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27)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27화(127/250)
어제 석영진 대표님과 통화를 했다.
대표님은 얼마 후 뉴욕에 온다는 말씀과 함께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셨다.
내 악보 중에 일부를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에 보냈고, 괜찮은 반응과 함께 악보가 팔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대표님은 이런 말씀을 붙이셨다.
-그들의 악보 소장 목록에 추가될 뿐, 공연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릅니다. 그래도 꽤 의미 있는 한 걸음이죠.
니콜로 파가니니의 곡이 아닌 나, 문주원의 곡이 세계 곳곳의 오케스트라의 레파토리가 된다니.
조금은 나의 과거를 뛰어넘은 것 같아 기뻤다.
그런데 대표님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많고 많은 오케스트라에서 나의 악보 구매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뉴욕 필하모닉.
대표님이 보낸 악보 외에도 가능한 모든 악보를 더 구매하겠다는 뉴욕 필하모닉의 적극성.
솔직히 나는 신경이 쓰였다.
‘혹시 엄마가 연관된 건 아닐까?’
뉴욕필의 시스템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난 일단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뉴욕필의 악장이고, 레파토리를 선정하는 회의에 빠질 리 없다.
‘거기서 엄마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만약 엄마가 작곡자가 나란 사실을 알고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건 꽤 합리적인 의심이다.
이무지치와의 공연 이후, 한국에서 내 인지도는 엄청 높아졌다.
일반 사람은 모르지만 적어도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나를 알게 됐다.
‘엄마도 분명 나에 관한 기사를 봤겠지.’
뉴욕으로 유학 오길 마음먹었을 때, 그 결정 과정에 ‘엄마’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끌리는 곳.
나에게 도움이 될 곳을 찾았을 뿐이다.
뉴욕에 엄마가 있다고 피하고 싶진 않았다.
대표님은 드디어 나의 진가를 세상에 알리게 됐다고 기뻐하셨지만.
난 이 의심을 꼭 해결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감정의 소모가 있으리라 예상되기에 파가니니 콩쿠르 이후로 미뤄놓음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선적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석영진 대표님께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대표님. 놀라실지 모르겠지만 뉴욕 필하모닉의 한세아 악장이 저의 친엄마세요. 제가 아주 어릴 적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셨거든요. 혹시 제 악보 구매 결정에 그분의 영향력이 행사됐는지 알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악장의 입김으로 구매 의사를 밝힌 거라면 판매하고 싶지 않아요.
대표님께서 해주시는 세심한 배려와 마케팅은 얼마든지 괜찮지만, 혈연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고 싶진 않습니다.
이메일을 보내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나의 음악적 성공을 바라는 대표님께 재를 뿌리는 것 같아 약간의 죄송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그래도 꼭 확인해야 했어.’
만약 결정 과정에 엄마의 역할이 없었다면,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음악을 하는 이상.
엄마를 마주치지 않을 순 없을 테니까.
한국에서 워낙 크게 충격을 받았던 터라 이번 일은 오히려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시련을 통해 배우는 게 있네.’
* * *
나는 최근 뮤지컬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본 뒤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대중들이 클래식을 어려워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
그걸 몸소 느껴버렸다.
일단 뮤지컬은 시각적 자극이 엄청나다.
재밌는 대본에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환상적인 안무와 무대 장치까지.
이에 반해 클래식은 가장 격정적인 곡조차 시각적 자극은 없다고 봐야 한다.
나처럼 음악을 듣고 이미지화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테니까.
얼마 전 필립이 나에게 말했듯이 대중들이 클래식을 즐기는 데에는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이다.
제목을 들어도 어떤 곡인지 매치가 안 된다든지.
또 관객이 연주회에서 지켜야 하는 에티켓도 있다.
예를 들어,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에티켓 말이다.
사실 악장의 구분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눈치껏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멈췄을 때 가만히 있어야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중음악의 콘서트의 경우, 신나면 떼창하며 함께 무대를 즐기는 반면, 클래식은 그런 자유로움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 이런 부분을 좀 개선하면 나아질까?’
깊이 있게 음악을 공부하고 알면 알수록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아직도 결론 내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물음표가 가득하다.
아마도 평생 음악을 하면서 그 답을 찾아야겠지.
나는 샤워를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마치고 시간표를 확인했다.
오늘은 조앤 쌤의 작곡 실기 시간이 있는 날이다.
나는 지난번 선생님의 부탁으로 오늘 작곡 실기 수업을 맡아야 했다.
뭐 그리 거창할 것은 없었다.
나에게 창작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니까.
영감이 떠오를 때, 가능하면 난 바로 노트에 악상을 옮긴다.
최종호 원장님 덕에 컴퓨터로 악보를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지만.
난 그냥 노트에 음표를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때로는 악상 대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작은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게 색다른 악보가 완성되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며 작곡 수업에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내 왼손에는 룸메이트 필립에게서 빌린 어쿠스틱 기타, 오른쪽 어깨에는 바이올린을 맨 상태였다.
그런데 교실 앞에서 재스퍼의 친구 무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만일을 대비해 항상 지니고 다니는 볼펜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재스퍼가 퇴학을 당한 뒤로 한동안 조용했었는데.
그들은 교실로 들어가려는 나를 단체로 막아섰다.
내 바로 앞에는 덩치가 곰만 한 녀석이 서 있었다.
무리의 대장같이 보이는 녀석의 눈빛을 일부러 당당히 응시했다.
“왜? 나한테 용건 있어?”
“동양인 X. 네가 그렇게 잘났어? 재스퍼를 학교에서 쫓아내고 너는 무사할 줄 알았어?”
참 어이가 없었다.
난 내가 잘났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 내 악보를 훔쳐 간 건 재스퍼다.
재스퍼 본인의 잘못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일을 왜 내게 묻는 것일까.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의 결과마저 남탓을 하고 싶은 놈들.
‘보고 배우는 능력이 없으니 이렇게 또 겁박하는 것이겠지.’
나는 녀석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너네, 재스퍼가 작곡 노트 훔쳤을 때 공범 아니야?”
“무슨 소리야.”
덩치가 곰만 한 녀석은 금세라도 달려들 기세로 나를 노려보며 발끈했다.
“그날 똑똑히 기억나. 날 보고 키득대던 너네 모습. 아마 너네 그런 모습 본 거 나만은 아닐걸?”
“뭐야. 어쩌라고.”
“어설프게 나 괴롭힐 생각하지마. 재스퍼 일로 겪어봐서 알겠지만 난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 없어. 지난번 Wachtell Lippton (뉴욕 최고의 로펌)에서 변호사들 온 거 봤지?”
로펌이란 말을 듣자 그 녀석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난 한 가지 더 쐐기를 박을 생각이다.
사실 며칠 전 재스퍼 일로 학교에서 유명 인사가 된 뒤, 몇몇 아시아계 친구들이 날 찾아 왔었다.
그들은 재스퍼 무리에게 그동안 많은 괴롭힘을 당했었다고 했다.
그런 괴롭힘에 못 이겨 학교를 그만둔 애들도 상당수라고 했다.
영어를 못하는 유학생만 골라 괴롭힌 나쁜 놈들.
그 아시아계 친구들은 나한테 한가지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걔네들 질이 안 좋은 애들이라서.
자신들이 당하는 괴롭힘을 남들에게 알리지 못하는 이유.
‘괴롭힘 당하는 것을 혼자서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공론화 해도 일이 해결되지 못하고 괴롭힘이 더 심해질까 염려하는 마음에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만들고, 모두의 증언을 모은다면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열한 무리에게 엄중히 경고했다.
“나뿐만 아니라 계속 이렇게 유학생들 괴롭히면 학교 폭력을 이유로 학교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고 소송을 걸겠어. 재스퍼가 어떻게 됐는지 똑똑히 기억해.”
나는 구겨진 녀석들의 얼굴을 보곤 씨익 웃어주었다.
내가 곰 같은 녀석을 손으로 재치자 녀석은 종이 인형처럼 가볍게 옆으로 밀려났다.
벙찐 녀석들의 얼굴을 뒤로 하고 난 아무렇지 않게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준비했다.
재스퍼의 무리는 제일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내가 쳐다보면 고개를 옆으로 돌릴 뿐이었다.
‘이제는 걱정 안 해도 되겠네.’
곧이어 작곡 실기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조앤 쌤까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학생처럼 책상에 앉은 조앤 쌤이 나를 일일 교사로 소개했다.
“오오, 주원이가 오늘 작곡 쌤이에요?”
“하긴, 충분히 자격 있지.”
“맞아. 인정.”
친구들의 열띤 환호 속에 나는 수업을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수업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자유롭게 영감을 이끌어 내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떠오른 악상을 즉흥 음악으로 보여주기 위해 필립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빌렸다.
그리고 당연히 바이올린도 함께였다.
교실에서 나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
특히 조앤 쌤의 눈이 가장 빛났다.
“보통 다들 어떻게 작곡을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내 질문에 한 명씩 자유롭게 대답했다.
“나는 일단은 곡을 어떤 주제로 쓸지,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정도만 생각하고 쓰는 편이야.”
“나는 지금까지 모두 사랑에 관련된 노래만 작곡해봤어. 그게 내 영감의 원천이야.”
“난 나중에 영화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영화의 장면을 보면서 음악을 떠올리곤 해. 내가 만들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식으로.”
친구들의 대답은 모두 훌륭했고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주원아, 너는?”
나는 질문을 던진 친구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도 어떤 정형화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야. 그냥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놓치지 않고 바로 표현한다고나 할까? 영감이 떠오르면 언제든 바로 악보를 그려. 길을 걷던 중이든, 밥을 먹던 중이든 상관없어.”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라 모두 내 말을 이해하며 수긍했다.
그런 친구들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여기서 한 번 보여 줘도 될까? 어떤 주제든 좋아. 나에게 누구라도 단어나 상황을 던져줘 봐.”
교실 안이 술렁였다.
“지금 여기서 즉석 작곡이라도 해서 보여주겠다는 거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떨 땐 정말 5분 만에 마음에 드는 선율이 그려지기도 해. 어떤 때는 몇 달을 붙잡아도 완성이 안 되기도 하더라. 그러니까 곡에 기대는 너무 갖지 말고.”
흥미로운 눈빛을 한 작곡 실기 수강생들.
다들 어떤 단어를 나에게 던질까 고민하던 중.
조앤 쌤이 웃으며 제일 먼저 단어를 외쳤다.
“사랑. 그게 전 세계 모든 음악의 가장 큰 영감의 원천 아니겠어?”
교실 안 학생들이 모두 웃었다.
“그래, 사랑이 좋겠어. 그 단어로 한번 보여 줘.”
“보여 줘.”
“들려줘.”
나는 필립에게 빌려온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바이올린을 한 번씩 바라 보았다.
‘어떤 악기로 하는 게 좋을까?’
그냥 하나씩 다 보여 줘 버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