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50)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50화(150/250)
카네기 홀의 성공적인 데뷔 이후, 나에게 쏟아진 관심은 뜨거웠다.
연일 쏟아지는 인터뷰 제의와 공연 제의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뉴욕에서 내 업무를 도맡아 하는 윌은 쏟아지는 연락에 몸이 두 개쯤 되어야 할 것 같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 중에도 줄리어드의 입시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입시의 1차 관문인 사전 심사에 가뿐히 통과했다.
심사에 통과하고 나니 뉴욕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항상 학교와 기숙사만을 오고 가던 생활 반경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자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고 그동안 살펴보지 못한 뉴욕의 곳곳을 걸어 다녔다.
편한 신발을 신고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걷는 순간은 언제나 반짝이는 영감으로 되돌아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공원에서 한가로이 쉬는 사람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관광객들.
여러 곳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들어가 본 New York Public Library (뉴욕 공립 도서관).
나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뉴욕 공립 도서관을 찾았다.
그곳엔 꽤 인상적인 문구가 적혀 있어 나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우리는 내일의 천재가 될지도 모를 이상한 독자들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천재들을 위해 봉사한다.
그 문구는 묘하게 공감 가면서도 재밌었다.
결국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인 천재가 될 가능성을 가졌다는 뜻처럼 느껴졌으니까.
알 듯 모를 듯 위트 있는 도서관의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100년도 넘는 역사를 가진 뉴욕 공립 도서관.
기나긴 역사만큼 도서관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그곳에서 책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은 굉장히 행복한 일상 중 하나였다.
‘문화예고 도서관에서도 책을 읽으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었는데.’
연습실에서 나만의 음악을 만들며 고군분투하는 시간도 소중했지만,
따듯한 햇살 아래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는 책을 한 권 보는 것도 내 마음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했다.
그리고 나에게 생긴 또 하나의 취미가 있었다.
다양한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음악을 감상하는 것.
새로 생긴 취미는 내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했고 마주치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책과 영화는 언제나 상상할 거리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름다운 음악, 박진감 넘치는 음악, 서글픈 음악, 공포감을 조성하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수많은 영감을 받았다.
영화 음악을 많이 접해보니 얼마 전 완성했던 해리의 단편 영화 음악의 완성도가 조금 아쉬웠다.
‘처음 만든 거였으니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하루하루 더욱 커졌다.
오늘은 사정상, 한 번의 약속이 미뤄진 끝에 브루클린에 가기로 한 날이 되었다.
장웨이와 미사키를 만나러 줄리어드 예비 학교 앞에 도착했다.
이미 여러 번 방문해서인지.
오늘따라 반짝거리는 줄리어드 건물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오늘도 장웨이는 컬러풀한 색감의 옷을 입고 브루클린으로 가는 길에 앞장섰다.
오늘은 유독 색깔이 여러 개로 분산되어 있었다.
미사키는 장웨이에게 들리지 않게 나한테 작게 속삭였다.
“오늘도 장웨이는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아.”
“풉.”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대화였다.
메트로를 타고 목적지인 브루클린 브릿지 역에 도착했다.
우리랑 같은 생각을 가진 수많은 인파와 조우했다.
약속한 피자를 먹기 전, 우리는 브루클린의 명소인 덤보에 가 보기로 했다.
다양한 영화를 찾아보던 요즘, 브루클린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고전 영화가 있었다.
바로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미국 뒷골목의 갱스터들의 이야기와 어우러진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던 음악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오랫동안 차지했다.
영화 속 음악을 속속들이 알고 난 후, 다시 보는 영화에서 얻는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보물 같은 순간을 선물해준 영화 음악의 기억 덕분에.
친구들과 브루클린에 오기 전부터 내 마음은 두근거렸다.
영화의 포스터 덕분에 유명해진 브루클린의 덤보.
골목에 들어서자 우뚝 솟은 맨해튼 브리지의 교각이 골목 끝 벽돌 건물 사이로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착시인 듯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실제보다 훨씬 웅장해 보이는 교각 사이로, 멀리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딱 들어오는 자리.
‘여기가 바로 영화의 포스터를 찍은 그 자리구나.’
나는 장웨이와 미사키에게 영화의 내용을 얘기하며 함께 OST를 들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과 함께 브루클린을 걷는 시간.
참 소중했다.
‘언젠가 이 시간도 나에게 영화처럼 기억되겠지.’
음악과 어우러진 우리의 일상이 좋았고.
거리마다 골목마다 예술적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브루클린이 좋았다.
덤보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은 후, 우리는 피자를 먹으러 유명한 줄리아노 피자 가게에 도착했다.
미사키는 장웨이와의 투닥거림에서 승리를 쟁취한 모양이었다.
장웨이는 라지 사이즈 피자 한 판을 주문하는 데 그쳤다.
우리는 피자를 포장해 나와 풀밭에 있는 벤치에서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피자를 맛보았다.
짭조름한 피자의 맛과 불어오는 강바람의 내음마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브루클린에 오기 전에 봤던 영화들의 장면과 음악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재생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추억도 영화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 * *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에서는 국제 단편 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벤자민 휴즈는 이번 영화제에서 Best Student U.S Short와 Best Student International Short 두 분야의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벤자민은 언제나 학생들의 작품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심사 위원직을 수락했다.
미국 LA의 코첼라 계곡에서 열리는 팜스프링스 국제 단편 영화제는, 수십 개국의 나라에서 출품된 영화가 상영되는 북미 지역 최대의 단편 영화제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의 단편 영화가 많이 출품되었다.
상업 장편 영화에 비해 언제나 관심이 뒤떨어지는 단편 영화.
하지만 학생들은 단편 영화부터 그들의 커리어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벤자민 자신도 그랬고 아카데미나 칸영화제를 수상한 거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작을 만들기 전에, 무명의 시간을 보내지 않거나 작은 영화들을 만들어보지 않은 감독들은 없었다.
눈뜨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말은 수많은 과거를 모두 생략한 말일 뿐이었다.
무수한 과거가 모여 현재를 만들었고.
그런 현재를 토대로 미래가 기대되는 것.
영화라는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캐멀롯 극장에선 종종 독립영화도 상영했다.
캐멀롯 극장에서 일주일간 상영되는 단편 영화들.
벤자민은 출품된 영화들이 대중들에게 공개되기 전, 심사위원들과 함께 출품작을 관람하며 심사평을 하게 된다.
벤자민은 조금 후부터 올해 출품된 Best Student U.S Short의 작품을 연달아 관람할 예정이었다.
영화의 제목과 시놉시스 리스트를 살피며 동료 심사위원과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모든 심사위원이 각자의 자리에 앉자 학생들의 영화들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어떤 영화는 10분, 어떤 영화는 16분.
가장 긴 영화의 상영 시간도 40분이 채 넘지 않았다.
학생들의 시선은 역시 신선했다.
하지만 신선한 만큼이나 부족한 점도 많이 엿보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사회를 향한 비판 의식이 가득한 청소년기.
자신이 만든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영화 학도들의 순수한 열정.
학생들의 영화는 대부분 주제가 무겁고 심오한 얘기를 가뜩이나 무겁게 풀고 있었다.
청소년기는 그런 게 멋있게 느껴지고 작품성 있게 느껴지는 시기이다.
벤자민은 심사와는 별개로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의 산물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벤자민은 영화에서 음악의 비중을 굉장히 높게 생각하는 감독이었다.
그는 뮤지컬 영화를 성공시킬 정도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래서 비록 학생들이 만든 완성도가 높지 않은 단편 영화에서도 음악을 중요하게 살펴보았다.
스토리가 참신하거나 배우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는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작품 속에 음악이 제대로 녹아든 영화는 본 적이 없었다.
‘하긴 학생들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는 어렵지. 음악도 중요하다는 걸 차차 깨닫겠지만.’
벤자민은 한 편, 한 편의 영화마다 심사평에 공들이며 차분히 영화를 심사했다.
다음 작품은 NYU 학생들과 뉴욕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합작 영화였다.
‘뉴욕 예술고등학교?’
벤자민은 피식 웃음이 났다.
국제콩쿠르와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주원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냈던 놀라운 음악도 떠올랐다.
벤자민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금 영화에 집중하고자 했다.
‘장르가 공포라고?’
피식 웃음이 났다.
유독 청소년기에 탐닉하게 되는 장르.
공포 영화.
벤자민 자신도 그랬다.
비현실적인 영화 속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현실이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현실에 대한 도피일 수도.
더 강한 자극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의 영화가 곧 시작되었다.
영화의 배경은 한 기숙학교였다.
어느 날, 학생들 사이에 금지 약물이 퍼진다.
굉장히 고가임에도 한 번 경험한 친구들은 주변 친구들을 계속 유혹했다.
주인공은 약물에 호기심을 갖는 친구를 말려보려 하지만 룸메이트는 그날 밤 새벽이 되도록 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룸메이트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친구를 찾아 학교 구석구석을 헤매는 주인공.
음산한 분위기의 음악이 짙게 깔렸다.
고음의 트레몰로가 점점 속도를 내며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아득히 사라졌다.
‘바이올린 소리인가? 아. 소름끼치게 잘 어울리네.’
이어서 피아노의 스산한 음색이 어지럽게 휘날린다.
반복되며 하행하는 현악기의 선율에 불안감이 증폭됐다.
사이사이 효과음처럼 숨겨진 누군가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사람을 긴장시켰다.
최면에 걸린 듯 벤자민은 그 순간 주인공이 된 착각에 빠져들었다.
어두컴컴한 학교에서 천장을 올려다본 주인공이 발견한 피.
긴장감을 자아내는 현악기의 음산한 소리가 심장을 자극했다.
도망치는 주인공의 다급한 움직임.
숨도 쉬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주인공의 다리와 음악이 한데 얽혔다.
헉헉대는 가뿐 숨소리.
숨 가쁜 현악기의 고음과 낮게 유영하는 피아노의 시린 선율.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음악이 불안정한 그의 두 귀를 집어삼켰다.
주인공의 다급한 절규와 함께 카메라의 워킹이 주인공의 발걸음을 쫓으며 맞물리는 긴박한 음악에 심장이 요동쳤다.
조금 후, 화면이 전환돼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 학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지난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학교에 평화롭게 채색된 우아한 선율이 흘렀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꽉 찬 화성.
마치 브람스를 연상시키듯 두터운 짜임새의 고전주의 음악은 영화의 후반을 더욱 궁금하게 했다.
출품된 학생들의 영화 중에 효과음이 아닌 음악이 돋보이는 유일한 영화.
벤자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영화의 후반부에 집중했다.
‘단편 영화라 이제 곧 끝날 텐데.’
환각 상태에서 벌어진 참사는 어느덧 친구의 자발적 의지로 결론나 있었다.
학교에선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우울증에 생을 마감했다고 사건을 은폐해버린다.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는 주인공의 슬픈 눈빛 뒤로.
학교에 약물을 퍼뜨린 장본인이 나타났다.
바로 사건의 은폐를 진두지휘했던 교사.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중독성 강한 약물을 학교에 퍼뜨린 장본인.
음악은 그의 이중성을 비웃듯.
평온한 음악이 흐르며 그의 잔혹함을 강조했다.
가장 끔찍한 순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날카롭게 벤자민의 감정을 흔들었다.
다시 반음계를 활용해 불안감을 조성하던 음악은 높은 음역대로 진행하며 긴장감을 자아냈다.
감정의 동요가 없는 교사의 무표정한 얼굴 뒤로.
숨겨진 미소가 드러나며.
단조로 깔리는 피아노의 낮은 음색 위로 바이올린 두 대의 높고 낮은 불협화음이 어둡고 짙게 깔렸다.
음악과 영상의 절묘한 어우러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과거를 회상하듯.
이제는 세상에 없는 룸메이트가 주인공과 환하게 웃으며 학교 교정을 거니는 모습으로 끝났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학생들.
학교 교정을 거니는 두 친구의 웃음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감춘 채.
애틋한 현악기의 울림과 서글픈 피아노의 음색이 한참을 머물렀다.
‘다소 서툴지만 음악이 주는 몰입감이 대단한 영화였어.’
아직 완벽히 다듬어지지 않은 영화.
상업적인 코드나 매끄러움이 보이지는 않는 음악.
하지만 이 영화의 음악은 평소 그가 듣던 음악과는 조금 달랐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 음악이었다.
공포영화라는 장르.
어찌 보면 사회의 한 단면이 공포 영화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한 해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하는 미국 청소년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그 청소년에게 약물을 파는 사람들은 영화에서처럼 어른들이니까.’
그는 어딘가 생소하지만 몰입감이 훌륭했던 영화 음악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의 이름을 유심히 살폈다.
음악 : 문주원.
연주 : 문주원, 미사키, 장웨이, 알렉스.
벤자민은 눈을 감았다 떴다.
‘음악, 문주원? 뉴욕 예술고등학교의 그 주원?’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 줄리어드 입시를 앞두고 있어서 시간이 없다던 그 학생.
벤자민의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