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4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40화(140/250)
콩쿠르의 진행자는 흥분한 청중들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아직 마지막 곡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콩쿠르가 진행 중임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심사위원이기에 기립하지 못한 프란츠는 뜨거운 마음으로 환호하는 청중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아직 현대 작곡가 곡이 남았어.’
세미파이널 무대의 마지막은 살아있는 현대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며칠 전 프란츠는 문주원 참가자가 낸 현대곡의 악보를 살펴보았다.
대다수의 참가자가 이미 검증된 현대 작곡가의 곡을 시도하는 것과 달리.
그가 낸 악보는 처음 보는 작곡자의 것이었다.
그건 바로 문주원 본인이 작곡한 곡이었다.
며칠 전, 심사위원들과 세미파이널 합격자 16명을 가린 뒤.
합격자들이 제출한 현대곡 악보를 살필 때가 떠올랐다.
문주원 참가자를 제외한 전원이 유럽에서 현재 활동 중인 퀸엘리자베스 작곡 콩쿠르 우승자들의 곡을 택했다.
하지만 문주원 참가자만 혼자 본인의 곡으로 출전했다.
살아있는 현대 작곡가의 바이올린 솔로곡이자 출판도 완벽히 끝난 악보라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콩쿠르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본인이 작곡한 곡으로 콩쿠르에 임하는 연주자.
과거 천재 음악가들이 쏟아졌던 낭만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요즘에는 그런 일을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프란츠였다.
단순히 본인의 곡을 널리 인정받기 위한 곡 선정이라 의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란츠는 주원의 악보를 보면 볼수록 오싹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진화한 파가니니가 작곡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네.’
누구보다 바이올린에 대한 이해가 완벽했던 파가니니.
소년의 악보는 그런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고 있었다.
언제나 고도의 테크닉 뿐이라는 평을 받았던 파가니니.
반면에 소년의 악보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뛰어난 음악성은 이미 파가니니의 기교와 감성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었다.
처음엔 존 케이지를 운운하던 심사위원들도 작곡자의 이름과 악보를 살펴볼수록 표정이 다채로워졌다.
경악을 하는 이.
감탄을 하는 이.
연주를 하고 싶어 악기를 찾는 이.
모두의 반응은 결국 하나로 귀결됐다.
-어서 빨리 세미파이널이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이 악보 구매 가능하겠죠?
-내가 콩쿠르를 다시 나간다면 이 곡으로 하고 싶네요.
-이 곡이 세상에 알려지면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뛰어넘는 바이올린 솔로곡이 몇백 년 만에 나오는 거겠네요.
모두가 평생 바이올린을 사랑한 사람들이라서 더 깊게 감동한 터였다.
새로운 음악을 만난 그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났다.
그중 한 심사위원이 도저히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우승자였던 크리스티안 리우였다.
-하, 지금 바이올린이 있으면 연주해 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는 답답한지 서서 회의실 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런 그의 반응을 심사위원 모두 깊이 공감했다.
-그러게요.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려니 진짜 아쉽네요.
참가자들의 현대곡 악보를 살펴보던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한바탕 벌어졌던 소동.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심사위원 프란츠 슈미트는 소년의 마지막 연주를 기다렸다.
‘빨리 시작해줘.’
거트현을 끼워서인지 소년은 신중하게 조율을 다시 했다.
자신감 넘치는 소년의 빛나는 눈.
그가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리고 믿을 수 없는 음색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Caprice No. 5 by Juwon.
부제 : New beginning (새로운 시작)
바람 한 점 없는 호숫가의 평온함처럼 따뜻한 바이올린의 중저음의 멜로디가 시작되었다.
평화로운 한 폭의 풍경화가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후둑후둑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처럼.
변덕스러운 활이 절묘한 박자로 추상화를 그려냈다.
호수에 떨어지는 수많은 빗방울이 만들어 낸 물보라.
작은 물보라가 어느덧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는 것처럼.
고음으로 시작한 선율은 바이올린의 모든 음역을 넘나드는 거대한 아르페지오가 되어 청중을 휘감아버렸다.
인생의 끝도 없는 고난을 표현한 걸까?
저절로 그려지는 시각적 환상에 프란츠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호숫가 저 멀리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이듯.
스멀스멀 그림자가 커지며 다가왔다.
그리고 시작된 격정의 변주.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라도 한 듯 생동감 넘치는 음표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초대받지 않은 이도 들이닥치고 싶을 만큼 화려한 연회.
겹음과 피치카토의 정신 없는 교차.
극강의 기교라 불리던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는 머릿속에서 흔적조차 없이 지워져 버렸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소년의 활이 허공을 가르고 내려왔다.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은 숨죽인 채 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잠시 바닥을 내려다 호흡을 뱉었다.
“하….”
그리고 객석의 청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터질듯한 함성이 일어났다.
청중은 벅찬 가슴을 참지 못하고 또다시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순간.
제노바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이탈리아가 낳은 신동 파울로 만치니.
그는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본인이 우승할 거란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아직 주원의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론에서 주원과 자신의 양자 구도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굳이 그의 예선 영상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미리 봤자 의미도 없는 일이다.
주원의 연주를 카피해서 무대에 설일은 없을 테니까.
파울로가 카피하는 연주자는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
이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그리고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연주자들이었다.
간혹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은 대가들의 연주들도 그대로 모방하곤 했다.
곡마다 특화된 연주자가 있기에 파울로의 특징은 쉽사리 누군가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걸 구분하는 사람이 있다면 파울로가 인정해 줘야 할 수준이 분명하다.
콩쿠르에서 만난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주원의 태도는 묘하게 거슬렸다.
주원은 자신을 마주한 다른 이들과는 달리 주눅 들지 않고 은근히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래서 자신의 연주 실력으로 그의 코를 한풀 꺾어주려 했다.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는 시선이 늘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파울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계획이 실패했지만 주원의 배짱 있는 모습에 파울로의 마음은 오히려 즐거웠다.
모든 콩쿠르가 시시해진 자신에게 주원이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세미파이널의 순서가 주원의 바로 뒷 순서였던 파울로는 주원의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일찍 대기실에 도착했다.
자극받은 주원이 최고의 기량을 뽐내야 자신에게 조금의 자극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화를 나눈 결과, 파울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게다가 그가 마치 파가니니의 악기처럼 턱받침과 어깨 받침이 없는 악기를 들고 무대에 나가는 모습을 본 순간.
파울로의 등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음색에 있어서 조금은 유리할 수도 있지만 연주 방법에 있어서는 비교도 안 되게 어려울 텐데.
게다가 얼핏 본 거트현.
음정이 수시로 변하는 거트현의 경우, 바로크 시대 연주를 하는 연주자가 아니고서야 무대에서의 연주는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웬만한 실력으로는 좋은 소리와 바른 음정을 낼 수 없다.
그런데도 보였던 주원의 자신감.
파울로는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곧 있으면 들려올 그의 연주가 두려운 파울로였다.
그리고 주원의 연주가 흐르고 흐를수록.
파울로는 절실히 깨달았다.
‘흉내낼 수 없는 연주가 있다니.’
사색이 되어가는 파울로의 얼굴을 본 안내원이 말을 건넸다.
“파울로, 괜찮아요? 식은땀이 나잖아요. 얼른 화장실 다녀와요.”
“아. 괜찮아요. 혹시 물 좀 마실 수 있을까요?”
안내원이 어디선가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 중에도 주원의 연주가 귓가를 가득 채워버렸다.
거트현의 짙은 음색이 파울로의 머리의 빈틈을 메워 버렸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곡이 끝난 후.
다시 그의 연주가 들려왔다.
‘미쳤다. 이건 도대체 누가 작곡한 곡이야? 이렇게 좋은 현대 작곡가의 곡이 있었다고?’
파울로의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신마저 질투할 것 같은 주원의 바이올린 연주가 끝이 났다.
식은땀을 닦으며 파울로는 생각했다.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나. 그동안 연습한 것도. 대가의 음악을 모방한 것도. 아무 것도…….’
파울로의 머릿속이 별안간 하얘졌다.
그건 파울로의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 * *
연주가 끝난 후.
나는 기립 박수를 보내는 청중을 바라보았다.
마치 몇백 년 동안 나만을 기다려온 것 같은 그들의 열기와 환호.
‘그래, 이거였지.’
수백 년을 돌아와도 결국 이 자리.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무대다.
내 음악을 들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그들의 열정을 마음 속 깊이 차곡차곡 담았다.
뜨거운 열기에 이곳이 콩쿠르 장인지 연주회 장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다.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대기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기실의 문이 열리자 창백한 얼굴의 파울로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 악보가 생각이 안 나. 네 연주가 내 머릿속을 다 채워버렸어.”
녀석의 눈빛을 보니 모두 진심이었다.
나사가 풀린 정도가 아니었다.
최면에라도 걸린 듯한 눈빛.
머릿속에 든 모든 음악이 지워진 모양이었다.
가끔가다 이런 연주자들이 있다.
하지만 파울로의 경우 무대 공포증은 아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분명할 터.
안내요원이 파울로를 재촉했다.
“파울로, 얼른 무대로 나가야 해요.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됩니다.”
나는 바이올린을 옆에 내려두고 파울로의 어깨를 붙잡았다.
“정신 차려. 파울로. 네가 말했었지. 누구의 연주라도 카피할 수 있다고.”
파울로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증명 해봐. 너랑 나랑 마지막 곡 빼고 모두 같잖아. 차라리 내 연주를 그대로 카피해 봐.”
초점이 없던 파울로의 눈빛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알았어. 해볼게.”
녀석의 창백한 얼굴에 어느덧 핏기가 되살아났다.
‘휴.’
다행이었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 정도 약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파울로의 세미파이널 무대를 보기 위해 나도 악기를 챙겨 서둘러 객석으로 갔다.
빈자리가 없어 서서 봐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녀석이 진짜 내 음악을 모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지.
난 꼭 보고 싶었다.
콩쿠르의 타이틀이나 돈만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서 느꼈던 숨겨진 진심.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클래식계의 현실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겠지’.
그때 파울로의 목소리는 성이나 있었지만 그의 눈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음악을 해나갈 명분을 만든 파울로의 연주를 난 꼭 듣고 싶었다.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만들어서 음악을 해야 하는 심정.
‘난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어.’
그 고독한 길을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여럿이 걸어가는 게 낫겠지.
‘녀석에게 자극도 줬고. 그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 외치던 파울로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선 파울로의 모습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대기실에서 만났을 때처럼 초점이 없는 눈동자는 아니었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파울로 특유의 개성이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얼굴을 찡그리는 파울로.
불안한 그의 표정은 음악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op. 78.
피아노 소리와 파울로의 바이올린이 미세하게 엇갈렸다.
느린 템포의 시작이고 포지션도 높지 않은 부분임에도 음정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그의 음악이 미세하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야.’
이 순간, 파울로가 나와 콩쿠르에서 경쟁자라는 사실은 아무 의미 없었다.
난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음악을 만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던 파울로의 연주.
파울로의 보잉이 어느 순간 과감해졌다.
그러더니 누군가의 연주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건 연주 스타일의 변화로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파울로가 좀 전에 들었던 내 연주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고심하는 그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엿보였다.
한 번도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콩쿠르 중간에 내 연주를 바로 따라 해 보다니.
‘진짜 못 말리겠네. 아주 흥미로운 녀석이야.’
그렇게 혼란스러운 정신상태에서 벗어나자마자 내 연주를 카피하는 파울로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이제야 파울로가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파울로는 나의 연주를 모방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꼈는지 빨리 포기하고 다른 스타일의 연주를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능숙하고 빨랐다.
‘정말 수시로 쉽게 음악의 색깔을 변화시키는구나.’
범상치 않은 재주임이 틀림없었다.
아직은 남을 모방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더 노력한다면 본인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다소 불안했던 파울로의 연주를 끝으로 세미파이널 첫째 날 경연이 모두 끝났다.
자신의 음악이 흡족하지 않았던 파울로는 관객들의 박수를 뒤로하고 대기실로 쓱 들어가 버렸다.
평소와 같은 과장된 제스처와 과한 인사 따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