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0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02화(102/250)
최근에 바뀌었다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역시 다른 단원들과 조화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봄이 어느새 여름이 되고 여름은 곧 풍요로운 가을이 되었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바로크 음악의 향기에 매혹된 나머지 짧은 순간, 계절의 흐름에 흠뻑 젖은 주해영이었다.
그리곤 그녀는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문주원을 영접할 수 있었다.
영상 속으로만 접해봤던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직접 보는 건 처음이네. 과연 얼마나 다를까? 그 차이를 내가 느낄 수 있을까?’
일본의 국민 신동 미사키, 중국 세기의 천재라는 장웨이를 꺾고 최고의 협연자 상을 받은 혜성 같은 신예.
주해영은 문주원의 연주가 몹시 기다려졌다.
주해영 기자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스태프들이 무대 위로 올라 의자를 치우고 보면대의 높이를 조정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서서 연주할 모양이었다.
바이올린을 든 문주원이 성큼성큼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문주원의 표정은 당당했고 눈망울은 반짝반짝 빛났다.
‘주눅은커녕 엄청 당당하네.’
고2밖에 안 된 어린 학생.
마치 무대의 주인공처럼, 어린 문주원을 둘러싸고 백발의 이무지치 단원들이 그를 에워쌌다.
드디어 시작된 그들의 연주.
꽃이 만개하는 화창한 고향의 봄이 공연장 가득 물들었다.
군데군데 숨은 고향의 봄 선율은 주해영의 마음을 안식처로 데려다 주었다.
13명의 연주자가 켜켜이 쌓은 화음은 바로크 음악의 진한 향기를 뿜어냈다.
문주원의 바이올린은 팔색조 같은 매력을 발산했다.
때로는 차분한 듯 그리운 고향의 모습으로.
때로는 목놓아 울며 그리워하는 고향의 모습으로.
그렇게 청중의 마음속에 각기 다른 여러 모습의 고향을 품게 했다.
알 수 없는 아련한 감정에 주해영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핑 돌았다.
고단한 사회 생활을 위로해 주는 포근한 선율.
눈앞에서 듣는 문주원과 이무지치의 하모니는 상상 이상이었다.
음악이 주는 감동을 직접 목도한 그녀.
멋쩍어서 슬쩍 눈물을 훔쳐내는 주해영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 기자를 비롯 대다수 선배들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문주원의 음악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 속에 그녀는 음악의 기적을 경험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한없이 그리운 어린 시절의 기억.
음악은 그렇게 시처럼 모두에게 향수가 되었다.
* * *
이무지치 챔버와 연주하는 내내 나는 두 개의 고향을 떠올렸다.
하나는 파가니니였을 때의 고향, 이탈리아의 북부 항구도시 제노바.
항상 연습하느라 친구들과 많이 놀아보지 못했던 나는, 집 근처 야트막한 산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봄이면 만개하던 노란색 이름 모를 야생화.
꽃의 향기를 듬뿍 느끼고자 나는 꽃밭을 종종 뒹굴었다.
그렇게 하면 꽃향기가 내 온몸을 뒤덮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악상을 떠올리곤 했다.
오늘 무대에서 이무지치와 연주하면서 나는 그 노란색 야생화의 향기를 맡았다.
그리움은 애수 띤 선율로 피어났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고향을 떠올리며 나는 이무지치와 촘촘한 화성을 쌓아갔다.
문득 ‘고향의 봄’ 선율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그간 연습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의 순간.
걷지도 못하고 기어다니던 지환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엄마와 아빠.
두 번째 고향, 그건 내 마음속 숨겨둔 고향이었다.
어린 시절, 봄에는 노란색 개나리가 많았다.
우리 집 자그마한 정원에 개나리가 필 때 맡았던 향기.
아련한 향기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은 그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공허한 마음이 아니었다.
아마도 나의 고향은 어릴 적 온 가족이 함께 있었던 그 찰나와 같던 순간이었나보다.
그렇게 나의 두 개의 유년 시절이 이 무대 위에서 흐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행복한 순간에 내가 가장 그리워했고 가장 미워했던 엄마가 지금 날 보고 있겠지.’
그 사실은 나의 음악을 더욱 애달프게 만들었다.
어느덧 연주가 끝났다.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관중들의 환호 속에 나는 연거푸 인사를 했다.
유독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았다.
그들도 각기 다른 고향을 경험했겠지.
감사했다.
음악으로 이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삶을 사는지 모르는 이들과 나눈 교감.
그들의 눈물이, 그들의 박수가, 그들의 환호가 미치도록 고마웠다.
뜨거운 박수에 거듭 인사를 하며 나는 무대를 빠져나왔다.
기분이 오묘했다.
대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모니터 속에선 이무지치 챔버가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을 멍하니 그들의 연주를 바라보았다.
기억 속의 꽃향기에 취한 것인지 나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청중들은 앵콜을 연호했다.
얼마나 긴 커튼콜이 이어졌는지 모른다.
내 정신은 아주 맑은 것은 아니었다.
이무지치 단원들은 나에게 앵콜을 하러 나가자며 눈짓을 보냈다.
이무지치 단원들 뒤를 따라 무대 위에 다시 등장했다.
엄청난 청중들의 환호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특히나 내가 맨 마지막에 등장하자 그 물결은 더욱 거세어졌다.
카를로 로벨리가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통역관이 그의 말을 실시간으로 통역해 주었다.
“오늘 앵콜은 사계 중 ‘겨울’ 입니다. 아까 ‘고향의 봄’을 함께 연주했던 주원 군과 함께 할 것입니다.”
“우와아!”
관중들의 흥분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카를로는 마이크를 다시 잡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앵콜은 이 한 곡 뿐입니다. 더 이상은 박수쳐도 곤란합니다. 내 나이를 좀 생각해 주세요.”
통역관이 카를로의 말을 전하자 청중들은 박장대소했다.
평소엔 유쾌한 카를로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이무지치 단원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는 그 가운데 섰다.
그리고 카를로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주고받은 눈빛과 함께 베네치아의 칼날같이 시린 겨울이 그려졌다.
* * *
한국 바이올린계의 대모 유희주.
그녀는 범상치 않은 천재의 등장에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
동석한 바이올리니스트 한세아나 윤익중 병원장의 마음도 그녀와 매한가지인 듯 싶었다.
‘고향의 봄’ 연주에서 받은 충격과 감동이 사라지지 않은 채 이무지치의 공연이 끝났다.
그런데 앵콜 곡을 문주원이란 학생이 함께 연주한다는 게 아닌가?
유희주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껏 저 애는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걸까? 반드시 우리 학교에 데리고 와서 내 제자가 돼야 해.’
한국에서는 이미 더 올라갈 수 없는 커리어의 종점을 찍은 그녀였지만.
그녀의 모든 감각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문주원이 그녀의 제자가 된다면?
유희주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교수가 된다는 걸 말이다.
이른바 ‘세기의 천재를 가르친 바이올리니스트’ 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유희주는 여러 가지 기대감에 가득 차 앵콜 무대가 어서 펼쳐지길 기다렸다.
단원들의 튜닝이 끝나자 순간 장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시작된 거센 눈보라.
눈앞에 시린 겨울의 환상이 펼쳐졌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듯이.
문주원의 활 놀림은 폭풍처럼 매서워졌다.
좌중을 압도하는 그의 거침없는 카리스마에 유희주는 꼼짝할 수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기분까지 느껴졌다.
요동치는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빠르게 뛰었다.
치밀한 선율은 점점 무르익고.
거센 겨울바람의 폭풍이 그 절정에 치달았을 때 유희주는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면 저런 연주가 가능한 걸까?’
연주의 깊이,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 다른 연주자와의 조화.
극강의 기교,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음색.
예순이 넘은 유희주, 한국의 모든 바이올린 영재란 영재는 다 가르쳐본 그녀였지만.
그 누구와도 감히 견줄 수 없는 비루투오조(virtuoso :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대가)의 등장이었다.
칼날 같은 베네치아의 겨울이 다가올 봄을 기다리듯 폭풍을 멈췄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이 침묵이 흘렀다.
곧이어 한두 명씩 침묵을 깨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청중들은 열광했고 그들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문주원’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이의 가슴속에 한 명의 연주자가 제대로 각인되었다.
* * *
공연이 끝나고 기자들은 앞다퉈 대기실로 향했다.
그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문주원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KM 클래식 직원들이 기자들에게 잠시 기다려줄 것을 요청했다.
예정된 기자인터뷰가 아니었지만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버릴 수는 없었다.
KM 클래식 측은 인터뷰를 원하는 기자들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을 한 연주자도 아닌 불과 고2 학생에게 이런 취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연주를 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클래식 전성기의 도래를 예견했다.
문주원이 나오길 기다리며 월간 클래식의 최 기자가 대뜸 말했다.
“아무렴 이무지치가 아무 연주자와 무대에 함께 설 리가 없었는데 말이야. 난 진작부터 짐작했다고.”
“오늘 나만 감동 받고 소름 돋았던 거 아니지? 옛날에 파가니니가 연주하면 기절하는 사람이 많았다잖아? 오늘 그게 이해되더라니까.”
“나도 기절할 뻔했다고.”
“아직도 닭살 돋은 게 사라지지 않았다니까.”
감탄하는 기자들 앞에 드디어 문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등학생답지 않게 그의 표정은 자신감 넘치고 여유로웠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저를 인터뷰 하신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그 말은 저희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월간 클래식의 최 기자의 말에 자리에 있는 모든 기자들이 함께 웃었다.
그러더니 기자들은 이내 웃음을 거둬내고 질문을 쏟아냈다.
열띤 취재 경쟁이 펼쳐졌다.
“주원 군, 오늘 이무지치와 어떻게 공연이 성사됐는지 그 이야기부터 들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 출전할 콩쿠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사사한 교수님은 누구신지 얘기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연주자가 최근 5년간 콩쿠르 경력이 전무하다니요.”
기자들의 질문은 쏟아졌고, 그 모습을 데일리 신문의 채진수 기자가 씁쓸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 크게 한 방 먹었네.’
채진수는 큰돈이 날아갔다는 사실에 화가 난 나머지 기사를 쓸 의욕도 없었다.
그런데 문주원이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문주원의 대답은 참 황당했다.
“오늘 공연은 우연히 한 번 본 이무지치가 저에게 제의한 겁니다. 그리고 현재 콩쿠르 출전 계획 없습니다. 또 질문이 뭐였죠?”
다급한 기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사 받은 선생님이요. 누구누구이신지 천천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레슨을 따로 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사 받은 선생님이 없습니다.”
“네에? 주원 군. 솔직히 좀 답해 주시죠.”
기자들의 성화에 문주원은 살짝 웃으며 대답을 정정했다.
“아! 학교에서 실기 수업은 받고 있어요. 선생님 성함은 권태오 선생님이시고요. 정말 훌륭하신 분이시죠.”
기자들의 손은 바빠졌고 질문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넘쳐났다.
“아니 지금 학교에서 실기 수업 받는 것 외에 따로 사사 받는 교수님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네.”
기자들은 계속 질문을 쏟아냈지만 문주원은 차분한 어조로 기자들에게 끝인사를 남겼다.
“오늘 공연 관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답변은 다 한 것 같아 이만 가볼게요. 가족들이 너무 오래 기다려서요.”
“문주원 군, 잠시만요.”
“주원 군.”
기자들이 손을 뻗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뒤돌아서 가려던 문주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아!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KM 클래식 너튜브 채널에 질문을 남겨주세요. 곧 스튜디오 촬영이 있거든요. 신청곡도 받습니다.”
해맑게 채널을 홍보하고 떠나는 문주원을 보며 모든 기자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저 대답 중에 정상적인 대답이 하나라도 있는 거야?”
“학교에서 실기 수업을 받고 있다고? 뭐라는 거야?”
“사사 받은 선생님이 없으면 뭐 독학이라 그 얘기야?”
“캐릭터 한번 신기하네.”
“어쨌든 엄청난 신예가 등장한 건 사실이잖아. 오늘 지나면 클래식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어디 콩쿠르 나가서 상이라도 타면 불 제대로 붙는 거지.”
시끌벅적한 기자들 사이로 데일리 뉴스의 채진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인터뷰장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마지막에 녀석에게 한 방 먹일 헤드라인 거리를 건졌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