 청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 * *
이무지치 챔버 멤버들이 무대 위에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병원장 윤익중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는 것.
그건 음악이나 의학이나 똑같이 어려울 것이다.
책상에서 책을 파고든 자신과 수백 년 전의 악보와 사투를 벌인 이무지치 멤버들이나 같은 결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특히 악장인 카를로 로벨리.
그의 음악에 대한 가치관과 열정은 윤익중도 존경해 마지않았다.
12명의 연주자들.
I MUSICI (이 무지치)
이탈리아어로 ‘음악가들’이라는 심플한 의미를 지닌 단체명.
‘그 단순한 단어만큼 저들을 잘 표현하는 것이 있을까?’
조금 후 들을 그들의 음악을 상상하며 병원장 윤익중은 마음이 설레었다.
레지던트 1학년 시절, 밤샘이 허다했던 그 시절.
윤익중은 유독 이무지치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고단한 몸에 생기 넘치는 음악이라도 수혈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그런 시절이었다.
어느 순간, 사계를 듣지 않으면 계절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그에겐 공기 같은 음악이 되어버렸다.
설날이 되면 떡국을 먹고, 생일이 되면 미역국을 먹는 것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무지치의 사계를 듣는 것은 통과의례였다.
의대 오케스트라 시절 바이올린을 했던 윤익중은 썩 실력이 좋지 못했다.
호기롭게 비발디의 사계 악보를 샀지만 몇 마디 연주하다가 책장으로 던져버렸던 악보.
스스로 연주하기보다는 애호가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병원장이 되어 개관 기념 연주회에 이무지치를 초청하다니 감개무량했다.
바이올린 6명, 비올라 2명, 첼로 2명, 콘트라베이스 1명 그리고 하프시코드 연주자 1명으로 이뤄진 이무지치 챔버.
모든 멤버가 각자의 자리에서 조율을 마친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들의 사계 연주가 시작되었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300년이 지난 지금도 희미해지지 않는 존재감.
표제음악의 선구자였던 비발디.
변화하는 사계절의 풍경 속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비발디가 풍부한 상상으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 명곡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뒤덮었다.
눈앞에 그려지는 화사한 베네치아의 봄날.
그들이 늘어놓는 선율은 어느새 변덕스럽게 변하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도래했다.
움직이는 손끝마다 피어나는 무더운 여름의 향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어느새 가을을 느끼듯.
그들이 그려내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풍요로운 축제 같은 풍경의 가을이 조화로운 화성 속에서 펼쳐졌다.
미세한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화성의 흐름.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발디의 음악은 여전한 무게감으로 윤익중을 감동케 했다.
이무지치의 연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무지치가 아니었으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비발디의 사계를 즐길 수 없었다는 얘기는 유명했다.
드디어 살갗을 에는 듯한 추위가 찾아왔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는 겨울.
칼날 같은 바람이 공연장을 뒤덮었다.
그렇게 차가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이유.
바로 봄이 또 다가올 것을 알기에 차가운 겨울을 견딜 수 있다.
인생의 이치와 비슷한 사계.
인생이 담긴 클래식을 들으며 윤익중은 또 한번 감동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무지치의 연주가 끝나고 악장인 카를로 로밸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카를로의 말은 통역사에 의해 바로바로 통역이 되었다.
카를로 로밸리는 다음 곡을 직접 소개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무지치 챔버의 악장 카를로 로벨리입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거장의 품격에 청중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좀 전에 들려준 아름다운 연주 덕분에 청중들은 이미 무장해제가 된 상태였다.
윤익중 병원장은 누구보다 박수를 크게 치며 응원했다.
카를로는 박수가 길어지자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언제나 열정적인 한국의 청중분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이번 공연은 미래 서울 병원의 인공 장기 이식 센터의 개관에 맞춰 초청된 연주입니다.”
카를로는 본 연주의 의미를 설명했다.
“한국의 의술이 이렇게 발전했고 또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병원의 개관에 저희는 달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장님께서 저희의 엄청난 팬이라고 하시더군요.”
청중들이 크게 웃으며 반응했다.
“이번에 들려드릴 곡은 아주 특별합니다. 한국에서 한국 관중들에게 한국 연주자와 함께 하는 순서니까요.”
청중들에게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한번 터져 나왔다.
“지금 함께할 문주원 군은 저희 이무지치와 로마에서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주원 군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저는 이번 한국 공연에 함께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 연주할 ‘고향의 봄’을 문주원 군이 환상적으로 편곡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듣자 관중들은 커다란 박수를 보내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 * *
한세아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말 믿기지 않았다.
이무지치 챔버의 수장 카를로 로벨리.
온화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음악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완벽주의 성향을 띤 인물이다.
그런 그였기에 전통의 이무지치를 오랜 기간 무리 없이 끌고 올 수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훨씬 큰 노력이 필요하다.
뉴욕 필하모닉의 종신 악장인 한세아는 그런 왕관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려 카를로 로밸리.
그가 주원이를 극찬하자 한세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직까지 그녀의 아버지 한동민은 카를로가 설명하는 이가 손자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그녀의 아버지는 팸플릿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세아의 아버지 한동민은 음악엔 평생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딸이 음악을 할 때에도 반대했지만 음악을 하는 남자랑 결혼한다고 했을 땐 분노까지 했던 아빠였다.
오늘도 윤익중 병원장과의 친분 때문에 왔을 뿐.
무대 위를 걸어 나올 사람이 잊고 있던 손자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끝까지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으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든 생각.
이 공연장 어디엔가 전남편 문혁과 시아버지였던 문성주 그리고 아들 지환이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버지하고만 안 마주치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머리가 아프던 한세아였다.
스태프들이 무대 위로 올라 의자를 치우고 보면대의 높이를 조정했다.
보면대의 높이를 보니 서서 연주할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에서 아들 주원이가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바이올린을 손에 쥔 채 나온 주원이.
몇 년 만에 본 아들의 모습은 자신감 넘치고 눈부셨다.
당당하게 마주할 수 없어 숨어서만 보던 아들.
낳기만 했을 뿐 아무런 양육도 하지 않은 이기적인 엄마였던 한세아지만, 핏줄에 대한 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