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21)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21화(121/250)
도로시는 주원의 그런 면이 특이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그것이 대중적인 유명세나 성공에 맞춰질 경우, 음악가는 끊임없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냐면 그 목표란 것이 본인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척도로 그 목표를 잡아버리면 언젠가 유명세나 인기가 사라졌을 때, 공허함만이 남게 된다.
도로시는 그렇게 반짝하고 사라진 연주자들도 그간 많이 봐왔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놀라울 만한 음악성을 가진 주원의 경우, 성공이나 유명세가 목표가 아니었다.
보통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는 자기의 실력과 이름을 알리기 위함이 가장 큰 법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 목표만 붙잡고 평생 음악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기에 명성은 적절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
도로시는 따뜻한 눈빛으로 별안간 앞에 나타난 주원을 바라보았다.
‘참 소중한 인재야. 꺾이지 않고 평생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네.’
도로시는 또한 생각했다.
‘줄리어드에 들어오게 되면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어.’
오랜 경험을 통해 도로시가 깨달은 바가 있다.
현재와 소통하지 않는 음악은 죽은 음악일 뿐이라는 것.
그녀가 평생 음악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어린 음악가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알려줘도 받아들이는 건 오로지 스스로의 몫.
‘음악은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법이지.’
타인이 내려놓은 정의를 좇다가는 평생 자신의 음악을 할 수 없다.
자신만의 해석과 자신만의 음악이 외로운 길에 이정표가 될 테니까.
도로시는 눈앞에 나타난 어린 거장과의 인연이 신기하고 소중했다.
그렇게 그날의 만남이 마무리되었다.
* * *
하루 종일 연습과 학업에 몰두하다 기숙사에 돌아왔다.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터서인지 기숙사 방에 정이 갔다.
그 전엔 잠만 자는 공간이었을 뿐인데.
역시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나 보다.
문을 열자 왈리드는 혼자 방에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린 채 노트북 속 영상에 몰입한 왈리드.
왈리드가 보는 영상에선 한 남녀가 시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높은 언덕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대화하듯 주고받는 그들의 감미로운 노랫소리.
함께 춤을 추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남녀.
그들의 춤과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사운드.
녀석이 보는 건 한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담긴 뮤지컬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음악을 매개로 시작한 그들의 사랑은 결국 아름다운 끝을 맺지 못했다.
영화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노래와 가사는 내 마음을 순식간에 홀렸다.
가사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냈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감정의 이해를 증폭시켰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는 여느 일반 영화보다 나에게 훨씬 더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에게는 백 마디의 말보다 음악의 힘이 훨씬 더 크게 와닿았으니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그제야 나를 발견한 왈리드가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같이 본 거야? 이 영화 완전 명작이지?”
“네가 입 벌리고 영화 볼 때부터?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 많아.”
“이 영화 벌써 몇 번째 보는지 몰라.”
그러더니 왈리드가 갑자기 좀 전에 영화 속에서 나왔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일어나서 춤을 추면서 부르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왈리드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그는 마치 뮤지컬 배우가 된 것처럼 춤을 추며 노래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즐거워 보였는지.
흡사 본인을 영화 속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왈리드의 노래 실력은 꽤 출중했다.
순간 왈리드도 우리 클럽에 들어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넌 클럽 활동 하고 있는 거 있어?”
“지금은 없어. 내 의지대로 예고에 왔지만, 대학교에선 무조건 경영학을 전공해야 하거든.”
왈리드는 어두운 낯으로 잠시간 바닥을 응시하더니 살포시 웃어 보였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대학교는 경영학 전공이라면 졸업 전에라도 같이 드리머즈에서 좋아하는 뮤지컬 하는 건 어때?”
“좀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볼게. 나도 너네 무대 보고 가슴이 뛰었거든.”
왈리드는 방안을 서성이며 고민하다가 팔짱을 끼고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왈리드와 눈을 마주치자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작곡 노트를 펼쳤다.
그리곤 예전에 작곡했지만, 아직 마무리를 다 하지 못한 ‘로마의 휴일’ 오페라 악보를 펼쳤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던 오페라 악보.
노트북을 켜서 일단 떠오른 생각을 정리했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도 내 손은 쉴 새가 없었다.
작곡 노트 위에서 손이 마치 이미 암기한 악보를 그려나가듯 끊기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손이 그리는 음표를 따라가는 눈동자.
눈에 담은 음표는 어느덧 멜로디가 되어 입으로 흘러나오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악상으로 작곡 노트가 빼곡히 채워질 무렵이었다.
한참 동안 팔짱을 낀 채 나를 관찰하던 왈리드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거야?”
“Dreamers에 들어오면 얘기해 줄게.”
“뭐? 그냥 지금 알려달란 말이야.”
“너도 음악 좋아하니까. 드리머즈 들어오면 알려준다니까. 졸업하고 후회하지 말고.”
왈리드는 눈을 질끈 감고 말을 내뱉었다.
“알겠어, 들어갈게. 들어간다고.”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혹시 물어봐도 괜찮아?”
“우리 아빠가 엄청 무서운 분이거든. 근데 네 말대로 어차피 대학은 경영학 전공할 거니 졸업 전 클럽 활동쯤이야 괜찮을 것 같아.”
“잘 생각했어.”
그제야 나는 왈리드에게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신기하게도 왈리드에게 설명하면 할수록 생각이 더욱 정리되었다.
그리고 필립이 말했던 15분짜리 무대가 떠올랐다.
‘이야기는 좀 각색이 있어야겠지만 15분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내 설명을 듣는 왈리드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그는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때론 내가 그리는 악보를 보며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날 이후 매일 밤, 왈리드는 내가 하는 작업에 함께했다.
내가 모든 일과를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가는 시간은 밤 11시경.
왈리드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립은 요즘 바쁜지 며칠째 밤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기숙사 304호의 마지막 룸메이트인 해리 레이놀즈.
연기가 전공인 해리 역시, 매일 밤 나의 작업을 눈여겨 지켜보았다.
해리는 왈리드가 신나서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옆으로 와서 은근슬쩍 화음을 넣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곡을 만드는 과정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심히 관찰했다.
매일 밤, 기숙사 방 304호에선 파티처럼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일상이 좋았고.
음악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그렇게 뉴욕에서의 밤이 또 하루 지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조앤 쌤은 나에게 또 악보를 언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아직 한국에 확인을 못 했다며 가지고 있는 악보를 드리겠다고 했다.
손사래를 치는 조앤 쌤에게 내가 제안했다.
“악보 살 수 있을 때까지만 빌려드릴게요. 연주해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정말? 그럼 너무 고맙지. 하지만 악보 빌려줘도 악보는 꼭 구매할 거야.”
환하게 미소짓던 조앤 쌤이 눈을 반짝였다.
“혹시 다음 시간에 작곡 수업을 맡아보는 건 어떻겠니?”
“네? 제가요?”
“네가 어떻게 작곡을 하는지 친구들 앞에서 수업하면 재밌지 않겠어?”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재밌게 들렸다.
자유로웠던 산타 체칠리아 예고도 생각났다.
이런 식의 수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좋았고,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진 것 또한 좋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그 수업 시간은 제 맘대로 할게요.”
“얼마든지. 나도 그날은 네 학생이 될게.”
“선생님은 클래식 작곡이랑 실용음악 작곡 둘 다 전공하셨다고 했죠.”
“맞아. 나 좀 긴장해야 하는 거니?”
“뭐가 걱정되세요?”
조앤 쌤은 스스로도 본인 반응이 웃겼나 보다.
크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시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선생님이 가자 나는 한국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곤 서둘러 석영진 대표님께 전화했다.
신호가 몇 번 울리자 대표님이 전화를 받았다.
-주원 군. 잘 지내고 있어요?
-대표님. 재스퍼 일 잘 마무리 해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하긴요. 주원 군이 그런 일을 혼자 겪었을 거라 생각하니 정말 속상하더군요.
-괜찮아요. 시원하게 다 해결됐잖아요. 재스퍼 녀석 학교도 쫓겨나고 법적 처벌도 받고요.
-당연한 거죠. 근데 안부 전화한 건 아니죠?
-아! 보내주신 ‘The way to school’ 들어 있는 악보요. 그거 출판된 책이니까 구매할 수 있는 건가요?
-아직 시중엔 풀리지 않았는데 왜 그러죠?
나는 대표님께 상황을 설명했다.
내 악보를 구매하려는 사람은 사실 조앤 쌤 뿐만이 아니었다.
벌써 나에게 물어본 친구들만 20명도 넘었다.
대부분 나랑 같은 작곡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었고 더러는 소문을 듣고 구매하고자 찾아온 애도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대표님은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를 얼른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이셨다.
-주원 군의 창작품을 사람들이 제값을 주고 사기를 바라요. 친구나 선생님께 몇십 부 선물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요.
대표님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갔다.
-그럼 구매사이트 만들어지면 바로 알려주세요.
-일단은 그렇게 하죠. 사실 앱이 거의 완성 중에 있어요. 차차 주원 군에게 말하려고 했죠. 큰 프로젝트라서요.
-어플이요?
-내가 원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건 알죠? 주원 군을 위한 어플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클래식 음원을 위한 어플을 포함해서요. 주원 군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 조만간 내가 뉴욕에 가면 얘기하도록 하죠.
* * *
며칠 후, 학교 수업이 끝난 나는 알렉스와 함께 드리머즈 클럽룸을 찾았다.
Dreamers
–꿈꾸는 사람들.
맨 처음 이 클럽의 이름을 봤을 때, 눈길이 갔다.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설렘.
꿈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을 역동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 삶의 방향성만 제시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방향을 잡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일 테니까.
노력의 대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남의 노력을 얕잡아 보지 않을 것이며.
죽을 만큼 무언가를 꿈꿔봤으면 타인의 어떤 꿈이라도 응원해줄 수 있기 마련이다.
첫사랑에 실패했다고 실패한 인생이 아닌 것처럼.
꿈을 꾸고 이루지 못했다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누구나 꿈을 꾸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경험한다.
그런 의미 깊은 뜻을 가진 클럽의 이름 Dreamers.
클럽룸에 들어갔더니 왈리드를 포함해 새로운 멤버들이 많이 가입한 듯했다.
클럽룸은 다양한 멤버들의 노랫소리로 시끄러웠고 부산스러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필립의 표정은 예상 밖으로 그리 밝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클럽 멤버가 늘었는데 왜 저렇게 근심 가득한 표정일까?’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