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24)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24화(124/250)
연희대 음대 피아노 전공 안유리 교수.
그녀는 대학 시절에 문혁 선배를 좋아했었다.
누군가와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이 있었지만, 아직 운명의 상대는 못 만났던 그녀.
안유리는 문혁 선배가 혼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괜히 옛 생각이 났다.
‘고백도 못 해본 첫사랑이라서 그런가?’
이제는 먹을 만큼 먹은 나이.
그래도 풋풋한 대학생 때 느꼈던 첫사랑의 기억은 고스란히 간직한 그녀였다.
그때는 문혁 선배를 떠올리면 귓가에 비올라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문혁 선배를 닮은 따뜻한 비올라 소리도 좋았고.
그의 젠틀한 매너와 사려 깊은 행동 모두 좋았다.
사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좋았다.
마치 음악처럼.
어떤 것을 좋아할 때 이유를 붙이는 것이 싫었다.
이유를 붙일 때면 마치 머리가, 이성(理性)이 시키는 사랑처럼 느껴졌다.
뭐든지 그냥 좋아할 수는 없나?
분석하고 파고들지 않아도 그냥 좋아할 수는 없나?
이유 없이 좋을 수 있다는 게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냥 선배를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좋았던 때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문혁 선배 옆엔 늘 완벽한 세아가 함께였다.
자신감 넘치는 세아가 부러웠다.
둘의 결혼 소식에는 고백이라도 해볼 걸 그렇게 가슴에 묻어둔 사랑이 아팠다.
문혁이 혼자된 지 몇 년쯤 지났을 때였다.
한국에 들어온 안유리는 용기 내어 문혁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걸었다.
문혁과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도 참 좋았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설렐 수 있구나. 첫사랑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더 다가가려고 하면 선배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연희대에 임용된 뒤 완전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가끔 선배를 볼 때면, 선배의 눈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왠지 선배가 보내는 눈빛에 애정이 담긴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의 헛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냥 제대로 말하고 정리해야지.’
결심을 한 어느 날이었다.
안유리는 용기 내어 문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내일 혹시 잠깐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 한 카페에서 문혁을 만났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여린 피아노 소리가 기분 좋았다.
‘그래, 오늘 고백하고 끝내자. 더 이상 선배한테 질척거리고 싶지 않아.’
둘은 똑같이 산미가 없는 원두를 택하고 라떼를 주문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 너무 두근거릴 것 같아 고개를 들어 문혁을 바라봤다.
“선배, 커피 마시기 전에 얘기할게요.”
진지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선배가 살짝 커진 눈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선배 아직도 좋아하는 거 알죠? 좋아하는 거 알면 여지 주면 안 돼요. 여자들은 남자가 친절하면 오해하거든요.”
잠깐 머뭇거리던 선배가 말했다.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여지 준 적 없어. 오늘도 급하게 레슨 하나 캔슬하고 나온 거야.”
“네?”
문혁은 잠시 주저하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곤 앞에 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널 밀어낸 건 미안해서야. 난 아이도 둘이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좋아해 본 지 너무 오래돼서 두렵기도 하고.”
선배는 또다시 사랑이 실패할까 봐 두려운 거였다.
솔직한 선배가 고마웠다.
그리고 자신한테만 여지를 줬다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안유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선배, 내가 언제 당장 결혼하자고 했어요? 저 아직도 선 자리 엄청 들어 오거든요?”
선배가 피식 웃었다.
한번 웃음이 나오자 긴장이 풀어졌다.
우리는 따뜻한 라떼를 마셨고 오랫동안 얘기를 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얼굴이 유난히 달아오른 것 같기도 했다.
카페가 문닫을 때까지 얘기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다.
* * *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하루를 돌아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룸메이트들도 모두 잠든 이 시간.
고요한 달빛이 창가에 어렸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삐걱거리는 2층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겼다.
문득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좀 적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향수병인가?’
나는 2층 침대에서 내려와 핸드폰과 노트북을 챙겼다.
그리곤 조심스레 기숙사 1층 로비로 갔다.
기숙사 로비엔 아직도 몇몇 학생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지금 한국은 토요일 낮 1시가 넘었겠네.’
시간을 보니 전화를 해도 될 것 같았다.
보고 싶은 아빠와 할아버지 그리고 지환이랑 차례로 영상 통화를 했다.
지환이는 나를 보자마자 울먹거렸다.
아빠는 내가 영어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화면 속 아빠의 모습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어딘지 모르게 항상 지쳐 보이는 아빠였는데 새삼 아빠의 생기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끼니를 잘 챙겨 먹는지 굉장히 걱정하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안심하시도록 규칙적인 미국 생활에 대해 말씀드렸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자 더 보고 싶고, 그리웠다.
더 길게 통화했다간 나도 지환이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아 서둘러 끊었다.
그리고 수혁이와 우진이, 제이슨 형과도 짧게 통화를 했다.
다들 바빠서 그런지 길게 얘기할 수 없었다.
에반스 실용음악학원 최종호 원장님께는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전송했다.
학원에 붙여 놓은 사진이 오래된 것 같아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곤 KM 클래식 채널에 들어가서 예전에 친구들과 찍은 영상들을 둘러보았다.
‘여기 영상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가 함께한 여정을 돌아보니 문화예고 친구들이 더 보고 싶었다.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리웠고.
함께 만들었던 음악이 그리웠다.
그래서 문화예고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친구들도 있었고 학원에 있거나 레슨 중이어서 못 받는 애들도 있었다.
‘역시 다들 바쁘구나. 하긴 나도 정말 바빴지.’
문득 내가 정말 오랫동안 나의 팬카페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부매니저를 하겠다고 자원해놓고서 너무 무책임했던 나를 반성하며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카페의 운영자가 부매니저인 닉네임 파가니니가 잠수를 탔다며 새로운 부매니저를 뽑는 글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
-제발 부탁드려요! 잠수 안타고 성실하게 활동할 수 있는 분만 지원해주세요.
팬카페의 운영자는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너무 미안하네.’
미안한 마음에 나는 글을 하나 작성하기 시작했다.
카페의 회원들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음악으론 이미 여러 번 교감을 나눈 사이들.
내 음악을 듣고 나의 도전과 노력을 응원해 줬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제는 이름을 밝히고 싶었다.
나는 덤덤하게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 팬카페의 부매니저였던 닉네임 파가니니입니다.
본의 아니게 잠수를 타서 죄송합니다.
제가 최근 너무 바쁜 일이 있어 카페에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사죄의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바이올리니스트 문주원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 뉴욕에 유학을 와 있습니다.
유학 준비 때문에 그동안 많이 바빴고 영어 공부를 하느라 좀 고생했네요.
제가 문주원인 걸 못 믿으시는 분들을 위해 사진도 남길게요.
카페를 운영해주시는 지아님께 죄송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항상 저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제 음악을 좋아하고 기다려준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연주 영상 찍으면 이곳에 먼저 올리도록 할게요.
이제 부매니저 역할은 못 하지만 가끔 들를게요.
나는 진심을 담은 짧은 글을 작성 후,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어 사진을 첨부했다.
기숙사 로비에 있는 몇몇 학생의 얼굴이 안 나오도록 각도를 잘 조정했다.
팬카페 회원들을 모아놓고 언젠가 작은 음악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가면 꼭 생각해 봐야겠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필립이랑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한 날.
더 이상 잠이 안 온다고 깨어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웠던 가족과 친구들의 목소리로 외로움을 달래고 방으로 돌아가 기숙사 2층 침대에 몸을 뉘었다.
가슴 한편에 쌓였던 무겁고 그리웠던 감정들을 덜어낸 기분이었다.
* * *
“일어나! 일어나! 우리 빨리 가야 해.”
필립이 나를 세차게 흔들며 깨웠다.
나는 눈을 비비며 옆에 있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왜 이렇게 일찍 가야 돼?”
“너 돈 많아?”
“아니.”
“그럼 빨리 일어나. 러쉬 티켓 사려면 지금 나가야 해.”
“러쉬 티켓이 뭐야?”
“일찍 가서 줄 서면 싸게 살 수 있는 티켓. 그냥 사면 엄청 비싸거든.”
빨리 가야 티켓을 엄청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딱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냥 대충 옷만 갈아입고 필립을 따라나섰다.
기숙사와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도보로 이동했다.
아침 시간이라 한가한 뉴욕의 길거리.
일찍 문을 연 길모퉁이 베이글 가게에서는 커피의 기분 좋은 향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우리가 오늘 어떤 뮤지컬을 보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뮤지컬 제목이 뭐야?”
“‘마티나’라고 엄청 유명한 거야. 이름은 들어봤지?”
“아, 그거 원작 소설은 읽어봤는데.”
마침 내가 읽어본 책 내용으로 구성된 뮤지컬이라니 더욱 관심이 갔다.
‘내용을 아니까 뮤지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네.’
특히 재밌게 읽은 책이었기에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드디어 브로드웨이 도착했고, 필립은 ‘벨로스코’라는 큰 간판이 붙어 있는 극장 앞에 멈췄다.
이미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희한한 것은 사람들이 모두 길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는 것이었다.
뉴욕의 길거리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뉴욕 한복판 브로드웨이 벨로스코 극장 앞도 당연히 그랬다.
의아한 마음에 필립에게 물으려 하는 순간.
필립도 아무렇지 않게 시멘트 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주변을 살펴보니 반대편 극장에도, 심지어 거리 옆 작은 공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바닥에 앉아있었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장인도, 여행자로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맨 젊은이들도.
순간, 그 모습마저 굉장히 자유롭게 느껴졌다.
나도 필립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기다려서 그동안 뮤지컬 많이 본 거야?”
“그럼, 제값 주고 보려면 너무 비싸니까. Lottery(로터리) 티켓이라고 추첨으로 저렴하게 티켓을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어. 근데 그건 언제나 당첨되는 건 아니니까.”
필립은 저렴하게 뮤지컬 티켓을 사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 같은 학생에게 뉴욕의 물가는 살인적이기에, 필립의 팁은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다음엔 로터리 티켓 도전해 봐야겠다.’
필립의 상기된 표정에서는 뮤지컬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고 보기 좋았다.
일찍부터 기다린 덕에 우리는 티켓을 싸게 살 수 있었다.
나는 곧 뮤지컬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토요일이라 낮 공연이 있었고, 우린 근처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공연을 보기로 했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필립은 자신의 롤모델인 테일러 하퍼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다.
“오늘 우리가 볼 뮤지컬이 테일러가 제작한 뮤지컬이야. 여태까지 제작한 모든 뮤지컬이 환상적이었어. 게다가 우리 뉴욕 예술 고등학교 선배님이지.”
“진짜? 그럼 클럽 데이에도 오시려나?”
내 물음에 신나게 얘기하던 필립의 얼굴이 굳었다.
“오기야 하겠지. 그런데 클럽 ‘Fame’ 출신이야. 우리한테는 아무 관심도 없을 거야.”
“그래? 클럽 데이에 오는데 우리 공연은 안 볼 것 같다는 말인 거지?”
“그럴 확률이 높지.”
그건 안될 말이다.
뉴욕 예술고등학교에 오는데 드리머즈의 공연만 안 본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잠자코 볼 수 없다.
“테일러 하퍼가 무조건 우리 공연도 보게 만들 거야.”
“뭐? 어떻게?”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