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0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01화(101/250)
아무리 카를로 로벨리가 주원이에 대해 극찬을 했지만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이상 불안했다.
‘제발 아까 김 팀장이 말했던 것처럼 루머의 대상이 되지 않길.’
자격 없는 엄마지만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랐다.
그제야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아버지의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아들 주원이를 응원할 때였다.
당당한 자세로 튜닝을 마친 주원이가 카를로 로벨리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프시코드를 제외한 모든 연주자들은 선 채로 연주할 모양이었다.
반원을 그리며 이무지치 단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당당하게 아들 주원이가 섰다.
침을 꿀꺽 삼킨 한세아는 미동도 하지 않고 무대를 응시했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들 주원이가 편곡했다는 ‘고향의 봄’
시작은 마치 비발디의 사계 ‘봄’이 연상 되었다.
멜로디의 유사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크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비발디의 사계처럼 음악은 다채로운 빛을 띠었다.
순식간에 공연장에 봄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선명한 색채들의 향연.
바이올린에서 비올라로, 비올라에서 첼로로.
첼로에서 콘트라베이스로, 콘트라베이스에서 하프시코드로 멜로디의 주인이 바뀌었다.
모두가 주인공인 실내악곡.
‘고향의 봄’의 주제 멜로디를 에워싼 촘촘한 화성.
아들 주원이를 둘러싼 이무지치 챔버 멤버들.
아들 주원이의 바이올린 소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활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소리의 마법.
주원이의 바이올린 소리는 천상의 연주 그 자체였다.
주원이의 바이올린이 각기 다른 악기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바로크 음악의 형식을 띠었지만 군데군데 숨어있는 ‘고향의 봄’ 선율이 동양적 정서를 드러냈다.
음악도 동, 서양의 만남. 연주자도 동, 서양의 만남 그 자체였다.
모든 연주자가 연주를 멈추고 주원이 홀로 바이올린을 켜기 시작했다.
콘서트홀은 숙연해졌다.
적막 속에 퍼지는 고요한 선율.
솔 솔 미 파 솔 라 라 솔
그 어떤 꾸밈도 기교도 없는 그저 순수한 음색.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에게도.
한세아 자신처럼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고향은 마음속에 있다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보듬어 주는 그런 마법 같은 소리였다.
소리들이 얽혔다 풀어진다.
강하게 감정을 끌어올렸다가 톡 하고 터트려 해소시키기를 반복했다.
그 모든 음악의 중심에 아들 주원이가 있었다.
이건 그냥 동요를 클래식하게 편곡한 것이 아니었다.
이무지치의 정체성인 바로크 음악과 한국의 동요를 클래식으로 승화시킨 한 편의 완벽한 고전이었다.
아들 주원이의 활이 움직일 때마다 홀 안에 흩뿌려지는 봄의 향기.
소리로 전해지는 시각적인 환상.
무대 위의 주원이는 평생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본 한세아의 연주와는 결이 달랐다.
음악을 위해 태어난 사람.
아니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너무나 완벽해서 그 끝을 가늠할 수도 없는 사람.
신이 연주한다면 저런 소리가 나는 걸까?
신이 만든다면 저런 음악이 되는 걸까?
전 국민이 아는 ‘고향의 봄’을 이렇게 탈바꿈하다니.
‘주원이가 클래식 음악계에 제대로 등장한다면, 세계가 크게 요동칠 텐데.’
뿌듯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미안하기도 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질투가 나기도 했다.
세계적인 뉴욕 필하모닉의 종신 악장인 그녀에게도 아들 주원이의 바이올린은 올려다볼 수 없는 천상계 연주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뛰어난 작곡 능력은 클래식의 전성기를 연상케 했다.
클래식의 절정은 낭만 시대였다.
연주자들이 뛰어난 곡을 쏟아냈던 시기.
몇백 년 전 작곡가의 곡을 뛰어넘은 현대의 클래식 곡은 아직까지 나오지 못했다.
아들 주원이에게서 낭만 시대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그 시대를 초월했는지도 모른다.
감히 한세아 자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에 있는 걸까?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인 걸까?
그렇다면 이대로 문혁의 손에 크게 해도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혔다.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등장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되는 한세아였다.
한세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라도 양육권을 되찾아야 할까?’
이무지치와 아들 주원이의 연주는 끝까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의 연주가 끝나자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이무지치를 한국에 초청하고 이 공연을 후원한 미래 서울 병원의 윤익중 병원장님.
얼마나 감동에 벅차올랐는지 눈물, 콧물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 훌쩍이는 코.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닦는 윤익중 병원장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감동적인 연주를 들으니 살아있다는 게 행복할 지경이다. 저 연주자는 하늘이 내린 보물이야.”
옆에 있던 아버지 한동민의 얼굴이 굳었다.
눈치챈 모양이었다.
“저렇게 큰 거냐? 아들까지도 음악을? 그래도 지 애비처럼 야망도 실력도 없는 놈은 아닌가 보네.”
그리고 한국 바이올린계의 대모 유희주 교수님.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이 어려있었다.
* * *
이번 이무지치 연주회에는 문화부 기자들이 대거 출동했다.
미래 서울 병원의 차세대 인공장기 이식 센터 개관과 함께 맞춰 이뤄진 이무지치 챔버의 내한 공연.
수익금의 절반이 시각장애인의 인공 각막 이식 수술을 위해 쓰인다는 취지도 훌륭했다.
그리고 티켓이 오픈됐다 하면 금세 매진되어버리는 이무지치의 파워.
문화부 기자들은 KM 클래식 측에서 티켓을 주며 기사 작성을 요청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꽤 좋은 자리의 초대석을 받은 기자들은 공연 전부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각자가 아는 문화계 비하인드 얘기를 하나씩 풀며 근황을 주고받는 그들이었다.
보통 이런 비싼 연주회는 짬밥이 높은 기자들이 오게 된다.
내 돈 주고는 오기 아까운 연주회.
KBC 방송국 문화부 기자 주해영은 연차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기자 초대석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자신이 제일 어렸다.
자신처럼 공중파 방송국에서 온 기자 선배도 있었고 클래식 FM과 여러 클래식 잡지사, 신문 기자들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기자들은 서로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데일리 신문의 채진수 기자였다.
채 기자는 언제나 클래식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파하고 다녔다.
어느 연주자와 어느 지휘자가 불륜이라느니, 어느 콩쿠르에 비리가 있다느니.
채 기자에게서 시작된 소문은 끝도 없이 퍼졌다.
그중 상당수는 사실이기도 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있으면 사건 사고가 생기는 법.
좁은 클래식계에서 소문은 더 쉽게 부풀려지고 퍼져 나간다.
오늘 채 기자는 재밌는 썰을 풀기 시작했다.
“오늘 이무지치랑 같이 연주하는 문주원이라는 애. 얘 뒷돈으로 연주회 한다는 소문이 파다해. 오늘 초대권도 KM 클래식에서 뿌린 거잖아.”
“정말? 그러니까 거의 무명인 애가 나오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소스는 어디서 얻은 거야?”
“유희주 오케스트라 인터뷰 갔다가 들은 거야.”
주해영은 채 기자가 나불대는 소리가 짜증 났다.
분명 문주원은 클래식계에선 아직 이름이 없다.
하지만 그가 연주한 모습을 제대로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저런 말은 못 할 것이다.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 파이널 유력 후보로 한국 예고를 인터뷰했던 주해영 기자.
그런데 결과는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문화예고가 파이널에 진출했다.
최종 순위 3위에 최고의 협연자상까지 거머쥔 문주원.
하마마츠에 가서 직관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최 측에서 올려준 대회 영상과 KM 클래식이라는 너튜브 채널을 통해 문주원의 연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서운 신예의 등장.
다른 말로 그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채 기자가 한 번이라도 문주원의 연주를 봤다면 오늘 같은 망언은 하지 않았을 거다.
채 기자는 문주원이 참여한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 대회 영상을 봤을 리 만무하다.
만에 하나 봤다면, 틀어놓고 잠이나 잔 다음 일본 기자가 써놓은 기사를 번역기나 돌려 자신의 기사인 척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마저도 희박한 확률이다.
아예 메이저 콩쿠르가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을 부류니까.
영상 속에서 본 문주원의 연주는 특별했다.
작은 화면에서조차 전해지던 엄청난 카리스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완벽한 테크닉.
모든 테크닉을 아우르는 뛰어난 음악성까지.
문주원은 채 기자가 함부로 가볍게 평가할 수준의 음악가가 아니다.
문주원은 가십의 대상으로 전락해서는 절대 안 되는 보물 같은 연주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가(大家)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등장 전에 전조 현상을 보이는 법.
문주원은 세계를 뒤흔들 무서운 신예가 분명하고, 그 시작은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였다.
주해영은 한참이나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채 기자에게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젊은 기자의 패기라고 해도 좋았다.
“저 선배님. 문주원 군이요. 실력 굉장한 친구예요. 최근에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에서 최고의 협연자 상도 탔다고요.”
“뭐? 그런 대회도 있어? 완전 듣보잡 대회네. 적어도 파가니니, 퀸엘리자베스, 차이코프스키 그런 콩쿠르 입상은 해야 이무지치랑 급이 맞지.”
주해영은 기가 막혔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문주원인데 그런 세계적인 콩쿠르 경력이 있기는 어렵다.
“문주원 채널 M 오디션에서도 3등으로 입상했다고요.”
이 말을 꺼낸 주해영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여기서 오디션 얘기를 꺼내봤자 마이너스만 있을 뿐이다.
주해영은 노선을 바꿨다. 다른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시아 청소년 음악제에서 문주원이 제친 협연자들이 누군지 알아요?”
“누군데, 뭐. 우리가 아는 사람이기라도 해?”
채 기자는 귀를 후비며 관심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주해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당연하죠. 문화부 기자가 장웨이랑 미사키도 모르면 기자 때려쳐야죠.”
“뭐? 저 친구가 장웨이랑 미사키를 누르고 상을 탔다고? 뒷돈 먹인 거 아니야?”
기승전 뒷돈.
주해영은 여전히 같은 채 기자의 태도에 기가 막혔지만 말을 아끼기로 했다.
결론을 지어놓은 사람에게 백날 말해 봐야 소용없다.
그래도 주해영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였다.
“거기 심사위원이 무려 줄리어드의 도로시 딜레이, 하노버 음대의 필립 슈나이더, 빈 국립음대의 에드워드 진코스키 등 암튼 엄청난 교수님들만 계셨다고요.”
옆에서 둘의 싸움 아닌 싸움을 지켜보던 다른 기자들은 관망할 뿐 끼어들지 않았다.
주해영의 계속된 변호에 자존심이 상한 채 기자는 끝까지 의혹을 거두지 않았다.
“어디 한 번 보지 뭐. 그렇게 잘하는지.”
채 기자는 한참 어린 주해영이 바득바득 대들자 기분이 상한 모양새였다.
주해영은 성깔이 상당하기로 소문난 채 기자에게 더 이상 대적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어차피 오늘 온 기자가 한 두 명도 아니고, 곧 판가름 날 일이니까.
‘주원 군 인터뷰 제대로 따고 기획 기사도 써야겠어. 아마도 오늘 공연 이후로는 클래식계에서도 주원 군을 더 이상 모를 수 없겠지.’
떠들던 사람들도 하나씩 조용해지고 드디어 공연장에 불이 꺼졌다.
말로만 듣던 전설 속의 이무지치 챔버의 사계.
안토니오 비발디가 몇백 년 전 작곡한 사계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메웠다.
수백 년이 지나도 비발디의 사계는 그 존재감이 희미해지지 않았다.
수백 번의 계절이 흐른 만큼, 사계의 존재감은 더욱 견고해졌다.
‘역시!’
소문대로 그들의 연주는 대단했다.
주해영 기자의 눈앞에서 베네치아 봄의 정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