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istic Genius of Music Is the Reincarnation of Paganini RAW novel - Chapter (155)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155화(155/250)
팀 로빈슨은 주원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굳이 다른 작곡가에 대해서 캐묻지 않았던 건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업계에 그 누구라도 실력으로 압도할 자신이 있는 팀이었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 로빈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충격을 받았다.
“혹시 지금 대학생?”
“아니요. 고등학생입니다. 이제 곧 대학에 가요.”
“상상도 못 했네. 날 두고 고민했던 사람이 고등학생이었다니.”
팀 로빈슨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처음엔 벤자민의 결정이 탐탁치 않았지만 주원이 만든 음악을 몇 번 들어본 후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진 터였다.
호기심 가는 음악이랄까?
어떻게 음악을 하면 이런 접근이 가능할까?
팀 로빈슨은 자신도 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작곡가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상업적인 부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하나의 영화에 들어갈 여러 개의 음악을 만들면 대중의 픽에 부합할 만한 곡을 무조건 하나 만들고 그 뒤에 새로운 시도를 하곤 했다.
그렇게 해야 요즘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창작활동이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주원의 작품은 두 곡밖에 듣지 못했지만 조금 결이 달랐다.
주원이 만든 곡은 흔히 유행하는 트렌드와는 완전히 달랐다.
처음 보는 코드 진행과 새로운 주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그런 정형화된 방법으로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주원의 음악은 이상하게도 한 번 들으면 귓가에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계의 예술이 변화한 시점.
역사상 아예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나 예술이 변화한 시기.
또는 어떤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경우.
그럴 때마다 언제나 그 분야의 천재가 나타나곤 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못 느낄 수 있지만.
그들이 죽고 난 후에 후대의 평가는 어마어마했다.
주원이 그런 천재라는 건 아니다.
아직 그의 영화 삽입곡 몇 개만 들었을 뿐이니까.
아직 십 대.
영화 음악판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
제대로 영화 음악을 배워보지도 않은 상태로 지금 정도의 음악을 만든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리다고 주원을 만만하게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이란 예술에 있어서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이니까.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음악의 역사.
그 거대한 흐름 앞에선 80대도 10대도 그저 걸음마도 못 뗀 어린아이일 뿐이다.
팀은 머릿속을 떠도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는 주원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보시다시피 지금 작업 중이라. 금세 끝나니까 잠시 기다리시죠.”
그러자 주원이 물었다.
“방해 안 되게 옆에서 구경해도 될까요? 이렇게 제대로 작업하는 건 처음 봐서요.”
“물론이죠. 나는 대신 절대 신경 안 씁니다.”
팀 로빈슨은 잠시 중단했던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신경을 안 쓰려 했지만 주원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두 눈엔 호기심이 가득했고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
뭔가 생소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한때는 저런 순간이 있었는데.’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단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 * *
작곡가 팀 로빈슨과의 만남은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윌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아 성격이 까칠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라는 내 대답에 어딘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그가 허락해준 덕분에 나는 영화 음악 전문가의 녹음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가사가 없는 연주 음악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효과나 음향은 그 뒤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라고 설명을 들었다.
팀 로빈슨은 오늘 현악 4중주(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첼로)의 편성으로 된 곡을 녹음 중이었다.
제1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주선율을 노래하고 있었다.
하지만 첼로와 제2 바이올린 역시 화성적으로 동등한 비중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하나의 선율처럼 느껴졌다.
두 연인이 호감을 갖고 만나기 시작하는 씬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연주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합은 더욱 좋아졌고 훌륭했다.
팀 로빈슨은 디테일하게 연주자들에게 원하는 바를 얘기했고 연주자들은 바로 그 느낌을 표현해냈다.
드디어 그들의 1차 녹음이 끝났다.
그런데 팀 로빈슨의 표정이 뭔가 못마땅해 보였다.
“하, 괜찮은데 뭔가 멜로디에 딱 집중이 안 된단 말이지.”
혼자 중얼거리던 팀 로빈슨이 대뜸 나에게 질문을 했다.
옆에 서 있는 내가 신경이 쓰였나 보다.
“어땠어요? 솔직히 말해봐요.”
“음, 정말 좋았어요. 영상과 잘 어울리는 건 물론이고요. 멜로디도 아름답고 연주자들의 연주도 좋았어요. 그런데….”
팀 로빈슨이 코를 찡긋하더니 팔짱을 꼈다.
“뭐가 아쉬운 게 있었나 보네. 어떤 부분이죠?”
“제1 바이올린을 24마디부터 한 옥타브 올려서 연주하면 어떨까요? 그럼 선율의 윤곽이 더 살아날 것 같아서요.”
“흐음. 그럼 그렇게 한 번 해볼까?”
팀 로빈슨은 헤드폰을 쓰고 녹음 부스 안에 있는 연주자들에게 버튼을 눌러 얘기를 전달했다.
“제1 바이올린 24마디부터 한 옥타브만 올려 연주해 줘. 바로 할 수 있지?”
투명 유리 안에서 연주자는 문제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현악 4중주의 연주가 시작됐다.
해당 파트가 끝나 연주를 멈추자 팀 로빈슨에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훨씬 낫네요. 가끔은 이렇게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되는데, 나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아니에요. 정말 음악 너무 멋져요. 우리끼리 듣기 아까울 정도요.”
팀 로빈슨은 내 찬사에 피식 웃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나를 경계했던 그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더니 팀이 이번엔 반대로 나에게 물었다.
“이제는 내가 구경할 차례인데 괜찮죠?”
* * *
[크레모나 공방]주원의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주원이 쓰는 악기가 문성주 장인이 만든 악기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제작 의뢰 문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악기를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계처럼 동시에 수십 대 수백 대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바뀐 것 같아 뿌듯했다.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큰돈을 주겠다며 자신들의 나라로 와달라는 제안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문성주는 번번이 그런 제안을 거절했다.
희한하게 한국에서는 현악기를 전공하는 학생 중에 외국 악기를 쓰지 않는 학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평생을 쓰는 악기는 무조건 외국의 올드 악기를 쓴다.
그리고 세컨 악기로는 한국 메이커(악기 만드는 사람)의 악기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희박한 확률이다.
문성주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어제 못한 작업을 마무리 짓는 중이었다.
그는 공방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공방을 들어온 사람들은 세 명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일본 사람들이었다.
한 남자가 문성주에게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이분들의 통역으로 왔습니다. 저만 한국 사람이구요.”
문성주에게 온 일본 사람 일행.
이전에도 여러 번 연락을 해오던 일본 사람들이 이번엔 직접 방문한 것이다.
그들은 문성주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일본행을 제안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주원이 우승한 후, 일본에서도 주원의 인지도와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악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일본의 특성상 장인의 악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과 비교도 안 되게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란 사실도 알려주었다.
문성주는 통역을 해주는 사람에게 대답했다.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일본에 가겠소. 나는 한국이 좋습니다.”
문성주는 다시 거절을 한 뒤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는 제안이 내키지 않아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들이 제시한 금액과 조건은 엄청났다.
한평생 악기장으로 일을 했지만 부를 축적하지는 못했다.
누구보다 악기의 원재료인 나무를 공수하는데 신경을 썼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악기를 만들었다.
사람이 만드는 악기는 기계처럼 뚝딱 만들 수 없다.
그렇기에 큰돈을 모을 수는 없었다.
문성주는 얼마 전 문혁이 학원을 오픈할 때 손자인 주원이의 돈을 썼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주원이가 자신에게까지 상금을 주고 싶다고 했을 땐 눈물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있는 돈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손주가 자신에게 상금을 준다니.
당연히 받지 않았고 문혁의 사업에 보태라고 말했다.
문성주는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통장을 보며 생각했다.
‘죽기 전에 혁이랑 주원이 그리고 지환이에게 큰돈을 마련해주고 가면 좋을 텐데.’
문성주는 조금 전 일본 사람들이 주고 간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순간 떠오르는 순간은 딱 한 사람 뿐이었다.
* * *
이번에는 내가 만든 곡을 녹음할 차례였다.
총 두 곡을 할 예정이었는데, 한 곡은 바이올린으로 한 곡은 피아노로 연주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첫 번째 녹음할 곡의 편성은 나 역시 현악 4중주였다.
녹음실에서 제1 바이올린 연주자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팀 로빈슨이 그녀를 붙잡았다.
“오늘 다음 곡도 현악 4중주라고 했는데 어딜 가?”
“저는 오늘 한 곡만 녹음하기로 했어요. 다음 곡에서는 저 연주 안 해요.”
그 대답을 듣고 팀 로빈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제1 바이올린 연주자가 시선을 돌려 나를 보고 물었다.
“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주원 씨 맞죠?”
나는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녀는 자신의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악보를 하나 꺼냈다.
“여기에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어요? 요즘 이 곡 열심히 연습 중이거든요.”
그녀가 나에게 건넨 악보는 내가 작곡한 악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팀 로빈슨이 사인을 끝낸 악보를 가리켰다.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에 이 악보는 도대체 무슨 얘기지? 내가 한번 봐도 될까?”
다시 그녀의 손에 돌아간 악보를 건네받은 팀 로빈슨.
악보와 작곡자의 이름을 살피다 내 얼굴을 쳐다봤다가를 번갈아 했다.
“클래식 바이올린 전공자였나? 게다가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
“맞아요. 하지만 영화 음악은 많은 배움이 필요해요.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바이올린도 잘하고 클래식 작곡까지 하는 사람이 꼭 영화 음악까지 해야겠어요?”
팀은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라면 모두 하고 싶어요. 다른 음악을 한다고 해서 바이올린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금처럼 연주도 하고 영화에도 남잖아요.”
“그래, 그럼 직접 들으면 얼마나 괜찮은지 봐야겠네.”
나는 레코딩을 해주는 분에게 간단히 곡에 대해 설명을 한 후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부스 안에 있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연주자들이 나를 보며 마치 아는 사람처럼 반가워했다.
콩쿠르 영상을 수십 번 봤다는 첼로 연주자.
시중에 나온 내 악보를 모두 구매했다는 제2 바이올린 연주자.
카네기 홀 데뷔 무대를 직접 봤다는 비올라 연주자까지.
모두가 나의 등장을 반가워하고 이 과정을 함께 하는 것에 기뻐했다.
“연습을 열심히 해왔어요. 갈등이 생기는 씬에서 등장하는 음악이라 그런지 화성이 오묘하더라고요.”
나는 그들에게 악보를 어떻게 연주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주인공 남녀의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에 삽입되는 곡.
혼란 속에 시작된 긴장감 어린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의 연주.
비올라와 첼로는 서로 다른 선율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묘사했다.
네 대의 현악기는 여러 가지 색감을 드러냈다.
질주하는 제1 바이올린의 뒤를 이어 쫓아가는 제2 바이올린.
우리는 현과 활을 맞대며 복합적인 상황을 그려냈다.
엇박과 당김음 속에 드러나는 연인들의 갈등.
그들의 모호함과 불안정성이 짙은 감성으로 표현됐다.
처음 맞춰본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연주자들에게 원하는 방향을 하나씩 설명하며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완성하고자 노력했다.
수차례 녹음 끝에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완성해냈다.
녹음 부스에서 나온 나를 보며 팀 로빈슨이 물었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혹시 이 영화 말고 다른 영화 음악 나랑 해볼 생각 없나요? 내년에 크랭크인(Crank in : 영화촬영의 시작)하는 대작의 음악감독을 맡기로 했는데 말이죠.”
나는 팀 로빈슨의 제안에 기분이 좋았다.
그와 일을 하게 될 지 안 하게 될 지와는 별개로 누군가 내 음악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너무 빠르게 태도를 바꾸는 팀은 믿을 만한 사람일까?
윌이 조언해줬던 얘기가 마음에 걸렸다.
조금 더 그를 알게 된 뒤에 다음 일을 같이 해도 되지 않을까?
예술고 음악천재는 환생한 파가니니