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34)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34화(134/250)
본인이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기자들에게 외치는 붉은 곱슬머리의 바이올리니스트, 파울로.
그의 모습을 눈으로 담으며 나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궁금하네. 어떤 연주를 하길래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지.’
나는 북적거리는 고풍스러운 호텔의 로비를 지나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너무 많아 보여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낯익은 한국말이 들려왔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냥 계단으로 올라갈까?”
“그러지 뭐. 근데 피아노 있는 연습실 어떻게 배정받는지 물어봤어?”
“짐 놓고 내려와서 물어봐야지.”
한국인 참가자인 모양이었다.
들리는 얘기를 보니 반주자와 동행한 것 같았다.
고민하는 그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32명의 참가자 중에 한국인은 나 포함 세 명.
이런 의미깊은 장소에서 만나는 한국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국분들이시죠? 안녕하세요.”
“어? 혹시. 문주원 군? 맞죠?”
나를 알아보는 한국인 참가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김준이라고 합니다. 주원 씨가 파가니니 콩쿠르 출전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진짜 여기서 만나니 신기하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한국인도 인사를 건넸다.
“저는 피아니스트 이민규라고 합니다.”
갑작스레 만난 한국 사람들.
정말 반가웠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준은 키가 크고 젠틀한 이미지였으며 피아니스트 이민규는 체격이 크고 호쾌한 느낌이었다.
모두가 익숙하지 않고 서툰 환경이었지만, 우리는 서로가 콩쿠르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길 빌어주며 각자의 층으로 흩어졌다.
아이러니하게 상대를 이겨야 차지할 수 있는 우승의 자리.
그런 잔인한 면이 있는 콩쿠르 과정이었음에도.
서로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평생 음악을 함께 할 동반자들.
콩쿠르의 긴장감처럼, 평생 음악의 길을 걷는 중에도 적당한 긴장감이 우리를 성장시켜주길.
나는 고풍스러운 브리톨 팰리스에 모인 모든 참가자들을 위해 짧은 소원을 빌어 보았다.
그리곤 도착한 2층 내 방.
방은 호텔의 분위기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잘 정돈된 침구와 포근한 색감의 커텐.
커텐 너머로 보이는 창가의 맑은 하늘.
편안한 분위기의 방이 마음에 들었다.
완벽한 방음시설이 갖춰진 방은 아니지만, 저녁 11시까지는 모두가 호텔 방에서 자유롭게 연습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미 확인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옆방 한 칸씩은 모두 비워 놓은 상태라고 했다.
그 외에도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습실도 사용할 수 있었다.
콩쿠르의 첫 단계인 예선은 32명이 모두 참가하지만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참가자의 숫자는 줄어든다.
예선에서 16명이 탈락하고 세미파이널에선 16명의 참가자만 남는다.
그리고 최종 파이널엔 6명의 참가자만 남게 된다.
나는 일단 대회 규정에 맞춰 예선이 열리는 Palazzo Tursi(투르시 궁 : 현재 제노바 시청으로 쓰이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건물)로 가야 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예선 하루 전날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증명서류를 가지고 그곳에 방문해서 경연 순서를 추첨으로 정해야 했다.
확인해보니 호텔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떨어진 장소였다.
나는 그곳에 다녀온 뒤 간단히 식사를 하고 쭉 연습을 할 생각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제노바 시내의 돌길을 따라 팔라조 투르시로 향했다.
몇백 년 전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이었던 투르시 궁의 모습.
지금은 옛날만큼의 화려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멋진 모습이 여전했다.
지금은 제노바 시청으로 쓰이고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궁은 시청으로 사용하는 곳과 입장료를 사서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나눠져 있었다.
도착하니 바이올린을 맨 많은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모두 예선이 열리는 홀로 들어가 객석에 앉았다.
‘Salone di Rappresentanza hall’
참가자의 ID카드를 모두 확인한 후, 예선 순서 추첨이 이뤄졌다.
내 이름의 호명과 함께 한 추첨.
나는 총 32명의 참가자 중 스물 다섯 번째 순서를 뽑았다.
‘나는 예선을 모레 하게 되겠네.’
내일과 모레 양일간 열리는 예선.
예선 순서 추첨까지 하고 나니 그제야 콩쿠르에 참여한 것이 실감이 났다.
추첨을 하러 온 참가자들 사이로 아까 인사했던 한국의 김준 바이올리니스트와 붉은 곱슬머리 파울로가 보였다.
그리고 제 손을 주무르고 있는 미사키도 보였다.
언제나 감정의 큰 변화가 없는 무덤덤한 미사키도 이번엔 좀 긴장한 눈치였다.
참가자들의 추첨이 모두 끝난 후 난 미사키에게 다가갔다.
“미사키 넌 추첨 번호 몇 번이야?”
“주원아, 놀랐잖아. 나 7번이야 첫째 날. 넌?”
“난 25번. 내일 예선이구나? 내일 예선 잘해. 말 안 해도 잘하겠지만.”
“피자 열두 판 안 사려면 잘해야지.”
“큭, 미사키 네가 내기 지면 얼마 먹지도 못하는데 제일 억울할 듯.”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가벼운 농담을 하니 미사키의 경직된 얼굴이 조금 풀어진 느낌이었다.
당장 내일이 예선인 참가자들은 서둘러 연습을 하러 움직였고 미사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장 연습을 시작하는 대신 먼저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최 측에서 주는 호텔 식사 바우처가 있었지만, 난 잠시라도 바깥 공기를 마시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보고 싶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추억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까?’
꼭 찾아야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희한하게도 이곳에 오니 기억의 편린들이 머릿속에서 꿈틀댔다.
작은 방에서 유일한 내 벗이 되어준 바이올린도 좋았지만.
드넓은 바다와 유난히도 파란 하늘을 모습을 보면 마음이 탁 트였었는데.
변한 것도 있었지만 짭조름한 바닷바람만은 그때 그대로였다.
그런 기억들은 나를 더욱 감상적으로 만들었고,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두 번째 삶을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할 뿐이었다.
브리톨 팰리스 호텔로 돌아가며 주변의 길을 탐색하던 중이었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맛있는 냄새가 흘러 나오는 Osteria(오스테리아 :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이탈리아의 캐주얼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먹고 들어가서 밤까지 연습해야지.’
오스테리아의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제노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기다란 차양 아래 자유롭게 놓인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메뉴를 보니 반가운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판소티.(삼각형 모양의 이탈리아 제노바식 라비올리)
어린 채소를 다져 볶고 계란과 치즈로 속을 만들어 호두 소스와 찍어 먹는 판소티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추억의 음식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주문을 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먹어보는 거야?’
음식을 기다리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만난 제노바의 거리.
아직도 돌이 깔린 길에 몇백 년 전 화려한 장식을 넣은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
눈을 지그시 감으면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곳이 마치 날 오랫동안 기다려 준 느낌이었다.
그렇게 제노바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호텔로 돌아가 긴 연습에 돌입했다.
* * *
[크레모나 공방]며칠 전 문성주는 공방에서 한창 작업 중이었다.
바이올린의 바디에 바니쉬 칠을 하고 잠깐 쉬려는 참이었다.
마침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석영진입니다.
-대표님이 저한테 웬일이십니까?
-선생님, 혹시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석영진 대표는 문성주에게 부탁이란 이름 하에 감사한 제안을 건넸다.
-혹시 제노바에서 주원 군의 악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주실 수 있나 해서요.
도움이란 명목으로 엄청난 제안을 하는 석영진 대표.
문성주는 그런 제안이 반가우면서도 잠시 해야 할 작업을 따져 봐야만 했다.
‘급한 올드 악기 수리는 거의 끝나가고 있고.’
촉박하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정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석영진 대표랑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공방의 문을 2주나 닫아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미리 해야 할 일이 꽤 많았으니까.
문성주의 고민이 길어지자 석영진은 재차 공손하게 부탁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모든 경비는 저희가 부담하고 보수도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단순히 손자의 콩쿠르를 관람하러 가시는 게 아니고 일로 가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린 나이에 혼자 유학을 떠난 손자 주원이.
음악을 멀리했다 다시 시작한 것도 고마웠는데.
자신이 만들어 준 악기로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다니.
문성주는 죽기 전에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었다.
거절할 수 없게 부탁하는 석영진 대표.
그의 배려심을 느낀 문성주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보수는 괜찮습니다. 경비를 부담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요. 대신 일정상 대표님보다 하루 늦게 출발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문성주는 늦은 시간까지 작업에 몰두했다.
2주간이나 공방의 문을 닫아야 하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주원이의 악기에 문제가 있을 것을 대비해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여분의 줄이나 브릿지, 줄감개, 여분의 활, 어깨 받침, 송진, 작은 칼이나 악기 수리에 필요한 소도구들.
문성주는 기분이 좋아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작곡가 멘델스존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교향곡 ‘이탈리아’.
매력적인 이탈리아의 밝은 태양을 연상시키는 명곡 덕에 문성주의 기분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한창 기분 좋게 일을 하던 문성주에게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따라 전화가 많이 오네.’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손자 주원이었다.
-할아버지. 아직 안 주무셨죠?
-그럼, 안 잤지.
-저 곧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악기로 파가니니 콩쿠르 나가잖아요. 잘 해낼게요.
-그래, 멀리서 응원하마.
-정말 감사해요. 할아버지. 항상 건강하셔야 해요.
문성주는 제노바에 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주원이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할아버지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손자 주원이.
사랑하는 손자의 가장 멋진 순간을 보기 위해.
기나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날 날을 기다리는 문성주의 주름진 얼굴은.
마치 생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표정과 같았다.
잠이 들 때까지 문성주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 *
서울 시내의 한 건물.
월간 클래식 기자들의 주간회의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바로 얼마 전 혜성같이 클래식계에 등장했다가 유학을 떠나버린 문주원에 관한 회의였다.
“KM 클래식에서 발표하길 주원 군이 파가니니 콩쿠르 예비심사단계를 통과했다고 하더라고요.”
“주원 군의 우승 가능성 있을까요?”
이무지치의 한국 공연에서 주원의 공연을 직관했던 최 기자가 서서히 입을 뗐다.
“그간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봤지만 문주원 같은 연주는 처음이었어. 실력이나 음악성도 엄청나지만 청중을 모두 압도해버리는 그런 카리스마가 있더라고.”
주간 회의에 모인 기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니까 한동안 클래식계에서 파장이 컸었죠. 연주를 직접 본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넘쳐났으니까요.”
“한국에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천재인데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 그 시작부터 한 번 같이 가보죠.”
“그런데 그런 천재가 한국에만 있을까요? 이번에 이탈리아 참가자 중에 유력한 우승 후보가 있다던데요.”
“얼마나 천재길래?”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불릴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유럽에서 열린 콩쿠르 거의 다 휩쓸었고요.”
“그래? 주원 군이 우승해야 하는데…….”
“지난 대회에선 우승자도 안 나왔죠. 그래서 이번 심사위원단 구성이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다양한 이슈가 있는 이번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이탈리아의 천재와 한국의 떠오르는 신성이 격돌한다.’
기자들의 머릿속에서 여러 헤드라인이 그려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월간 클래식의 기자들만은 아니었다.
세계를 향한 주원의 첫 여정을 상세히 기록에 남기고픈 열정적인 기자 몇 명.
그들의 목적지 역시 이탈리아 제노바였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