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06)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06화(106/250)
진행자는 다른 연주자들에게 한 곡만 비올라 없이 진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어안이 벙벙한 문혁은 비올라를 들고 진행자를 따라갔다.
놀랍게도 그곳엔 아들 주원이가 서 있었다.
주원이의 눈은 평소와 다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주원아, 여긴 어쩐 일이야?”
“아빠. 나 오늘 병원장님 부탁으로 특별 연주를 하기로 했거든.”
“요 며칠 서로 얼굴 못 봤더니 이런 데서 다 만나네?”
주원이의 표정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하지만 문혁은 자신만 빠진 채로 연주하고 있는 앙상블 팀이 걱정되었다.
비교적 높은 페이를 받고 연주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자리는 비우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래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주원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도 못 한 말이었다.
“아빠, 나랑 이따 파사칼리아 연주하자. 할 수 있지? 아빠 연주회에서도 했었잖아.”
“물론 할 수야 있지. 하지만 여기가 어떤 자리인데. 게다가 너한테 연주 의뢰 들어온 자리고.”
“걱정 마. 나한테 연주 의뢰하신 병원장님께 직접 허락받고 온 거니까.”
파사칼리아라면 눈 감고도 연주할 수 있다.
서울 뮤지카 앙상블의 마지막 정기 연주회에서 연주했던 곡이니까.
상황이 특이하긴 했지만, 결코 거절하기 싫은 문혁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하는 무대 연주는 오랜만이었다.
언제나 그리웠던 무대.
게다가 사랑하는 아들 주원이와 함께 하는 무대.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었는데…….’
문혁은 아들 주원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이 해보자. 주원이랑 같이 연주할 생각하니 아빠가 너무 설레는걸?”
“악보는 아빠 태블릿에 있지?”
“어, 하지만 필요 없어. 수도 없이 연주해서 다 외우고 있지.”
그렇게 아무 전후 사정을 모르는 문혁은 기쁜 마음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진행자의 소개로 오른 무대.
둘은 모두 암보가 되어 있었기에 보면대는 필요 없었다.
아들과 무대에 올라 떨리는 마음으로 튜닝을 하던 문혁.
자신에게 꽂히는 뜨거운 시선에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테이블 앞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한 사람.
문혁은 놀라 하마터면 악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앗. 어떻게 여기에?’
문혁의 동요를 눈치챈 주원이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문혁이 고개를 돌려 주원이의 눈빛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였나 보구나. 아까 그 눈빛. 주원이 괜찮을까?’
누구보다 놀란 문혁이었지만, 아들 주원이의 눈빛을 보자 걱정이 앞섰다.
그 옛날, 아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문혁이었기에.
자신의 감정 따윈 신경 쓸 수 없었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괜찮겠니, 주원아?”
“물론이야, 아빠. 그 어느 때보다.”
“그래. 네가 괜찮으면 아빠도 괜찮아.”
문혁은 아들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주원이의 인생에서 음악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했던 사건.
그 사건의 당사자가 한때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이 슬펐지만.
그녀 덕분에 아들 주원이와 지환이가 세상에 있는 것이다.
‘그래, 아무 일도 아니야. 누가 앞에 있건 나는 주원이와 최선의 연주를 할 거야.’
문혁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는 순간, 진행자의 소개가 이어졌다.
“며칠 전, 이무지치 챔버의 내한공연에서 함께 무대에 올랐던 놀라운 소년이 있었습니다. 매스컴에서도 주원 군의 기사가 연일 보도 됐었죠. 장차 세계를 놀라게 할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군과 비올리스트 문혁씨의 연주가 있겠습니다.”
그랜드 볼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박수가 세차게 쏟아졌다.
무대 위 조명이 유난히 눈부시게 느껴지는 문혁이었다.
* * *
뉴욕 필하모닉의 종신 악장이자 주원의 친모인 한세아.
대학교 2학년 때, 군대 제대 후 복학한 선배 문혁을 만났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그들에게 아들 주원이가 생겼다.
음악하는 사위를 반대하던 아버지는 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혼을 마지못해 허락했다.
축복받지 못했던 결혼.
너무 일찍 찾아온 아기.
한세아는 스스로 만든 속박이 답답해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다.
물론 유학비용은 전부 친정에서 지원해줬다.
핏덩이는 문혁에게 남겨둔 채였다.
그때는 그리 길어질 줄 몰랐다.
문혁도 한국에서 그가 일궈놓은 삶이 있었기에 그저 그녀가 빨리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기만을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유학 후에도 바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몇 년 만에 한국에 잠시 왔을 때 또 지환이를 임신했다.
지환이를 가졌을 때, 그녀는 정말 싫었다.
하지만 사정사정하는 문혁 때문에 낳기만 하기로 했다.
-키우는 건 내가 다 할게. 힘들겠지만 우리 아이 지켜줘.
임신한 채로 미국에 가서 오케스트라 활동도 계속했다.
그리곤 한세아는 지환이를 낳고 또 미국으로 갔다.
자신은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아이만 없었어도 훨씬 더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한세아는 더 독하게 마음먹고 노력했다.
사랑은 어느새 희미해졌고, 멀어진 거리만큼 다툼과 오해도 쌓여만 갔다.
한세아는 혼자서 하는 미국 생활이 좋고 홀가분했다.
철없이 불같은 사랑에 빠져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을 언제나 후회하던 그녀였다.
드디어 그 어렵다던 뉴욕 필하모닉의 정단원이 되고 종신 악장의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그 자리뿐이었다.
성공하고 싶을 때는 미친 듯이 짐만 같았던 한국의 남편과 아이들.
다 버리고 성공했더니 그제야 그리웠다.
미친 소리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한국에 왔을 때, 주원이를 만나고 싶어 연락했었다.
어린 주원이가 울며 싫다고 했다.
스스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현실에서 도피만 하고 싶었다.
한국을 떠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인생에서 지우고 싶을 만큼 너무 부끄럽고 이기적인 순간이었다.
그녀는 요 며칠 정신이 없었다. 아버지의 절친인 윤익중 원장님.
원장님의 초대로 오늘 파티에 아버지와 함께 온 그녀였다.
한 번 한국에 오면 공연 외에도 아버지와 함께 이곳저곳 다녀야 한다.
지난번 이무지치의 공연에서 아들 주원이를 본 뒤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주원이의 바이올린 연주를 본 이상, 그녀는 그냥 못 본 척 지나갈 수 없다.
그녀가 주원이를 세계로 이끌지 않으면 문혁처럼 이름 없는 연주자로 살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아들과 마주쳤다.
그런데 전남편도 행사 반주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전하구나.’
문혁은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어떤 작은 연주라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주원이에게 막말을 할 때 아들 주원이의 분노가 전해졌다.
한세아는 아버지 한동민의 입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자신은 주원이에게 아버지보다 더 나쁜 사람이니까.
주원이가 윤익중 병원장님께 무언가를 여쭤보더니 악기를 들고 사라졌다.
눈빛엔 분노가 어려있었다.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였다.
조금 후, 파티를 진행하는 진행자의 소개가 있었다.
아마도 오늘 주원이는 독주를 하기로 했던 것 같다.
주원이는 전남편 문혁과 연주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참 기묘한 광경이었다.
호화로운 그랜드 볼룸의 조명과 풍경이 순간 낯선 한세아였다.
둘의 모습은 참 다정해 보였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주하는 그녀였지만.
그 순간 둘의 연주에 끼어들고 싶었다.
주원이는 마치 무대가 제집처럼 자연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위축되거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남편 문혁이 훨씬 긴장돼 보였다.
뚫어지게 응시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그 순간, 문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악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허둥지둥하는 그를 주원이가 진정시켰다.
외면하는 척 지켜보는 한세아의 마음이 세차게 쿵쾅거렸다.
이제는 남인데.
아니 남보다 못한 사이인데.
‘내가 나가 있어야 할까? 아니야. 둘의 연주 꼭 두 눈으로 보고 싶어.’
드디어 둘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갑작스레 이뤄진 공연으로 보이는데도 둘은 악보조차 놓지 않고 연주를 한다.
헨델의 파사칼리아.
원곡은 하프시코드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훗날 할보르센의 편곡에 의해 현악기 연주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곡이다.
동시에 시작된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선율.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묵직한 화성에 코스 요리를 즐기던 귀빈의 분위기가 살포시 바뀌었다.
포크를 놓고 무대 쪽으로 의자를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쉴새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장대한 선율이 꿈처럼 이어졌다.
카리스마 넘치며 좌중을 압도하는 주원이의 바이올린.
그 바이올린을 모두 포용해버리는 문혁의 비올라.
둘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천상의 하모니였다.
애정이 가득한 눈.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둘의 눈이 부럽고 또 부러운 한세아였다.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연주하고 있지만 내가 아닌 것 같은 순간.
정신없이 연주하다 보면 곡 속에 흠뻑 젖어 몰입되는 순간.
둘은 이미 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처음엔 자신을 보고 놀랐던 문혁은 온데간데없었다.
둘의 연주는 그녀가 들은 최고의 파사칼리아였다.
반복되는 선율 속에 쌓여가는 화성.
둘의 음악은 점점 장대하게 그 폭을 넓혀갔다.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 음악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하는지.
마음에 드는 한 음, 한 음을 위해 얼마나 각고의 시간을 보내는지.
남들에게는 몇백 년 전 죽은 음악일 뿐이지만.
한세아 그녀에겐 어떤 음악보다 생명력 있고 살아 숨 쉬는 음악이었다.
‘마지막으로 저렇게 뜨겁게 연주했던 때가 언제일까?’
기억나지도 않는 순간.
타성에 젖어 어느샌가 일상이 되어버린 오케스트라 연주.
진심인지 예의인지 모를 박수를 받고 홀로 집에 돌아가는 길.
청중 앞에서 화려한 순간은 외로움의 대가였다.
하지만 저 둘은 사뭇 달라 보였다.
끊임없이 음악을 탐구하고 갈구하는 눈빛.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순간에 보이는 희열.
둘의 음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정에 닿아있었다.
허공을 머문 활이 가쁜 숨과 함께 내려왔다.
미라클 호텔의 그랜드 볼룸을 가득 채운 귀빈.
클래식과 담을 쌓고 지냈을 사람도 상당수일 텐데.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브라보.”
“브라보.”
“천상의 연주로군요.”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그저 그런 예의가 아닌 진심.
둘의 음악에 감동 받은 사람들은 박수를 그칠 줄 몰랐다.
너무나 큰 반응이 쏟아지자 진행자는 귀빈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오늘 원래는 문주원 군이 혼자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프로그램이 변경된 것이죠. 급작스럽게 진행된 연주인데도 너무 감동이지 않았습니까?”
진행자의 설명을 들은 귀빈들은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쏟아냈다.
“완벽한 연주를 선보여주신 비올리스트 문혁 씨와 환상의 선율을 보여주신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군에게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미소를 지으며 연신 귀빈들에게 인사를 하던 둘이 무대를 내려갔다.
귀빈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