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52)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52화(152/250)
조금 후 벤자민은 주원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투명한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니 그곳은 작은 스튜디오였다.
업라이트 피아노를 비롯해서 키보드와 음향장비 녹음 부스까지.
크기는 작지만 웬만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원래 그리니치 빌리지는 뉴욕에서도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지역이다.
음악,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거주하는 지역.
벤자민은 학생 시절에나 가 봤을 법한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 있으면 없던 영감도 솟아날 것 같네.’
아티스트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장소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주원과 한 남자가 보였다.
작업 중인 두 사람은 벤자민이 들어온 지도 모른 채 집중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 음소거 된 한 영화의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아! 저 영화 한 5년 전쯤 개봉했던 OST가 아주 좋은 영화인데.’
영화가 흐르는 벽 아래에선 주원이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인셉션에 삽입되었던 한스 짐머의 ‘time’을 피아노로만 친다면 이런 느낌의 곡이 될까?’
주원은 피아노 한 대로 영상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몽환적인 색채의 음악은 삽시간에 벤자민을 영화의 한 가운데로 이끌었다.
뉴욕 예술 고등학교의 무대에서도 주원의 피아노 실력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다른 학생들의 연기와 노래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영화의 장면 깔린 채 주원의 피아노 소리만 들리는 상황.
벤자민은 이 영화도, OST도 모두 알지만 원곡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이것도 직접 만든 곡일까? 너무 좋네. 그런데 왜 굳이 OST가 있는 영화의 음악을?’
작은 스튜디오에 몽환적인 선율이 그득하게 채워졌다.
전작인 뮤지컬 영화를 찍었을 때의 화려하고 전문적인 스튜디오와 비교해 조그마한 이곳.
하지만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음악만큼은 그 어디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보다 아름답다는 건 분명했다.
익숙하지 않은 특별한 음악.
벤자민은 자신이 들어온 지도 모른 채 음악에 심취해 있는 소년을 보며 감사했다.
그의 음악이 깃든 영화.
서툴지만 몰입감이 대단했던 단편 영화제의 음악보다 그는 벌써 발전해있었다.
그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영화에 꼭 맞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한 곡이 끝나고 건반에서 손을 뗀 주원.
그가 벤자민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인사했다.
“감독님,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문자를 보냈는데 못 봤나 보네요. 바로 이 근처에 집을 얻었거든요.”
“정말요? 그럼 LA에서 이사 오신 거예요?”
“잠시 머물 곳을 구한 거죠.”
주원은 같이 음악 작업을 하던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를 소개해주었다.
“이분은 이 스튜디오에서 모든 작업을 총괄하는 애덤이에요.”
애덤은 양껏 상기된 표정으로 벤자민에게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애덤이라고 합니다. 벤자민 휴즈 감독님이시죠?”
“맞아요.”
“감독님 팬이에요. 뮤지컬 영화 제가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이렇게 작은 스튜디오를 찾아 주시고 영광입니다.”
애덤이 기뻐하며 인사하자 벤자민 역시 뿌듯했다.
영화학도를 만났을 때, 그들이 이런 존경의 눈빛을 보낼 때면.
벤자민은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돈과 명예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런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기분이다.
“반가워요. 애덤. 앞으로 종종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마침 이 근처에 집을 구했거든요.”
“와, 친구들한테 자랑해야겠네요. 벤자민 휴즈 감독님이 제 스튜디오에 왔다고요.”
벤자민은 애덤과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주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급하게 온 이유가 분명 있었으니까.
“팜스프링스 국제 단편영화제에서 학생들 작품을 내가 심사했었죠. 거기서 주원 군이 만든 영화 음악을 들었다는 거 아닙니까!”
“진짜요? 그럼 그 심사평을 감독님이 쓰신 걸까요?”
벤자민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도 읽었군요. 아무튼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거 너무 축하해요. 이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니까요.”
“축하 감사해요.”
주원의 웃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급했던 벤자민은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이제는 내 영화 음악 좀 의뢰합시다. 콩쿠르에서 우승도 하고 카네기 홀 데뷔도 했잖아요.”
* * *
벤자민 휴즈 감독님이 애덤의 스튜디오에 순식간에 나타난 것부터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또 영화 음악 의뢰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인지?
그때 거절한 ‘뉴욕의 휴일’ 얘기일까?
‘뉴욕의 휴일’에서 내가 만들었던 음악을 테일러와 벤자민 둘 다 마음에 들어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KM 클래식을 통해 나에게 열렬히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난 둘 중 한 명을 택할 수도 없었고 파가니니 콩쿠르를 앞두고 있었기에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요즘의 나는 영화 음악을 만드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두 가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첫째, 이번 일을 계기로 영화 음악을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
둘째, 상업 영화인데 결과가 좋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해리의 단편 영화 음악을 흔쾌히 수락할 때랑은 마음이 완전히 달랐다.
내 고민이 길어지자 벤자민 감독님의 눈빛이 초조해 보였다.
내가 만든 영화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게다가 이제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을 뿐 결코 배워본 적도, 많이 만들어본 적도 없는 영화 음악인데.
나 혼자 작곡의 결과를 책임지는 문제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지.’
고민이 길어지니 벤자민 감독님께 돌려 말하지 않고 솔직히 내 심정을 전해야 했다.
“감독님, 저도 영화 음악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해요.”
“그건 걱정 말아요. 보통 작곡가 한 명에게 모든 곡을 의뢰하지는 않아요. 그렇게는 제작사와 투자자를 설득할 수 없거든요.”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많은 영화 음악 작곡가들에게 의뢰를 하고 그 중, 가장 좋은 곡을 뽑는다면.
성공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 보고 싶어요. 안 그래도 요즘 영화 음악에 흠뻑 빠져있거든요. 시나리오 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감독님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노트북을 켰다.
“시나리오 보여 줄게요. 집필 끝난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거라고요.”
“설마 직접 쓰신 건가요?”
“맞아요.”
“직접 시나리오도 쓰시는구나. 정말 대단하신데요?”
나는 벤자민 감독님의 노트북을 받아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시나리오를 읽었다.
“하, 여기서 이렇게 된다고요? 재밌어요.”
벤자민 감독님의 시나리오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나는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고 뉴욕의 곳곳이 배경으로 펼쳐졌다.
‘로마의 휴일’에서 모티브를 따오긴 했지만 나도 뉴욕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짧게나마 만들어봤다는 점에서 이 시나리오가 더욱 흥미로웠다.
같은 공간에서도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고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만드느냐에 따라 무수한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지.’
시나리오를 집중해 읽은 후 감독님을 바라보았다.
감독님은 내 반응이 궁금한 눈치였다.
“어때요? 영감이 떠올라요? 일단 한 곡만이라도 먼저 완성해야 하거든요.”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대신 다른 작곡가에게도 꼭 의뢰해주세요.”
나와 벤자민 감독님 그리고 애덤 형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셋이었지만 대화에는 한치의 어색함도 없었다.
우리 사이엔 음악이란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벤자민 감독님은 아까 스튜디오에 들어왔을 때 들었던 음악에 대해 질문하셨다.
“아까 그 영화도 OST가 좋기로 유명한데, 혹시 내가 들어왔을 때 연주했던 곡도 직접 만든 건가요?”
“네, 궁금했거든요. 이미 만들어진 영화의 OST에 다른 곡이 입혀졌을 경우, 느낌이 변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정말 재밌는 생각이네요. 그런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니. 이래서 발전을 안 할 수가 없는 거군요.”
감탄하는 벤자민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엿보였다.
다른 분야의 예술을 하지만.
본질은 비슷하다.
영감을 드러내고 누군가 공감해주길 바라는 것.
그리고 그 영감이 내가 지금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이길 기대하는 것.
벤자민 감독님은 나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주셨고 한 곡의 음악이 완성되면 연락 달라고 하셨다.
갑작스레 성사된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 * *
그날 밤.
오늘의 일을 회사에 알린 나는 벤자민의 시나리오를 보며 활자 속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어느 부분의 음악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이 됐다.
영감이 안 떠올라서 고민이 된 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너무 만들고 싶은 음악이 많았으니까.
한 곡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괴로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일단 한 곡에 집중해서 완성한 다음, 그리고 다른 것도 만들어 봐야지.’
아직은 영상으로도 구체화 되지 않은 시나리오.
나는 상상으로 남녀 주인공의 얼굴과 배경을 떠올려야 했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긴 힘들었다.
‘아! 직접 배경이 되는 장소에 가보면 되겠네.’
나는 시나리오 속 배경이 된, 뉴욕에서 최고 유명한 재즈 클럽 ‘블루 노트’를 검색했다.
블루 노트란 재즈에서 사용되는 음계를 말한다.
3음과 5음 그리고 7음을 반음 낮춰서 연주함으로써 음과 음 사이에 미끄러지거나 구부러진 느낌을 주는 블루 노트 스케일.
재즈가 갖는 독특한 음계의 이름을 딴 뉴욕 최고의 재즈 클럽이 영화가 시작하는 배경이 되었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알지 못하던 시기.
그들은 각기 다른 사람과 뉴욕 최고의 재즈 클럽인 ‘블루 노트’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다.
하지만 둘은 우연처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다.
시나리오에선 그들의 그런 우연 같은 순간을 많이 묘사했다.
그런 순간에 너무 잘 어울리는 장소.
‘블루 노트’
그저 재즈 클럽에서 흥겨운 재즈를 들으며 각기 다른 테이블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으로 그려진 부분.
난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아닌 그 초반 장면의 음악부터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나는 서둘러 ‘블루 노트’가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도중, 블루 노트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미성년자가 입장이 가능한 곳인지 그리고 예약 없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바(bar) 테이블만 미성년자가 앉지 못해요. 오늘은 평일이라 예약 없이도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원하는 답변을 들은 나는 금세 블루 노트에 도착했다.
직원이 안내해주는 테이블에 앉아 미니멈 음료를 주문했다.
그리곤 벤자민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남자 주인공이 앉은 자리, 저기에 여자 주인공이 앉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나는 낯선 이들을 상상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놓고 머릿속에서 영화를 만들어 버렸다.
자유로운 재즈 트리오(세 명의 연주자)의 음악이 시작되자.
나는 블루 노트의 분위기를 더욱 짙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곡은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였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드럼으로 구성된 재즈 트리오의 연주는 지극히 감미로우며 세련됐다.
아름다운 보이싱과 노래하는 듯한 선율은 해변에서 뛰어노는 어린 조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빌 에반스의 시선이 담겨있었다.
‘최종호 원장님이 빌 에반스 정말 좋아했었는데. 그래서 학원 이름도 에반스 실용음악학원이었지.’
원장님께 잠시 재즈 피아노 레슨을 받았을 때, 이 곡을 쳐본 적이 있었다.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리며 굉장히 사색적이었던 인물인 빌 에반스.
사랑스러운 조카와의 놓치고 싶지 않던 순간이 이처럼 아름다운 명곡으로 남았다.
낭만적인 화성과 세련된 보이싱, 빌 에반스의 곡을 연주하는 재즈 트리오의 아름다운 연주에 심취하다 보니 어느새 곡이 끝났다.
나는 두 손을 높이 올려 힘껏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나를 톡톡 건드렸다.
그 사람은 바로 KM 클래식의 유일한 뉴욕지사 직원, 윌이었다.
“윌! 여기서 다 만나네요.”
“그러게요. 주원 씨, 재즈도 좋아했어요?”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죠.”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같이 올 걸 그랬어요. 저희 아빠가 여기 매니징 디렉터시거든요.”
“정말요?”
“벌써 이십 년도 넘었죠. 좋아하는 아티스트 있으면 얘기해요. 내가 공연 있는 날 미리 귀띔해 줄게요.”
“여기 엄청 유명한 곳이던데 윌은 좋겠어요.”
“근데 혼자 온 거면 우리 테이블로 올래요? 여기 어차피 사람 많아지면 합석해야 하거든요.”
“저야 좋죠.”
윌은 익숙한 듯 직원에게 자리를 옮기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윌과 매우 친해 보였다.
자리를 옮긴 뒤, 나는 윌의 친구들과 인사했다.
그리고 곧 다시 재즈 트리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이번에 연주한 곡은 ‘Fly to the moon’이었다.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담긴 음악을 계속 듣고 있노라니.
영감이 쏟아졌다.
나는 달과 별 사이를 여행하며.
별빛처럼 쏟아지는 악상을.
혼자 받아내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리고 그들의 연주가 끝났을 때.
난 테이블 위에 작곡 노트를 펼쳤다.
윌과 친구들이 주문한 음식을 먹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트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곤 소란스러운 틈을 타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시끄러운 주위의 소음 속에.
낯설었던 연인의 처음이 그려졌다.
우연히 빚어낸 재즈의 화성처럼.
시작하지 않은 연인들의 처음 순간이 악상이 되어 돌아왔다.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